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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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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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여름캠프 (+2) 아이야 일어 나거라  
#2017여름캠프 (+2) 아이야 일어 나거라



어제 사모님 방문을 두드리고 수건을 가지고간 태현이는 수건이 젖도록 눈물을 흘리고 콧물을 닦았답니다.
결국 마음 약한 사모님이 태현이 옆에서 주무셨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태현이는 잠이 들자마자 코를 골면서 밤새 푹 자버렸답니다.ㅎ
아침에 일어나서도 부은 눈으로 슬픈 기색을 유지하다가는 또 금방 다 잊어버리고 민준이와 인이랑 레고를 가지고 투닥거리고 영화를 보고 사모님과 코스코 장을 보러 다녀오고 잘 쉬었습니다.
특히 오늘은 북미에서만 볼 수 있는 개기일식이 있는 날이었답니다.
안경을 준비하지 못해 일식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개기일식 피크인 2시32분에는 밖에 나가 어둑해진 하늘과 햇살을 보고 들어왔답니다.
태현이가 토론토에 남은 또 하나의 좋은 점이네요.^^

예수님은 열두 해 혈루증을 앓은 여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실 때는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딸이 죽었으니 선생님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늘이 무너지지요.
딸을 살리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예수님께 와서 발아래 엎드리고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죽었다니요!
그 때 회당장에게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 태현이에게 이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제 예정된 캠프를 잘 마치고 곧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겠다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속상하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원망이 들고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태현이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고 울고 통곡하는 것을 보시고는 왜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자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보이지 않으면 죽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음이 없고 변화를 한 것입니다.
죽었으니 다시 살아날 일만 남았고 살았으니 죽을 날만 남은 것입니다.
헤어졌으면 만날 날이 남았고 만났으면 헤어질 날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지금’을 알아차리고 누리는 일이 최고의 선택이지요.
죽음이 있다면 선택을 하지 못하는 절망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일어나 걸어 다녔고 그 아이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고 했습니다.
예수의 손을 잡고 일어난 아이의 나이는 몇 살일까를 물어 봅니다.
인이는 열두 살이라고 하고 태현이는 그걸 왜 묻냐는 듯이 열두 살, 민준이도 열두 살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또 묻습니다.
아이의 나이가 몇 살이냐... 서너 번을 물으니 고개를 갸웃 거리며 한국 나이로 열세 살, 만으로 열한 살... 그럽니다.
그래서 나에게 물어보라고 말하니 태현이가 그러면 그 아이의 나이가 몇 살이냐고 나에게 묻습니다.
그 아이의 나이는 마흔 아홉이라고 말하니 알아듣습니다.
그 아이는 열 살이고, 열두 살이고, 마흔 아홉입니다.
바로 죽어 있는 내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숨을 쉬고 움직인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한국에 있다고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고 캐나다에 있다고 캐나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려고 세상에 온 것이 아닌데 이렇게 살다가 죽을 수는 없지요.
이제 그렇게 울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야지요.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울고만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아니지요.
이 시간을 아끼고 아껴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정말 살아 있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미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그 일이 다 필요해서 있는 일임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렇게 좋은 것 싫은 것, 사랑하는 것 사랑하지 않은 것,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상대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달지 않지만 그것이 필요한 것임을 깨달을 때, 달지 않은 그것조차도 원하게 되는 만남이 있습니다.
그런 세계가 믿음으로 사는 세계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잘 '들음'으로 가는 자리입니다.
그런 오늘을 살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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