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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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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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여름캠프 (20) 생각이 끝나는 자리  
#2017여름캠프 (20) 생각이 끝나는 자리



하나님 나라는 뿌려진 씨앗이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싹이 나고 자라지만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어 봅니다.
씨앗은 열매를 볼 수 있을까?
이제 다들 물어주면 저 물음은 무슨 뜻일까 한 번 더 궁리를 하며 머리 굴리는 것이 눈에 훤히 보입니다.ㅎ
그래서 답을 달려고 하지 말고 물음을 만나라고 안내해주지요.
답을 달려고 하니 답답한 인생입니다.
답이 어디 있겠어요?
실수하고 실패하면서 알아가는 거지요.^^

씨앗은 열매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있으면 씨앗 한 알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열매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땅에 떨어져 썩고 자기 살을 찢어 싹을 틔우면 자기는 사라지지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게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씨앗이 싹이 나고 자라는 것을 알 수 없다고 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일은 씨앗을 뿌리고 씨앗이 되는 일입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하니 민준이가 그러면 나는 내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지요? 라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나머지는 맡길 뿐입니다.
저절로 되는 신비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씨앗이 스스로 자라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지요.
또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앗인데 심고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를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됩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나이지만 싹이 트고 자라면 그 어떤 것보다 더 커집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체조하고 책 읽고 명상하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 자리 잡고 조율된 일상이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지요.
생각이 끝나는 자리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다 저 쪽으로 건너가자 하시고 제자들과 배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로 가셨습니다.
아이들에게 바다 저 쪽으로 가고 싶은지 묻습니다.
아니 이미 우리는 바다 건너를 향해 3주를 가까이 배를 몰고 왔지요.
가만히 있었으면 물가에서 어슬렁거리며 이런 저런 생각과 말만 무성했을텐데 말입니다.
이번에는 태현이가 그럽니다.
캐나다로 건너가자는 말씀을 듣고 배에 올랐다구요.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가라고 했지만 그 소리를 듣고 “예!”한 것은 내 선택입니다.
자, 그런 바다 한가운데 무엇이 있을까요?
어떤 포상과 신비와 비밀이 펼쳐질까요?
그런데 성경을 보니 거센 바람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오므로, 물이 배에 벌써 가득 찼다고 합니다.
바다 위는 그저 낭만적인 세계가 아니지요.
폭풍과 풍랑으로 물에 빠져 죽게 될 위기, 그냥 바닷가에 머물러 있을 걸 괜히 나왔다는 후회와 절망이 덮치고 있을지 모릅니다.
14시간 비행기를 타면서, 또 낯선 곳에서 당황스러운 순간, 한밤 자다가 깨어 부모님이 보고 싶어 눈시울을 적시며 그런 후회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 과정을 넘어야지요.
그 때 배 안에서 자고 있던 예수님을 제자들이 깨우니 예수님은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하시면서 고요하고 잠잠하라고 하시지요.
그런 위기의 순간에 잠자고 있는 예수님을 깨우면 됩니다.
예수님과 배 안에 있으면서 물에 빠져 죽을까 무서워하다니요!
길과 진리와 함께 있는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입니다.
그렇지 못해 불안하고 염려와 근심이 있습니다.
내 안의 열정을 깨우고 처음 마음을 다시 찾으면 됩니다.
예수님이 풍랑이는 바다에 떠 있는 배에서 제자들과 함께 있다는 것도 그러한 의미이지요.  
그것을 잊어버리고 살아 수선을 피웠습니다.
죄송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또한 바다 저쪽에 머물러 있었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 은혜를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파도이는 바다에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8월의 둘째 화요일 하루를 마치며 토론토 근교 선셋비치로 석양을 보기 위해 바람을 쐬러 나갑니다.
비치로 간다니 태현이는 바닷가로 가냐고 묻습니다.
대서양으로 가려면 운전해 20시간은 가야 한다구요.ㅎ
편안한 집에서 저녁진지까지 하고 나니 다들 그냥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많은 모양입니다.
나도 그렇지요.
그런데 그렇게 있어서는 거기까지...
바다 건너로 가 보아야지요.
배를 타보아야 배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않겠습니까?ㅎ
그리고 일어나 찾은 선셋 비치, 계속 구름과 빗속에 있던 토론토였는데 오늘은 구름이 자리를 피해주셨습니다.
다만 습도가 있어 화려하고 쨍한 석양이 아닌 고요하고 차분한 석양을 만났답니다.
가까이 있는 이 아름다운 곳에 자주 찾지 못하는 일상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삶을 만나네요.
돌아와 명상을 하며 어떤 색을 만났는지 물어봅니다.
민준이는 오렌지를, 태현이는 남색을, 인이는 그레이를 만났다고 합니다.
지낸 해 앞에서 만나는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오늘도 태현이는 마음나누기를 하며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캠퍼들 모두에게 보내는 태현이 어머니의 편지를 그동안 편지를 받지 못했던 인이에게 주었더니 인이에게 편지를 잠깐 만져보자고 달라 해서 쓰다듬습니다.
엄마의 체취를 느껴보려구요.^^
그런 태현이를 보면서 오늘은 “토론토에 남을 수 있니?”라는 물음을 가져보았습니다.
인이와 민준이에게는 “한국에 갈 수 있니?”라고 물었구요.
그러니 민준이는 화들짝 놀랍니다.
“아니요. 한국에 왜가요? 못가요. 아니 안가요....” 막 당황을 합니다.
인이는 캠프 고참답게 얼마든지 한국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대신 캐나다도 자주 오겠답니다.^^
물음을 몇 번 묻지 않았는데 태현이는 센스있게 물음을 간파합니다.
캐나다에 남으라가 아니라 남을 수 있냐라고 물었다고, 그 물음을 잘못 듣고 남으라는 줄 알았다고 명쾌하게 해석을 해 냅니다.
그래서 태현이에게는 조금 더 들어갑니다.
“캐나다에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랬더니 멈칫하지요.
캐나다에 남을 수 있는 것과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이제 이 물음으로 록키까지 가져가려고 합니다.
생각과 사실을 분리하고,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삶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이 끝나는 자리가 하늘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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