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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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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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여름캠프 (17) 부자와 가난한 사람  
#2017여름캠프 (17) 부자와 가난한 사람



오늘은 캠프를 열고 세 번째 토요일, 다음 주 록키 여행이 기다리고 있어 모두들 컨디션 조절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고, 사모님이 영화관 이야기를 꺼내니 아이들이 환호성, 영화관을 다녀오기로 합니다.
나간 길에 노래방에서 다시 흥도 돋우구요.
그래서 나는 금요일 밤에 명상을 마치고 양로원으로 올라와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지내고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 2주간은 토론토에 없으니 양로원에 올라오지 못할 상황이지요.
양로원에서 일하시는 분들 교대를 못해드리는 게 마음에 걸려 하루 더 일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 분위기나 흐름도 좋구요.
걱정은 나만 되는 거겠지요?
늘 그렇더라구요.
나 없으면 더 잘 돌아가는데 나 없으면 안된다는 못된 생각 말입니다.^^
하루 마치고 사모님 다녀오신 이야기를 들으니 나 역시 배신감이 느껴진답니다.ㅎ
캠프 오기 전에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은 애니메이션 ‘미니언3’를 보고 노래방에서 역시 태현이가 끼를 마음껏 발휘했답니다.
민준이는 형님답게 젊잖게 자리를 지키다가 사모님이 밀어내어 동요 한곡을 부르구요.
사모님은 성악을 전공하셨고 인이도 토론토 어린이 노래대회에서 늘 1등을 하는 끼가 있답니다.
내가 가서 분위기를 숙연하게 해주어야 하는데 나 없는 덕에 ‘활끼’가 넘쳤겠어요.ㅎ
사모님의 보살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은 지난 주 아침에 마가복음을 읽으며 함께한 이야기 중에 못 나눈 이야기 가운데 하나를 하지요.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당시에 세리와 죄인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 여자들이 많았구요.
이 땅에서 자신들이 가진 것이 적으니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기 쉬웠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헤롯당 사람들이나 사두개인들, 종교적인 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로마에 기대어 예수님을 모함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지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관에 앉아 있던 세리 레위가 예수님이 부르자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이야기를 할 때였네요.
당시 사람들은 세리를 죄인 취급했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로마에 바치는 악역을 맡았기 때문인데 사실은 그 세리의 일을 만든 사람들은 세리를 죄인 취급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라를 로마에 가져다 바치고 호의호식 하는 사람들이 당시 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누가 죄인이고 누가 누구를 심판해야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이 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저주와 죄의 대가를 받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병자들을 죄인 취급했지요.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선악과를 먹어 인류를 타락하게 한 죄인들이라 여겼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죄 앞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손을 잡으셨고 그것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쫒으신 예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니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럼 부자가 나쁜가요? 라고 묻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가진 것이 없어서 버릴 것이 없기에 쉬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나갔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놀랍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 부자로 사는 것이 좋고, 작은 차를 타는 것보다 큰 차를 타고 싶고, 작은 집보다 큰 집에 살고 싶고... 그런 것이 좋은 것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은 거지요.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고 명예와 권력을 얻는 것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고 명예와 권력은 삶의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는 겁니다.
문제는 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고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싶은가라고 말해줍니다.
그래서 사람이 될 수 없는 거지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같은 물음이 됩니다.
부자가 되어도 그 돈을 자기의 소유로 생각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과 사회가 그 돈을 잘 사용하라고 맡겨주신 것이라 여기는 거지요.
사실 돈을 벌게 된 것도 자기 능력과 노력과 힘으로만 된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진지 알아차리기에서 내가 먹는 밥을 위해 내가 한 것이 없이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듯이 말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명예와 힘을 얻었을 때 그것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보다 나은 사회, 정의와 평화를 이루어 가는데 기여하는 것이 의미 있고 그럴 때 정말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지요.
돈을 버는 것은 need이고 돈을 잘 사용하는 것은 Desire입니다.

캐나다의 예를 들어 봅니다.
캐나다는 1년에 1억을 버는 사람은 5000만원을 세금으로 내고 5000만원으로 살아갑니다.
또 1년에 5000만원을 버는 사람은 1000만원을 세금으로 내고 4000만원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1억을 버는 사람이나 5000만원을 버는 사람이나 생활수준은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1억을 버는 사람이 불평하거나 5000만원을 버는 사람이 불편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회적인 합의이고 성숙하고 선진적인 시민의식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하셨던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것은 이런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1억을 버는 사람 가운데 5000만원을 세금으로 내기 싫고 아까워서 탈세를 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천국을 사는 것이 아니라 늘 지옥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늘 불안하고 불평이 일어 위험한 사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서 행복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또 예수님은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다는 말씀도 그런 의미입니다.
죄인인줄 아는 사람이 용서를 받습니다.
의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모르니 용서를 받을 수가 없지요.
예수님 당시에 가난하고 병들고 외롭고 힘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이 그들 편에 계셨던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캐나다에 처음 온 아이들을 데리고 영어학원에 가면 선생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기 전에 “너 영어 잘하니?”라고 묻지요.
그리고 영어 잘한다는 친구보다 영어 하나도 못한다고 대답하는 친구에게 너 영어 잘할 거라고 말해줍니다.
자기가 영어를 못하는 줄 아니까 영어를 금방 배운다는 것이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깝고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뜻이 그러한 의미입니다.

맹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합니다.
맹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성(性)이라고 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명(命)이라고 합니다.
성을 다하고 명을 기다리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고 최선을 다해서 살고 의로운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인간의 생사라는 것입니다.
인으로 살고 의로 죽고 대인으로 살고 대의로 죽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인간답게 살다가 인간답게 죽는 것뿐입니다.
오늘 학생이 공부를 하는 것도 내가 일하는 것도 우리가 캠프를 하는 것도 그런 의미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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