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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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예가와 은혜 양로원 이야기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4/6/6
의심한 만큼 믿음  

(사진 : Ryan McGinley, "청춘 그 찬란한 기록")

제가 주중에 토론토에 나와 있고 주말에만 양로원에 올라가기 시작한지 석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다시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져가니 삶이 민망하기까지 하고, 지난 1년 반 24시간 7일 내내 일하면서 나 없으면 안될 것같은 양로원 일도 더 잘되고 있으니 서운함과 고마움이 교차합니다.ㅎ
이번에 올라갔더니 C할머니께서 방에서 혼자 무언가 열심히 하고 계셔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렸는데 본체만체 하십니다. ㅠ
그래서 저 모르세요? 했더니 서울서 왔어? 그러시는 겁니다. 헐~
전에도 정신이 오락가락 하셨는데 이제 완전히 가셨나? 놀라서 진짜 모르냐고 다시 물었더니 오랜만에 왔으니 가서 푹~ 쉬라며 웃으십니다.
깜짝 놀랐네요. ㅎ

이제 이렇게 주말에 양로원에 올라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 보기도 그렇지만 함께 일하러 한국에서 오신 소망이님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24시간 7일 내내 한 공간을 몇 달째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줄 알기에 함께하고 있었을 때는 그나마 덜 미안하고 서로 위안이 되었는데 그렇지 못해 마음에 걸리는 거지요.
그래도 씩씩하게 자기 점검을 잘하고 압력을 잘 견디며 스스로 삶을 바꾸어 보겠다는 초심을 지키고 있어 참 고맙습니다.
주말에 양로원에 가면 토요일에는 소망이님과 영성의 오솔길을 걷고 일요일에는 예배를 드리고 내려오니 저로서도 오롯이 사람답게(?) 사는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랍니다.
예배, 참 고마운 리추얼이지요.
물론 이리 저리 손이 가지 않은 양로원 시설도 돌아보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챙겨드리는 기쁨도 나를 넉넉하게 해준답니다.
지난 주에는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오후 내내 풀을 깎고 내려왔습니다.
나 혼자 사는 삶 같지만 사실은 이렇게 함께하는 덕분에 살아지는 삶임을 다시 돌아보게 되지요.

요즘은 소망이님과의 영성의 오솔길에서는 창세기의 아브라함을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벨로니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창15:7)”고 말씀하시는 장면에 접촉이 되어 한참을 머물러 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 내신 이유가 무엇일까?
나를 세상에 보내신 분명한 이유가 있을텐데, 이렇게 살다가 가라고 보내신 것은 아닐텐데.... ㅠ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나도 가슴이 턱 막히는데 소망이님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컥합니다.
무엇을 주시려고 어떻게 살게 하시려고 이렇게 떠나오게 하셨을까요?
우리 모두가 삶의 한 가운데서 묻는 물음입니다.
양로원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마찬가지겠지요.
본향을 떠나 90년, 100년을 살면서 이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 가슴은 두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온 이유는 이 땅을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나오게 하셨다네요.
아, 그게 무엇일까?
내가 발딛고 있는 땅, 지금 하고 있는 일, 만나고 있는 사람을 나의 것이 되게 하겠다고 하시는 것이지요.
아, 설레이며 가슴이 두근거려집니다.
멋~집니다.

소망이님은 6개월 더 양로원에서 일하려고 비자도 갱신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압력이 차오를 때면 이제 한국에 미치도록 가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 마음을 제가 아니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의식이 바닥을 치는 어느 순간, 견딜 수 없이 힘들어 나가고 싶고 지금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지요.
게다가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고 쿨~하게 그러자고는 했다지만 그 영향이 적을 수가 없지요. ㅠ
그럴 때가 있습니다.
술먹고 담배피고 춤추며 어울려 노는 또래 친구들의 사는 이야기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았지 떨어져 보이기도 하다가 또 그렇게 살고 싶다는 유혹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돌아가면 또 예전처럼 살아가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이제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달라지고 싶어서 떠나 왔는데 무엇이 변했을까 시간만 낭비한 것은 아닐까 혼란스럽기도 하고 수축이 올라오는 거지요.
그러면서 또 이렇게 함께 성경을 만나고 나를 떨어져서 보며 알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양로원 생활수련은 100일 정도면 충분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이상의 압력은 젊은 친구들에게는 소모적일 수가 있어서 저는 추천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망이님은 스스로 6개월을 넘기면서 6개월을 더해서 1년을 하겠다고 결정을 했지요.
저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원하는대로 조건을 마련해주고 대견스레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또 차오르는 압력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저의 할 일은 소망이님이 그것을 떨어져 바라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어떤 선택이든지 의식 수준이 높을 때 하는 것이 좋은 선택입니다.
의식이 바닥일 때 하는 선택은 나쁜 선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곧 후회하게 됩니다.

소망이님이 한국에 가고 싶은 이유가 가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 열정과 욕구가 올라와 캐나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기에 떠나는 것이라면 저는 등을 떠밀어서라도 보내어줍니다.
그러나 지금 맞이하는 현실이 힘들어 피하고 싶고 예전으로 돌아가 그 수준의 친구들과 어울려 철 모르고 놀고 싶어서 떠나는 거라면 나는 반대라고 말해줍니다.
잘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도망을 가면 어디를 가든지 도망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하는 나그네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아브람이 떠난 아비와 본토와 친척의 집은 나에게 익숙한 곳, 쉬운 일입니다.
늘 그러한 자리, 안정되고 보호 받는 그곳이지요.
그런데 그곳을 떠나 나그네로 살아보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아프리카로, 미국으로, 캐나다로 왔다고 떠난 것이 아니라 장소를 옮겼을 뿐입니다.
여차하면 돌아가면 되는 길은 떠난 길이 아닙니다.
떠났다는 것은 죽어야만 돌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의 길 떠남이 그러하였고, 야곱의 길 떠남이 그러하였고, 요셉의 길 떠남이 그러하였고, 예수의 길 떠남이 그러하였습니다.
떠나서 불편과 위험을 감수했다는 건 사실로 한 발자국도 떼지 않은 거지요.
떠난다는 것은 감수할 불편도 위험도 없는 겁니다.
다 버리고 없이 하여 깨끗해서 감수해야할 그 무엇도 없는 것이고 그래서 텅 비어 고요합니다.

이렇게 함께 지금의 고민과 물음을 나누며 영성의 오솔길을 걸으니 그 맛이 깊고 오묘합니다.
어두웠던 얼굴이 밝아지고 목소리에 힘이 붙는 것을 보니 제가 다 고마워 가슴이 설레고 눈물이 납니다.
이제 이십대 후반에 이를 동안 자기 일도 없고 전문성도 없이 떠돌던 삶에서 돌이켜 변화해 새로워지고자 이리 나왔으니 이제 삶을 재정돈하고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세워 돌아가도록 잘 안내해야겠습니다.
지금 돌아가도 예전의 그가 아닐 것은 분명합니다.
그만큼 본 것이 있고 느낀 것이 있고 몸으로 알아간 것이 있으니 말입니다.
나에게로 온 소중한 사람이니 내가 정성을 다해 안내하고 위해서 기도해 줍니다.
지금 곁에서 함께 생활수련을 돕지 못하고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제 마음이 더 간절해지네요. ㅠ

하나님은 자손을 번성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의심하며 시종을 상속자로 삼겠다는 어긋장을 놓는 아브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하늘의 별을 보여주며 헤아려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 삶은 하늘의 별처럼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신비이고 기적인데 그것을 내 경험과 한계로 제한하려 하니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또 땅을 주겠다는 약속의 증거를 보여달라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반을 쪼갠 희생제물 사이를 지나시면서 스스로 죽음을 걸고 계약의식을 치르십니다.
눈을 뜨면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마련해 놓은 그렇게 이미 되어진 길, 이루어진 삶입니다.
아브람은 의심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증거을 얻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심한 만큼 믿음입니다.
한번도 의심하지 않은 것은 믿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믿음은 바라는 것의 증거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입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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