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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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예가와 은혜 양로원 이야기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4/9/10(수)
다시 꾸는 꿈  
밤 열한시가 다된 늦은 시간 낯선 전화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손님이 택시를 예약하시려나 보다 하고 전화를 받습니다.
조금은 당황스럽고 화가 난 목소리의 여자분이 택시를 쓸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 공항으로 가자고 했다가 호텔로 가자고 했다 횡설수설을 합니다.
보통은 미리 예약을 하고 움직이는데 무슨 다급한 형편이 있구나 직감을 하고 늦은 시간이지만 아무 말 없이 준비를 하고 나갑니다.
나가보니 열한시가 넘은 밤에 여자 혼자서 짐 가방 두개를 놓고 거리에 서 있습니다.
그냥 낯선 타국 땅에 갈 곳 없이 내팽겨쳐진 느낌이 들어 속이 상하고 답답하고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손님을 태우고 영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어디로 가시려는지 목적지가 정확해야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짐을 차에 싣고 운전을 시작합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공항으로 가잡니다.
미국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몇시 비행기냐니까 막차라고 합니다.
어쩌지... ㅠㅠ
그림이 그려지네요.
아무 계획 없이 갈데가 없으니 무작정 공항으로 가겠다는 겁니다.
가다가 캐나다에 사는게 어떠냐고 묻습니다.
'사는거야 어디나 똑같지요. 캐나다라고 한국이라고 미국이라고 다를까요? 어디나 사람 사는데지요.'라고 말하고 나니,
여자분도 그게 정답이라고 한숨을 쉬며 캐나다가 살기 참 힘들다고 하면서 화도 못내고 삶에 주눅이 들어 있습니다.
어떻게 캐나다까지 흘러 들어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고생만 하고 지쳐서 또 어디론가 떠나가려나 봅니다.
'인생,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요.' 하니 그런 이야기가 10년전에 자기가 동생들하고 일하면서 했던 이야기라고, 그런데 마흔이 넘은줄도 모르게 세월이 흘러 버렸다고 또 한숨을 쉽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또 침묵하고... 나도 묻고 싶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불편해 하실까 그냥 말할 때까지 그냥 들어주는 선택을 하지요.
한참 가다가 여자분이 나에게 말을 던집니다.
도를 많이 닦으신 것같다구요.ㅎ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놀라는척 물으니 그냥 있어보면 다 안다고 그럽니다.
마음 고생을 해보고 끝까지 가본 사람은 다 알게 되어 있지요. ㅠ
말하는 거나 차 안 분위기나 음악이나 그렇다고...
흔들리는 인생을 봅니다.
아프고 속이 상하네요.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습니다.
그냥 내팽겨진 것같은 인생에 내가 잠시나마 존중해주고 발이 되어 가고 싶은 곳으로 친절히 모셔주는 거, 지금은 할 수 있는게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손님은 삶에 지쳐 쉬고 싶고 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을까 전해져옵니다.
그냥 그런 손님을 공항에 내려다 주고 오면서 지금은 여기까지라고 여기지만 많이 미안하고 아프네요.
토론토에서는 한인사회에서 틈새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운전하는 일을 하다보니 손님이 학생이나 관광객들만이 아닙니다.
매춘하는 여성들도 손님으로 찾아오는데 나는 모르척해주고 친절하게 모십니다.
그렇게 해주니 입소문이 나는지 매춘하는 여성들이 단골로 많아지기도 합니다.
이분들은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해서 자꾸 바뀌고 그네들도 사생활이 있기에 해줄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분들도 똑같은 손님으로 친절하게 손과 발이 되어 주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런 생활을 하면서 사회적으로는 물론이려니와 스스로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어디를 가도 편견의 눈에 숨죽일텐데 나라도 함께 있는 동안 대우를 받는 느낌을 받게 하자 생각을 한 거지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시작이라구요.
내가 나서서 그네들이 하는 일이 뭐가 잘되고 못되었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오히려 얼마나 큰 상처가 되고 아픔을 덧나게 할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몰라서 그렇게 사는게 아니고 또 살다보니 그렇게 흘러 들어와 버린 것이 인생이니 말입니다.
윤리 도덕적 판단 이전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품어주고 받아주는 일이 아닐까 싶은 거지요.
또 그렇게 대해주니 친해지고 의지하는 것이 느껴지고 나는 그들에게 쉴 곳이 되어주는 것으로 내 역할을 삼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상처받고 계획없이 흔들거리며 떠나는 손님을 그냥 공항에 내려주고 돌아오며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을까 다시 돌아보게 되는 밤입니다.
이럴 때 공항에 내려주지 말고 데리고 와 차 한잔 나누며 한없이 이어질 그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지지해줄 수 있는 쉼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이곳도 이렇게 허탈하지는 않겠나 싶습니다.
교회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예수님이라면 오늘 캐나다에서 뭘하고 계실까 돌아봅니다.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이라도 양로원에서 어르신들을 돌아보며 또 토론토에 내려와서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이 어렴풋이 잡히는 밤입니다.
생계로 이 일을 하며 공항에 내려놓고 온 그 손님이 갈 곳 없는 예수님이라는 생각에 속이 상하고 미안합니다.
칼릴 지브란이 이야기했듯이 일은 눈에 보이게 나타난 사랑인데 내 일이 그런 사랑이 될 때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요?
이제 가야할 길이 다시 조금씩 보이는 듯합니다.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다시 꿈을 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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