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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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예가와 은혜 양로원 이야기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4/2/26(수)
미안합니다.  
어느새 토론토로 돌아와 주일을 세번을 보냈습니다.
익숙했던 양로원의 일상이 한 달을 비운 사이에 낯설어져 있어 조금은 당황스러웠던 기운이 먼 옛날처럼 느껴지네요.^^
그리고 다시 만났던 물음과 함께 만나는 일상이 새롭습니다.

소녀같은 우리 C할머니는 여전히 밝고 기운 차셔서 다행입니다.
토론토로 돌아온 첫날 밤에 와 얼굴을 뵙고 인사를 드리니 씩~ 웃기만 하십니다.
다음날 "저 반갑지 않으세요?"했더니 수줍은듯 '반가워~' 하시지요.ㅎ
가족들이 오면 장난치시려고 누군지 모른다고 농담까지 할 정도로 유머도 있으십니다.
다들 병원에 가고 침대에 누워 계시느라 혼자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계셔서 옆에 앉아 손을 잡아 드렸더니 손이 얼음장 같으신 손으로 내 뜨거운 손을 잡고 놓지 않으시네요.^^
그래서 한참이나 손을 잡고 주물러 드렸습니다.
이럴 때가 내 손이 따뜻한게 참 고마운 때입니다. ㅎ
오늘 밤도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드리니 잘자라고 인사를 해주십니다.
아침이면 일부러 "하하하" 웃으면서 인사를 하면 씩~ 웃으시면서 "잘잤어?" 그러십니다.
그럴 때 참 고맙습니다.

반신불수에 욕창으로 오래 고생하시던 미스 광주 K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계시니 룸메이트인 또 다른 C할머니는 하루 종일 혼자 방에 계십니다.
양로원에서 룸메이트로 또 밖에서도 친구 사이였던 두 분은 무척 사이가 좋다가도 갑자기 다투기 시작하면 양로원이 떠나갈 정도로 악을 쓰셨더랬습니다.
정이 있고 사랑이 있어 그렇지요.
룸메이트가 돌아오지 않으니 내심 염려가 되시는 모양입니다.
다소곳이 앉아 신문을 읽으며 홀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켠이 시려서 들여다 보면 또 방긋해 얼굴이 좋아져서 왔다느니 신발이 멋지다느니 옷 색깔이 이쁘다느니 수다를 시작하십니다.
가까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참 '정치'적이신 할머니지요.
때론 이런 정치적인 삶도 나쁘지 않습니다. ㅎ

우리 왕언니 Y할머니도 나 없는 사이 밤에 온 양로원을 돌아다니시고 정신도 놓으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기운을 차리신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밥을 잘 드시지 않아서 옆에 앉아 참견을 하면 배부른데 자꾸 먹으라고 한다고 숫가락을 들고 때리려고 하시고 쇼파에 앉아 TV를 볼 때 무릎을 베고 누우면 자장 자장을 해주십니다.ㅋ
밤에 잘 때 잘 자시라고 인사를 하면 환하게 웃으시면서 너도 잘 자고 내일 보자고 인사를 해주시니 내일이 또 기대가 되지요.
어르신들의 삶에 무게가 참 크고 그 그릇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소금 지고 가다 자빠라졌나?"고 하셨던 그 분...ㅋ

청일점 S할아버지도 욕창이 생기고 발에 상처가 나서 간호사가 방문해서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게다가 낮에는 소변과 대변을 힘들어하시고 기저귀를 하시고도 밤새 시트까지 다 젖어 버리셔서 밤에 소변줄을 끼기 시작하셨습니다.
전에는 요도까지 줄을 넣는 소변줄을 사용해 보았는데 간호사가 방문해서 소독도 해야하고 복잡해서 그만두었더랬습니다.
이번에는 콘돔형 소변줄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밤마다 할아버지에게 콘돔을 끼워드리며 아침마다 샤워를 시켜 드리면서 자기 힘으로 화장실 가서 오줌 누고 똥 누는 일이 얼마나 고맙고 기적과 같은 일인지를 새삼 알아갑니다.
또 그런 불편함을 묵묵히 담당해 가는 삶이 얼마나 커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넘어야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게지요.

한국에서 돌아오니 H할머니께서 새로 와 계십니다.
이 할머니는 완전 공주님이십니다.
난 '특별해'지요. 4번...ㅋ
당신 옆에만 늘 붙어 있어달라고 자꾸 부르셔서 얄미운 마음이 들려고 하는데 생각을 바꾸어 친절하게 찾아가 저린 발을 마사지해 드리고 이리 저리 말을 붙여 드리니 얼굴에 화색이 도십니다.
사랑받고 싶어서 그런 것을 압니다.
그래도 이제 홀로 가야하는 길을 받아들이고 가야할텐데.... H할머니를 보면서 내가 가는 길도 함께 가늠해 보고 조금만 마음을 주면 그리 편해지는 것을 다투고 사는 내 모습도 함께 보게 됩니다.

일주일 후 병원에서 돌아오신 미스 광주 K할머니 이미 병원에서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이제 침대에서 대소변을 다 보시니 아침, 점심, 저녁으로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음식을 떠먹여 드리면서 나의 하루 일과를 보내지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만나드립니다.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프고 삶이 무엇인지 내가 다 헤아리지 못하지만 지금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며 내 삶에 의미를 만납니다.
그것 말고 지금 내가 갈 수 있는 길,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없지요.
그렇게 가다보면 길이 보이고 문을 알아가겠지요.
그렇지 않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합니다.

이 긴 토론토의 겨울 밤을 홀로 보내고 또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려 기도를 드리면 가슴에 사랑의 기운이 찾아오고 덕분에 살고 있음을 가슴으로 만납니다.
난 이렇게 늘 배우고 삽니다.
일상이 학교네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사랑합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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