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Old 산물넷 : 게시판 : 사진방 : 산(mountain)페이스북블러그깊은물 추모Art of Life Community

처 음 | 하루 살이 | 예가○양로원 이야기 | 묵상의 오솔길 | 편지 | 이야기 앨범 | 설 교 | SPIRIT


토론토 예가와 은혜 양로원 이야기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3/11/3(일)
제로 베이스  
시방 느낌, 속이 많이 상합니다.
뭔가 욕구불만 같고 무언가에 꽉 얹힌 듯이 답답하고 일이 영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한 주간의 일상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영성의 오솔길도 제대로 걷지 못한듯 시원하지 못해 함께한 벗에게도 미안합니다.
내게 이런 느낌이 들 때는 대부분 그 원인이 바깥에서 오는 것으로 보기 쉬운데 사실은 내 안에서 시작되어 바깥의 자극으로 분출하는 것이지요.ㅠㅠ

우리 백구 롤라가 많이 아픕니다.
오늘 갑자기 설사를 하고 온몸에 기운이 없이 푹 늘어져 버리네요.
이쁜 강아지 다섯 마리를 키우느라 한달 넘게 헌신적인 모성애를 발휘했는데 그간 너무 지쳐서 버렸나 봅니다.
아이들이 너무 커서 롤라가 감당하기 어렵다 여겨지고 그래서 빨리 입양을 보내겠다 마음을 먹고 있는데 결국 일이 터져 버린 겁니다.ㅠㅠ
아기들이 젖을 떼는 동안 엄마 개는 강아지들의 똥 오줌을 다 먹어서 치우고 온 몸을 혀로 핥아서 깨끗하게 해줍니다.
우리 롤라는 더 지극정성인데 그게 한계에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렇게 잘 먹던 미역국에 말은 밥도 입에 대지도 않고 비실비실 거리며 설사를 하고는 계단도 힘겹게 오르다가 강아지들이 집 밖에 나와 오줌 똥을 싼 것을 보면 또 그것을 핥아 치우는 것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돕니다.
나는 그저 롤라가 잘 이겨내고 이번에도 잘 넘어가 주길 빌지만 해줄 수 있는게 없습니다.
이럴 때는 롤라만 아프지 않으면 세상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 간절함이 찾아오지요.ㅠ.ㅠ

우리 양로원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하루가 다릅니다.
어르신들이 다 그러하시듯이 저와 함께 지내는 날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때가 되어간다는 의미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오늘이 처음이 아닌데도 문득 속이 상하고 내 기운까지 우울모드로 끌려 들어갑니다.
지난 일 년 사이 두 분을 하늘로 보내드렸고 지금 계신 분들도 평균 연세가 90세가 넘으시니 하루가 어찌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그렇게 쇠약해지신다는 것은 옆에서 돌보아 드려야 할 일이 많아지고 점점 무거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어르신들이 활기를 되찾고 밝아지면 또 덩달아 기운이 솟지만 그렇게 아파서 힘들어 하시고 약해져서 몸을 가누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합니다.
제발 다들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아파서 찾아오는 사랑과 슬퍼서 찾아오는 기쁨이 함께 있어 그런 그림자가 짙으면 빛도 환한데 이렇게 더 어둠으로 가는 까닭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만히 앉아서 돌아보고 기도하고 살펴봅니다.
내 안에서 오는 겁니다.
그것을 감당해 낼만큼 내 힘과 기운이 약해져 있어 바깥의 자극을 그렇게 만나 반응하고 있는 것이지요.
내가 건강하고 기운이 좋고 힘이 있으면 아픈 롤라도 더 사랑스럽게 챙겨주었을 것이고 어르신들 기력이 약해져갈 때 더 밝고 환하게 챙겨주어 그렇게 가는 길이 달라질터인데 내가 그렇지 못한 거지요.
내가 지금 삐걱거리고 있다는 적신호, 아니 청신호로 시방 느낌이 이렇게 찾아와 있습니다.

다시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제로 베이스로 돌아갑니다.
숨을 깊이 내리고 사뿐히 걷고 주의 깊게 듣고 다정하게 바라보고 공손하게 어루만집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하고 이유 없이 웃고 지금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합니다.
의식 수준이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원망과 불안과 두려움으로 내려가 있는 의식을 바라봅니다.
감사와 사랑과 온전한 기쁨인 나를 기억합니다.
그 나가 지금 역할을 하는 것이니 시방 느낌은 내가 아니라 그런 생각이지요.
참 나를 바라보며 나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고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나와 그림자라 여기는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가 있습니다.

11월 첫째주 데이 라이트 세이빙 타임이 되돌려져 한 시간을 더 얻게 되는 밤을 이렇게 보내고 있네요.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답변/관련 쓰기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번호제 목짧은댓글이름작성일조회
628   김치 부침개와 믹스 커피.... ㅎ   깊은산 2013/11/17  1111
627   모르는게 약이다? ㅎ   깊은산 2013/11/05  1083
626   제로 베이스   깊은산 2013/11/03  915
625   익숙한 것으로부터....   깊은산 2013/10/29  876
624   삶이 참 그렇습니다.ㅎㅎ   깊은산 2013/10/24  944
623   해 보면....   깊은산 2013/10/20  850
622   내가 하는줄 알았습니다.ㅜㅜ   깊은산 2013/10/17  884
621   할머니의 기도손   깊은산 2013/10/04  1022
620   구월의 토론토 예가와 은혜 양로원 이야기   깊은산 2013/10/03  1159
619   팔월의 토론토 예가와 은혜 양로원 이야기   깊은산 2013/09/03  1614

 
처음 이전 다음       목록 홈 알림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