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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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예가와 은혜 양로원 이야기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3/10/24(목)
삶이 참 그렇습니다.ㅎㅎ  
밤새 잠을 설쳐서 그런지 몸에 오한이 오고 자꾸 비실 거립니다.
여직까지도 반팔을 입고 이리 저리 뛰어다녔는데 오늘은 옷을 세겹 네겹 오리털 조끼까지 입고도 춥습니다.ㅠㅠ
하긴 오늘 아침에 서리까지 내리긴 내렸지요.ㅋ
밤에 머리만 대면 잠이 오셨는데 어제는 내내 뒤척 뒤척이기만 했답니다.
그간 이리저리 끌던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출판이 전격 결정이 되어 다시 원고 손보고 계약서 작성하고 그러면서 제가 많이 설레였나 봅니다.
원고를 다시 보면 지난 일년 양로원 일에 좋은 벗이 되어준 지브란과 예언자가 다시 다가오고 많이 고맙고 뭉클했습니다.

으슬으슬 추워 이번에 내가 담요를 둘러싸고 졸고 계신 할머니 옆에 가서 손을 담요 밑에 집어 넣습니다.
참 따뜻합니다.
그래서 참 따뜻하다고 했더니 졸고 있던 100살된 왕 언니 Y할머니가 물끄러미 쳐다 보시다 '아파? 어디가 아파? 추우면 따뜻한 아랫목에 가서 누워 한잠 자라우!' 그러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데 그 말씀이 어찌 그리 포근하고 따뜻한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 잠을 자고 났더니 눈이 뜨여지긴 합니다.ㅎㅎ

지금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웃음을 잃지 않으며 양로원에서 한가로이 여생을 보내며 내 눈 앞에 계시지만 우리 Y할머니의 인생은 영화의 한편 같습니다.
다 들어드리지는 못했고 할머니의 정신이 왔다갔다 하셔서 제가 편집을 해야하기에 영화 줄거리가 헷갈리기는 하지만 할머니의 웃음에 그 삶이 더 가슴이 미어집니다.
1913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나셨으니 8살에 삼일운동을 맞이하셨고 30살에 육이오 한국전쟁을 겪으셨습니다.
육이오 때 이북에 남편과 다 자란 아들 딸을 두고 어린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데리고 이남으로 내려와 이제껏 70년을 홀로 사셨습니다.
전쟁통에 맨손으로 내려와 어린 아들 딸을 먹여 살리셨을 일 생각하니 암담한데 낯선 땅 미국으로 나와 살고 캐나다까지 흘러 오기까지 하셨으니 그 맘, 그 몸이 오죽하랴 여겨집니다.
그렇게도 사셨네요.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토론토에서는 이제껏 손녀와 둘이 살다가 양로원에 오셨습니다.
손녀가 직장을 다니니 나이 100살이 되어 혼자 집에 두기가 마음에 걸린 거지요.
그래서 할머니께 "할머니 젊었을 때 손녀처럼 이뻤어요?"
그랬더니 할머니께서는 웃으면서 '나, 그러게 모이 좋다고 남자들이 꽤나 따라 다녔어. 근데 내가 다 소리질러 쫒아 버렸지.' ㅋㅋ
왜 그러셨냐니까 '지도 새악시가 있고 나도 신랑이 있는데 자꾸 딴맘 먹고 귀찮게 하니 새악시 버리고 오면 나도 신랑 버리겠다고 하자 도망 가버렸어.' 그러십니다.ㅠㅠ
왜 영감님은 이북에 두고 내려오셨는지 궁금해 묻습니다.
'영감이 못됐어. 맨날 일만 부려먹고 쉬지도 못하게 하고 정이 하나도 없어. 애들 데리고 내려와 영감 안봤더니 속이 다 시원해.'
영감님은 그래도 아이들은 보고 싶지 않으시냐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내 무슨 염치로 애들 보고 싶다고 해?'하시지만 눈길을 멀어지십니다.
그래도 당신은 무슨 일이든 닥치는대로 해서 했다면서 맨날 당신 손과 내 손을 대어보시고는 당신 손이 더 크다고 자랑질(?)이십니다. ㅋ

삶이 참 그렇습니다.
나만 영화같은 삶을 산 것이 아니네요.
삶의 연륜이 있고 아픔이 있고 진통이 있으니 그것으로 지나온 삶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Y할머니 옆에만 있어도 편안하고 위로가 되나 봅니다.
헨리 나우웬이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을 했습니다.
상처를 받아 보았으니 상처를 알고 또 고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찾아온 몸살도 고맙지만 내일 아침에 몸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만 아프길 기대하며 할머니의 삶의 이야기에 마음을 맡기니 감기약도 먹지 않았는데 감기약을 먹은듯 노곤해 집니다.
이렇게 또 하루, 오후가 지나가네요.

아, 훌훌 털고 할머니들 저녁 준비할 시간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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