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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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예가와 은혜 양로원 이야기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1/6/28(화)
한국에 가서도....  


이제 곧 지훈이가 캐나다에서 1년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마지막 주를 보내고 있지요.
어제 주일, 교회 식구들과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인사를 나누는데, 다들 아쉬워하고 서운해 하고 어른들은 염려와 응원으로 환송하는데.... 지훈이는 특유의 넉살로 룰루랄라...
어색한 마음, 쑥스러운 마음 숨기고 싶은 거 아는지라 웃으며 넘거갔답니다.
그런데, 오늘 또 이제 캐나다에서 1년을 정리하며 한국에 가서도 하고 싶은 100가지를 써보라 이미 내어준 숙제를 확인하는데 영 아닌 겁니다.
머슴아이고 사춘기지만 뭔가 작업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캐나다에서 1년'이라는 3분 스피치도 준비하라 이야기를 해 두었는데 그것도 장난처럼 받아들입니다.
.
.
.

눈치 없는 지훈이만 계속 건들 건들하지 이쯤되면 예가 식구들은 얼음이 되기 시작합니다.
깊은산이 벼락을 내리며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은 아는 바...
정작 지훈이만 모릅니다.
하...

마음은 알지요.
어떤 상황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잘 적응하고, 화해자로 사는 장점이 있는 지훈이라는 것을요.
근데 이러다가는 핵심을 다 놓치고 돌려보내겠다 싶은 겁니다.
그래서 붙잡아 앉혀서 숙제를 시키면서 한국에 가서도 하고 싶은 것, 제 1번에 '화장실 청소 하기'를 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No' 하는 겁니다.
어떤 마음인지....

드디어 벼락이 내립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지요.
마지막 주라 이제는 오냐 오냐 웃으면서 지지해주면서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보내고 싶었는데...
화장실 청소가 싫으니?
예가에서 일년간 뭘 배웠냐?
자기 주면을 쓸고 닦을줄 모르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지, 자기가 쓰는 화장실도 청소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람 노릇할래?
나한테 그것밖에 못 배웠니?
내가 너 팬티, 양말 빨래해주는 사람으로 보이냐?
내가 너에게 밥해 먹이는 식모로밖에 안보였나?
내가 너 잠재우고 먹여서 학교 보내주는 하숙집 아저씨였니?
영어는 학교에서 가르쳐주고, 공부는 선생님이 하게 해주니 나는 상관할바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네가 나와 살면서 알게 하고 싶은게 있었다.
밥을 먹지 말고, 진지를 하라고, 식탁을 대하면서 내가 이 밥과 물을 위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내가 이렇게 먹고 마실 수 있으니, 그 힘으로 살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아는게 진지, 참된 앎이니 그렇게 정성껏 씹고 삼키고 한톨, 한모금 소중하게 여기는거 배우지 않았니?
자기가 먹는 식탁 정리하고, 자기가 쓰는 책상 깨끗이 하고, 신고 들어오고 나가는 신발 돌려놓기를 하고, 화장실 정리정돈 쓸고 닦고.... 그러면서 세상을 깨끗히 하고, 세상을 돌보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니?
자기가 쓰는 화장실도 청소 않하는 놈은 공부할 필요도 없다.
그런 사람은 이 다음에 커서도 다른 사람들 괴롭히고 부려먹을줄 밖에 모르는 인간이 되고 만다.
그렇게 살고 싶니?
.
.
.

속이 아리면서도 그간 하고 싶었던 말을 화에너지를 동원해서 꺼내어 봅니다.
몇마디 시작하니 룰루랄라 하던 지훈이, 늘 진지함과 거리가 멀고, 웃음과 장난으로 가볍게 회피하던 지훈이가 진지해지고 심각해 집니다.
그제서야 눈치가 오나봅니다.
눈물을 뚝뚝흘리지요.
그래도 묻습니다.
억울해서 우니?
아니요.
억울해서가 아니라 죄송해서요.... ㅠㅠ
그러면 되었다.
자, 같이 해보자.
우리가 함께 산 일년, 그것 잊지 말고 잘 기억하자고 하는 거야.
그래야 더 의미있고 보람이 있지.
그냥 지나가고 보내버리면 너무 아쉽지 않니?....

네.
그렇게 다독이고 알아차리게 해 봅니다.
이제 내일이면 8학년 졸업식, 학교도 거의 마치고 한국에 갈 짐을 싸고... 그런 분위기에 휩싸여 아차 놓치기 쉬운 것들을 다시 잡아 보았습니다.
저 또한 이렇게 지훈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시 생각하고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렇지.
내가 예가를 하는 이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이유가 그거지라고 말입니다.

지난 2월에 딸 기명이가 돌아갈 때와는 이렇게 많이 다르지요.
딸과 아들이 다른가 봅니다.
딸은 알아서 아쉬움을 표현하고 고마움을 전하고 악착같이 얻을 것을 얻으려고 애써주었지요.
말하지 않아도 예가에 배운 것 정리하고, 고마움을 편지로 남겨 전해주고...
아들은 이렇게 다르네요.
하지만 압니다.
표현 방법이 다를뿐 하고 싶은 말, 경험한 것은 같다구요.

이제 지훈이가 써내려갈 100가지를 통해 지훈이 스스로 그것을 더 잘 정리해내고 추억과 기억을 되살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캐나다에서 1년을 3분 스피치하면서 스스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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