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계획은 시내산에서 내려와 캐더린수도원을 들러 살펴보고, 경내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산에서 일찍 내려온 탓에 수도원 문이 열린다는 9시 30분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호텔로 가서 짐을 챙겨 다시 수도원으로 오기로 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시간을 버는 지혜다. 새벽 2시에 일어나 하루를 보내니 하루가 이렇게 길다. 새벽부터 아침식사까지의 시간이 일상에서 보낸 하루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그래. 정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삶의 질과 양이 달라지는 것이지. 호텔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도시락으로 숙소에서 아침을 먹은 후 9시30분에 다시 캐더린수도원으로 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 오늘이 어느 성인의 생일이란다. 그래서 기도회를 하기 때문에 수도원을 개방할 수 없단다. 그야말로 인샬라다. 눈 앞에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수도원을 두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도리가 없다. 오늘 요르단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시내산의 수도원의 역사는 3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부터 이곳에 수도사들이 찾아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4세기 초 막시미누스 황제 당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하였는데,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캐더린이란 용모와 학식이 출중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으면서 황제의 우상 숭배에 반대했다. 황제는 여러 학자들을 보내 그녀를 회유하려 했으나 그들마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캐더린은 고문을 받고 순교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녀의 시신은 천사에 의해 시나이 반도 제일 높은 곳으로 옮겨졌다는 전설이 있다. 이 사건 이후 시내산 수도원이 성 캐더린 수도원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고 한다. 그리고 330년에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모세의 불붙는 떨기나무가 있었다는 자리에 성모 마리아에게 헌납하는 교회를 짓는다. 4세기 경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게 되고 비잔틴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요새화된 장방형의 수도원을 건설 하였다. 이 수도원이 오늘의 완성 된 것은 A.D. 557년이다.
7세기, 아랍인들이 이 지역을 점령을 해서 수도사들이 30명 까지 줄어들었다가 수도원장이 모하메드에게 수도원에 대한 보호를 요청하였고 모하메드는 그것을 받아 들여 수도원이 이슬람 시대에도 건재할 수 있었다. 보호를 요청하는 수도원장이나, 그것을 받아들인 모하메드나 대단한 사람들이다. 역사에서 유연함과 강직함은 같이 있다. 판단 불가이다. 그래서 오늘 그 유산이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11세기에 접어들어 십자군들이 등장함에 따라 수도원은 서방세계의 기독교와 아랍 지역의 모슬렘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야만 했다. 또 한번의 위기는 197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 했을 때다. 그 때도 수도원의 유연한 대처로 수도원은 보호 되었다고 한다. 케더린 수도원에 들어가면 모하메드가 수도원을 인정한 손바닥 도장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은 또한 ‘이콘’이라고 불리우는 목판 성화의 보고이며 2000여 개가 넘는 이콘들이 보관 되어 있다. 성 캐더린 수도원 내에 있는 교회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인 주후 6세기 중엽에 건설 되었는데, 이 교회로 들어가는 나무 장식 문은 건립 당시 만든 문으로써 1400년 이상 된 문이다. 참 대단한 역사다. 교회 안에는 12기둥이 있으며 이것은 12달을 의미한다. 기둥 위에는 그 달의 성자 이콘이 있다. 이 교회 제단 뒤에는 불붙는 떨기나무의 기념 에배당이 있고 이곳은 지금도 반드시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고 한다. 변화산에서의 예수님 모습을 나타낸 교회 전단 중앙에 있는 모자이크는 왼쪽부터 엘리야, 요한, 예수님, 베드로, 야고보, 모세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이 둘레에는 12제자, 12예언자, 건축 당시의 수도원장 롱지너스, 집사 요한 등 모두 26명의 모습이 둘러져 있다. 이 교회 근처의 떨기나무는 시나이 반도에서만 자라나는 특수한 종류로써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다. 바로 모세의 떨기나무이고, 우리가 천국의 문을 지나 내려오는 계단에서 만난 그 떨기나무다.



이 수도원의 또 하나의 유산이라고 한다면 유명한 ‘시내산 사본’이다. 성경 연구에서 쿰란 사본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수도자들의 공부 가운데 중요한 것이 성경을 옮겨 쓰는 일이었는데, 그들의 수고 덕에 오늘까지 성경이 이어지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하여져 빛이 되고 거울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내산 사본 덕에 성서비평학은 새로운 궤도에 진입한다. 여하튼 우리는 굳게 잠긴 수도원 주위를 아쉬움 속에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수도원 안에 있다는 떨기나무 교회, 40장년의 모세가 광야에서 노년 80까지 연단받은 시작인 이드로의 우물을 보지 못하고, 혹시나 지금까지 이곳에서 지낸 수도사들의 유골이 모여 있다는 무덤(창고?)은 볼 수 있을까 해서 알아보았지만 그곳의 문도 잠겨 있었다. 검은 옷에 수염을 기른 수도사가 지나가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는데, 이 분은 우리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이 사려깊은 얼굴로 우리 곁을 지나간다. 용기를 내어서 말을 걸어볼까도 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그저 그런 생각하는 사이 사진을 찍을 기회도 놓쳤다. 기회는 지나간다. 잡지 않으면 없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홍해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누웨바까지 100Km라 한다. 이제 누웨바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에 요르단으로 떠난다. 저 앞에 구름과 안개가 가득하다. 또 빗방울이 듣는듯하다. 버스 안에서 모두들 피곤한 눈을 붙이는데, 나는 잠이 들 수가 없었다. 가는 길에 펼쳐진 시나이반도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칼라 캐년, 화이트 캐년이라고도 불리우는 이곳 사막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도 견줄 수 있다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는 지나가는 길에서만 보지만 사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막에서 며칠을 보내며 캠핑을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하는데, 솔깃했다. 유럽사람들이 이집트를 찾는 이유 중에 하나가 문화 유산도 유산이지만, 아름다운 홍해와 사막을 함께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까닭이라고 한다. 누웨바에 숙소를 정하고 해양스포츠를 즐기다가 사막으로 들어가 며칠 보내고... 정말 천국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