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30분, 이제 서둘러 카이로를 벗어나 시나이반도를 향해 출발이다. 오늘 해 아래 시내산에 당도해야하는데, 바쁘단다. 해지기 전에 르비딤까지 가고 싶은데, 일정상 해가 지고 나서야 르비딤에 도착할 것같다는 아쉬운 안내다. 정말 이건 여행이 아니라, 유격훈련이다. 새벽에 호텔에 도착해서 그 새벽에 일어나 하루종일 투어하고, 오늘 밤도 깜깜해서야 호텔에 도착한다고 하니 숨돌릴 틈도 없이 짜여진 일정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볼까? 이 속도에 만족해야지, 여행지를 천천히 느끼며 여유롭게 돌아보는 것은 배낭을 짊어지고 개인적으로 와서 볼 일이다. 패키지 여행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시내를 벗어나면서 다시 인상적인 것은 도심 안에 있는 공동묘지들이다. 들은 말로는 이들은 살아 생전보다 더 좋은 집에 장사된다고도 한다. 심지어 평생을 벌어서 자기 무덤을 장만하고 죽는다는 말도 있다. 요즘은 카이로 시내에 무덤 자리가 없어 사막에 이런 동네(?)가 형성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사막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그곳은 오아시스가 아니라, 공동묘지다. 그런데 꼭 한적한 교외의 별장처럼 보인다는 것은 너무 심한 표현인가? 여하튼 시내를 벗어나자 곧 사막이다. 언제 도시가 있었냐는 듯하다. 정말 불모지다. 넓은 땅인데, 버려진 땅이다. 왜 나일강이 이집트에게 어머니의 강이고, 젖줄인지 알만하다. 강은 문명이 일어나는 원천이었다.



그 사막을 바라보며 우리는 버스에 앉아서 편안하게 가지만, 약 3200년 전에 람세스의 호령을 뒤로 하고 출애굽하던 모세와 이스라엘의 마음이 되어 본다. 기록에 의하면 240만명 정도의 히브리인들이 애굽을 탈출했다. 그네들이 이 사막을 걸어서 지나갔을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약속의 땅을 향해, 유일신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그 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떤 마음으로 나의 광야길을 가고 있는가? 나에게 그 약속의 땅은 무엇이고, 어디인가? 광야는 게으르고 일상에 젖은 타성의 경계이다. 그런 40년이었다. 그만큼 필요해서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내게 주어진 삶도 그렇다. 나도 지금 광야에 나와 있다. 그리고 온 곳으로 돌아간다.

그 옛날 이제 이스라엘은 수에즈 홍해에 이르게 되자 애굽의 군대가 쫒아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앞에는 바다고 뒤에는 바로의 군대다. 불평과 불만이 일어난다. 가만히 지금 나의 여행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요, 불평과 불만이 있다. 여행 일정에 대해, 누구와 여행 하느냐에 대해, 왜 지도력이 없느냐에 대해, 음식에 대해, 잠자리에 대해.... 그렇게 보는 한 그런 세계 속에 살 수밖에 없다. 그런 사실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그 사실을 보는 생각은 바꿀 수 있다. 신앙은 삶을, 사건을 해석하는 실력이다. 모세는 불평하고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니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 때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지팡이를 들고 나가면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바다도 갈라진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고 주저 않아 불평하고 따지고 계산하고 있다는 말이다.

13시 30분 수에즈 홍해에 도착했다. 현지식당에서 한식으로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다. 하루만에 먹는 밥인데 반가움이 일어난다. 꼭 며칠이 된 것같다. 어제 오늘,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나보다. 그렇다. 카이로스 뿐아니라, 크로노스의 시간도 양이 아니라 질이다. 성지순례 여행에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에즈 운하를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운하 밑으로 뚫어놓은 터널로만 통과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터널의 이름은 아흐마디 함디라고 하는데, 1975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80년 4월 30일 개통된 수에즈 운하를 건너는 유일한 터널이다. 총연장 4.5 Km인 이 터널의 1.6 Km가 지하에 있다고 한다. 또한 이 터널은 수에즈 운하 밑 37m에 자리 잡고 있다. 터널의 이름은 1973년 10월 전쟁에서 죽은 뛰어났던 기술 고문관 아흐마드 함디의 이름을 기리기 위하여 붙여졌다. 32000년전에 그들은 바다 위로, 우리는 바다 밑으로 건너 간다. 기적이다.

현재 이집트는 게엄 상황이란다. 특히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어서 수에즈만에 넘실거리는 홍해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게 아쉬워서 멀리서라도 보고 싶어서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열심히 노력하지만 군인들의 저지를 받고 말았다. 이제 사막을 달리는 일만 남았다. 끝없는 사막이다. 해가 높아지니 더워진다. 차량에 에어컨이 나온다. 저 멀리 사막에 검은 곳이 보인다. 오아시스냐고 물으니 구름기둥이란다. 하늘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있는데, 그 구름 그림자란 거다. 아, 이 쨍쨍한 사막에 구름 한 조각이 얼마나 귀한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자상하신가?

이슬람 사람들이 지키는 4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첫째는 하루에 5번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 버스도 멈추어 서면 기사가 사라지는데 찾아보면 기도하고 있다. 둘째는 라마단이라는 금식이다. 이들의 금식은 해있을 때 하는 금식이고, 해가 지면 마음껏 먹는다고 한다. 아이러니는 라마단 기간에 폭식해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낮에 못먹으니 밤에 먹는다. 웃지 못할 일이다. 셋째는 구제다. 그런데 가난한 이들도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구제를 받는 것도 당당하다. 다 인샬라. 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실한 이슬람 부자들은 구제를 하는 것을 기쁨이며 의무와 권리로 여긴다는 것이다. 아랍권에 화장실은 늘 유료인데, 이것도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씩 전해주는 차원으로 생각하면 당연하다는 안내에 수긍이 간다. 넷째는 성지순례다. 아라비아의 메카에 평생에 한번 찾는 것, 늘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데, 이곳을 찾는 것을 생의 마지막 목적으로 삼고 있다. 단순명료한 이 원리들을 들으면서 이슬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오후 3시, 벌써 해가 뉘엿뉘엿해지고 있는데, 마라의 샘에 이르렀다. 마른 우물이 하나, 밑에 물이 깔린 우물 하나가 있다. 그런데 그 물도 쓰레기가 가득해서 눈살이 찌프려진다. 이 물이 써서 먹을 수가 없어서 모세가 나뭇가지를 던지자 먹을 수 있게 된 곳, 마라의 쓴물이다. 그런데 샘은 샘이다. 주변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야자수들이 둘러 있다. 하지만 이곳에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허탈해졌다. 눈을 들어보니 바로 옆에 홍해가 보였다. 아름다운 바다. 한 눈에도 맑고 깨끗했다. 홍해가 왜 홍핼까? 혹자는 홍해로 지는 해가 붉어서 홍해라고 하는데, 사실은 사막의 신이 세트신이 붉은털로 상징되는데, 그 사막 옆에 있어서 홍해라고 한다는 것이다. 상상과는 달리 사막은 하얀 모래만 있지 않다. 검은 흙과 붉은 흙, 노란 흙... 색색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사막은 붉다. 이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베두인들이다.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은 사막에도 풀이 있고 생명이 있다는 것, 그게 인생의 신비다.



이제 홍해의 석양을 받으며 버스는 신광야를 달려가고 있다. 잠시 검문을 받으면서 저지를 당했는데, 이유는 요즘 비가 많이 와서 길이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위험하다는 거다. 가이드는 당장 시내산에 오를 걱정부터 한다. 비가 오면 그곳은 눈이다. 눈이 왔으면 못올라간다는 거다. 역시 포장된 2차선 도로에 모래흙이 밀려와 있다. 나무가 없어서 비가 오면 물들이 도로로 몰려서 그렇다고 한다. 광야의 이스라엘이 만나와 메추라기로 은혜를 입었던 신광야다. 나무가 없다고 했는데, 틈틈이 한 그루씩 나무가 보이는데, 조각목이다. 우리는 아카시아 나무라고 하는 성경의 싯딤나무라고 한다. 언약궤의 재료가 되는 나무이다. 이 나무의 뿌리는 수백미터나 된다. 밑은 어디에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막에서 살아 남을 수 있지. 그래 우리는 그 어디에나 연결되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홍해의 석양은 정말 장관이다.



5시 50분에 르비딤에 도착했다. 종려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 큰 오아시스인데, 벌써 어두워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를 않는다. 르비딤은 '다툼'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과 모세가 다투어서 반석에서 물을 내게 했다는 곳, 아말렉과 첫 싸움이 있었던 곳이다. 그 르비딤을 지나 시내산으로 가는 길은 정말 적막했다. 버스의 라이트만 길을 비추는데, 간간히 길가에 베두인들의 정착촌이 보이기도 했다. 어두운 사막, 정말 신이 내릴듯한 어둠이었다. 어둠은 신비다. 이곳에 사니 베두인들은 강한 종족일 수밖에 없다. 베두인 남자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가사일도 유목일도 다 여자들의 몫이다. 그것도 1부 다처생활을 하는데, 남자들의 일은 다만 전쟁하는 일이다. 전쟁터에 나가서 죽는 일이다. 그게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들과는 다른 그들의 삶이다. 틀린 삶이 아니라, 다른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