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영성

내게 언젠가 ‘순례의 영성’이라는 단어가 가슴 깊이 내렸던 기억이 있다. 1990년 내 인생의 격동의 시절의 한 가운데서 ‘군대’라는 피난처를 택했었던 내가 다시 사회와 일터로 돌아왔을 때 내 선배들과 후배들은 ‘순례의 영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대와 역사 한 가운데서 치열한 신앙의 길을 모색했던 그네들은 다시 영성에 주목하고 ‘순례의 영성’, ‘변혁의 영성’, ‘공동체의 영성’이라는 커다란 틀을 자신들의 과제로 삼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내게 가슴 깊이 다가왔던 모토가 ‘순례의 영성’였다. ‘구도’였다. 어느새 내가 놓치고 있었던 그 무엇, 머리 속에 별이 반짝였다. 당시 시대의 변화와 역사의 전환기에서 기독운동은 그렇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질을 찾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런 과제 속에서 다시 내 길을 모색했고, 지금 목사의 길을 걷고 있다. 내가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 한 선배가 내게 일어주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종교인이 되지 말고 구도자 되라.’ 그래 나는 구도하는 목사 되리라 결심하며 그 길을 찾아 여기까지 이른 순례의 여정이었다.

2004년 1월 12일부터 23일까지 11박 12일의 성지순례, 아니 정확히 이집트와 요르단, 이스라엘과 로마, 제네바, 파리를 둘러오는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운 본향을 찾는 마음이 순례자의 마음이다. 그렇게 내 정신, 내 마음의 고향으로 품었던 길을 찾아, 따라 가 보았다. 그런 순례, 이번 여행 길에서 내게 다시 다가왔던 ‘순례’는 내가 길을 떠나 길을 가는 사람임을 알게 하였다. 어디론가에서 와서 어디론가로 가는 것이 인생이지 더 무엇이겠는가? 예수님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러 오셨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간다. 우리 인생은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가는 인생이 아닌가? 성지순례라고 했는데, 무엇이 성지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니 나의 신비가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찾고 찾고 묻고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여행, 특별히 아내와 함께 한 여행이기에 새롭고 의미가 깊었다. 그러고 보니 결혼 7주년 여행이다. 안식년인가? 내 인생에 소중한 빛이 되어주는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만났고, 고마웠다.

또한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님들과의 여행이어서 많은 배움이 있었다. 사랑하는 하별님, 산바람님, 나여기님, 자유님, 소나무님, 작은돌님, 꽃동산님, 순풍이님, 눈님, 저녁노을님, 새봄님. 그리고 또 다른 13명의 내가 함께 한 이 겨울의 여행, 뜨거운 사막에서 시작해서 몽블랑의 만년설을 만나며 이집트로, 요르단으로, 이스라엘로, 로마로, 제네바로, 파리로, 암스텔담으로 걷고 또 걸었다. 이제 그렇게 걸은 우리의 여정을 찬찬히 나누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싶다.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일은 즐겁고 기쁘고 감사해서 일이다. 또한 여행을 갈 수 있게 허락해준 홍광교회와 큰바위 엄재수장로님, 기도로 물질로 도와주신 성도님들과 한결이를 맡아주신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 가득하다. 그 분들이 없었으면 어찌 이 행복이 가능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