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정확히 언제였던가, 결혼하고 첫 해는 바로 임신하여서 신혼을 모르고 정신없이 보내었기에 제대로 된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내는 몸이 약해서 유독 입덧이 심했고, 그에 놀란 나는 둘째는 가질 엄두도 내지 못하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거의 죽어지내는 아내를 옆에서 도우며 그렇게 한결이를 낳고, 아마 이듬 해였을 게다. 다니기를 좋아하는 부부는 아이가 고개를 가누자마자 동생에게서 받은 프라이드를 몰고 온 나라를 헤집고 다니며 삼천리반도를 놀이터로 삼았다. 그렇게 다녀보니 보이는 게 있고 어디 가서 어떻게 놀면 좋은지 손바닥 보듯 훤했다. 그러니 교회에서도 인기다. 그 목사님과 다녀야 재미있고 편하단다. 입담도 없고, 분위기도 못 살리는데 그런 재주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여하튼 어느 주일 밤, 오후 예배를 마치고 아이를 차 뒤에 묶어 놓고 우리 부부는 홍천으로 달렸다. 홍천 대명콘도에서 일박하고 월요일에 추억이 어린 속초를 들러 올 요량이었다. 얼마만인가? 일요일이라 나들이 갔던 차들이 돌아오는 틈새... 우리 차는 유유히 양수리를 통해 서울을 빠져나갔다. 팔당댐의 기가 막힌 드라이브 코스를 지나 남한강 양평으로 방향을 잡지 않고 북한강이 흐르는 새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땅거미는 지고 밤안개가 강가에 자욱하다. 숨통이 트인다. 부부는 적당한 음식점에 차를 세우고 두부전골을 시켜 먹으며 어두운 창밖을 내다본다. 아이는 옆에서 세상 모르고 잔다. 젊은 두 부부는 얼굴을 마주하며 아름답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북한강을 거슬러 춘천 쪽으로 방향을 잡다가 다시 설악면으로 들어서 홍천을 향한다. 춘천에서 판사를 하는 동생이 일러준 길, 차 한대 다니지 않는 한적한 국도를 마음껏 누빈다. 그렇게 찾아든 홍천 대명콘도 무슨 산 속에 요새를 만난 듯하다. 고비 고비 잘 닦여진 길을 넘어서니 스키장으로 지은 거대한 콘도가 위용을 드러낸다.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부부가 예약한 방이 비록 17평 원룸이었지만, 부부에곈 세상의 그 어떤 호텔보다 더 아늑하고 럭셔리했다.

내 이야기와의 만남(성서적 조명)
여행이라면 또 막막하다. 첫 여행, 인상깊은 여행, 의미있는 여행, 신혼여행, 가족여행... 많디 많은 여행 중에 가난한 전도사 부부의 첫 여행의 휴식처가 된 홍천대명콘도, 그리고 그 예의 북한강 길... 10년이 다된 일인데, 눈감으니 훤하다. 참 젊었다. 그 젊음에 17평 콘도도 감지덕지하던 그 순박함이 예쁘다. 스키장이나 골프장을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내게는 문화적 충격이었고, 다음날 속초를 돌면서 들른 설악 워터피아는 더더욱 신기한 세상이었다. 그 날 이후 그 코스는 우리 가족 여행의 풀코스가 되어 주었다. 우리 가족을 위해 다 준비해 놓은 참 좋은 이웃들이다.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4만원에 콘도에서 숙박하고, 국민카드로 50% 할인된 가격으로 즐기던 워터피아, 미소가 지어지고 행복이 번져진다. 돌아보니 삶의 의미와 감사가 다른데 있지 않다. 그렇게 작은 것에 감사하고, 송구스러워하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그 마음과 소박함이 만족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던 다윗의 고백,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생을 그렇게 향기있게 만들어 준다. 그래 지금도 그렇겠지.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또 주어진 일에 정성을 들여 살아가는 삶, 돌아보면 그런 향기있는 여행이겠지. 이제 웬만한 시절이나 음식에 감탄도 하지 않을 만큼 타락(?)해 버렸다. 다시 돌아본다. 만족이란 객관적 정황이 아니라, 주관적인 내 안의 감사에 있음을. 끊임없는 욕구충족을 위해 헉헉거리지 말고 진정한 내 안의 평화와 설레임을 회복하는 길만이 살 길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기도
하나님, 그렇게 제가 살았음을 다시 만납니다. 공부를 하게 하시고, 세상에 둘도 없는 아내를 만나게 하시고, 소중한 한결이를 선물로 주시고, 목사의 일을 하고, 또 이렇게 제게 준비되어진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여행을 떠올리며 생의 소중한 선물, 아름다운 추억을 다시 안겨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설레이고 가슴 벅차고 부족함이 없었던 그 마음, 그 여행을 오늘도 이어가게 하시고, 내 안의 평화와 기쁨을 당신으로 인해, 되어가는 내 생으로 인해, 한 순간도 떨어진적 없는 내 안의 나로 인해 순간 순간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과정 경험
역시나 그런 기억이 있었다. 한 순간을 떠올리니 그 순간으로 인해 만나지는 소중한 선물들이 다시 내게 다가오니 메말라있던 내 가슴이, 내 몸이 촉촉이 젖어온다. 그래서 기억을 주시고, 그래서 사랑을 주시고, 그렇게 삶을 주시나 보다. 그것조차 내가 한 것이 아님을 알고, 그 앎으로 또 다른 생의 비밀을 만들어 가가고 싶다. 이야기를 주셔서, 내 삶을 주셔서, 내게 그런 천사들을 주셔서 참 고맙다.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