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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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 사람은 어제를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을 사는 것도 아니고 내일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오직 하루를 살뿐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20/3/24(화)
2020.3.24. 최지숙 깊은물님 11주기 기억예배  
2020.3.24. 최지숙 깊은물님 11주기 기억예배

<기도>

하나님, 오늘도 저희 부자가 사랑하는 아내와 어머니 최지숙 깊은물님이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난지 11년을 기억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그동안의 세월을 보호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천양을 돌리오니 이 시간 영과 진리로 예배하게 하시고 높으신 하나님과 그 안에 있는 나를 만나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생각의 허물과 죄로는 절망하며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를 십자가의 은혜 안에 믿음으로 살게 하셨사오니 그 십자가의 사랑을 늘 기억하며 살게 하시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사랑으로 죽음도 삶도 다 하나님의 영광임을 알아 그 안에 자유롭게 하옵소서. 생각과 관습에 물든 겉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고 영의 새 사람이 부활하여 영생하게 하옵소서.
보이는 세상에서는 11년의 시간이 소년을 청년으로, 장년을 중년으로 만들었지만 우리는 한결같이 어머니와 아내를 기억합니다. 그를 통해 세상에 왔고 그를 통해 사랑하며 인생을 살아왔으니 고마울 뿐입니다. 다만 생각으로는 아쉽고 때로는 원망스럽지만 아내와 어머니가 남겨준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으로 이제껏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길 원합니다. 주께서 저희 부자를 도우시고 성령으로 감동하며 희망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기도의 일과 사랑의 마음으로 기꺼이 살아가게 하옵소서.
지진과 폭풍의 위협에 고통 받는 이웃과 세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만나고 있는 인류를 생각하여 주시고 바람을 일으켜 저들을 붙잡아 주시고 구해주옵소서. 또한 전쟁과 기근으로 상한 이 땅의 소중한 생명들을 감싸 안아 주옵소서. 이념과 욕심으로 갈려져 살아가는 세상이 이웃을 내 몸같이 여기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공의가 일구어지게 하시고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의 영을 불어넣어 화해와 일치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고 그 일에 저희가 기도로 봉사로 함께 하게 은혜 내려 주옵소서.

<찬송>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성경말씀> 창세기 13장 14절~18절 봉독 - 오한결

14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15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16 내가 너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누구든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의 자손을 셀 수 있을 것이다.
17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니, 너는 가서, 길이로도 걸어 보고, 너비로도 걸어 보아라."
18 아브람은 장막을 거두어서, 헤브론의 마므레, 곧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살았다. 거기에서도 그는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

<제1말씀> 최지숙 목사 -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학교에서는 5월이면 반가운 손님이 나타납니다. 누굴까요? 네 바로 교생입니다. 학교에서 열심이 교육에 대해 배우고 현장에서 이를 실습하는 사람들이죠. 참 좋은 시간들입니다. 그러나 교생과 진짜 교사와는 다릅니다. 교사와 같은 책임감이 없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의 앞 일이나 장래보다는 당장 함께 나누는 시간들에 충실합니다. 그래서 교사와 부딪치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난 주간에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 즉 가정에서, 직업에서 또 우리가 사는 선교의 현장에서 우리의 위치와 취할 행동과 마음가짐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바로 현장 실습의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그 동안의 생활이 어떠셨습니까? 과연 가정에서 변화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그대로 입니까? 한 두번쯤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종을 못잡겠습니까? 뭔가 배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잘 몰라서 혼동이 오고 있습니까? 아니면 해보았는데 잘 안되고 있습니까?
우리와 같이 이렇게 답답하고 막막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불현듯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믿고 막연히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염려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면서 조카 롯을 데려갑니다. 나이 어린 조카가 자신에게 얼마나 의지가 되고,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마는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와 동행했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들은 함께 있기에는 재산을 너무 많이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있는 땅이 그들의 양과 소가 동거할 만큼 충분치 않았고, 곧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별것 아닌 아이들 싸움이 큰 어른 싸음으로 변하는 것을 자주 보시죠? 바로 그런 것입니다. 막내가 맞고 울고 오면 형이 달려 나가 때려줍니다. 그러면 아니 왜 큰 애가 어린애들을 때리냐고 엄마가 나와서 야단치죠. 그럼 이쪽 엄마는 가만있나요? 처음에 누가 먼저 시작했냐고 삿대질하고 처음엔 동네 부끄러워서 말리러 나온 아버지들끼리 큰 소리 치고 그러다보면 주먹이 오고 갑니다.
아마 아브라함과 롯도 그러했나 봅니다. 부리는 아랫사람들의 싸움이니 처음에는 모른 척했겠지요. 그러나 차츰 서로를 향해 미운 마음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어린것이 괘씸하구나.” “거 어른이라고 속 좁기는.” 그러자 지혜로운 아브라함이 먼저 제안을 합니다. 아마도 그는 이 일의 근원이 하나님의 뜻과 달리 조카 롯을 동행했기 때문임을 깨달았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우리는 한 골육이다.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니?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하마.” 참으로 너그러운 제안입니다. 약삭 빠른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봅니다.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얼마나 땅이 좋은지 마치 여호와의 동산과 같다고 했습니다. 당대의 애굽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롯은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깁니다. 둘은 마침내 서로 헤어집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했는데 참 그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찜찜했겠죠. 우애 좋은 형제는 서로 밤새 볏 짚단을 서로에게 날라다 주었다는데 고르란다고 젊은 조카 녀석이 진짜 좋은 곳을 냉큼 선택하니 얼마나 괘씸했겠습니까?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얘! 너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렴. 네가 볼 수 있는 한 모든 땅을 내가 다 너와 네 자손에게 줄께. 그것도 영원히 말야. 내가 네 자손들을 땅의 티끌같이 해줄게. 사람이 어떻게 티끌을 다 세겠니? 아마 너의 자손도 그처럼 셀 수 없을 거야 자. 일어나서 그 땅을 가로 세로로 걸어보렴 내가 그것을 다 네게 줄께.”
바로 그것입니다. 롯은 당장 눈에 보기 좋은 곳을 택했지만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그곳은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쾌락만을 추구하는 죄의 온상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하실 때 롯은 아브라함의 6회에 걸친 간절한 간구로 간신이 목숨만 건저 빠져나옵니다. 아내는 그만 소금 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과 같이 번성케 됩니다. 정말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한번 돌아보십시오. 이것은 롯이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망하고 아브라함이 착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복을 받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결과가 그렇게 나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롯이 아닌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제2말씀> 오동성 목사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뒤에는 인생의 허무와 이별의 슬픔과 배신감으로 무너져 내려 있을 때입니다. 어머니와 아내를 잃었다고 슬픔과 절망에 갇혀 있는 순간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맞닥뜨리고 있는 때입니다. 그런데 그 때가 바로 주께서 말씀하실 때입니다. 귀를 기울여야지요. 내 생각에 빠져 있지 말구요.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1)너 있는 곳에서, (2)눈을 크게 뜨고 보아라, (3)그것을 너에게 주니 걸어보아라.”고 하십니다. 인생의 위기와 고비를 만났을 때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소식입니다. 첫째 말씀은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닙니다. 이곳이나 저곳이 아니지요. 지금 있는 여기입니다. 그러니 내가 있는 곳을 모르면 나올 수 없는 길이지요.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눈을 크게 뜨고 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눈을 뜰까요? 내 생각, 원망과 슬픔과 분노의 눈으로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랑과 감사와 감동의 눈을 크게 떠야지요. 아니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그 눈을 떠서 보면 보는 만큼 너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가서 길이로도 너비로도 걸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보기만 하고 생각만해서는 바뀌는 것이 없습니다. 한걸음 걸어가 보아야 합니다. 눈을 뜨고 바라보고 뜻을 세우고 그렇게 살아야지요. 아브라함은 롯이 떠나간 뒤에 장막을 거두어 가서 살고 제단을 쌓아 바쳤습니다. 내가 보고  생각하는 그곳으로 가서 살고 제단을 쌓아 바칩시다. 하나님은 그렇게 부르십니다.

<찬송> 아 하나님의 은혜로


<축도>

우리 앞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먼저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시고 교통하시는 역사가 아내와 어머니 최지숙 깊은물님이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돌아간 11주기를 기억하는 예배를 드리는 저희 부자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변화의 시간을 마주하는 인류 공동체와,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민족 공동체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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