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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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 사람은 어제를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을 사는 것도 아니고 내일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오직 하루를 살뿐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5/2/27(금)
이런 노년  


얼마전 아주 세련된 숙녀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의있고 상냥한 말투로 조목조목 문의하며 새벽에 공항가는 택시편을 예약하셨지요.
통화하면서 기분이 환해지고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돋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웬만한 젊은 아가씨들과 통화해도 이런 설레임이나 간질간질 아래에 올라오는 생기같은 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데 그 차이가 뭘까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사실은 생물학적인 매력은 젊은 아가씨들이 가지고 있는데 말이지요.ㅎ

택시 운전을 하다 보면 더 잘 느끼게 되는데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나면 내가 품격이 높아지는 것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급 영어 속에 있다보면 거의 폭행을 당한 느낌으로 영혼이 파괴되어 버린답니다.
택시 안에서 30분간 Fuck!(씹팔 좆까)만 수십번을 듣고 나면 택시 안이 거의 돼지 우리,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지요. ㅋ
말 한마디와 표현과 태도에 그 사람의 삶이 담겨 있고 의식수준이 고스란이 보여지니 참 말을 잘해야겠습니다.

각설하고, 그런데 이 매력적인 숙녀분과 통화를 하다보니 노인 아파트에 계시면서 친구분이랑 여행을 가는데 새벽에 공항을 가야한다는 겁니다.
어라~ 그렇다면 연세가 80세 이상은 되셨을텐데, 그리고 이 시간에 공항을 가는 건 멕시코나 쿠바 여행인데 어르신들이 남미 여행을 가신다....
양로원 일을 하다 보니 이야기를 조금만 나누면 어르신들의 연세나 상황에 대략 그림이 그려지지요.
직업적(?) 본능까지 발동하며 참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3시, 알람에 정신을 차려 봅니다.
실수를 하면 안된다 되새기며 잠이 들었는데도 깜빡했습니다.
3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1시가 넘어 잠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일어날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새벽 3시30분, 약속한 노인 아파트로 가니 어르신 한 분이 영하 20도가 다 되는 날씨에 밖에 나와 계십니다.
서둘러 내려 가서 보니 한국분이 아니시네요.
신문을 기다리고 있다고 신경 쓰지 말고 볼 일을 보라네요.
아....
이 한겨울, 새벽 3시에 홀로 나와 신문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인생을 봅니다.
그렇게 하루를 맞이하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역시나 약속한 어르신을 뵈니 직감대로 여든이 훌쩍 넘으신 어르신들입니다.
그런데도 소녀처럼 친구 둘이서 룸메이트로 멕시코 여행 가신다고 들떠 계십니다.
말로는 이게 마지막 여행이라시면서 멕시코는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간다며 행복해 하십니다.
목소리와 말씀하시는 분위기로는 4,50대로 밖에 여겨지지 않아 여든이 넘으신 어르신들이라고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당신들은 50년전 캐나다 올 때 300불밖에 가지고 오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낫겠다 그럽니다.
그러면서 열심히 살라고 그러면 이 나라가 보상을 해줄거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십니다.
게다가 이렇게 젊은이가 새벽부터 일을 하니 잘 살게 될거라고 덕담도 하시구요.
더 감동인 것은 자꾸 젊은이 젊은이, 아이 취급을 하시길래 아들이 이제 대학생이라고 하니까 깜짝 놀라며 결혼했냐고, 총각이 아니냐고 한 술을 더 뜨십니다.ㅋㅎ
지금까지도 느낌이 좋아 저절로 서비스가 되었는데 이 때부터는 최상의 서비스로 분위기가 급상승해지지요.^^

참 부러웠습니다.
이런 노년을, 이렇게 인생의 황혼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늙고 싶다고 말입니다.
말 한마디도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품위 있고 고상하게 할 수 있는 어르신, 자신의 일상을 계획하고 멕시코까지 선물할 열정과 꿈이 가득한 삶에 더 큰 젊음이 느껴집니다.
멕시코, 쿠바 가는 젊은 커플들을 새벽에 라이드해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진짜 젊음의 생동감과 향기와 기운을 진하게 받은 아침이네요.
2시간도 자지 않고도 이렇게 맑게 새벽을 열을 수 있다니 신기합니다.
이런 날은 운전도 할만합니다.
사실 며칠 사이로 300불짜리 티켓을 연속으로 두번 받고는 운전할 맛, 살고 싶은 의욕이 싹 사라져 버렸었거든요.

참 살만한 세상입니다.
오늘, 지금이네요.
내 삶은 지금 이 순간이 전부입니다.

* 이러다가 저도 곧 멕시코에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ㅋ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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