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깊은물 (eastsain@chollian.net)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09/1/25(일) | |
 백혈병과 이야기(8) : 밥상 얼마 안가 밥상이 들어와도 도통 먹지를 못했습니다. ^^ 골수 이식을 위한 강한 항암치료 때문에 목이 붓고 입안도 온통 헐고 붓고, 침도 못삼키니 그림의 떡이지요. 그래서 퇴원할 때까지 24시간 영양제를 놔주었습니다. 고맙기도 하지요.... 밥상.... 하면 제겐 여러 그림이 떠오르지만 그중에 하나는 신혼 밥상이었습니다. 아침을 안먹고 자란 터라.... 가득이나 할줄 아는 것 없는 살림에 아침을 어찌 차리나..... 보고 배운 것이 있어야지.... 그렇게 이리저리 며칠 가자 우리 깊은산님... 먼저 실력발휘를 합니다. 아침에 국에 밥에 반찬에 정성을 들여서 상을 차리고 저를 깨웁니다. 첨엔 그리 잘 차려진 밥상에 고마워서 한술 두술 뜨다가 가랑비에 옷이 젓듯이 이젠 내가 아침에 정식으로 밥을 안먹으면 못살게 되었지요. 고단수 비법이지요? 우리 새신랑의.....^^ 그리고 밥상.... 신혼 반년즘 지나고 시댁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낮에 아버님이 일하고 들어오시고 어머님은 산에 등산가셔서 안계시고, 제가 밥상을 차려서 아버님과 겸상을 하는 게지요. 밥상 이래야 어머님이 다 준비해 놓으신 것 식탁에 꺼내놓는 것 정도지요. 노래를 불러가며 정성껏 아버님 수저를 놓다가..... 갑자기 아빠 생각이 나는 겁니다. 나는 아빠 밥상을 몇번이나 차려드렸나? 아니 차려드려본 적이 정말 없나? 그런데 얼마전까지도 모르던 아저씨를 오늘 갑자기 아버님이라고 밥상을 놓고 있다..... 갑자기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빠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묘한 감정이 들더군요. 그래.... 이제부터 한달에 한번 아빠 모셔서 밥상차려드리지뭐, 그리고 우리 아빠 밥상을 우리 며느리가 잘 차리겠지... 나는 우리 시아버지 밥상 먼저 정성껏 차리자..... 그래서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정성껏 밥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독립하여 이사한 후 정말 자주 아빠를 모시고 진지를 대접했지요. 일하는 엄마와 함께 하시다보니... 인트턴트보다야 시골 밥상같은 음식을 아주 좋아하시지요. 다행히 반년 시댁에 살며 살림좀 배운 덕에 곧잘 시골스런 밥상을 뚝딱 차려내는 세째딸이 기특하신가 봅니다. 저희 집에 자주 오셔서 저에게 밥상을 받으시던 아빠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밥상..... 살림마을을 경험하고는 다들 밥상에 놀라지요 저도 그 정성을 보고 살림마을 다녀와서는 예쁜 도자기에 물 띄우고 꽃잎도 띄우고 초도 띄우고, 밥상을 예쁘게 차려보았지요. 그덕에 예가를 하면서도 아무리 인원이 많고 바빠도 우리 밥상은 늘 모양과 맛, 색, 소리가 있는 밥상이 되도록 애를 쓰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밥상...... 백혈병에 걸리고 한 일년을 침대에 누워 우리 깊은산님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았습니다. 이것 저것 몸에 좋다는 것 다구해서 잘 먹지도 못하는데 차려주는 받상.... 그게 늘 고맙고 미안했는데 병이 좀 나으면서 이번 여름엔 낮에 아무도 없는 때에 내가 깊은산과 내 밥상을 차렸습니다. 냉장고 문도 무거워 몇번에 열고 반찬통 뚜껑도 열지 못하고 숫가락 젓가락 한개씩 한개씩 열번 스므번 움직여서 간소하게 밥상을 차리고 밥도 뜨고 국도 펐답니다. 그리고 깊은산님을 불렀더니 또 쓸데없이 왜 그랬냐고 난리지요. 그날 차렸던 밥상이 제 평생 가장 정성을 들여 차린 밥상입니다. 이제 감사하게도 골수 이식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또 밥상을 차리고 있습니다. 밥상에 대한 단상이 들었으니 색이있고, 맛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향이가득한 식탁.... 밥상을 차려야 겠습니다. 맛난 밥상들 드세요. 물이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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