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9/3/1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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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갈릴리 가나에서 예수께서 왕의 아들의 병을 고치는 두번째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냥 믿고 해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 기적입니다.
아무리 예수라고 해도 나와서 듣고 믿고 순종하지 않으면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아니 다 해주셨는데 받지 못하니 선물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예수께서 자기와 함께 내려가시면 죽어가는 아들이 살아날 것이라는 것은 내 기대지만 예수는 혼자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고 그렇게 돌아가는 순간 아픈 아들의 열기가 떨어지고 살아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갈 때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가나에서 두 번째 표적을 행하신 뒤에 유대 사람들의 명절이 되어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아셨습니다.
그러면서 또한 스스로를 인자,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지요.
사람들이 이름 붙인 경계를 다 뛰어넘어 계신 것입니다.
유대인이라는, 로마사람이라는, 이방인이라는, 키가 작다는, 가난하다는, 영어를 못한다는,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그런 이름을 뛰어 넘은 그저 사람의 아들이고, 또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신대 오늘은 유대사람의 명절에 유대사람이 되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지요.
유대사람의 역할을 잘 하신 것입니다.
그처럼 오늘 우리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아버지로, 아들로, 목사로, 교인으로, 학생으로 또 명절이 되면 명절의 의미와 뜻을 기려 보는 것이지요.
다 알고 있다는 생각과 기억을 내려놓고 모르는 날을 새롭게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절이고 절기입니다.
새해의 첫날인 설명절에는 설날을 맞이해서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어둡고 부끄러운 기억은 다 보내고 새로운 때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날 세배를 합니다.
세배는 절을 하는 것이지요.
'절'을 한다는 것은 '저를' 드리는 것입니다.
몸을 낮추어 저를 받으시라는 의미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우주를 받아서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설을 맞는 마음입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아침, 새날을 맞이하는 요령을 이렇게 안내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가만히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있구나'하고 생각만 하지 말고, 말로 해서 자기 귀에 들려오게 해봅니다.
빗님이 와서 행복해, 기다림이 있어서 행복해, 가족들의 아침진지를 준비할 수 있어 나는 행복해, 종소리가 들려서 나를 깨워주는 구나 나는 행복해. 고요를 알아차릴 수 있어 나는 행복해,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이 있어 나는 행복해, 또 뭐가 있지요?
이러고 행복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새 가슴이 움직이고 입꼬리는 차츰 올라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감사 알아차리기, 생각 바꾸기, 맑은물 붓기 연습도 그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그 무엇을 하거나 무엇이 되면 행복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가까이 온 행복, 아니 있는 행복을 만나주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어떻게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입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만물의 이름을 붙이라고 하셨다고 했지요.
고통을 보고 우리는 사랑이라고, 은총이라고 이름 부를 수 있습니다.
슬픔을 보고 기쁨이라고, 구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러움을 보고 장난감, 구경거리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잇겠지요.
그리고 마지막 숨까지도 바람으로 날리는 날, 또 즐거운 소풍이라고 이름을 붙여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낯설음을 맞이하는 마음, 요령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유대사람이라고,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누구의 형제라고, 목수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람의 아들이라고 이름을 붙이셨습니다.
아니 그것을 알아보셨지요.
그러나 또한 그 빛을 안고 유대사람이 되셔서 그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처럼 유대사람이 되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스스로를 알아차리면 똑 같이 살아도 예전하고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유대인의 역할을 하고 사셨듯이 오늘 하나님의 아들인 나도 그런 역할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께서는 양의 문 곁에 있는 '베드자다'라는 연못에 가셨습니다.
다른 번역에는 '베데스다', 곧 '긍휼의 연못'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연못에는 전설이 있었지요.
천사들이 때때로 내려와서 물을 휘저어 놓는데 그 때 맨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것입니다.
이 전설을 보시면서 어떤 느낌, 생각이 드시나요?
재미있는 전설이면서 일등을 하지 못하는 민초들의 슬픔과 한이 담겨 있는 전설입니다.
역설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병자를 고치는데 선착순으로 고치실까 하는 의문이 저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선착순의 경쟁의 세계에서 도태된 일등을 하지 못하는 이들의 한이요, 핑계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전설이나 민담에도 다 그런 역설이 있지요.
오늘 예수께서는 그 한 가운데 서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계신가요?

그 연못가에는 눈먼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중풍병자 등 많은 환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 연못가에는 환자들이 누워있지만 세상에는 더 많은 환자들이 그렇게 누워만 있습니다.
아니 환자인줄도 모르고 눈 먼 줄도 모르고 귀가 들리지 않는 줄도 모르고 우연과 행운을 기다리며 누워 있지요.
물만 움직이면 거기에 들어가 나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실력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제치고 앞서 가 있어서 아무런 희망이 없이 누워만 있다고 원망을 합니다.
선착순의 논리가 지배되는 세상입니다.
언제나 일등을 해야 하고 일류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은 남과 환경을 탓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서른 여덟 해가 된 병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만 생각해 봅니다.
38년 동안 누워서 앓고 있는 사람이니 그의 몸 상태라는 것이 어느 정도였겠습니까?
‘오랜 병 앞에 효자 없다’는 말 같이, 아마 그의 자식들도 모두 이 사람으로부터 떠나갔을 겁니다.
38년 째 앓아 누워있으니 정신적으로도 온전치 못할 것 분명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제 겨우 38년도 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인데, 그렇다면 여러분이 이제까지 살아온 것보다 더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있었던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요.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예수께서 찾아오신 겁니다.
아니 그의 나이는 이제는 쉰 두 살이 되어버렸네요.
그리고 또 스무살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신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누워 있는 그 사람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랜 세월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 것을 아시고는 "낫고 싶으냐?"하고 물으셨다."
예수는 어떤 분이신가요?
먼저 누워 있는 그 사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몰라도 예수께서는 와서 지켜보고 아십니다.
그러니 무엇을 염려하고 걱정하고 숨길 수 있을까요?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고 보여주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안심이지요.
나보다 더 잘 아시고 내 안에 이미 나보다 먼저 계셨던 분, 그를 알고 만나야 참 내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갈망하는 구원이고 영생이지요.
그래서 깨어나야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사랑해서 결혼했고 사랑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는데 부부싸움을 하다가 사랑을 잃어버리고 이혼을 합니다. 정말 얻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으로 결정해야지 미움이 결정하게 해서는 안되는데 말입니다. 브니엘에 이르기 전까지 야곱은 자기가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했습니다. 내가 꿈을 가지고 목표를 세워 그렇게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이룬들 늘 부족하고 만족하지 못했지요. 얍복강에서 홀로 남아 가장 큰 두려움과 근심 가운데 있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찾아와 야곱을 붙잡고 씨름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틀과 기준 때문에 예수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내려놓을 때 보고자 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본래의 것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붙잡고 씨름하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려야겠습니다.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다 배울 일이고 하나님의 음성과 섭리가 있는 일인데 사람들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고 헛되이 예배하다가 끝나지 말아야지요.(#깊은산 20180310)

#세월호 참사 1790일째 : 해외에 있어 아들의 곁을 지키지 못한 정일 역을 맡은 설경구는 “다른 영화 일정과 겹쳐서 출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급하게 일정을 조율해서 촬영을 시작했다”며 “시나리오가 담담하면서도 단단한 힘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들을 떠나 보내지 못하고 있는 순남을 연기한 전도연은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 나누는 게 서로 위안이 되고 살아갈 힘이 된다는 걸 느꼈다”며 “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라서 너무나 좋았다”고 했다. 이 감독은 자의적 해석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수년간 고민하며 시나리오를 썼지만 촬영 전날이면 또 고민이 깊어져 유가족과 통화하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생일’은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둔 다음달 3일 개봉한다. 배우들은 이 영화가 “위로와 위안이 되기를” 바랐다. 설경구는 “세월호 참사가 온 국민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며 “서로 위로를 나누고 기억하겠다고 다짐도 해 보는, 작은 물결의 시작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도연도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다가가기보다 관객이 다가와 줬으면 하는 작품”이라며 “많은 분들이 다가와 주고 응원해 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한국일보)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다가 오히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과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었을까를 다시 물어 봅니다. ‘부정한 손’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눈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어떤 손이었습니까? 부정한 손이라는 판단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은 ‘씻지 않는 손’일 뿐입니다. 씻지 않는 손으로 먹어서 몸이 더러워진다고 하였던 거지요. 그런데 예수께서는 씻지 않는 손이 사람을 더럽힐 수 없다며 뱃속으로 들어가 뒤로 나가는 것이 어떻게 사람을 더럽힐 수 있냐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깨끗한데 우리가 그것을 더럽다고 보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내가 경험하는 사건들이 다 그렇습니다. 내 생각과 판단에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상한 사건입니다.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모두 깨끗한 것입니다. 선물이며 사랑입니다. 그것이 나를 더럽히고 괴롭힐 수 없습니다.(#깊은산 20180311)

#세월호 참사 1791일째 : 이제는 우리 안에 암약하며 작동하고 있는 박근혜 망령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세월호참사를 해상교통사고로 규정해버린 <박근혜-자유한국당-검찰-조중동-해피아-자칭전문가>의 음모를 깨버려야 진짜 진상규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참사는 해상교통사고(안전사고)”라는 프레임에 갇혀(또는 유도해) 안전대책 강화(법규 강화, 안전의식 고취, 구조/안전훈련 강화 등등)를 세월호참사의 대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것입니다.(유경근)

언젠가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안녕이라고 거실에 대형 유리창에 누가 돌을 던져서 온 마루에 유리가 가득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기분 좋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성경 읽고 체조하고 시작할 주말, 토요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니 일상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알 수 있지요. 우리 삶이 그렇습니다. 유리창을 치우며 속이 상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 어쩌겠습니까? 이 문제의 좋은 점을 생각할 수밖에요. 식구들과 아침진지를 하면서 이야기했더니 가지각색이었습니다. 앞뒤 재지 않고 흥분해서 복수를 해야 한다느니, 경찰에 신고해야한다느니, 무섭다느니, 가까이서 돌을 던졌을까? 멀리서 던졌을까? 돌은 어디에 있지? 한번 보여 달라 깔깔대며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우리가 깨진 유리창을 보면서 이렇게 기분 좋게 웃고 떠드는 것을 범인이 알았으면 멋쩍었을 겁니다. 싱겁지요. 원하는 바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테니 말입니다. 유리창 깨진 일이 우리를 기분 나쁘게 화나게 만들지 못합니다. 그 일에 내가 그렇게 반응할 뿐입니다. 억울한 마음, 분노는 내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때 나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기도고, 수련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바뀌어가는 나를 알아가는 멋과 맛이 있지요.(#깊은산 20180312)

#세월호 참사 1792일째 : 그러려면 “세월호참사는 살인범죄”라고 명쾌하게 규정하고, 살인자를 찾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검찰특별수사단>입니다. 박근혜 시절에 이미 수사를 끝낸 검찰이 특별수사단을 설치하고 “전면재수사”에 나서려면 정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문재인정부가 결단할 수 있도록 피해자와 시민이 함께 여론을 이끌어내야 합니다.(유경근)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야한다는 율법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손을 씻고 씻지 않고는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손을 씻어도 하나님을 못났다면 그것이야 말로 위선이고 거짓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께서는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내 안에 있습니다. 내 해석이, 내 설명이, 내 눈이 문제입니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 주어진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의 일이지 그것이 잘된 일이고 잘못된 일이고는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는지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이렇지요. 사랑 안에 있으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더라도 행복합니다. 미움 안에 있으면 산해진미가 가득해도 불행에 찌들어 사는 것입니다.(#깊은산 20180313)

#세월호 참사 1793일째 :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의 핵심과제는 “왜 선원만 표적구조하고 승객들에게는 어떠한 구조시도도 하지 않고 죽였는지”, “세월호 급변침과 침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고 구조를 하지 않은 행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밝히고 그 책임을 <살인죄>로 묻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살인의 동기와 과정과 책임”을 밝히는 것이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의 전부이며, 이는 마땅히 검찰이 해내야 할 의무입니다.(유경근)

하나님 보시기에 다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만물의 이름을 짓게 하시니 그대로 되어집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만물의 이름을 짓게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이른대로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세상을 창조하는 거지요. 멋집니다. 그대로 되어지는 세상, 믿음대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보면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뱃속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간다.” 그러니 음식이 사람을 죄인으로 혹은 의인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 몸속에 들어가는 음식은 자기 일을 하고 남은 것은 똥과 오줌이 되어 밖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이 더러운가요? 아니지요. 더럽다는 생각으로 볼 뿐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의 밭을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마음을 어쩌지 못합니다. 뒤로 나가는데 그것이 나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내 보내고 나의 것으로 소화해 내면 됩니다. 소화해 내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의 체계가 그러합니다.(#깊은산 20180314)

#세월호 참사 1794일째 :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려면 반드시 <자유한국당>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자유한국당은 바퀴벌레보다도 더 질기게 살아남아 여전히 패악질을 일삼는 “국정농단적폐잔당”일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세월호참사의 범인이거나, 최소한 살인자를 은닉, 비호하는 공범입니다. 자유한국당이 계속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당장 해체시켜버리는 것 뿐입니다.(유경근)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내 맞은편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나와 함께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나는 그 분에게 감싸여 그분이 직접 활동하시는 가운데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일치이지요. 무엇과 관계를 맺는 상대적인 존재로 전락한 신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타난 세계와의 어떤 상대성도 절대적으로 너머 계십니다. 생각 밖에서 그 분은 나를 감싸며 내 안에 내재하십니다. 기도는 내 안의 성령이 하나님에게 하시는 것입니다.(門脇佳吉)

생각이 천사라고 하지요. 야곱이 광야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누워 잘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나는 미움받은 사람, 외로운 사람, 나는 도망자, 그런데 꿈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로 이어지는 사닥다리입니다. 천사가 그 사닥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은 네가 번성하여 이 땅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나는 너를 지켜주겠다는 것입니다. 벧엘에 전혀 다른 두 가지 생각이 오고가고 있습니다. 돌베개가 야곱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눈물의 돌베개가 이제는 하나님의 집의 기둥이요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그렇습니다. 모든 음식은 깨끗하니 손을 씻고 씻지 않고가 사람을 좌우하지 못합니다. 그런 생각이 사람을 붙잡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 안에서 나오는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시선과 모독과 교만과 어리석음입니다.(#깊은산 20180315)

#세월호 참사 1795일째 :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의 방향타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검찰특별수사단>과 긴밀히 공조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회적참사 특조위> 내 일부에 있는 “세월호참사는 해상교통사고(안전사고)”라는 거짓프레임을 몰아내야 합니다. 특히 살인범죄인 세월호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일반적인 안전사고 대책들을 세월호참사의 대책인양 위장하고 피해자들의 동의를 강요하거나 유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안전사회소위원회”가 각별히 이를 유념해야 합니다.(유경근)

하나님은 우리를 내포하시면서 우리 안에 내재하신다.(토마스 아퀴나스)
하나님은 내가 나 자신에게 가까운 것보다 더 가까이 계시다.(아우구스티누스)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라.(아우구스티누스)

이렇게 예수께서는 무리를 가까이 불러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못하고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나를 가까이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나 자신에게 가까운 것보다 더 가까이 계시다고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지요. 그러니 다 좋을 수밖에요. 그것을 아는 사람은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내가 기쁨이고 감사이니 다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손을 씻지 않아서 음식이 더러워질 리가 없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대립하고 전쟁을 볼모로 줄달이기를 하지만 사실은 내가 미국이고 북한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있고 테러와 압제가 있지만 사실은 내가 그렇게 사용하고 그렇게 만들었지요. 밖에 일들이 아무리 그것이 강하고, 악하고, 독하더라도 그것은 뱃속을 지나 뒤로 내 보내면 됩니다. 그것들이 나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지금 사랑하고 원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깊은산 20180316)

#세월호 참사 1796일째 :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저는 오직 “세월호참사는 살인범죄”임을 증명하는 데만 집중하고, 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회적참사 특조위>의 과제들은 거들떠도 안볼 것입니다. 이제서야 겨우 진상조사를 시작하는 마당에 다른건 쳐다볼 여유도 없거니와 ‘예은이 아빠’로서 할 도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월호참사 5주기를 ‘살인범죄 진상규명의 출발점’으로 맞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4월 13일 광화문 추모행사와 16일 안산 공식추모식은 물론 전국/해외의 5주기 관련 행사, 모임, 행동에서 <4.16시민/동포>들께서도 같은 외침과 행동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확신에 찬 외침과 행동을 하실 수 있도록 <살인범죄의 증거>가 곧 드러날 것이라는 ‘희망(?)’을 약속하겠습니다. 그리고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는 “4.16시민/동포들의 네트워킹과 방향제시”에 더 집중해주시고 선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유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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