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8/12/16(일)
IMG_2509.JPG (143KB, DN:1)
새로운 물음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하루를 살고, 교회로 모이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말씀을 듣는 까닭도 바로 갈급함입니다.
눈에 보이는 일상을 넘어서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우물 물을 기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지요.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영생의 길은 어디에 있는지, 존재의 의미와 참된 행복과 감격을 누리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께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물을 마시면 이제 더 이상 갈급할 것도 고민할 것도 답답해할 것도 없습니다.
물을 길으러 우물을 찾아 나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 주는 물을 마시면 두 번 다시 목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되고, 야곱의 우물의 물은 마셔도 다시 목마르게 된다 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는 안에서 밖으로 넘쳐나는 물이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물인 까닭입니다.
외부의 것, 바깥의 조건으로 인해서 내가 행복하게 되고 내가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변하고 내가 바뀌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남편이 바뀌어야 가정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뀌면 가정이 바뀌고 남편이 달라져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생수를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밖에서 구하지 말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나보다 더욱 나와 가까우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 안에 빛과 사랑으로 함께 하신데 어디에서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하지만 또한 안과 밖이라는 경계 또한 우리의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관념과 경계일 뿐 사실로는 그런 것은 없지요.
어디가 안이고 밖이겠습니까?
다 내 생각이 정해 놓은 규정일 뿐 그런 것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내 속에 세계가 있고 세계 속에 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밖에서 구하지 말라는 말은 안과 밖에 구분되지 않는 바로 거기, 우리가 ‘하나님의 품’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실재 안에 샘물이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수는 내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넘어서 실재하신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생각, 관념은 있지 않은 허상이지요.
유일하게 있을 수 있는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흘러나올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여인에게 그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있고,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라 일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목이 마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의 말씀에 귀가 열린 여인은 물을 달라던 예수께 드디어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구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 몸을 달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거꾸로 당신의 영생하는 몸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몰라도 좋습니다.
다만 속이는 마음이 없이 구원을 간청하는 것, 생수를 구하고 그의 몸을 사모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렇게 필요한 것은 구원에 대한 우리의 진실한 목마름, 바로 그것입니다.
돌아봅니다.
정말 구원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까?
진리에 목마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시라도 아무 것도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인이 생수를 구하자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요?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지요.
우물가에서 물을 달라는 여인에게 왜 갑자기 남편 이야기를 꺼내시는 것일까요?
여기에 이 여인의 문제의 핵심, 목이 마르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에 예수와 대화하기 전의 여인이었으면 지금 살고 있는 남편을 불러왔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여인은 뭐라고 말하고 있나요?
“나에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돌아보니 함께 살고 있는 그 남자가 남편이 아니었지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형편과 삶이 질이 내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나에게는 남편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또한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이 여자는 다섯 남자에게 쫓겨났고 이제 여섯 번째 남자에게도 쫓겨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한과 고통 덩어리였겠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금 그에게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고 상처를 건드려 고름을 터뜨리시고 있는 것입니다.
상처는 싸매기도 하지만 열지 두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거기에 정직해지지 않으면 아물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게 다 털어놓은 여자, 나에게 남편이 없다고 고백하며 한과 응어리를 털어낸 여자의 가슴 깊은 곳에서 샘이 열려지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현 위치를 알지 못하는 한 속고 속이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물음이 달라지고 있지요.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양로원에서 어르신들과 주일 예배를 드리며 이사야 32장을 읽었습니다. 통치자들은 광풍을 피하는 곳과 같고 폭우를 막는 곳과 같고 메마른 땅에서 흐르는 냇물과 같고 사막에 있는 큰 바위 그늘 같다는 이사야의 고백을 들으며 슬픈 마음으로 이 땅의 위정자들을 봅니다. 그들은 백성을 돌보는 눈이 멀고 요구를 듣는 귀가 막히고 의도한 것을 말하는 입이 닫혀 있으니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을 보내주시면 황무지가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가 풍성한 곡창지대가 된다고 노래합니다. 평화가 없다는 것은 정의가 세워지지 않은 까닭이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정의가 결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성령은 정의와 평화입니다. 정의가 세워지지 않고 평화가 없다면 하나님의 영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지요. 오늘 성령으로 사는 사람을 기다립니다.(#깊은산 20181209)

#세월호 참사 1699일째 :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세월호는 갑자기 꺾이며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바로 이 시각으로부터 필요한 것은 응급 초동 조치였습니다. 신고도 해야 하고 탑승객이 안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초동 조치를 누가 해야 했을까요? 첫째, 그 시각 누군가가 세월호의 진로를 갑자기 꺾고, 선체를 급격히 기울게 했다면 바로 이들이 신고를 비롯한 첫 초동 조치를 가장 먼저 해야 했을 자들입니다. 둘째, 그 시각 세월호의 선수는 마치 레이싱 경주 자동차가 드리프트 하듯이 해상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선수는 오른쪽으로 45도 급선회하고 좌현으로 50도 이상 기울어 침몰의 발단이 된 초기 침수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에 5톤 화물차조차 중력을 뛰어넘는 원심력으로 인해 네 바퀴가 부양하여 왼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이러한 대형선박의 급격한 변화를 알게 된, 항해를 책임지고 있던 선원과 연락을 받은 구조 당국은 최대한 빨리 초동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신고는 8시 52분, 탑승객이었던 단원고 학생이 했습니다. 구하지 않은 시간들은 8시 49분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416연대)

예수께서는 거기를 떠나서 고향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거기는 그동안 내가 일을 해왔던 곳,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그곳입니다. 예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떠나보는 거지요. 그래서 고착되었던 것에서 나와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이고 붙잡혀서 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지요? 하지만 또 떠나보면 그렇게 힘들었던 것조차도 그리워질 거예요. 소중한 나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또 언제까지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 안주하고 싶어 한다는 거지요. 머물러 있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말씀 앞에서 나는 잘 떠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머물러 있는지 비추어 봅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와 같이 거기를 떠나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익숙한 순간이 떠나야할 때입니다.(#깊은산 20181210)

#세월호 참사 1700일째 : 처음으로 초동 조치를 했어야할, 참사의 발단을 일으킨 자들에 대해 박근혜 정권 혹은 조사와 수사 기관, 재판부가 파헤친 사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사수사, 사법당국은 애초부터 참사를 일으킨 자들에 대한 영역은 배제했습니다. 이들은 세월호가 언제든지 침몰할 수 있는 선박이었다고 단정하고 사건이 일어난 발단, 그 원인에 대해서는 배제했습니다. 오히려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시민을 구속까지 시켰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자문단장-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은 재판에서조차 세월호의 급격한 변화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조타실에 있었던 나침반이 목격한 기록에 대해 오작동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검증도 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세월호는 애초부터 나쁜 배였고 그러니 태어나지도 출항하지도 말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허무한 말로 이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현실을 초월하는 엉터리 단정으로 국민을 속였습니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모든 사건과 범죄들은 애초부터 그 용의자들이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416연대)

거기를 떠나는 길도 함께하면 쉽습니다. 예수께서 떠나가실 때 제자들도 따라 갑니다. 예수의 고향으로 떠나가는 것이지만 따라가는 제자들은 또 각자의 고향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나 홀로이지 않지요. 예수께서 앞서 서 그 길을 가시고 제자들은 따라갔지요. 오늘 나도 그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미 그와 그녀가 앞서 간 길입니다. 이미 되어 있는 길을 가고 있으니 내 눈만 뜨면 됩니다. 그것이 믿음이지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지만 두려움은 내 안의 느낌일 뿐, 한걸음을 옮겨 가 보아 사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문제라고 보는 눈으로는 문제만을 만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떨어져서 그것을 내가 경험하는 신비로 만난다면 구경하듯이 바라보고, 게임하듯이 함께할 수 있습니다. 여유와 틈이 생기 거지요. 오늘 거기를 떠나 고향으로 가는 그처럼 나도 그 마음이 되어 봅니다.(#깊은산 20181211)

#세월호 참사 1701일째 : 구하지 않은 시간들 중 어느 시각 하나도 배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시간들에 관여한 그 누구에 대해서도 혐의가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참사의 원인이 ‘사고’ 인지 ‘범죄’인지 아직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기 특조위를 만들었고 제대로 된 재수사를 요구하며 이에 따른 제대로 된 심판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가 전복된 시각은 10시 17분이었습니다. 그리고 10시 30분에 완전히 침몰하였습니다. 검찰은 박근혜가 3분 뒤, 10시 20분에 침실에서 나와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10시 20분. 과연 이게 사실일까요? 10시 20분 전까지는 자고 있었다? 8시 49분부터 첫 구조헬기가 온 9시 27분, 구조 함정 배가 온 9시 30분까지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해경의 지휘부 윗선들은 과연 무엇을 했던 것일까요? 이것이 과연 첫째의 시간들에 간여 되었을 자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416연대)

예수께서 고향에 가니 달갑지 않아 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옛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변화된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변화를 반갑게 맞이하기는커녕 두려워하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잘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련된 선물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왔지만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나도 그렇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내 친구가 변화되고 바뀌어 왔습니다. 그런데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내가 싫어하는 모습, 이미 정해놓은 굳은 생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를 못살게 굴고, 나를 괴롭히고, 나를 힘들게 했던 남편이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어서 사랑하고 싶어 다가와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내가 새로운 모습으로 친절하고 곰살거리면 닭살이라고 거절하지 않습니까?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그러기도 하지만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내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했습니다. 내가 풀지 않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풀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내 눈이 바뀌어야 합니다.(#깊은산 20181212)

#세월호 참사 1702일째 : 구하지 않은 시간들에 대한 우리의 질문에 대해 국가가 말해준 답은 없습니다. 그게 정말 사고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충분히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선박 자체 결함으로 세월호참사를 사고로 일으키려면, 복원력이 아주 좋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복원력 불량에 의한 사고는 모순적인 엉터리 해명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지난 4년 반이 넘도록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은폐된 진실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정권이 교체되고 나서 중대한 단서와 증거들의 봉인이 풀린 이후에야 그 빙산의 일각을 비로소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9.11 대참사 직후 7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밝혀지지 않아서 조사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1초, 1분이 우리 국민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적폐세력 산하의 수사사법당국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중요한 시간을 배제하였습니다. 단 1초라도 제대로 해명한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이제 시작입니다. 구하지 않은 시간들에 대해서 낱낱이 밝히고 범죄였다면 남김없이 처벌하해야 합니다. 이것이 올해 4월 16일 4주기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도 공개 선언했던 ‘완전한 진실 규명’일 것입니다. 제대로 된 조사와 수사는 이제 시작인 것입니다.(416연대)

고향 사람들은 예수의 지혜와 기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지 못하고 목수의 아들로, 누구의 형으로, 누구의 오빠로만 보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주변 사람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고, 또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지혜와 사랑으로 보지 않으면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향의 친구들은 함께 자라 너무나 '익숙'하고,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 ‘너머’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손가락을 보느라 손가락이 가르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거지요. 믿음은 받침대라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받혀 그 위에 세워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없으면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 준비되어 있는데 누리지 못합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에 오히려 예수가 놀라지요. 다 알고 있다고, 다 안다는 생각, 그런 선입견, 고정관념이 기적을 막습니다.(#깊은산 20181213)

#세월호 참사 1703일째 : 2014년 세월호참사에 대한 수사는 ‘세월호 침몰 사고 검경 합동수사본부’에서 이뤄졌습니다. 이들의 수사 결과가 재판으로 이어졌고 사법부는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 결과를 거의 대부분 채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는 엉터리며 적법하지도 않았다는 게 올해 드러났습니다. 304명의 참변을 일으킨 발단인 침몰의 직접적 원인 제공에 대한 중대 단서를 포착할 수 있는 조사 기관의 실험 결과가 있었지만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이를 누락시켰습니다.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의 부설 연구소인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의뢰에 따라 실험을 하였는데 이 실험에 따르면 이른바 세월호의 비정상적 급선회 현상이 세월호의 자체 결함으로는 재현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실험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검경 합동수사본부와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이를 재판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범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단순 사고로 단정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졸속 수사로 범죄 가능성을 따져볼 육하원칙-누가, 왜, 무엇으로 어떤 시점에 어느 위치에서 무슨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재판부에 제대로 제출된 것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사법 농단에 휩싸인 재판부는 세월호 재판을 기획했었다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습니다.(416재단)

예수께서도 거기에서는 아무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믿지 않는 곳에서는 그렇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가지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내 생각과 기준에 묶여 있으면 그렇습니다. 그것이 귀신이지요. 하나님이 찾아와도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맞이하는 것은 제자의 몫입니다. 눈을 뜨면 그 누구도, 그 무엇에서도 배울 수 있지요. 그런데 아들을 그저 말썽꾸러기로 보면 아들의 입에서, 행동에서 볼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목사를 목사로 보지 않으면 목사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은 철없는 아이들도 선생님으로 맞이할 때 배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키웁니다. 성탄은 그런 거듭남입니다.(#깊은산 20181214)

#세월호 참사 1704일째 : 검경 합동수사본부만 그런 게 아닙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전문가 자문단이 대부분 박근혜 정부의 국가 해양사고 조사기관인 해양안전심판원과 관계가 있고 해양안전심판원의 전문가 자문단도 마찬가지 입니다. 광역 해양심판원장 출신인 검경 합동수사본부 자문단장은 재판정에 가서 세월호의 나침반에 남겨진 비정상적 각도 변화 기록-즉 비정상적 급선회 사실에 관한 중대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기록을 말 한 마디로 부정하였고 재판부는 이를 검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국가 수사기관들인 국정원과 기무사 역시 세월호참사의 조사와 수사에 개입하였습니다. 국정원은 직무범위를 넘어서 세월호 수색에 관여했고 기무사는 세월호 증거 흔적 발견을 우려하며 인양을 중단시키려고 했습니다.(416연대)

두 후배가 있었습니다. 한 후배는 저를 통해서 참 많은 것을 받아 갔습니다. 스펀지처럼 다 흡수해서 그의 삶이 넉넉해지고 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후배는 똑같은 것을 주어도 그저 잔소리하고 꾸중하고 간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줄 수 있는 것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았지요. 그 둘을 보면서 많이 깨달았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었는데 한 후배는 저를 더 크게 만들어주고 힘을 주었고, 또 다른 후배는 저를 더 힘들게 하고 작아지게 했습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부족한 저를 선생으로 보는 이들은 참 많은 것을 받아갑니다. 그러나 무시하는 이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지요. 저는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자기만이 아니라 서로를 다르게 만들어가는 힘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할까요. 자기 손해입니다. 자기 삶을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까지도 다 빼앗기고 맙니다. 그래서 성경에 있는 사람은 더 받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까지도 빼앗긴다고 했습니다.(#깊은산 20181215)

#세월호 참사 1705일째 : 대법원 판결이 과연 적법한 법리에 따른 심판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304명이 침몰로 인해 희생되었는데, 사인의 발단이 될 수 있는 침몰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일으킨 범죄자는 없었다는 판결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박근혜의 청와대가 개입한 기획 수사, 기획 재판으로 세월호참사는 법적으로 종결된 상태에 있습니다. 죽은 국민들이 있는데 죽인 자는 없다는 판결과 다를 바 없는 결론을 우리더러 믿으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볼 때 전면적인 재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한 된 조사가 아니라 다시 낱낱이 모든 사실 관계를 제대로 다 조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범죄자를 찾고 범죄 가능성을 검증해야 할 제대로 된 재수사가 필요합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수사를 총괄했던 ‘세월호 침몰 사고 검경 합동수사본부’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기 특조위와 더불어 정상적인 ‘합동수사본부’입니다.(416연대)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