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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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삶의 예술 공동체 편지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8/10/15(월)
20170512_121205.jpg (113KB, DN:22)
예수의 사마리아  


요한보다 예수가 더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준다는 소문이 당시 실권자들인 바리새파 사람들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요한을 시기해서 참수형에 처한 그네들인데 예수가 더 인기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고 음모를 꾸밀지 뻔한 일입니다.
오늘 소문을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남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옮기고 반응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생각대로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수준만큼 반응하지요.
예수의 소문을 들은 요한의 제자들은 논쟁을 하려고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논쟁은 커녕 그 소식을 반갑게 들었습니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반길 수 있는 마음이지요.

그렇게 세상 사람들은 소문에 좌우되고 흔들리고 웅성거립니다.
예수는 이것을 아시고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가만히 자리를 피하십니다.
한창 많은 사람을 제자 삼고 세례를 주시던 일을 뒤로 미루고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신 것은 사람들이 다투는 명예와 욕심, 기득권과 상관이 없이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어렵고 힘든 소외된 자리로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일화가 있습니다.
전쟁에서 한창 전과를 올리고 있을 때 모함을 당해서 장군의 직위를 박탈당해도 이순신 장군은 사병의 신분으로 끝까지 싸웠습니다.
나같으면 어떻게 할까요?
억울하고 힘이 빠집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목적은 장군이라는 직위가 아니라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직위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백의종군이라고 하지요.
예수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내가 가야할 갈릴리는 어디인가요?
예가를 한창 하던 때에 저녁 진지를 하고 누가 끓여준 쌍화차를 마시다가 문득 잇몸이 허전해졌습니다.
늘 부실한 앞니가 빠져 버렸던 거지요.
그 때 처음 든 생각이 ‘한국에 다녀올 수 있겠구나’였습니다.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거지요.
워낙 치과치료 비용이 비싸고 앞니가 없이는 지낼 도리가 없으니 말입니다.
비수기라 비행기 값이 1300불 정도니 견적이 1000불이 넘으면 한국에 다녀오리라 마음 먹습니다.
그리고 치과 예약을 하고 치료를 받는 동안 많은 물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였지요.
혹시 도망가고 있지 않은지, 내가 해야할 일이 있는데 핑계를 대고 있지 않은지 그렇게 물으면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제가 가야할 갈릴리는 토론토이고, 예가이고, 우리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겠습니까?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면 어디로 가야할지도 몰랐겠지요.

그렇게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신 예수는 다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런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을 도피해서 비겁하게 도망가시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습니다.
다툼이 없으니 허물이 없지요.
모든 물은 바다로 흐릅니다.
낮은 곳으로 흘러가면서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다투지 않습니다.
그러니 싸움이 없는 거지요.
물이 그렇게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유는 하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다로 가서 또 형체를 바꾸어 구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물의 길입니다.
그래서 결국 가장 높은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가다가 막히면 둘러가고, 땅 속으로도 들어갑니다.
그러나 가야할 길을 잃지 않고 늘 흘러가는 것이 물입니다.
지금 예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것은 그렇게 물이 흘러가듯이 가는 걸음인 것이지요.
예수와 같이 물처럼 흘러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갈릴리로 가기 위해서는 거쳐야할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사마리아였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거쳐야할 곳이 있습니다.
사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피해서 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거처가지 않으려고 두 배가 되는 거리를 둘러서 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피해서 가지 않으시고 일부러 지나가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상처받은 곳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적대시하고 있었습니다.
서로가 같은 민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미워하는 것은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은 남유대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게 됩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식민지가 되고 남유대는 바빌로니아의 식민지가 되지요.
사마리아를 점령한 앗시리아는 잡혼정책을 사용하였습니다.
외국인들과 결혼하게 하여 민족의 순수성을 없애버리는 정책이지요.
남유대는 바벨로니아의 식민지가 되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비록 포로 생활을 하긴 하였지만 남유대는 민족의 순수성은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북쪽의 사마리아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시하는 민족의 순수성을 다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때부터 유대인들의 사마리아인에 대한 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몇 백년을 지내온 겁니다.
그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동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의 두 배나 되는 거리입니다.

이것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서로 상종하지 못할 상대가 된 외면이고, 그 내면에 있는 것은 잘못된 ‘자기 인식’과 ‘분별심’입니다.
거기에서 다툼과 성냄과 지옥이 생기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자기는 순수하다고 생각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통을 안아주지 못했고,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피해의식에 젖어서 덩달아 서로를 갈라놓고 적대시한 것입니다.
스스로를 잘못 알고 있으니 자기 밖의 세계도 잘못 보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예수는 안다고 하는 것이 죄라 하셨습니다.
사실은 서로가 하나이고 아픔을 품어 주어야 할 동족인데 말입니다.
너 속에 있는 나를 보고, 내 속에 있는 너를 보면서 모든 원인이 바로 나에게서 출발하는 것임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남아 있으면 상종하지 못하고 다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과 멀어져 있을 수밖에 없지요.

자, 그런 분별과 다툼과 상처가 있는 땅 사마리아, 예수는 다른 유대인들처럼 그곳을 피해서 가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실 수밖에 없었다고 표현한 것이지요.
예수에게는 그 길밖에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가실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꼭 가야할 길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로서는 그 길을 피해서 간다는 것은 서로 판단하고 분별하고 다투는 그네들과 다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서도 예수는 해야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야만 했습니다.
오늘 어떤 길을 선택하고 있나요?
예수처럼 사마리아를 지나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가야할 사마리아는 어디입니까?
내 일터를 가기 위해서, 내 목적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지나가야할 사마리아가 있습니다.
해결해야할 일과 만나야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예수와 제자들이 풍랑이는 바다를 지나 바다 건너편으로 왔는데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이었습니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시니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서 맞이합니다. 산 너머 산이지요. 바다 건너로 가자는 말씀에 하루 종일 수고했으니 이제 쉬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배려라고 보기도 했지요. 그런데 배를 저어 가다 보니 풍랑이 일고 파도가 치고 배에 벌써 물이 들어버립니다. 거기까지가 어쩌면 좋았는지 모릅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귀신도 이만 저만한 귀신이 아닙니다. ‘군대 귀신’입니다. 바다 저편에서 지금 무슨 일을 만나고 있나요. 이렇게 살줄 몰랐지요? 하지만 사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일만 해결되면, 이 풍랑만 넘어서면, 이 물만 빼내면, 이라고 하던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면 그런 조건이 나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일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일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아무리 얇게 썰어도 거기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그런 조건으로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어떤 일을 만나도 다 좋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하늘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아야지요.(#깊은산 20181007)

#세월호 참사 1636일째 : 화물차들은 미끄러질 때 작용되는 중력의 50배 이상 되는 힘의 작용을 받으며 나뒹굴었고 심지어 부양하여 날아가 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 시점이 바로 참사 당시 08시 49분경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세월호는 경사가 매우 빠르게 크게 졌고 침수와 경사가 증가하였고 여기에 급선회에 따른 원심력의 증가로 전복에 이르게 된 것이고, 전복 현상으로 탈출은 더 어렵게 되었으며 수밀문이 열려 있어 침수 지연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해양적폐세력이 말한 서사적 단계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급경사의 과정도 다르고 그 원인도 해양적폐세력이 주문처럼 되뇌는 과적과 복원력 불량만으로는 절대 해명되지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화물쏠림은 선박 내부에 갇힌 화물의 유한한 무게로 한정 되었을 뿐 계속 증가한 요인이 아니었습니다. 급경사와 침수, 급선회는 처음부터 거의 동시에 계속 발생했고 원심력도 같이 증가한 것입니다. 이것이 전복에 이르게 된 이유입니다.(전면 재규명)

바다를 건너온 그들 앞에 나선 귀신들린 사람은 누구일까요? 2000년 전 거라사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신을 악령에게 빼앗기고 제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가족들과도 살 수 없고 친구들과도 살 수 없습니다. 혼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 도와주고 회복하게 하는 일을 하셨지요. 가장 큰 일입니다. 그렇게 된 이상 혼자의 힘으로 귀신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사람은 귀신보다 큰 존재입니다. 아니 차원이 다른 존재이지요. 그런데 귀신의 종노릇을 하니 어리석고 한심한 일입니다. 당시에 귀신들린 사람들이 그랬다면 오늘 귀신들린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물음’입니다. 혹시 오늘 내가 귀신에 들려 살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닐까요. 그래서 무덤 사이에 살고 소리를 질러대고 돌로 내 몸에 상처를 내며 살아가고 있지 않으냐 하는 것입니다. 바다 건너온 예수는 그런 나에게 찾아오신 예수는 기회입니다. 오늘 그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깊은산 20181008)

#세월호 참사 1637일째 : 블랙박스 영상에서 확인된 장면들은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빨리 기울었다’는 생존자 증언, ‘몸이 붕 떠서 배 왼편까지 날라갔다’는 생존자 증언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블랙박스가 보여준 것이 없었다고 해도 거꾸로 말해 만일 출항 전 당시부터 세월호가 고박불량도 과적도 없었고, 복원력도 매우 좋았다면 2014년 4월 16일 08시 49분의 급경사/급선회는 절대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간접적인 원인으로 추정하는 것들과 직접적인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침수의 순간, 참사의 발단이 된 그 침수의 순간이 애초부터 시작되지 않았으면 그 다음 문제들은 문제가 있었어도 나타나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배수량을 상실하게 만들어 침몰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침수의 시작을 입증하는 문제는 대단히 신중하고 충분하고 철저한 검증이 동반되어야 할 중대 사안입니다. 이것을 블랙박스가 보여준 것입니다. 블랙박스는 증거입니다. KBS에서는 블랙박스 시각 동기화를 정확히 하기 위해 당시 블랙박스 카메라의 촬영 영상 프레임과 이를 출력했을 때의 프레임 사이의 차이까지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50도 이상 빠르게 기운 직후 5톤트럭 왼쪽 부양도 동시에 발생하고 그 순간(모먼트)에 침수가 발생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였습니다.(전면 재규명)

귀신들린 사람이 사는 곳은 ‘무덤 사이’입니다. 그리고 또 무덤에 살고 있는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이지요. 빛이면서도 세상 가운데 살지 못하고 자기만의 무덤, 음습한 곳을 찾아 그곳이 전부인 줄 알고 살고 있습니다. 자폐입니다. 자기 세계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인줄 속고 사는 거지요. 오늘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무덤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갇혀 있는 무덤, 내가 만들어 놓은 무덤이 있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남편, 내가 의심하는 아내, 내가 못마땅해 하는 직장 상사, 내가 한심하게 보는 딸내미, 내가 만들어 놓고 살아갑니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의 무덤이 되고 맙니다. 내가 무덤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면 차라리 무덤에서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있지요. 그러나 대부분 나의 무덤도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무덤 사이에 살아가는 귀신 들린 사람 이야기는 나의 무덤을 살펴보게 합니다. 기회는 현위치 파악입니다.(#깊은산 20181009)

#세월호 참사 1638일째 : 블랙박스 증거로 인해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올해 4월 13일 외력검증TF를 공식적으로 구성했습니다. 급경사/급선회 현상을 외력 가능성을 배제하고 규명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사기한이 짧은 관계로 외력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조사는 더 지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체 좌측의 핀 안정기가 25도가 최대치인데 50도이상 2배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 있는 것과 직립 후 선체 좌측을 가리고 있었던 리프팅빔 제거 후 외판과 내판에 대한 조사 검증까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해양적폐세력들은 이 블랙박스 영상 증거를 인정할까요? 그들은 아예 이야기조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이 블랙박스 증거만 이렇게 대할까요? 이미 자유항주 모형실험에서 나타난 이해할 수 없는 급선회 현상의 결과를 알면서도 침묵한 이들은 또 결정적인 증거를 교묘히 뭉개버리는 일을 감행했습니다.(전면 재규명)

거라사에서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 한 일은 먼저 무덤 사이에서 나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났지요. 무덤 사이에 머물러 있으면 귀신들렸는지 정신을 차리고 사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귀신들렸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살게 됩니다. 깨어나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무덤 사이에서 나와 보아야 합니다. 떨어져 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가오시는 예수도 만날 수 있고 자신의 모습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기회를 잡는 거지요. 무덤 가운데 살 때는 점점 더 상태가 악화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무도 제어할 수 없고 그저 소리 지르고 제 몸에 상처 내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내 몸에 상처 내며 나를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아픔을 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사는 것이지요. 사람들을 또 그것이 두려워서 나를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묶어 두려하지만 점점 더 악화되어 그렇게 할 수도 없게 되지 않았나요? 이제 그 무덤에서 나오십시오.(#깊은산 20181010)

#세월호 참사 1639일째 : 진상규명은 바로 참사가 시작된 순간의 직전과 당시 직후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당시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호 안에 있는 탑승객들도 자기 위치에 따라 다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객관적 데이타들을 종합하여, 즉 목격과 증언들 모두를 객관화하여 종합한 침몰 당시의 상황을 실제 눈으로 보는 것처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상상으로 가늠하게는 게 아니라 현실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월호의 시간 당 위치 변화가 얼마나 심각하고 특이했는지를 객관적으로 목격한 증거자, 그 데이터가 바로 나침반에 있었습니다. 이 나침반은 전륜나침의 즉, 자이로스코프 나침반으로서 영어로 자이로컴퍼스라고 합니다. 이 나침반 측정 기록은 세월호가 매우 짧은 시각에 갑자기 오른쪽으로 급선회하여 그 선회반경을 모두 평균 내어도 세월호가 가장 좁게 돌 수 있는 것보다 2배 이상 좁게 돌고 급경사를 이룬 시각과 거의 동일한 시각에 급선회율-선회 각도 변화가 큰 현상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배의 방향을 좌우지하는 타의 변화, 즉 타의 변침으로는 설명이 가능하지 않는 현상이었습니다.(전면 재규명)

귀신이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있지 않는 것을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 귀신들린 거지요. 그래서 거기에 묶여 살게 됩니다. 오늘날 귀신은 잘못된 내 생각, 내가 만든 조항과 틀, 이데올로기, 하나님보다 높아진 우상입니다. 본질의 삶을 사랑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나의 무지입니다. 그런 세계에 살면서 이제는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그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항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귀신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더 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고 애원합니다.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이대로 살게 내버려두라고, 괴롭히지 말라고, 그것만이 길이냐고, 어디서 많이 듣던 외침이 아닙니까? 오늘 내가 그렇게 소리 지르며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귀신은 내 안에 있는 어두움입니다. 근심과 염려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그렇게 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안에 그런 불편과 고통이 있다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신호입니다. 그것들을 내쫓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깊은산 20181011)

#세월호 참사 1640일째 : 그러나 해양적폐세력들은 이를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2014년 1심 재판 당시 검경 합동수사본부 자문단장,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 출신인 허용범 자문단장은 자이로컴퍼스의 측정 기록에 대해서 ‘자이로컴퍼스의 오작동’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우리는 이 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선조위에서는 세월호와 같은 제품인 자이로컴퍼스를 세월호 당시 상황과 유사한 조건에서도 잘 작동했는지를 실험했습니다. 0.5초 단위로 분석한 결과 자이로컴퍼스는 큰 오차가 없이 잘 작동했습니다. 그러나 해양적폐세력 전문가들은 자이로컴퍼스 즉 나침반에 대한 중요성이 잘 인지 되지 않는 점을 활용하며 교묘히 뭉개버리며 더 이상의 검증이나 조사 없이 오작동이라고 단정을 한 것입니다.(전면 재규명)

무덤 사이에게 나온 귀신들린 사람에게 예수는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는 군대라고 대답합니다. 그 사람은 이름도 없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내가 말하는지, 악령이 말하는지, 말하는 나는 누구이고, 또 말하는 나를 보는 나는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저 수많은 그것들에 뒤엉켜 살아와서 군대처럼 살고 있는 거지요. 이것이 인생의 불행입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인지, 너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 물어 주시는 하나님의 물음이 있습니다. 당시의 군대는 '로마군'을 상징합니다. 전쟁과 파괴, 살인과 거짓의 어두운 그림자지요. 귀신은 그렇습니다. 내 안의 어두움, 내 안의 근심, 내 안의 염려, 내 안의 장벽, 그것이 귀신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평화와 사랑과 기쁨과 감사를 가로막는 모든 세력, 그것이 귀신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그런 느낌, 그런 무덤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나오라고 명하십니다. 속지 말고 정신을 차려 살라는 것입니다.(#깊은산 20181012)

#세월호 참사 1641일째 : 기무사가 세월호참사에 대한 불법사찰을 참사 당시부터 단원고와 청해진해운과 유가족까지 했던 사실이 드러나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은 기무사가 참사 직후 2~3일간의 생존 흔적이 발견 될 것을 걱정하고, 선체 하부의 긁힘 파공의 식별 될 것을 우려하여 인양은 부담스러우니 수장해야 한다고 한 것은 차마 표현할 수도 없는 패륜적인 짓이었습니다. 이것은 물증으로 드러났고, 청와대를 통해 실제 집행이 되어 세월호는 미수습자 유실과 심각한 훼손의 위기 속에서 2년이 넘도록 인양 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기무사의 세월호참사 개입, 즉 구조와 침몰에 관한 직접적 원인에 관한 증거 발견과 식별에 대한 사전 인지 여부의 정황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물증만으로도 세월호참사에 대한 전면적 재규명은 그 이유가 차고 넘칩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국가의 수사기관, 조사기관, 사법기관, 전문가 자문집단에 대해 과연 누가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기무사에 대한 수사는 현재 어떠할까요?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게 현황일 뿐입니다.(전면 재규명)

군대귀신은 그 사람의 몸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돼지 속에라도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악령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 몸에서 나온다고 해도 돼지들 속에 들어가 그렇게라도 살아갑니다. 우리 주위에서 늘 있는 습관이지요.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연습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지요.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과 습관은 잠시 어떻게 했다고 잘 바뀌지 않습니다. 통계적으로 습관은 40일이 지나야 고쳐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40일 금식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영성수련에서 40일 피정을 하는 것도 그런 연유입니다. 무엇을 해도 40일은 해야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무덤 사이에서 귀신들려 살게 되는 것이지요. 시늉만 하고 진상규명 없는 작심삼일은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깊은산 20181013)

#세월호 참사 1642일째 : 국정원이 청해진 해운, 선사 운영에 깊숙히 관여한 특수관계였다는 것과 자신의 배가 아니고서는 관리 지침을 구체적으로 낼 수 없는 데 세월호에 무려 100가지나 시시콜콜한 지적까지 했던 국정원에 대한 수사는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국정원은 기무사처럼 직무범위를 넘어 수색 과정을 사찰하고 관여까지 했다는 것이 2016년 9월에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기무사가 인양 후에 어떤 일들이 발견되거나 식별될 것을 우려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정원 역시 수색 과정에 대한 어떤 통제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의혹이 이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작년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국정원에 소리 소문 없이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국정원은 세월호와 청해진해운과 관련성이 없다’는 한마디 말로 일축해버린 것입니다.(전면 재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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