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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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삶의 예술 공동체 편지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8/9/23(일)
20170512_091512.jpg (125KB, DN:1)
사랑하는 기쁨  


혼인예식에 하객으로 참석하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미 혼인을 했거나 곧 할 사람으로서 사심없이 신랑이나 신부를 축하해주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혼인을 아직 안했는데 애인도 없는 사람으로서 이 경우에는 축하를 해주면서도 어딘가 허전함을 갖게 됩니다.
나는 언제 혼인을 할 수 있게 되어 이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그 기쁨을 온전히 공유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셋째는 신랑이나 신부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사실은 자기가 오늘 혼인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랬던 사람입니다.
이 경우에 진정한 축하는 어렵고 기뻐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자기 자리를 빼앗은 신랑이나 신부를 원망과 질투로 보게 되지요.  

세례요한은 바로 세번째 경우로 혼인예식에 참석한 모양입니다.
예수가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자기에게 몰려와서 세례를 받았을 겁니다.
자기에게 올 사람을 예수께 빼앗긴 셈입니다.
예수가 아니었다면 오늘 신부의 신랑은 바로 자기였을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요한은 자기의 신부될 사람을 빼앗아 혼인식을 올리는 신랑 예수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고 그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기쁨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어떨 때 가장 기쁠까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성적을 잘 받았을 때? 어떤 일을 이루었을 때? 칭찬을 받을 때? 갖고 싶은 물건을 가졌을 때? 그러나 지나고 보면 조건 때문에 기쁜 것은 잠시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와 통계 결과는 무언가 나눌 때 사람은 가장 기쁘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 없이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하지요.
이런 기쁨과 사랑해야지요.

신랑과 신랑 친구의 관계와 더불어 신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그 신부는 누굴까요?
요한의 입장에서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내가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도중에 나의 친구가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더 이 신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나의 신부를 위해 신랑의 자리를 친구에게 양보하는 것이 더 큰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요?
사랑하기에 떠난다고 하지요.
여기 요한의 기쁨은 단순히 결혼하는 친구를 축하하는 의미에서의 기쁨만이 아닙니다.
요한의 기쁨의 정체는 그토록 사랑했던 애인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나보다 더 나의 애인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친구를 소개해 주고서 갖게 되는 기쁨입니다.
아픔이 배어있는 기쁨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기쁨입니다.

요한의 사랑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많은 경우,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랑을 합니다.
이기적 사랑이지요.
그 자신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 때로는 남의 애인을 가로채기도 합니다.
또 현재의 애인보다 더 나아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면 쉽게 애인을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사랑은 남에게 눈물을 안겨주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얻은 행복, 그것이 과연 궁극적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요한은 자기의 행복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 애인의 행복을 위한 사랑을 하였던 겁니다.
나보다 더 나은 친구가 나타나자 자기를 내려 놓고 애인을 나의 친구에게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쁨이 터져 나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애인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하고 그것만으로는 모자라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4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생활 속에서 신앙의 감격이 없이 답답하게 살아온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엄한 계율과 의무에 열중했지만 차가움과 마음의 공허는 여전하였습니다.
어느 날 수녀원 복도를 걸어가다가 주님께서 빌라도의 뜰에서 채찍에 맞으시는 그림을 보았습니다.
수백 번 더 본 그림이었으나, 그날 그 순간만은 전혀 새로운 감동으로 마음에 와닿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여기서 비로소 자신을 위해 고난 받으시는 사랑의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참 후 그는 일어섰습니다.
이 주님은 흥하고 자신은 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생겨났습니다.
고통 받고, 소외당하고 어려움 당하는 자,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를 위하여 사랑의 빚을 진 마음으로 일어섰습니다.
이 여인은 마침내 주님의 흥함과 자신의 쇠함을 위해 남이 돌보지 않는, 남이 가지 않는 곳을 찾아서 장애자,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버림받은 자, 문둥병자를 돌보면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는 사랑의 위로자요 평화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 여인이 바로 인도의 마더 테레사 수녀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주님이 흥하고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주님의 흥함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과 명예와 업적을 위한 땅의 기쁨을 포기한 순간, 새로운 영적 기쁨이 자신을 사로잡은 것이지요.
사실은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부모와 자식과 아내를 버리지 않으면 당신을 따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주님이 흥하고 자신은 쇠하는 길을 선택한 순간, 신비로운 영적 기쁨이 자신 속에 가득 차게 된 것이지요.
마치 마더 테레사 수녀가 자신의 세속의 안락과 기쁨을 주님의 흥함을 위해 포기하고 인도의 빈민굴로 찾아가 자신의 쇠함을 추구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살고 있듯이 말입니다.

이런 기쁨 어떻습니까?
세례 요한의 선택은 오늘 우리들 속에 부활하여 우리들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자기 행복을 위해 사랑을 하는 우리들에게 찔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회개와 양보와 헌신의 삶속에서도 은근히 자기 의를 드러내려는 우리들을 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이 고백에는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어떤 집착이나 원한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어난다는 믿음만이 있습니다.
내가 잘 하는 것도, 내가 못하는 것도 말입니다.
다 하늘로서 온 것이지요.
이런 사람을 세상이 어찌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에게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다 감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영광을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하시는 일이지요.
육신인 나는 그 앞서 보냄을 받아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신부를 차지하는 것은 신랑이지만 그가 오는 소리를 들으며 진심으로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오늘입니다.

(요한복음 3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화분에 사과 씨를 심으면 사과 싹이 납니다. 허니 듀를 심으니 허니 듀 싹이 신기하게 고개를 내밀구요. 작은 씨에 어떻게 그런 생명력이 있을까 무엇이 열매를 맺게 할까 참 신기하고 새로움이 가득합니다. 정말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지만 어떻게 싹이 나고 자라는지 알지 못합니다. 때가 되어 싹을 내고, 이삭을 내고, 낟알을 내는 것을 바라볼 뿐입니다. 장미꽃을 10분만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이 바뀐다고 하지요. 장미꽃을 바라보며 그 안에 있는 신비를 만나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생명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감사와 감격으로 살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렇지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는데, 때가 되면 뒤집고, 때가 되면 앉고, 때가 되면 걷고, 때가 되면 말하고, 때가 되면 학교에 가지요. 부모가 한다고 하지만 부모가 정말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부모는 무력합니다. 오히려 아이들 덕분에 부모가 살지요. 자연입니다.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깊은산 20180916)

#세월호 참사 1615일째 : 정말 세월호 참사가 항간의 주장처럼 누군가의 음모, 누군가의 기획, 누군가의 고의가 작용해서 발생한 참사가 맞다고 그러면 과연 그것을 누가 했겠느냐, 그런 영향력을 발휘할만한 곳은 어디고 그런 사람은 누구냐, 국정원 밖에 없잖아요. 해수부가 그것을 하겠습니까? 해경이 그것을 하겠습니까? 항적이 조작된 게 정말 맞는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을 그렇게 치밀하게 조작할 만한 능력이 있는 곳은 어디냐는 거예요.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게 맞다고 가정하면 그것을 할 만한 곳이 어디냐는 거예요. VTS관제소 소장이 그것을 하겠습니까? 그것을 할 만한 곳은 딱 정해져 있습니다. 기무사 문건에 나오는 여러 가지 몇 가지 조항을 보면 어 오랫동안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를 알고 있었던 거 아니야. 여러 가지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죠. 그래서 지금 요구하고 제안하는 방식은 기무사와 국정원, 그럴만한 힘과 능력과 자원과 네트워크가 있는, 또 그럴만한 충분한 동기가 있을 수도 있는 국정원과 기무사를 전면적으로 수사해야 한다. 그 수사를 통해서 침몰과 구조와 진상규명 방해에 관련한 조항들은 반드시 드러날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 앞에 놓인 수백 가지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유경근)

씨가 저절로 자라듯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없습니다. 그 길을 따라 역할을 할 때 하나님이 준비해 놓고 되어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사실이지요. 노력으로 된다면 사람의 일이지 하늘의 일이 아니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믿어주시는 믿음에 나를 맡기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듯이 말입니다. 사랑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나를 통해 일하도록 내 길을 내어주는 것이 듯이요. 사랑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연애를 해 보면 알지요. 내가 연애 감정을 만들려고 사랑하려고 아무리 노력해 보십시오. 사랑할 수 있나? 사랑은 찾아오는 것이고 내가 맞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되어진 일을 한다는 것은 눈을 뜨고 깨어나는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모두가 사랑입니다.(#깊은산 20180917)

#세월호 참사 1616일째 : 그럼 국정원과 기무사를 어떻게 수사할 수 있을까요. 특정인은 못합니다.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무사와 국정원을 수사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죠. 누굽니까? 기무사도 대통령이 지시해서 수사하고 있잖아요. 수사상황을 어제, 그저께도 제가 좀 봤는데요. 마음에는 안 듭니다. 굉장히 참 제대로는 못하고 있기는 한데요. 어쨌든 수사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이 지시하니까 하는 거고 대통령이 챙기니까 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기무사처럼 국정원도 대통령 지시에 의해서 국정원 특별수사단을 설치해야 합니다. 그 특별수사단은 기무사 수사하는 것처럼 군 검찰이 기무사 수사한다? 이것은 100% 실패하는 거고요. 군과 관련이 없는 민간 검찰, 일반 검찰이 해야 하는 겁니다. 일반 검찰도 그냥 검찰이 해라가 아니라 대통령이 지시와 명령에 의해서 구성되는 검찰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검찰의 특별 수사의 방향은 특조위가 잡아줘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주장을 한 대로 특조위와 검찰이 함께 진상조사와 수사를 병행하도록 그 방향타를 특조위가 잡아줘야 합니다.(유경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무엇을 간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사도 바울도 기도할 때마다 로마를 생각했고 그곳에 갈 수 있기를 바랬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요?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가려고 했습니다. 가고자 열심이었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늘 그 길이 막혔지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아무리 선한 뜻을 바란다고 해도 사람이 그 바라는 바를 ‘제 힘으로’ 성취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제 나는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지요.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이 강함으로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자랑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이 일을 위해 믿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지 사람의 계산이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돌아보니 저절로 살았습니다.(#깊은산 20180918)

#세월호 참사 1617일째 : 대통령의 지시와 명령에 의해 구성되는 검찰과 그 수사 방향을 잡아주는 특조위, 이것이 2기 특조위가 진상규명을 성공하는 방법이고 문재인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딛고 이후에 우리가 바라는 사회로 나아가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계속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준비를 계속 진행을 하고 있는데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청와대 내에서도 이런 취지에 적극 공감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반면에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함께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풀어나가기 위한 일들을 계속 진행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빠른 시간에 원활히 진행이 안 될 경우에 그럼 우리는 무슨 행동을 해야 할 것인가가 지금 남아있는 우리의 과제로 계속 마련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제안 드리는 것은 각각 개별 의혹에 대한 규명이 아니라 거꾸로 이런 짓을 했을 만한 곳, 즉 국정원 기무사를 전면적으로 수사함으로써 그 밑에 있는 수많은 과제들을 하나하나씩 끄집어내는 것, 이것이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인력을 갖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라고 하는 것입니다.(유경근)

여기까지 참 많이 노력하고 잘 살려고 애써 왔습니다. 당연히 되어질 줄 알았던 일들이 거듭 좌절되면서 ‘백척간두’에서 한 발을 내딛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요. 돌아보면 아찔한 위기가 아니었던 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혹시 지금 무엇이 풀리지 않고 암담하다고 해서 낙심하고 절망해서야 되겠습니까? 내가 하는 일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인데요. 우주는 우주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것을 어느 누가, 무엇이 막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일은 때에 맞게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바뀔 수 없습니다. 염려하는 사람은 염려하는 인생을 살고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하는 인생을 삽니다. 내가 어떤 분위기와 어떤 기운을 맞이하느냐에 따라 내 삶이 그렇게 가게 되어 있습니다.(#깊은산 20180919)

#세월호 참사 1618일째 :  대한민국 연안바다 대형 사망 참사는 계속 반복되어 왔습니다. 제2의 세월호참사는 절대 없어야 합니다. 원인을 제대로 충분히 규명하여 책임자를 엄벌해야 만 반복을 멈출 수 있는 초석을 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어쩌면 대형 사망 참사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양적폐세력은 우리를 4년이 넘도록 감쪽같이 속여 왔습니다. 해양적폐세력이 졸속으로 단정하며 몸통은 철저히 은폐 되어 왔고 그들이 국민들에게 주입한 결론은 엉터리에 불과하며 이를 통해 내려진 처벌은 깃털에 그치기만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양심적인 공학자, 과학자들에 의해 4년이 지나서야 감춰져 왔던 원인 규명의 실마리, 단서, 증거가 파악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4년이 넘도록 배척된 진실의 증거들은 아직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습니다.(전면 재규명)

‘유유상종’이라고 했습니다.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돌아보면 내가 보입니다. 나는 나를 잘 보지 못해도 내 주변에 어떤 이웃이 있는지를 보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볼 수 있지요. 혹 지금 내 형편이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사람을 그렇게 변화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경전’과 ‘선생님’과 ‘교회’를 중요시 했습니다. 경전이 있어야 삶의 방향이 정해지고 스승이 있어야 삶이 인도함을 받고 교회가 있어야 함께 사는 공동체성이 내 안에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떤 경전을 내 삶에 받들고 있습니까? 정말 그 경전이 나를 변화시켜 가는 하늘의 음성이 되고 있습니까? 어떤 선생님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어떤 교회, 어떤 이웃, 어떤 친구, 어떤 공동체에서 살고 있습니까? 그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깊은산 20180920)

#세월호 참사 1619일째 :  최근 기무사가 구조방기와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에 관한 증거들이 ‘발견, 식별’ 될 것을 우려하여 이를 차단하기 위해 세월호를 수장하려 했다는 사실이 물증으로 드러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원인은 규명되었다는 ‘조작된 여론과 피로도’로 인해 참사의 원인에 대한 재규명은 불필요한 일로 치부되는 일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면적인 재규명을 위한 재조사와 재수사는 정도가 지나친 ‘과유불급’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는 세월호참사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우리의 다짐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기억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약속, 노란리본의 힘으로 피해자들을 지지성원하며 우리는 함께 연대하여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전면 재규명)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할 것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경험하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이 다 충족된다고 해서 사람은 사람다워지거나 행복한 것이 아니지요. 영적존재로 무엇이 없어도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 생의 보석은 늘 우리 곁에 있는데 눈이 가려져서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지요. 그래서 예수의 첫 설교는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어느 나라에 살고 있습니까? 그런 물음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 물음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통곡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까이 있음을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이미 되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깊은산 20180921)

#세월호 참사 1620일째 :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해양마피아, 적폐세력이 어떻게 진상규명을 은폐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속여 왔고 어떤 증거들을 배척하였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적극 알려나가 전면적인 재조사와 재수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종합해볼 때 핵심적으로 나오는 결론은 ‘아무것도 속단할 수 없었는데 해양적폐세력은 이것을 속단, 단정하여 결론으로 규정한 것이고 이것이 정해진 결론으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왔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은 ‘전면적 재규명이 필요하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기무사의 세월호참사 개입을 비롯하여 해양적폐세력들이 어떤 단서와 증거들을 배제시켜왔는지 파악하여 무엇을 전면적으로 재규명해야 할지를 강력히 제기해야 할 것입니다.(전면 재규명)

하나님 나라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나라를 일러주러 오셨고 보여주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생은 그런 ‘성탄’을 맞이하고 ‘십자가’를 넘어서 ‘부활’을 맞이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이지요. 하나님 나라는 지금 내가 감사로 기쁨으로 사랑으로 살아가는 은혜의 순간입니다. 그것을 알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밖에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중한 짐을 지고 근심과 걱정 속에 살아갈 때 세상은 슬픔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벗어나 보면 똑같은 세상이 천국입니다.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내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내 눈이, 내 마음이, 내 영이 달라져 그런 세상 만나는 것입니다. 주의 얼굴을 뵙기 전에는 하나님 나라는 멀리만 있지만, 내 맘 속에 이루어지면 날로 날로 가까운 기적입니다. 높은 산도 나를 가로막지 못합니다. 거친 들도 나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초막도 좋고, 궁궐도 좋습니다. 주 예수를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깊은산 20180922)

#세월호 참사 1621일째 :  대한민국 해양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침몰 사건은 대부분 ‘외력’에 의한 사고였습니다. 외력이란 ‘자연’에 의한 것으로써 ‘풍랑’, 즉 바람과 파도 또는 ‘암초’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독 대형 사망 참사만 반복적으로 ‘과적/과승, 관리 부실 선박 불량’으로만 단정되어 왔습니다. 남영호, 창경호, 서해훼리호 참사 등 유독 연안 여객 대형 참사가 많은 대한민국 연안 바다. 이 모든 참사들이 과연 모두다 우연에 불과한 사고였는지도 의문입니다. 분명하게 도출되는 결과는 대한민국 연안 바다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규명에 의한 책임자 엄단과 정확한 재발 방지 대책이 없었기 때문에 연안 바다 대형 사망 참사가 반복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전면 재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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