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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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삶의 예술 공동체 편지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8/2/25(일)
20170506_150512.jpg (146KB, DN:2)
어린양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순간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절정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며 기다리던 그를 만났으니 모든 것을 다 이루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흥해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합니다.
나와 상관 없이 그것만으로 충분한 순간입니다.
요한은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만 ‘소리’일뿐이었습니다.
혼인잔치에서 하객들이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크게 기뻐하듯이, 할 일을 다하고 이제 죽어도 좋다는 그 기쁨이 요한에게 넘쳤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런 절정을 맞이해야지요.
이것이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는 무익한 종일뿐이고 바울의 고백대로 죄인 중에 괴수인데 이렇게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오늘 이렇게 멀쩡하게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숨을 받아 호흡할 수 있고, 음식을 삼키고, 소변과 대변을 가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은혜일뿐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기는 ‘소리’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뒤에 서 계신 분을 알고 일을 하고 있었던 요한이었기에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 간절함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께서 2000년 전 그날 요한에게만 오셨을까요?
그는 지금도 이 낯설고 외롭고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인생이라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찾아오고 계십니다.
그를 맞이할 때 요한의 그 감격과 기쁨을 맛볼 수 있겠지요.
요한이 예수를 기다리며 ‘소리’가 되었듯이 오늘 우리도 그 일을 해야겠습니다.
우리 곁에 지극히 작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곧 예수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는 어떤 모습으로 나를 찾아오고 계실까요?

요한은 자기에게 오시는 예수를 보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그에게 예수는 어린양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지방에서 이 본문을 번역할 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돼지 새끼’라고 옮겼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양이라는 동물이 없어서 그대로 옮겨 놓으면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제사를 드릴 때 제물로 사용하는 돼지 새끼를 양 대신으로 번역해서 이해를 도왔다는 거지요.
사실 오늘 우리들도 세례 요한이 말했던 양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목민으로 어린 양을 소중하게 사랑으로 늘 양들을 돌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어린 양을 희생 제물로 바쳤기에 요한은 예수를 어린 양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어린 양이란 첫째, 유월절 양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열가지 재앙을 이집트에 내렸지요.
그 중에서 마지막 재앙이 이집트의 모든 장자가 죽는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대문에 바르게 하여 그 집들은 재앙이 피해가게 한 겁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집트 사람 중에서도 눈치 빠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무사히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이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한 사람들은 살아 이집트 땅을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믿지 않아서 행하지 않은 사람들은 죽었다는 겁니다.
죽음의 천사가 양의 피를 바른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고 하여 유월절이라는 명절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원의 길이란 그가 과거에 얼마나 의로웠느냐 악했느냐가 아니라 오늘 문설주에 피를 바른 자가 그것만으로 살아나는 바로 그 길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곧 피를 발랐다는 것은 대속의 의미입니다.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의인만 구원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인도 구원하시고 의인도 구원하십니다.
절대이신 하나님에게 선과 악은 오십보백보인 상대일 뿐이지요.
악인도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는 것이고 의인도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자기는 임금님에게 백 달란트를 탕감받아 놓고서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고소했던 어리석은 사람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지요.
자기가 은혜를 받은줄 모르고 다른 사람을 정죄했으니 주신 것도 빼앗겨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 은혜이니 우리가 선과 악,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분별하거나 판단하며 살아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를 믿는 의미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우리의 신분이나 지위, 행위나 노력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이지요.

어린 양이란 둘째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이라는 의미입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로서, 누구보다도 제사에 관해서는 익숙했을 겁니다.
당시의 제물로서는 소, 양, 염소 등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것이 양이었고, 양 중에서도 어린 양이었습니다.
속죄 제사를 드릴 때 어린 양의 머리 위에다가 죄인은 손을 얹고 회개 기도를 합니다.
즉, 사람이 지은 죄를 양에게 옮기는 의식으로, 기도가 끝나고 나면 양을 그대로 잡아서 제단에 불을 지릅니다.
제사란 그 순간 죽어야할 것은 자기라는 것을 깨달아 다시 태어나는 의식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어린양이라는 것은 죽어야할 나 대신에 죄없는 그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죽어야할 것은 나인데 나 대신에 죽어가는 사람들, 자연이 있습니다.
그 앞에서 스스로 죽어서 우리를 살리시고 깨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아야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대속으로 죄많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죄로 인한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는 우리 죄를 없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낭만이 아니라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구체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비유의 의미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지파 사람들은 세례 요한에게 “당신은 그리스도요 혹은 예언자요?”라고 물었지요.
그 질문 속에는 “당신이 우리를 로마로부터 독립시켜줄 지도자요?”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에게 메시야는, ‘어린 양’으로 오시는 그리스도, 힘없이 죽어가는 어린 양과 같이 나약한 모습입니다.
그것이 오늘 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의 이야기처럼 그는 우리가 따라 살아야할 모델이기도 하시지만,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를 보듬어 안아 다시 태어나게 해주시는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온 인류의 해방과 구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그러나 죄로 찌든 몸으로 어떻게 그 거룩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변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변하기를 요구하기에 앞서서 내가 변하고, 내 안의 더러움이 씻김 받는 일이 먼저입니다.

요한이 맞이한 예수는 서른세 살의 나이로 나병환자들이나 창녀, 걸인 같은 버림받은 자들의 편에 서서 스스로의 목숨을 버린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습니다.
가시 면류관뿐인 생애를 살다가 끝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스럽게 죽어간 어린양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믿음을 지켜 육신을 버림으로 영생의 길을 비추어준 등불이셨습니다.
그렇게 사람의 죄를 안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께서 지금도 우리의 죄를 품어주시기 찾아오고 계십니다.
오늘 그 어린양, 십자가를 맞이합니다.

(요한복음 1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어르신들과 예배를 드리며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잘했을 때나 잘못했을 때나,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감사할 때나 원망할 때나 나는 한결같은 사랑 안에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같이 돌보시지요. 그래서 시편 36편 기자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하늘에 가득 차 있고 주님의 미쁘심은 궁창에 사무쳐 있다고 노래합니다. 내 생각에 빠져서 불안하고 초조할 뿐이지요. 그렇게 나누고 나서 얼굴들을 돌아보니 안심이 되는 눈빛들이십니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잘했을 때나 못했을 때나 한결같습니다. 물론 때로는 칭찬으로, 때로는 나무람으로 경책을 하지만 말이지요. 나는 이제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을 수 있고 주님의 집에 있는 기름진 것으로 배불리 먹고 주님의 시내에서 단물을 마시니 주님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깊은산 20180218)

#세월호 참사 1405일째 : 검찰은 최근에 들어서야 박근혜, 황전원을 비롯한 총 12명에 대한 수사를 서울 동부지검에 배당했다고 한다. 자유한국당이 황전원을 또 다시 특조위원으로 추천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는 것은 세월호참사 특조위를 불법적으로 방해하고 조기에 강제해산시킨 것이 분명한 본 고발건을 검찰이 즉각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피고발인들을 모두 즉각 구속 수사하는 것이 작금의 혼란을 불식시키는 길이며, 세월호참사와 가습기살균제참사 등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을 방해하려는 시도를 막는 길이라는 것을 검찰은 명심해야 한다.

오늘 나의 가버나움, 나의 회당은 어디일까요? 예수라고 회당에 들어가고 싶었겠습니까? 회당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지만 적들이 가득한 소굴이었습니다. 노리고 겨누고 싸우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 자리였습니다. 오늘 나의 회당도 사실 그런 곳이겠지요. 세월호 참사의 한 가운데, 노동의 권리와 정의를 외치는 그 자리, 불법체류자들을 숨겨주고 난민들을 돌보아 그들의 편에서 일하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할 때에 조마조마하지 말고 당당하게 해내어야지요. 내 가슴에, 내 양심에, 내 믿음에 옳으면 그렇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계십니다. 학생은 학교가 회당입니다. 공부하러 나와 공부는 하지 않고 다른 것에 관심만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주부들은 살리는 살림을 하는데 그게 귀찮나요? 아이를 임신하는 일, 사실은 두렵고 귀찮은 일입니다. 그래도 가보면 달라집니다. 때로는 교회도 마찬가지이겠지요. 다투고 싸우고 정죄하고 비난받는 그 한 가운데 서 있는 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그 모두를 통해서 삶을 배워가고 있습니다.(#깊은산 20180219)

#세월호 참사 1406일째 : 황전원은 자유한국당의 추천을 스스로 사양하고 수사를 받아야 하며, 자유한국당 역시 황전원 추천을 철회해야 한다. 황전원 같은 자를 다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상임 위원으로 추천한 자유한국당의 저의는 사회적 참사의 진실규명을 가로막겠다는 것이 분명하다. 만일 자유한국당이 황전원 추천을 강행하더라도 청와대는 부적격자임이 분명한 범죄자 황전원을 특조위원으로 임명해서는 안 되며, 검찰은 예상되는 정치적 논란을 사전에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즉각 황전원을 구속수사해야 한다.

예수의 영성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영성이었고, 가르침이었습니다. 혼자서는 그 무엇도 될 수 있고 생각으로는 하늘이 아니라 그 어디까지도 갈 수 있지요. 그러나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삶의 한 가운데로 가까이 가야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수는 그의 일을 하러 오셨으니 가르치시고 악한 귀신을 제어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아니니 내 일을 해야지요. 예수가 한 일을 따라서 한다고 예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나의 자리에 계셨으면 하셨을 그 일을 하는 것이 참 내가 되는 일이고 오늘 예수가 되는 일입니다. 주부가 살림을 하지 않고 예수처럼 나가서 가르치고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이 예수 따름이 아니지요. 학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전도하는 것이나 노동자가 일은 하지 않고 귀신을 쫒아내는 것도 아닙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음악가는 연주를 하고 학자는 연구를 해서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 나의 회당에서 내가 할 일입니다.(#깊은산 20180220)

#세월호 참사 1407일째 : 가습기살균제참사와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은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서울아산병원 홍상범 교수와 홍성칠 변호사의 경우도 과연 진상규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인사인지 의문을 갖는다. 홍상범 교수는 지난 6년여 간 수많은 피해신고자들을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게 한 잘못된 폐손상 판정기준을 만들고, 다른 관련 질환에서도 과도한 피해자입증책임을 주장해 결과적으로 가해기업들의 책임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인사다. 홍성칠 변호사는 과거 세 차례나 자유한국당 전신의 정당들에서 총선에 나선 전력이 있고 당 부대변인을 지낸 바 있는 정치지망생이다. 홍상범 교수, 홍성칠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이러한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진상규명, 피해자지원, 안전대책 마련에 양심을 걸고 협력해야 하며 특히 피해자와의 공감과 소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들어가신 회당에는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귀신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으로 알아보면서도 왜 간섭하려고 하는지 따집니다. 어디나 그렇습니다. 귀신들은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일을 알아보지요. 사람만 모릅니다. 그러니 귀신이 알려줍니다.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거룩한 사람입니다. 내가 서 있는 회당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야지요. 거짓과 살인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악한 일을 도모하는 세력과 맞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떠드는 것이 아니라 귀신의 입을 다물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어야 합니다. 머리로 알고 말로 고백하는 것은 귀신도 합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어갈 것입니다.(#깊은산 20180221)

#세월호 참사 1408일째 : 안산 단원고 “학생들 전원구조”. 2014년 4월 16일 오전 11시 1분 26초경 MBC의 전원구조 오보는 온국민과 세월호 유가족들을 희망고문 했다. MBC는 국회 특별조사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당시 단원고에서 현장 취재를 하던 MBN 기자가 한 학부모가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고 다른 학부모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듣고 이를 MBN 서울지방경찰청 출입 기자에게 보고”했고, “오전 11시쯤 서울시경 MBN 출입기자가 이 같은 내용을 타사 기자들과 공유”했으며, “MBC의 경우 서울시경 출입기자가 단원고에서 취재하던 MBC 기자에게 ‘맞는 것 같다’는 확인을 거쳐 보도국 사회2부 기자에게 전달해 자막이 방송됐다”는 해명을 전달했다. MBC 전원구조 오보와 관련해 목포MBC 당시 보도부장은 “현장취재기자 확인결과 전원구조가 아닐 수 있다, 세월호에 더 많은 사람이 갇혀 있다,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고 전국네트워크 부서 담당 부장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MBC는 국회 특위에서 이러한 내용과 함께 당시의 보고가 “짐작과 전언이어서 취재에 참고했을 뿐 보도국 내에 전파하거나 방송에 방영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귀신들이 예수를 알아본 것처럼 사람들도 그의 권위 있는 가르침을 알아보고 놀랐고 그의 소문이 온 지역에 두루 퍼졌습니다. 권위는 가지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주어지는 것이고 관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회당으로 사람들을 찾아가셨듯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 그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소문은 나게 되어 있고 기운은 끌리는 것입니다. 나에게서는 어떤 소문이 나고 있고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나도 가까이 가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처럼 살면 됩니다. 닮아가는 것이지요. 마음과 표정과 행동, 가치와 삶을 어울려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해야지요. 환대입니다.(#깊은산 20180222)

#세월호 참사 1409일째 : 뉴스타파가 제작해 2017년 7월 15일 개봉한 ‘공범자들’에서 당시 목포MBC의 보도부장과 취재부장과 보도국장은 당시 취재기자가 배를 빌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있었고, 해경 구조대원과 통화를 해서 전원구조가 사실이 아님을 적극적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자 한승현 보도부장은 육두문자까지 써가며 박상후 부장을 질타했다고 합니다. 을인 지방 MBC 간부가 갑인 서울 MBC 간부에게 욕까지 했다는 것은 당시 그가 얼마나 절박한 느낌이었나를 말해줍니다.” 당시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가 자신이 감독한 ‘공범자들’에서 한 발언이다. 한승현 부장 등은 서울MBC가 “권력의 지침을 받아서 움직이고 있었던 게 아니겠냐”고 전했다.

성경을 읽는 방법 중에 하나는 되어 보는 것입니다. 몸으로 읽는 성경입니다. 내가 예수이기도 하고 제자들이기도 하고 아픈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또한 악한 귀신들린 사람이기도 합니다. 악한 귀신이 들린 사람은 예수를 알아보았습니다. 예수께서 무엇을 하는 분인지, 그를 통해 어떤 세상이 이루어질지 알고 있었고 말을 많이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당신은 나를 고치실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입을 다물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를 만나 해야 할 일은 입을 다물고 나가야 합니다. 예수에 대해 아는 것이나 사랑에 대해 알고만 있는 것은 의미가 없지요. 필요한 것, 해야 할 일은 그를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사랑으로 사는 일입니다. 노력하지 말고 그냥 합니다.(#깊은산 20180223)

#세월호 참사 1410일째 : MBC가 정상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직 전원구조 오보의 진상을 규명하고 있다는 소식이 없다. 이제는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MBC는 납득이 가지 않는 전원구조 오보의 진원지, 오후까지 이어진 오보, 그리고 자사 기자의 전언까지 무시하며 국민을 기만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당시의 박상후 부장, 김장겸 보도국장, 이진숙 보도본부장, 그리고 안광한 전 사장에 이르기까지 진정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낱낱이 밝혀줄 것을 요구한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권위있게 가르치신 예수는 회당에서 나와서 곧바로 베드로의 집으로 갔습니다. 참 예배는 예배당을 떠나는 그 순간에 시작됩니다. 영은 하나이니 어느 장소 어느 때가 아닌 언제 어디서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주일날 한 시간, 교회당에서 드리는 것만 예배로 여기니 문제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교회당을 나와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산제사입니다. 회당에서 배운 그것을 회당을 나가는 순간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당을 나와 곧바로 어디로 가나요? 혹시 나오자 마자 다 까먹고 예전의 그 자리에서 의미없이 보내는 일상에 매몰되지는 않는지 묻습니다. 예수와 제자들은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곳, 있어야할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열병에 시달리는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한 여인이 있었지요. 지금 내가 가야할 곳입니다.(#깊은산 20180224)

#세월호 참사 1411일째 : 의혹과 거짓, 적폐 위에 새 역사를 쓸 수는 없다. 해직기자들의 눈물, 파업에 온 국민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화답하고 지지했던 이유는 그들의 복직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공영언론사로서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소외된 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이었다. 개혁과 정상화를 약속하고 취임한 최승호 사장과 MBC에 더 늦기 전에 진상규명과 적폐청산을 요구한다.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의 진상규명을 실시하라.MBC에서도 세월호와 관련해 언론통제와 이슈전환 시도가 있었다면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MBC는 정상화된 공영방송답게 곧 출범하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을 제대로 보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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