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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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삶의 예술 공동체 편지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12/3(일)
20170504_135549.jpg (97KB, DN:1)
차이  


다윗이 용기를 내어서 내가 나가 싸우겠다고 사울왕 앞에 가서 말하니 왕은 말립니다.  
"네가 어떻게 저 자와 싸운단 말이냐?"
미안하고 가슴 아프게도 내가 많이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제 스스로에게, 아내에게, 아들에게... 그렇지 않습니까?
젊은 아내가 아들 한결이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서 육아 책을 쓰겠다는 것을 제가 말렸었지요.
"네가 어떻게?"
그 때 지지해주고 하게 했으면 어떠했든지 지금과는 달랐을 겁니다.
그렇게 못했기에 그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거지요.  
지금 다윗을 말리는 사울은 못난 나의 모습입니다.
너는 아직 소년이라구요.
너는 때가 덜 되었다구요.
공부를 더해야하고, 영어를 더 잘 해야 하고, 견문을 더 쌓아야 하고.... 라고 말입니다.

어린 사무엘이 어른 사무엘이 되는 이야기를 살펴 보았었습니다.
사무엘이 어린 것은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알지 못하면서도 섬긴다고, 그 일을 한다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사무엘이 깨달아 알고 나니 이미 다 전해주셨고 지금도 변함없이 전해주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명을 받는 예레미야에게도 하나님은 "너는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다윗과 사울의 차이는 이것입니다.
여리고 땅을 정탐한 여호수아와 갈렙과 나머지 열 정탐군의 차이입니다.
여리고 성을 함락하러 나선 오합지졸 이스라엘 군대와 여리고 성에서 벌벌 떨고 있던 최강의 군대의 차이입니다.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고 있으니 가지고 있는 것도 다 빼앗길 뿐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있는 사람은 더 받고, 없는 사람은 가진 것도 다 빼앗길 것이라고 하셨지요.
너는 아직 어린 소년이 아니냐는 사울의 말에 다윗은 굽히지 않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리고 성 앞에서 주눅이 들었던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큰 소리로 외쳤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또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 약속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윗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는 어리지 않지요.
오히려 두려워 떨며 핑계를 대고 있는 사울 왕이 어리다면 어리지요.
목동 다윗은 양 떼를 지키며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와 함께 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일을 하고 있었지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일 순간에 일어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어린 목동에게 사자나 곰이 달려드는 것이 무섭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일을 잘 하기 위해서 날마다 피나는 연습을 했겠지요.
목동에게 지팡이와 물맷돌이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물맷돌 던지기는 어땠을까요?
처음에는 과녁 근처에도 못갔겠지요.
그러나 그 다음날, 또 다음날....
점차로 그의 실력은 늘어갔고 마침내 백발 백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힘도 자랐고, 키도 자랐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그의 하루 하루 속에 가랑비처럼 내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일상의 삶입니다.

(사무엘상 17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시편 27편 기자는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고 노래합니다. 말씀을 읽은 후 어르신들의 얼굴을 살펴보니 아멘, 하시다가 당황스러워하십니다. 왜 갑자기 쳐다보냐는 거지요. 가만히 있다가 두려운 것 있으세요? 누가 무서워요? 라고 물어드렸습니다. 더 당황하십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괜히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뭐고 두렵고 무서운지 물어보면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거짓이지요. 이것이 귀신들려 사는 겁니다. 허상에 끌려 다니는 것이 귀신들린 것이고 우상숭배이니 말입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다시 주님이 나의 빛이고 구원이시고 생명의 피난처라는 시인의 노래를 읽어드리니 얼굴이 환해지십니다. 내가 빛이고 구원인데 두려울 것 없습니다. 내가 생명이니 무서울 것이 없지요. 다 내가 하는 것이지요. 예수 믿는 가장 높은 도는 그의 마지막 기도대로 그와 아버지가 하나이듯이 나도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아니 그냥 그것입니다.(#깊은산 20171126)

#세월호 참사 1321일째 : 추모공원은 엄마아빠와 아이들이 부담 없이 찾아오고 청소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나무와 숲은 물론 공연장, 도서관 등을 설치해야 하며, 세월호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그 교훈을 깊이 되새길 수 있는 전시관과 거부감 없는 봉안소 등을 마련해야 합니다. 강요하는 추모가 아니라 아이들이 쉬었던 숨을 함께 나누는 추모가 되어야 합니다. 가르쳐지는 교훈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교훈이 되어야 합니다. 엄숙하고 침울한 추모공원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이 밝게 웃으며 어울리는 가운데 생명의 소중함에는 차별이 없음을 깨우쳐가는 추모공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참혹한 비극의 도시 안산이 생명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으며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에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기억은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단 하나의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한방에 해결되는 것, 혹은 그것 하나면 다 이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너무 커서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연애하는 사람은 압니다. 그 빛이 너무 커서 다른 어두움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어느 분에게는 조국의 독립, 어느 분에게는 통일이 그랬습니다. 민족의 영웅이었던 다윗은 시편 27편에서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는데 오직 그 하나만을 구하겠다고 노래합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랑에 빠진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은 참 나를 만나는 것이니 진리를 보며 함께 살고 진리와 의논하며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주님은 정의와 평화, 그 자체이시지요. 거기에서 세상을 바꿀 힘이 나옵니다.(#깊은산 20171127)

#세월호 참사 1322일째 : 이러한 ‘진짜 추모사업’은 물론 안전한 사회의 길잡이와 파수꾼을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도록 <4·16재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4·16재단>은 피해자와 국내외 모든 국민과 동포들이 함께 만들고 함께 운영할 것입니다. ‘함께 가는 이 길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희 피해자들이 지난 1,300일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것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국내외 시민과 동포들도 꿋꿋하게 그 길에서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시민들한테 미안해서라도 여기서 포기는 못하겠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여러분들이 걸어오신 길은 저희 피해자들에게 가장 큰 응원과 지지였고 동시에 가장 무거운 가르침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일찌감치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를 중심으로 정말 많은 국민들이 저희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피해자들과 같은 길을 걸어오신 동포 여러분들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유경근)

사람들은 저마다 왜 자기 주변에는 힘든 일만 겪는 사람들뿐이냐고 하소연을 합니다. 일이 풀리지 않고 몸이 아프고 마음이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안한가요? 실연해서 그렇습니다. 또 그런 순간에는 세상이 다 저주스럽지만 그것이 선물과 기회가 되는 것은 지나서야 알 수 있지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가운데 우연은 없다는 것이 내가 아는 영성 세계의 제1법칙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삶은 풀어야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할 신비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것들을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그 날에는 분명히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나 그 날에는 거울을 맞대고 보는 것처럼 환하게 보일 것이니 말입니다. 이런 날, 이런 의식 수준, 이런 차원에서는 더 이상 비유로 듣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듣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사랑하시는 것은 아버지께서 내가 되시는 것이지요.(#깊은산 20171128)

#세월호 참사 1323일째 : 촛불시민혁명으로 인해 세월호참사 진실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가지 않으면 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난 1,300일보다 더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길일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진실의 실체를 확인하는 그 순간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함께 가는 이 길 끝의 진실을 같이 확인하고 그 증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의 지지와 응원과 동행에 예은이와 우리 아이들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유경근)

아버지에게서 세상에 왔다가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로 간 것이 예수의 생애였습니다. 어디 예수만 그러하겠습니까? 사실은 세상 만물이, 우리 모두가 그렇게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창세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있었고, 또 지금도 그러한 것이 참 나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니 죄입니다. 그래서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해주시고 창세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동안은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이제 아버지가 이러한 분이심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들을 수 있으면 사실이고 그렇지 못하면 이 또한 비유가 되는 것이지요.(#깊은산 20171129)

#세월호 참사 1324일째 : 세월호 사고 원인 중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사안은 ‘과적’이었다. 검찰도 2014년 10월 세월호 최종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과적을 문제 삼았다. 무리한 증축과 과적으로 복원성이 현저히 악화된 배가 침몰했다는 주장이다. 연구기관들도 화물의 과다적재 등 과적으로 인한 복원성의 취약함을 침몰 원인으로 여겼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과적을 주요한 사고 원인으로 봤다. 이후 아무도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지 7개월이 지났다. 3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른 세월호를 보면서 모든 사람들은 사고 원인이 금방 드러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세월호 선체를 눈앞에 두고도 진실 앞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을 뿐이다. 세월호 사고 원인은 마치 수면 아래 잠겨 있는 것과 같다. 당장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질문을 다시 해 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단정을 내렸던 결과에 의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첫 번째로 던질 질문은 과적에 있다.(시사저널)

제자들이 밝히어 말씀하여 주시고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시니 이제야 우리는 선생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것과 누가 선생님께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환히 알려주신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으로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알고 정말 믿고 있었던 것일까요?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제는 믿느냐?”고 반문하시지요. 믿는다고 큰소리를 치던 그들이 나를 혼자 내버려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가버릴 것이니 말입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가는 그 나는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었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배신하는 그도 내가 아닙니다. 이렇게 배신을 하고 배신을 당하는 나를 넘어 온전히 설 수 있고 볼 수 있는 힘이 믿음입니다. 여기에 평화가 있습니다.(#깊은산 20171130)

#세월호 참사 1325일째 : 세월호 출항 시 ‘만재흘수선’ 초과 없었다. 시사저널e가 단독으로 입수한 문건에 의하면, 세월호는 화물을 과다적재하고 출항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해선박설계가 10월25일 내놓은 세월호 ‘TRIM AND STABILITY’ 자료에 따르면, 세월호가 실을 수 있는 최대 적재량은 기존에 알려진 987톤이나 1067톤이 아니라 2272.689톤인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가 적재 가능 화물 최대치를 초과해 화물을 과다 적재하고 출항해 결국 사고가 났다는 주장의 근거가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증거가 나온 것이다. 과적은 세월호가 침몰한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까지 세월호 화물 적재량이 987톤이라면서, 사고 당시 세월호는 총 2215톤의 화물을 실어 적재량보다 1228톤의 화물을 더 실은 것으로 추정했다. 검찰이 2014년 10월6일 발표한 세월호 침몰 원인에도 무리한 증톤 및 과적으로 복원성이 현저히 악화된 상태였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후 조타수의 조타 미숙으로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면서 복원성을 잃고 침몰했다고 판단했다. 과적이 사고 원인이었다는 주장이다.(시사저널)

선생님께서 하늘로부터 온 것을 믿는다고 하는 제자들의 믿음은 아직 믿음이 아니라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 사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속고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믿고 삽니다. 그래서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가 남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직은 그 날이 아닌 것이지요. 이들이 믿는다고 하는 것이 믿지 못하는 증거입니다. 믿는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냥 사는 거지요. 정말 힘든 사람은 힘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은 죽고 싶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죽습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깊은산 20171201)

#세월호 참사 1326일째 : 합동수사본부 전문가 자문단도 2014년 8월12일 “세월호는 선체개조 후 출항 당시에는 복원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한 허가 조건으로 명시한 화물 적재량 및 평형수 적재조건 등을 위반하여 화물을 과다적재하고 (중략) 항해를 하였다”고 밝혔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또한 “본 선박은 화물과적 및 평형수 부족으로 복원성이 취약한 상태에서 운항하였다”라고 설명했다. 해양안전심판원 특별조사부도 “화물을 과다하게 적재하였다”고 봤다. 결국 대법원은 2015년 10월29일 판결을 통해 ‘KRISO가 작성한 세월호 침몰사고원인 분석의 기재 및 이를 뒷받침하는 관련 증거를 신빙해 세월호의 복원성 약화 및 부실 고박으로 인한 화물의 이동과 세월호의 침몰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여기까지가 국민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세월호의 최대 적재량이 987톤이라는 근거에 대해선 누구도 의문을 던지지 못했다. 더 나아가 과적의 기준이 잘못됐을 수 있다는 의문은 더더욱 갖지 못했다.(시사저널)

믿는다고 하던 제자들이 다 도망가 버리니 예수의 입장에서는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억울하고 외롭겠지요. 오늘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배신을 당한 것이지요.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아내와 남편에게, 자식들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그래서 다들 나를 떠나고 난 혼자이고 나한테만 힘든 일이 생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이가 ‘나’입니다. 혼자가 아닌 것이 ‘나’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를 만나고 그 나로 사는 것을 믿음으로 산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 증거입니다. 그렇게 홀로 있을 수 없는 나를 아는 것이 그 날의 징조이지요. 비유가 끝나는 날입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사랑하시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깊은산 20171202)

#세월호 참사 1327일째 : 다만 이 정도 생각은 했다. 일부 전문가들과 선박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공유된 생각이다. 과적의 판단 기준은 바로 ‘만재흘수선’(선박이 화물을 탑재하거나 적재하고 안전하게 항행할 수 있는 최대한도의 선)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명백한 사실은 ‘세월호는 만재흘수선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법원에서도 다뤄진 것이다. 선박의 재화중량톤수는 만재흘수선까지 적재할 수 있는 중량을 말한다. 이 재화에는 화물뿐만 아니라, 여객·연료·집기류·식자재·평형수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런 후 바다에 떠 있는 배가 모든 재화를 싣고 난 뒤 물에 잠기게 되는 만재흘수선을 기준으로 과적 여부를 판단한다. 선박안전법에서도 만재흘수선 정의는 ‘선박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최대적재한도’라고 돼 있다. 과적의 판단 기준이 만재흘수선이라는 건 전 세계 공통으로 적용된다. 세월호가 출항할 당시 ‘만재흘수선을 지키지 않았다’라는 검찰이나 연구소 발표는 없었다. 법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만재흘수선을 지켜 출항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세월호는 과적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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