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7/7/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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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김, 우는 사람들.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은 과거와 단절하고 노예로 살던 습관과 생각을 끊고 가나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표시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전쟁을 앞두고 할례를 한다는 것은 전쟁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길갈', 그들의 모든 수치와 두려움을 없애버리신다고 하셨지요.
오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부끄러움과 상처와 아픔을 없애 버리셨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는 가나안에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내 생각이 다 인 것으로 아는 한 애굽의 수치를 가지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넘은 '영'으로는 과거가 없으니 죄도 없습니다.
완전한 용서 속에 살 수 있는 것이라 하였지요.
내 생각과 판단이 아닌 하나님 안에 있으면, 예수의 십자가를 받으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으니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렇게 여리고성 앞에서 신을 벗었던 여호수아처럼 새로운 길 앞에서, 내일이라는 가장 훌륭한 선물 앞에서 발에 신을 벗고 새 길을 가는 오늘입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그렇게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하고 여호수아가 죽은 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그들 앞에 어떤 일들이 전개되고 있나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이스라엘이 거기에서 자신을 잊지 않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다면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이 되었을 터입니다.
에덴으로의 귀환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지침을 지키지 않았고 도리어 가나안에서도 애굽에서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애굽에서 파라오와 태양신의 노예였다면 가나안에서는 바알과 아세라의 노예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사사기에서부터 말라기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 안에 온갖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 실패와 성공과 실수의 이야기들이 전해지며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인류의 역사에 드러나는지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이 끝나던 즈음 주님의 천사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왔습니다.
길갈은 하나님이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에게 과거의 수치를 다 없애버리셨다고 말씀하셨던 곳이지요.
그러나 보김은 '우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통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노예 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신 분, 그리고 언약을 영원히 깨뜨리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부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 그 대적들은 완전히 몰아내지 않으셨다고 하십니다.
그들을 남겨두어 이스라엘에게 '찌르는 가시'와 '올무'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지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땅에 살던 주민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이 세운 단을 헐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을 몰아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죄와 나쁜 습관들과 타협하지 말고 쓸고 닦아서 다 몰아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을 헐라는 것은 우상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상은 사람들의 욕심과 요구의 투영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 탐욕을 채우는 것과 다름 아니었지요.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인도 말에 '성자'와 '청소부'는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성자는 무엇인가 큰 일을 이룬 사람이 아니라, 자기 주변을 깨끗이 쓸고 닦는 사람, 자기 마음을 맑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기 주변을 쓸고 닦지 않는데 어떻게 새로운 삶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땅, 약속하신 가나안을 주시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은 그것입니다.
얼굴을 쓸고 닦는 것은 세면입니다.
몸을 쓸고 닦는 것이 목욕이지요.
방을 쓸고 닦는 것이 청소입니다.
사회를 쓸고 닦는 것이 도덕이고, 국가를 쓸고 닦는 것이 정치입니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쓸고 닦아 온 인류가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것이 종교가 아닐까요?
하나님은 질서의 영이십니다.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질서가 있듯이 영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질서가 없는 곳에는 혼돈과 혼란이 있을 뿐입니다.
가장 가까이 자기 주변을 정리 정돈해 보면 그런 질서에 접촉을 하게 됩니다.
청소를 해보고 설거지를 해보면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기 전에는 죽어라 하기가 싫습니다.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계속 그런 상태에서 나아질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해 보면 달라지는 기운과 마음,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는 힘과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로부터 기도를 배우러 수도원에 들어가거나 절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배우고 하는 일이 그런 일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깨끗이 쓸고 닦지 못했습니다.
미루고 주저하고 덜 없게 하며 주저 앉고 말았지요.
오늘 우리도 그렇게 하지 못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다 내보내지 못하여 우상을 섬기는 것, 가나안의 신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고 노예살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애굽에서와 다를 바가 없이 사는 것입니다.
자유인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그 대적들을 우상을 다 내 보내지 않아 옛 습성과 생각으로 살게 되고 하나님은 그것들을 내버려두어 찌르는 가시와 올무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보김, 통곡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길갈을 이루셨지만 이스라엘은 보김을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옛 것을 쓸고 닦아 내지 않으면 새로운 삶, 약속의 땅에 살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 내가 쓸고 닦아내지 못해서 내게 올무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봅니다.

(사사기2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여기 고등학교 철학시간에 예술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미학이지요. 단순 명료하게 들어왔던 답은 지금 내 느낌을 그리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표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표현은 어떤 틀과 방법에 갇혀서가 아니라 나만의 자유로움으로 나타날 때 내가 먼저 감동하고 그 감동이 밖으로 전해집니다. 이번 유럽 아트 투어에서 만난 것도 그런 자유함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미술관과 작품들 앞에 서서 그런 감동이 소통됨을 느끼는 희열에 시간이 멈추고 공간이 사라집니다. 그것이 아름다움, 미학입니다. 그리고 이제 나의 삶의 작품이 어떻게 이어져가고 표현되고 나타날지가 내게 남은 숙제이지요.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듯이 나는 나의 삶의 작가입니다.(#깊은산 20170628)

오월과 유월 아들 한결이와 함께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800Km를 걸어 순례길을 다녀왔습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아담을 만나고 노아를 만나고 아브라함을 만나고 이삭을 만나고 야곱을 만났지요. 야곱의 길에는 사랑하는 라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레아도 있고 라반도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생의 빛과 그림자입니다. 나 또한 그의 레아가 되어도 보고 라헬이 되어도 봅니다. 레아는 라헬을 알아보게 하는 그림자이지요. 이렇게 야곱은 눈을 떠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갑니다. 성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 야고보의 무덤이 거기 있어서가 아니라 산티아고를 향하는 사람들이 그곳을 성지가 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성지, 거룩한 땅은 내 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길을 떠나고 또 돌아옵니다.(#깊은산 20170629)

오래 전에 탄광에서 갱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나 그 안에 광부들이 갇히게 되었습니다. 광부들은 두 편으로 나눠져 이 쪽 굴과 저 쪽 굴에 갇혔습니다. 여러 날 만에 구조대가 그들이 갇힌 굴까지 파 들어갔는데 한 편은 모두 살아 있었고 다른 한 편은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편에는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어 지금 어디까지 파 들어가고 있다며 소식을 주고받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다른 편에는 같은 조건이지만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희망을 잃어 모두 죽고만 것이지요. 삶과 죽음은 어디와 연결되어 어떤 소식을 듣고 사느냐입니다. 들을 귀가 열려 있는 그는 어떤 절망과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잘 들어야 합니다. 듣기 위해 시간을 내고 에너지를 투자해야 합니다.(#깊은산 20170630)

#세월호 참사 1072일째 :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방해·은폐·왜곡·공작의 실상을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에서 밝힙니다. 세월호 유가족 감시와 분열공작, 참사여론 왜곡, 수사·감사개입을 하였습니다. 청와대는 참사 초기 유병언 일가에 대한 의도적인 국민비난여론 확대, 실질적인 수사 지휘를 하였고 강, 온건파로 유가족 내부분리 추진, 유가족에 대한 사찰 묵인, 방조하였습니다. 또한 정부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세월호 인양에 대한 부정적 입장 피력하며 수사권, 기소권 담는 세월호 특별법은 국난초래, 반드시 저지해야 할 법이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국민조사위원회)

생명의 근원과 연결되어 하나님으로부터 계속하여 소망의 메시지를 듣는 사람은 지금 이미 모든 것이 다 되어져있고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고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루어진 삶을 사는 것,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미 모든 것을 다 말하여 주었다고 했습니다. 들어야 할 것은 이미 다 말씀해주셨는데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그저 지나쳐 버립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돕는 이를 보내어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든든하지요. 그러니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말하게 하는 이가 계시다구요. 잘 들으면 됩니다. 그래서 저절로 되어지는 것, 자연입니다.(#깊은산 20170701)

#세월호 참사 1073일째 : 청와대는 세월호 특별법을 국난을 초래할 좌익들의 국가기관 진입욕구로 이해했고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기도 전에 특검추천위에 추천할 변호사들을 관리하고, 여당 성향의 특검 후보를 미리 물색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또한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특조위도 관리하여 정치 지망생인 석동현과 조대환 파견을 미리 계획합니다.(국민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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