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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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삶의 예술 공동체 편지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4/3/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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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위에서  


예수께 나온 사두개인들은 당시의 사회의 지도계층 가운데 한 부류였습니다.
이들은 바리새파와 대별되는데, 바리새파는 경건한 종교적 지도 계층인데 비해 사두개파는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믿음으로 살았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는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비해서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했고, 그래서 일반적인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사두개파는 조금 더 세속적일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재물이 많았고 권력의 중심에 있었고 로마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대에 명예와 권력과 부를 유지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며 해석하고 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부활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이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 안을 들여다보며 살지 않고, 밖에 관심을 보며 살아가니 그렇습니다.
여기를 보며 살아야하는데 이곳만 보며 살기 때문에 그렇지요.
어디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가만히 그런 사두개인들의 물음 앞에서 오늘 우리의 물음을 돌아봅니다.
나는 어떤 물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묻는 일곱 형제와 한 아내의 이야기는 유명한 예화입니다.
율법에는 형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형수가 자식을 낳게 해야 했습니다.
율법이 생성될 당시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식이 없는 과부는 아무 힘이 없이 사회에서 버림을 받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자였기에 남편의 재산도 물려받을 수가 없었기에 자식을 낳게 해서 가문과 재산을 이어가게 하는 사회보장 제도가 형사취수의 제도였습니다.
창세기 38장을 보면 형수가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아들이 자기 아들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아 잠자리에서 장난치다가 죽음을 맞이한 ‘오난-onanism(자위, 수음의 어원)’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들고 나온 물음은 그 형사취수의 율법에 따라 일곱 형제의 아내가 되었던 한 여자는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이었고, 그러니 부활은 없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의 이런 질문을 보건데 부활을 믿고 있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내세는 그들이 사는 현세의 투사 내지는 반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생에서 결혼했던 대로, 부자였던 대로, 경건했던 대로 저 생도 그럴 것이라는 보상심리와 인과응보가 그들의 율법과 도덕의 기초가 되어 있었나 봅니다.
사두개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형식이 싫었겠지요.
현세에서 실력이 없고 힘이 없이 살면서 황당한 내세로만 도피하는 비겁한 부류로 여겨졌을 것이고, 현세에서 탄탄한 그들의 힘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에게는 이 둘은 다 오십보 백보였습니다.
삶에 대해, 영적인 세계에 대해 무지한 오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형식과 본질을 혼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잘못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 그렇다고 합니다.
성경이나 하나님과 상관이 없이 자기 생각과 기준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잘못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들이 현세에서 누리는 관계들, 상황들, 일어난 일들이 무슨 뜻이고 의미인지,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 “성경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라”는 것은 본질 위에서 살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 살아날 때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은 ‘소유’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결혼이 주는 본질은 놓치고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형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정을 이루고 결혼을 하게 하신 이유는 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관계를 위해서였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며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하였던 탄성을 경험하게 하신 관계였지요.
너는 나의 짝! 그런 본질적은 관계의 회복은 너와 나가 없는, 우리로 하나인 사이라는 ‘본질’을 가정과 결혼을 통해서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 아내와 남편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의 예표로 많이 등장합니다.
또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그렇지요.
그런 관계의 ‘본질’은 땅에서 ‘참 사랑’을 살게 하고 하나님을 경험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신의 축복 속에 삽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에는 축복은 저주가 되어지는 것이지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데, 사랑이 없이 누구의 소유냐고 따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다시 길을 떠나는 야곱의 앞에는 형 에서의 복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문제가 풀렸으나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사는 한 문제로 사는 인생입니다.
그런 눈을 갖고 있는 한 문제투성이지요.
문제는 풀리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할 신비입니다.
어떤 눈으로 보고 어느 수준의 의식에서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으면 문제는 없습니다.
믿음의 눈을 뜨면 어제까지 문제가 오늘은 신비이지요.
내가 거듭나면 어제까지의 두려움이 오늘은 사랑입니다.
(깊은산20140309)

야곱은 에서가 자기를 치러 오고 있다는 말에 두렵고 걱정이 되어 일행과 재산을 두 패로 나누었습니다.
만일의 경우 한 패라도 피하겠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고 에서에게 줄 선물을 마련해 그것 또한 몇 떼로 나누어 따로 따로 에서에게 보냅니다.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이런 야곱의 모습이 눈물겹습니다.
그러나 함께하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도 이런 두려움과 걱정에 있음은 당장 눈앞에 있는 것에 속고 사는 것이지요.
그만큼이 삶입니다.
내가 가야할 길을 누구와 같이 걷고 있다는 것을 알고 든든히 그 길을 갈 수 있음이 인생의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깊은산20140310)

야곱이 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가진 것이라곤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을 살고 이제 두 무리나 이루었습니다.
빈손으로 와서 은혜로 이렇게 이루었는데 무엇에 더 집착할까요?
잃을 것을 생각하고 죽을 것이 두려워 삶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렇게 있음 자체로 이미 충분한데 소유하려하니 힘이 드는 것입니다.
가지려고도 버리려고도 하지 말고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면 됩니다.
그것이 사랑이고 힘이지요.
원래 없었는데 그래서 다 있는데 우리 삶에 무엇을 더 요구하고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깊은산20140311)

아들의 봄방학을 맞아서 아들과 둘이서 2박3일 북극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들과 단 둘의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고 그간 양로원 일로 떨어져 지내며 몸과 마음이 서먹해진 아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여행이었지요.  
그렇게 나는 오로라를 보러 간 북극 Yellowknife에서 삶을 배우고 왔습니다.
이래서 여행을 하나 봅니다.
내가 얼마나 만남을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연약한지도 다시 알았고 또 어떻게 거기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도 알았습니다.
카메라의 셔터가 열려있는 30초가 얼마나 긴지도 알았고 내가 하늘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음도 알았습니다.
밤새 나는 침묵으로 춤을 추고 있음을 알았고 기다림은 사랑이고 간절함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이고 생각 하나의 차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지금 해보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정말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삶의 수렁으로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깊은산20140313)

북극에 오로라를 보러 간다고 했더니 친구가 오로라를 보려면 (1)절대적으로 착하거나 (2)억수로 운이 좋거나 (3)아주 영악해야 하는데 너는 어디에 속할까? 라고 물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오로라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1번도 2번도 3번도 아닙니다.
오로라를 보러 가지 않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로라는 보러 가는 사람은 다 봅니다.
대신에 오로라를 보는 사람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극한의 환경을 견디어야 하고, 일상에서 떠나는 위험과 용기가 있어야 하고,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로라는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찾아오길 기다리며 이미 다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삶도 그러합니다.
(깊은산20140314)

뒤늦게 사진에 입문해 사진을 배워본 적이 없이 10년 이상 DSLR 카메라를 다루며 주관적인 경험과 감으로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사진은 빛이 가장 중요한데 그 변화의 찰라에 직관적으로 앵글을 잡는 데도 익숙한 편입니다.
그런데 또 그것의 큰 단점이 있습니다.
아는 것만 안다는 것입니다.
그간 야경이나 삼각대를 놓고는 사진을 찍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물어 보고 배웠어야 하는데 이번 오로라 촬영 때 어두운 곳에서 초점을 잡는 것을 생각 못해 첫날 오로라가 너울너울 춤추며 나타난 장면을 다 놓치고 말았습니다.
새벽에 돌아와 사진을 확인하면서 너무나 속이 상해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평생 올까 말까한 기회를 놓친 나에게 화가 나 펄쩍펄쩍 뛰었지요.
그렇게 돌아보니 내가 결정적인 순간에 준비가 되지 않아 역할을 못하고 놓쳐온 것이 다 보입니다.
내 삶이 그래왔습니다.
내일 또 이런 하늘이 나에게 주어질지 알 수 없지만 다시 만난다면 오늘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더 정신을 차려 깨어 있고 실력을 겸비하라는 신호로 받습니다.
이제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요.
(깊은산201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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