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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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삶의 예술 공동체 편지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com)
2013/10/27(일)
IMG_5302.jpg (240KB, DN:46)
나귀새끼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와 제자들을 환영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들이 곧 이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고소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립니다.
세상은 그렇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예수를 환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와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조항이 있습니다.
메시아는 이래야 돼, 예수는 저런 사람일꺼야....
그래서 환호하는 것이지요.

혹시, 오늘 나도 그렇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나는 이래야 돼, 내 아내는 이런 여자야, 내 남편은 이런 사람이지. 내 아이는 이런 아이일꺼야....
그렇게 다 내 ‘고장난 사진기’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겉옷을 벗어 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시각으로만 봅니다.
그러면 한번도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내 아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내 남편이 얼마나 힘든지, 내 아이가 어떤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왔는지....
그리고는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져 버리지요.

또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원망과 한숨과 핑계를 대기 시작합니다.
그건 심지어는 나에게도 그렇습니다.
이런 내가 싫어!
나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인데, 영어 단어 하나 외우지 못하고, 문장 하나 번역하고 쓰지 못하니 나는 안 돼!
나는 목사인데, 나는 박사인데, 나는 유능한데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지?
나는 잘 하는 게 참 많은데, 왜 이렇게 주눅 들어 살아야하지?.....
그렇게 내가 정한 한계로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보내신 나의 모습을 만나지 못하고 그렇게 살다가 갈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영적인 여행, 순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내 판단으로, 기대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고 만나야지요.

제가 아는 어느 교회의 교우께서 이런 고백을 올렸었습니다.
따가운 햇살 속에 있는 나를 온 몸으로 느껴봅니다.
그 동안 입고 있던 오래되고 두꺼운 옷을 하나씩 벗습니다.
배 나오고 처진 어깨, 낡고 허름한 집, 자식의 의무, 아내의 책임, 통장의 잔고, 신통할 것 없는 재주 이 모든 것을 벗고 아기 속살처럼 부드럽고 뽀얀 나를 만납니다.
우주 속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나를 만납니다.
그리고 거기에 계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런 나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따가운 햇살도 느끼고 뜨거운 땀방울도 흘립니다.
때로는 고통과 슬픔으로, 때로는 기쁨과 행복으로 다가오는 이 인생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선물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삶을 충분히 누리며 살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랑임을 느끼면 살겠습니다.
이런 나를 신명공동체에서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에 예수께서는 제자 둘을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보내서 마을로 들어가 매여 있는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는 것입니다.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만나는 참 신비한 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는데 왜 하필 나귀새끼냐도 그렇지만 남의 나귀새끼를 겁 없이 풀어오는 사람들이나,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그 나귀새끼를 내어주는 사람들이나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위해, 그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귀새끼가 있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 그렇게 기꺼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하늘의 음성과 소리에 순종하며 내 마음에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나귀새끼를 데리러 가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주님의 필요를 위해서 나귀새끼를 준비한 사람, 그리고 두 말없이 그것을 내어주는 선한 사람, 선한 이웃, 준비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찬사를 외치면서 예수를 환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일이며 본질에 가까운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고, 나에게 오시는 예수를 맞이하고 있습니까?
혹시 위풍당당한 군마가 아닌 나귀새끼를 타고 뒤뚱거리며 오시는 예수를 왕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는 이런 분이라고, 메시아는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 내게 주시는 선물과 기회를 놓치고 허비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메시아는 군마를 타고 승전가를 부르며 개선식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초라한 나귀새끼, 그러나 준비된 그것과 함께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눈을 떠서 그 나귀새끼를 타신 주님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아름답게 예술로 가꾸어가는 신비와 비밀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주시는 명령, 하늘의 뜻을 받아 나귀새끼를 풀러 나가고 또 내 나귀새끼도 풀어주는 그 한 자리에 서 있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11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내년 이 맘 때에 이삭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받고도 아브라함은 죽음이 두려워 아내를 팔고 궁색한 변명을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도와 약속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오늘 나도 비겁한 변명을 하며 하루를 연명하여 살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를 도와서 축복하는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러니 나 또한 이웃을 너그러이 보아주고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습니다.
내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줍니다.
(깊은산20131020)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는 이야기는 사람의 구원 이야기이고 출애굽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이삭을 낳게 해주셨는데 그 때는 아브라함은 기력이 쇠했고 사라는 경수가 끊어져 아들을 낳을 수 없는 때였습니다.
사람의 때가 끝나면 하나님의 때가 시작됩니다.
나의 가능성으로는 할 수 있고 없다는 계산을 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가능성은 이미 다 이루어진 길입니다.
생각이 끝나는 자리가 하늘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깊은산20131021)

체로키 인디언들은 사람 마음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한 마리는 악하고 늘 노여워하고 다른 한 마리는 선하고 기쁨이 많은데, 그 두 마리의 늑대 중에 사람이 먹이를 주는 늑대가 싸움에서 이긴다고 합니다.
사람은 어둠과 다투어서는 어둠을 이길 수 없고 그럴수록 어둠에 먹이를 주게 되어 어둠이 더 깊어집니다.
어둠과 싸우지 말고 빛을 향해서 빛을 받아들이면 어둠은 자연히 뒤로 물러갑니다.
어둠과 빛은 삶에 늘 공존할 수밖에 없으니 어디를 향해 먹이를 주며 사느냐가 삶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없고 구원받은 태도만 있는 것이고 바울은 날마다 죽고 또 날마다 산다고 하였습니다.
(깊은산20131022)

이삭의 돌잔치에 다 큰 이스마엘이 갓 난 이삭을 놀립니다.
무르익은 생각은 어린 믿음을 의심하고 조롱합니다.
이삭이 성령을 따라 난 믿음이고 이스마엘이 육체를 따라 난 생각이라면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살 수는 없습니다.
인위는 생각으로 낳은 아들이고 자연은 믿음으로 낳은 아들입니다.
내가 하지 않고 그가 하도록 옛 사람을 내보내야 새 사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도 내 자식이고 이삭도 내 자식이라 곤욕스럽지만 출애굽은 이스마엘을 내 보내고 이삭과 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깊은산20131023)

남편의 집에서 쫓겨난 하갈은 사막을 헤매며 죽어가는 아이를 눕혀 놓고 울고 있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금 죽어가는 자식을 눕혀 놓고 초라하고 부끄럽고 미안하고 억울해서 통곡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나의 울음도 외면하지 않고 눈을 밝혀 주시니 자식에게 먹일 샘이 보입니다.
샘이 없어 목이 마르는 것이 아니라 눈이 어두워서 목이 마릅니다.
(깊은산20131024)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과도 늘 함께 계시며 끝까지 돌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삶의 주인공과 엑스트라가 따로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 생각의 자식이지만 이스마엘에게는 아브라함이 생각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브라함이라는 것도, 내가 하갈이라는 것도, 내가 이스마엘이라는 것도 생각입니다.
거기서 나와 눈을 떠야 삽니다.
(깊은산20131025)

그는 예수를 따르려면 부모와 처자를 버려야 한다는 말씀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다가 갈라지고 물 위를 걷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성경에 나오는 말씀들은 다 믿을 수 있겠는데 부모와 처자는 미워하고 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일 수 없으니 성경에서 빼달다고 하나님께 따집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하나님은 마침내 그의 꿈에 오셔서 네 부모와 처자를 내가 돌보려고 해도 네가 끼어서 가로막고 있어 못하겠으니 제발 좀 내버려 두라고 호통을 치셨답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내가 사랑한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그 사이에서 빠져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깊은산201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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