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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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삶의 예술 공동체 편지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com)
2013/9/14(토)
IMG_4544.jpg (201KB, DN:24)
종이 되어 사는 길  


예수께 대가를 요구한 야고보와 요한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제자들도 가관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개하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이미 정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기도 전에 말입니다.
사실 그들도 똑같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낸 것이지요.  
정말로 내가 정의를 위하고 사랑을 위한다면 지금 내게 아무 것도 떨어진 것이 없어도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평화와 기쁨을 가로막을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느 순간 그 무엇에 분개하게 될 때 정말 나의 밑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닌지...
그런 이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역설 중의 역설입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종입니다.
한 사람의 종이면 하나에 종속되겠지만, 모든 사람의 종이면 누구에게나 또 자유합니다.
종은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자기 할 일만 하면 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이 다 선물인지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너와 나는 다르지 않고 하나입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비판하겠습니까?

자, 누가 종이고 누가 주인입니까?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기려 하는 한 정복하려고 하는 한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사람의 뜻이 그렇습니다.
사람의 뜻이 아무리 선해도 그것은 '상대'입니다.
선한 뜻이라는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맞설 때 이미 그것은 선한 뜻이 아니라 나의 고집이고 욕심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좋은 종은 자신의 선한 뜻도, 이 길이 최선이라는 것도, 이것만은 있어야 한다는 것도 없습니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라고 말이 있습니다.
힘을 다해서 무엇을 이루지만 나는 이루어 놓은 그것과 같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했다고 할 때, 내가 그런 자격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은 이미 공이 아닌 것입니다.
감히 대가를 바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일을 해야 하기에 할 뿐입니다.
주신 일을 하는 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그렇게 하나님의 뜻 앞에 내 뜻을 비웁니다.
사람의 의지와 능력이 사라질 때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생을 살면서 내 뜻이 막히는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안다면 우리 길을 가로막는 것이 더 이상 우리 앞에 있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도우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은 다릅니다.
내리 누르고 세도를 부리는 것은 낮은 수입니다.
그것으로는 사람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나라에서 높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가만히 나에게도 으뜸이 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다시 헤아려 봅니다.
그런데 그 길의 최고의 지름길은 종이 되는 것입니다.
으뜸이 된다고 하여서 다른 사람을 내리 누르고, 세도를 부리는 것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한 없이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미워하고 다투는 한 목마름이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사랑하며 섬기고 내어 주면 찾아오는 평화가 있습니다.
내 손에 잡을 수 있는 것도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렇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곧 목마른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섬김에서, 낮아지는 자리에서, 비움에서, 그런 여여함과 깨달음 속에 으뜸의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막10:45)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기억을 잃고 사는 사람들을 찾아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주신 예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지요.
더 나아가 많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러 오셨다 하십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러 세상에 왔는지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그렇게 오셨으면, 오늘 그리스도로 살기 원하는 나도 그렇습니다.
45절에 자기 이름을 넣어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깊은산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목숨까지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치사하게 따지고 계산하고 살아야겠습니까?
우리 요구와 대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먼저 섬기면 그 섬김이 나와 내 주변의 관계를 회복시켜주고 힘으로 강압으로 억지로 되지 않는 삶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할 것입니다.
아니,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살아보면 왜 그 삶이 길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삽니다.
예수처럼 말입니다.
대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할 일을 하는 삶을 살아 갑니다.

(마가복음 10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주인의 아이를 임신한 여종 하갈은 사라의 학대를 못 견디어 도망하여 아무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죽음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하갈에게도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물어 주십니다.
“사라의 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인생의 사막 한 가운데 죽음의 절망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은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 수밖에 없습니다.
(깊은산20130908)

하나님은 하갈을 ‘사라의 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종이 주인 노릇을 하려하고 종이 주인을 떠나 있으니 힘이 드는 것입니다.
하갈은 이유야 어찌되었든 자기가 있어야할 자리에서 도망 나와 있습니다.  
그런 하갈에게 종이니 돌아가서 주인에게 복종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종의 일은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이라면 오늘 나의 일은 무엇인가요?
이제 더 이상 도망 다니지 말고 내 삶의 자리로 돌아가 나의 일을 하며 이 지독한 사막 한 가운데서 벗어나야겠습니다.
(깊은산20130909)

집 나온 하갈이 사라의 종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주권 회복입니다.
전에는 억지로 종이 되어 살았다면 이제는 스스로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삶의 주인이 됩니다.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고, 농부가 들에 있지 않고, 주부가 살림을 하지 않고, 목사가 목회를 하지 않으면 평화가 없습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바울은 날마다 죽고 그래서 날마다 산다고 했지요.
삶의 주인이 주인의 자리를 빼앗겨 남의 일을 하는 종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깊은산20130910)

물론 내가 돌아가도 환경과 조건은 바뀌지 않고 다시 학대를 받고 곤경에 처하게 되겠지만 돌아간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웃음을 되찾고 감사를 되찾고 사랑을 되찾아 아들을 낳고 자손이 번성할 수 있습니다.
깨어나면 내가 그것들을 마음대로 하지만 깨어나지 못하면 그것들이 나를 마음대로 합니다.
(깊은산20130911)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책임인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샤를 드 푸코)”

사라의 종 하갈이 만난 하나님은 들으시고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내 억울함을 들어주시고 내 곤경을 보아주시니 그 섭리 안에 있으면 두려움도 없고 원망과 불평도 없고, 또 기쁨도 만족도 없습니다.
두려움도, 원망도 불평도 지나가고, 기쁨과 만족도 또한 다 지나가는 것, 오롯이 그것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말씀하시고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뵙고도 살아서 겪은 일을 말할 수 있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깊은산20130912)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13년 만에 나타나 이삭을 낳아야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3년간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에 만족하여 살았을 때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으셨지요.
그동안 이스마엘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다른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말씀 앞에서 아브라함은 백 살된 남자와 아흔 살 여자가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겠냐고 웃고 말았습니다.
혹시 지금 이삭을 낳아야 하는데 이스마엘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생각의 종이 되어 생각이 나인줄 알고 또 나타난 것을 전부로 알고 하나님을 그 안에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믿음의 약속이 아닌 내 생각과 판단으로 생각의 종이 되어 살고 있는 내가 웃고 있는 아브라함입니다.
(깊은산20130913)

아브라함처럼 본토와 친척, 아비의 집에서 낯선 땅 캐나다로 떠나와 자리 잡고 교회까지 시작했으니 이제 이것으로 족하다 머물러 있을 때 받은 말씀이 ‘이삭도 낳아야 하리라.’였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나와 이스마엘에 만족해서 살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두 말 없이 시작한 것이 ‘토론토 예가’였습니다.
덕분에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마음껏 했습니다.
그리 하지 않았으면 무슨 재미로 여기서 살았을까요?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가 이스마엘과 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늘 입버릇처럼 더 이상 여한이 없고 이것으로 충분하고 이제 다 살았다고 하는 나에게 다시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삭도 낳아야 하리라.”
(깊은산201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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