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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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삶의 예술 공동체 편지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com)
2013/8/31(토)
IMG_4255_s2.jpg (138KB, DN:25)
어떤 요구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을 당하고 죽음을 받으실 것이라는 예고를 하신 후에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또 그 전에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백배나 받고 영생까지 받는다고 말씀하셨었지요.
그 때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착하지 못하고 실하지 못합니다.
착실하지 못하고 구경꾼으로 살게 되는 거지요.
오늘 우리 가까이 다가가 보아야겠습니다.
그동안 떨어져 있었다면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고 나의 진심과 영혼의 소리에로 가까이 다가가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착해질 거예요.

그런데 그런 그들이 예수께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다 주시겠다고 이미 말씀하셨지만, 무슨 배짱으로 이들이 예수께 나와서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둘 중에 하나지요.
선생님의 사랑과 믿음에 대한 확신이거나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정정당당하게 요구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이런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께 이렇게 친하게 가까이 나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또 교만하게 주제를 모르고 나대고 있지 않은지 하는 반성도 있습니다.
오늘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금 어떻게 하나님께로, 선생님께로 나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헤아려 보게 됩니다.
그러니 이런 요한과 야고보가 어찌되었든지 고마운 거울이 되어줍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가온 제자들을 대하시는 예수의 모습이 또 다른 감동입니다.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바라보는 마음이나 속내와는 상관없이 제자들을 대해주시는 선생님의 헤아림에서 모든 노여움과 서운함이 다 녹아집니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 선생님과 함께 있고 싶고 또 그런 어른을 만나고 싶습니다.

또 오늘 나에게 다가와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요구하는 것을 당신은 무엇이든지 다 해주어야 해!”라고 누가 말하면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할까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자식이 와서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말이 끝나기 전에 아마 손부터 올라갈 겁니다.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에 너는 나에게 뭘해주었는데라고 따지기 시작할지 모릅니다.
사랑은 주는 것인데, 주면서 크는 것인데 어느새 대가를 바라는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사랑, 삶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그래 뭘 해 줄까?”라고 물어 주십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뭐해줄까?
그렇게 한 걸음 물러서서 스스로 살피고 반응하는 틈새가 있어야겠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웅임을 나는 배웠습니다.(샤를 드 푸코)"

(마가복음 10장)

깊은산에서 온 편지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합니다.
오늘 어떤 눈을 크게 뜨고 있습니까?
그것이 원망과 시비의 눈인지, 감사와 사랑의 눈인지 알아차려 봅니다.
믿음의 눈은 하나님의 눈을 뜨고 하나님이 보는 것처럼 보는 것이지요.
그렇게 보는 만큼 얻고 누리는 것이 삶이고 약속입니다.
(깊은산20130825)

지금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위와 아래도 봅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만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보는 만큼입니다.
보지 않으면 누릴 수 없습니다.
또 일곱 번째 방향인 내 마음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봅니다.
내가 찾아갈 보물, 나의 꿈과 사랑이 거기에 있습니다.
(깊은산20130826)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 우주의 선물은 내가 한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꼭 쥐고 있다면 내 수준입니다.
내 눈으로 보면 내 능력 만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바다의 모래만큼 하늘의 별 만큼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러니 두 손을 놓고 마음과 생각을 비우고 바라봅니다.
셀 수 없습니다.
(깊은산20130827)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떠서 보고 “가서 길이로도 걸어보고 너비로도 걸어보라.”고 하십니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고 보기만 하면 거기까지입니다.
생각으로는 꽃은 피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열매는 맺을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은 열매를 위해 있는 것이니 꽃은 지면 그만입니다.
내 발로 딛고 걸어보는 만큼입니다.
(깊은산20130828)

롯이 떠난 후에 그 지독한 외로움과 서러움과 우울과 절망 앞에서 아브라함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장막을 거두고 그리로 가서 살았습니다.
살면서 제단을 쌓아 바쳤습니다.
삶의 예배입니다.
(깊은산20130829)

아브라함을 떠난 롯이 살던 싯딤 벌판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 전쟁은 마므레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 떨어져 사는 아브라함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아브라함을 떠난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간 것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나와 상관없는 일은 없습니다.
다 관계되어 있고 영향을 미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떠난 조카의 곤경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사병을 일으켜 나가 싸워 모든 것을 되찾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길 가능성이 없는 싸움에도 즉시 일어나 나가는 것입니다.
(깊은산2013083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요일3:16~18)”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만납니다.
예전의 아브라함이었으면 자신의 공적을 인정해주고 환대하는 소돔 왕만을 보았을텐데 이제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멜기세덱은 히브리서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태어난 적도 없기에 죽지도 않는 존재입니다.
그는 믿음의 눈으로만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멜기세덱이 전하는 말은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시니 너를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고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루는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님을 볼 수 있는 세계에 아브라함은 서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은 사실은 그가 하신 일이지요.
나의 삶의 매순간에 그런 멜기세덱을 만나고 엎드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요할까 헤아려봅니다.
그런 눈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깊은산201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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