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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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삶의 예술 공동체 편지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8/10/8(월)
20170512_121059.jpg (98KB, DN:1)
위로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증언하시는데 아무도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땅의 차원에 있으면 아무리 말해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약 올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됩니다.
어떻게 죄인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일 수가 있느냐고 분노하고 두려워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럴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스스로 진노에 사는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살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행한가요?
그러나 마음을 바꾸어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참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의식의 차원, 의식의 수준을 올리는 것이지요.
내가 알지 못하지만 위에서 온 이를 받아들이면 아래에 살던 내가 위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은혜이고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 하늘 소식을 전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 안에 있는 은혜를 사모하는 까닭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동물이라서 영에 이끌려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영에 이끌려 살 것이라면 어떤 영을 모시고 살겠습니까?
성령을 모시고 살아야지요.
악령을 모시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성령은 위의 것, 믿음과 사랑과 화해와 평화의 영입니다.
그런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 올리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렇게 위에서 살아야지 낮은 차원의 불신과 미움과 다툼과 전쟁과 파괴의 영으로 살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만큼이 오늘 나의 수준입니다.
자 다시 한번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따르고 바라보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우리의 차원을 그에게로 끌어 올려가는 것이지요.
그의 제자가 되어 그를 따른다는 것, 그의 세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고 영접하고 그런 삶으로 향해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고 했습니다.
영생은 모든 것 위에 있는 삶의 차원입니다.
또한 위로부터 온 아들을 순종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늘 자기 수준에서 땅의 차원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고맙고 행복한 것은 오늘 우리가 하늘로부터 오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낮은 차원, 땅에 속해서 살고 있는지 모르고 살 때는 내가 그렇게 사는지도 모르고 그냥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죽는 거지요.
영생을 사모하여 의식 수준을 하늘로부터 오신 이에게로 높여 올라가려고 해도 쉽게 되지 않습니다.
내 힘으로, 노력으로, 그 무엇으로 가능한 세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믿음’이라고 하는 거지요.
공부를 잘하고, 돈을 많이 벌고, 권력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공부를 못하고, 가난하고, 힘이 없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차원이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감사 할머니’처럼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잃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생각과 의식 수준을 위에서부터 오신 이, 예수께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첫째로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행복은 거기에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하는 거지요.
지금 무엇이 하고 싶으신가요?
사실은 우리가 사랑하고 싶고 고마워하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내 상처와 아픔, 내 경험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해하고 싶은데 상처받은 경험 때문에 미워하고 다투고 의심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억지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의 밑마음은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받아들이고 싶은 것입니다.
행복하고 사이좋게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 마음을 정말 알아줄 때 우리의 행동이 바뀌고 삶이 바뀔 수 있습니다.

행복하고 사이좋게 즐기면서 살고 싶은 것이 정말 간절히 원하는 본마음이지요.
그러나 불편하고 어렵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면서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인줄 알고 착각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대로 한발 옮겨 해보면 달라집니다.
‘백척간두 진일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100m짜리 장대에 올라서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거기서 한발은 내 딛어야 흔들리는 장대에서 벗어날 수 있지요.
큰 산을 며칠씩 등반하다보면 만나는 것이 있습니다.
산 한가운데 있는데 어느 순간 너무 힘들어서 한 발자욱도 움직일 수 없어집니다.
그러나 거기서 주저 앉으면 산에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없습니다.
그냥 한 걸음 옮겨야 하는 것이 삶입니다.

둘째 현위치 파악, 내가 어떤 수준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입니다.
그래서 영성지수표까지 나와서 우리를 돕고 있지요. 내 수준을 모르면 약이 없습니다.
캐나다에 공부하러 온 아이가 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할 때 원장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첫 질문이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냐는 것이었습니다.
1에서 10까지... 아이가 자기는 1이라고 하니 원장님은 그럼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수준을 아니 공부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준을 모르면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잘하는지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금방 탄로가 나지요.
자,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보십시오.
그리고 거기서 수준을 올려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얻지 못하고 진노를 사 그렇게 살아가고 말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목표를 정하는데 택도 없이 높이 잡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목표가 없어도 그 자리입니다.
목표를 세워서 한걸음씩 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하늘로부터 오신 이가 계십니다.
또한 그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또 영원히 우리 안에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있는 그분의 도우심을 만나가야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아들 손에 모든 것을 다 맡기셨습니다.
그러니 그 분을 받아들이면 그 사랑과 힘으로 아버지께로 우리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9절에 이렇게 말씀했지요.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 빛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7절에서 이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말을 하든지 일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모든 사람에게서, 모든 일에게서 예수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 눈으로 옆에 앉아 있는 교우를, 내게 일어난 일들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면 모두가 나의 목표를 돕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위에서 오시는 이는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증언하지만 땅에서 난 사람은 땅의 것을 말합니다.
또 위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 것 위에 계시지만 아래서 난 이는 땅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까요?
위에서 오신 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받아들이고 높은 차원의 의식으로 살아간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심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지만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하고 진노를 사게 되는 것이지요.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또 다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듯이, 그를 믿는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지요.
그러니 그런 아들의 증언을, 복음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사실을 믿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이 지옥이고 고통이며 하나님의 분노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저녁에 바다 저편으로 가자는 예수의 말씀에 제자들은 무리를 남겨두고 밤새 배를 저어서 건너편으로 갔습니다. 남겨진 무리가 있고 배에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바닷가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배를 타고 바다 저편으로 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배'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배에는 올라야 바다를 건널 수 있지요. 그렇게 내가 올라타고 있는 배가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만나 함께 삶을 살피고 글을 나누고 길을 찾고 있으리라 누가 계획하고 예상했을까요? 정말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준비되어 한 배를 타고 있습니다. 저 사람만 만나지 않았어도 내 인생은 피었을까요?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고 하지요. 지금 내게 주어진 삶, 그것이 최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물입니다. 그렇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작은 배’라고 했습니다. 내가 올라타고 가지만 또 나를 올라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가 되어 바다 저편으로 가는 것입니다.(#깊은산 20180930)

#세월호 참사 1629일째 : 하지만 그들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내세운 교리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자유항주 모형실험’에서 나왔고 이를 누락 은폐 조작한 것입니다.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의 부설 연구소인 한국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크리소)는 모형실험을 했는데 이것이 은폐된 것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서 ‘급변침’으로는 설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결국은 비정상적인 ‘급선회’ 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인데 이를 알리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이 모형실험 결과는 검찰 공소장에 들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를 입력하여 엉터리로 진행된 컴퓨터 시뮬레이션 즉 자유항주 모형실험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세월호 항적이 전혀 구현되지 않은 결과를 입증 근거로 재판부에 올린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박근혜 정부 당시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러한 결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여론인식 결과가 도출되기에 이릅니다. 올해 세월호참사 4년이 될 때에 즈음한 주요 방송사들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의 80%가 진상규명은 미흡하나 80%는 원인규명은 되었다’라고 한 것입니다. 희한한 결과인 것입니다. 아직도 박근혜 정부 당시의 해양적폐세력이 내린 결론이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전면 재규명)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지금 내가 타고 있는 배도 은혜요, 사랑입니다. 내 가족이 그렇고, 내 일터가 그렇습니다. 나는 그것을 통해 바다 저쪽으로 가고 있지요. 선물이고 행운입니다. 그러나 그 배도 바람을 맞고 파도를 맞습니다. 하나님은 햇볕과 비를 누구에게나 주십니다. 악하다고 안주지 않고 선하다고 더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이혼 안하지 않고 예수 믿는다고 부도 안당하지 않고 예수 믿는다고 교통사고 나지 않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겪는 일, 경험입니다. 그런 슬픔이 없이 어떻게 기쁨이 있겠습니까? 역경이 있으니 순경이 있는 거지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일을 겪을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경험하고 어떻게 감사하며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차이, 그런 연습, 그런 수련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시험이라고 하지요. 그렇게 시험을 통해 연단되고 단련되어 나옵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염려할 것 없습니다. 오히려 기뻐할 수 있습니다.(#깊은산 20181001)

#세월호 참사 1630일째 : 작년 11월 국회에서 재조사를 위한 ‘2기 특조위 설치법’이 통과될 때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정유섭이 ‘진상규명이 이미 다 됐다. 모르면 자신에게 물어보면 다 알려주겠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정유섭의 경력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화려한 해양관료 경력으로 나옵니다. 이러한 뻔뻔한 주장이 먹히면서 2기 특조위 법은 기존 조사와 수사, 재판을 통해 상당부분 다뤄지고 원인 규명이 됐는데 다시 조사하면 ‘일사부재리’이니 ‘기존 조사/수사/재판 결과 서면 검토’를 위주로 하고 다만 ‘새로운 단서’가 나오는 경우만 한정해서 조사하라는 식으로 국회에서 정치권들끼리 타협이 이뤄져 조사인력이 대폭 축소가 된 채 통과되어 버렸습니다. 조사 방해를 받아 해산된 1기 특조위 때의 조사 인력 때 보다도 훨씬 적은 1/3 수준의 조사인력만 허용된 것입니다.(전면 재규명)

그런데 우리는 일이 어떻게 될지 알지도 못하면서 원망부터 합니다. 우리가 많이 하는 말이 있지요.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하나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풍랑과 파도 앞에서 물이 배 안에 차고 있는데도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있습니다. 요동하지 않으시지요. 차이가 있다면 이 차이입니다. 예수와 제자들의 차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과 믿음이 없이 사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 비결은 마음의 평안하고 고요입니다. 일어나는 일들에 좌우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 없었지요. 인생의 가장 큰 실력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런 들음과 봄에서 옵니다. 사실을 사실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아전인수 합니다. 내 생각으로 다 편집하니 흔들리고 요동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것들이 나를 어찌하지 못하는데 말입니다.(#깊은산 20181002)

#세월호 참사 1631일째 : 얼마 전 활동 종료가 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역시 다수가 해양적폐세력들이었습니다. 해양수산부 산하 중앙해양안전심판원과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자들이 주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해양적폐세력들의 교란으로 멀쩡한 증거들이 세상에 알려지기조차 어려웠고 간신히 알아내도 제대로 알려지지조차 않고 있는 게 현 실정입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검경합수부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자문 출신과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출신이 아닌 위원들이 간신히 내 놓은 게 바로 열린안입니다. 열린안은 기성의 결론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입증 근거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급경사와 급선회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외력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새로운 증거나 기존에 박탈된 증거에 대해 비판적인 재검증 등을 통한 충분한 조사가 더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전히 해양적폐세력이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제한 된 권한을 받은 2기 특조위 역시 해양수산부마피아의 영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양상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전면 재규명)

풍랑이 이는 바다, 우리도 알 듯이 사실은 바람과 파도보다는 제자들의 마음이 더 격동했을 터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람과 바다에게 고요하고 잠잠하라고 하십니다. 혹시 내가 풍랑이 아닐까요? 혹시 내가 파도가 아닐까요? 내가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격동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그런 나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고요하고 잠잠해라” 그리고 그 말씀 앞에 정말 바람은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습니다. 예수 앞에 서면, 하나님의 앞에 있으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문제는 내 생각에만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보시기에 참 좋았다, 하나님은 다 이루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흔들리고 혼돈하는 내가 고요하고 잠잠하라는 소리를 듣고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깊은산 20181003)

#세월호 참사 1632일째 : 수백의 희생자와 수천의 피해자가 있는 참사를 두고 증거와 과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원인규명에 관한 사항들을 객관화 하여 문제를 대할 수밖에 없는 점을 고려하면서도 고통 속에 있는 피해자들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선박이 바다 위에 떠 있을 수 있게 하는 선박의 빈 공간, 즉 이 빈 공간이 물위에 떠 있을 수 있도록 밀어낸 물의 양을 ‘배수량’이라고 합니다. 배수량이 상실한다는 것은 침수로 인해 선박 안의 빈 공간에 물이 다 찼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선박의 가장 중요한 제원이 바로 배수량입니다. 세월호는 6천톤 정도의 배수량을 자기 제원-스펙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침수가 시작되면 침몰로 이어질 수 있어 침수의 원인을 해명하는 것은 진상규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침수는 ▲파공이나 균열이 생겨 물이 들어오는 경우, ▲배가 앞뒤좌우 어느 방향으로든 물이 들어올 정도로 기울었을 경우(종경사와 횡경사), ▲태풍 등 큰 파도가 갑판 위로 범람하는 경우, ▲그리고 드물지만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침수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월호 침수 원인은 급격한 횡경사와 동시에 발생한 급선회였으며 이 급횡경사선회의 원인은 아직 더 조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물론, 파공과 균열에 대한 경우도 아직 명확하게 조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직립 후 리프팅빔에 의해 가려진 부분을 제거했더니 균열이 의심되는 곳이 최근 확인되어 조사가 더 필요한 상황이기도 합니다.(전면 재규명)

바다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바다 저쪽은 그렇게 가깝지 않습니다. 큰 풍랑이 일어나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옵니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괜히 왔나 싶고 원망이 일어납니다. 제자들은 그런 무서움에 떨며 잠자고 있는 예수를 깨웁니다. 깨어난 예수는 바람을 그치게 하고 바다를 고요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쉽고 간단한 것을 몰랐습니다. 그와 함께 있는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입니다. 내 안에 늘 나와 함께 있는 그를 깨우면 됩니다. 내(ego)안에 있는 나(self)입니다. 우리는 이렇듯 바다 저쪽에 머물러 있었으면 이런 은혜를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파도 이는 바다에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이런 풍랑 가운데 있으니 살아 있는 거지요. 그것도 느끼지 못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니 두려워 맙시다. 두려움이 큰 적입니다. 또한 두려움은 은총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은혜입니다. 풍랑이는 바다는 나를 인도하는 길입니다. 복종할 것입니다.(#깊은산 20181004)

#세월호 참사 1633일째 : 어렵게 복구된 세월호 블랙박스에 의하면(블랙박스 복구를 승인하고 강행했다는 이유로 선조위 진상규명 책임자가 해임까지 될 뻔했고, 선조위가 아닌 다른 기관으로 디지털 증거가 넘어갈 뻔하기도 했습니다.) 침수와 전복의 원인은 급경사와 급선회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화물이동 쏠림은 급경사와 급선회에 따른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화물이동 쏠림이 침수의 원인으로 단정되어 왔습니다. 결과와 원인이 뒤 바뀐 채 4년이 흘러간 것입니다. 복구된 블랙박스 영상에 의하면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08시 49분경 갑자기 50도 이상 기울어 졌고 이 순간 배 밑바닥에서 상당한 높이에 있는 C갑판 측면으로 침수가 바로 발생했습니다. 이것은 기존에 단정되었던 결론과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이미 단정되었던 결론은 30도 기운 후 화물이 미끄러져 이동한 뒤 경사가 심화되어 침수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과 초당 4~5도 사이의 속도로 8초 이내에 50도 이상 기울어진 다음 바로 침수가 발생한 순간과 동시에 화물도 이동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요약하자면 ▲복원력 불량 경사 -> 후화물이동 -> 후경사심화 -> 후침수라고 한 것과 ▲선급경사선회 -> 후침수=후화물이동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급경사와 급선회를 동시에 일으킨 게 화물이동쏠림과 조타가 관한 게 아니라 어떤 직접적 원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전면 재규명)

사실 마음의 원리에서 두려움은 건강한 반응입니다. 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고 그런 두려움이 사람을 활동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적에 대한 두려움, 늙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거절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회적인 다수에 대한 두려움 등은 인간 행동의 동기가 되는 것이지요. 두려움의 확산은 인간의 상상력과 마찬가지로 끝이 없고 또한 그 두려움 때문에 변화의 기폭제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고,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두려움은 내 생각에 그렇게 있는 허상이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내 마음이 두려움을 만들어 내어 그 속에 살고 있음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사랑으로 직면하면 두려움은 지나가지요. 사랑하면서 살면 쉽습니다.(#깊은산 20181005)

#세월호 참사 1634일째 : 이 차이는 빠르고 심한 급경사/급선회의 직접적 원인이 복원력에 관한 정도나 화물 이동의 정도를 넘어서는 수준의 문제로 됩니다. 복원력이 어떻든 간에 또는 선박 내부에 그 힘이 유한한 양의 화물 이동이 어떻든 간에 이 힘들의 합보다 초월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50도 이상 순간적으로 기울며 오른쪽으로 돌게 됐고 침수와 사람과 화물차의 왼쪽으로 부양이 발생 한 것입니다. 급경사의 순간 선수가 향하는 방향각이 매우 크고 빠르게 오른쪽으로 급선회했다는 것도 자이로컴퍼스의 ‘특정 시간 내의 선수 각도 변화’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존자들의 증언과 일치하게 부양하여 왼쪽으로 날아갔다는 것과 같이 5톤 화물트럭이 왼쪽으로 네 바퀴가 떠서 공중부양하여 날아간 것은 급경사에 따른 낙차 폭이 컸다는 것뿐만 아니라 갑작스런-빠르고 각도가 큰 오른쪽 급선회로 인한 ‘원심력’이 왼쪽으로 크게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전면 재규명)

오늘도 우리는 건너온 바다가 있고 지금 이 순간이라는 바다 저편에 있습니다. 크게 보면 인생의 시작도 바다 저편으로 온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보내신 분의 뜻을 알아 그렇게 사는 것이 믿음이고 깨어있는 삶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그 사실을 일러주시고 그렇게 살아가는 영생의 길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셔서 좋을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그의 아들을 보내신 것이지요. 그것이 하나님이 뜻이지요. 부모가 자식에게 향한 뜻이 그러하듯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복되고 행복하게 사는 것 말입니다. 바다 저편입니다. 그리고 오늘 함께 있는 우리들은 그런 바다 저편으로 함께 여행하고 있는 소중한 동반자들입니다. 수고하고 애쓰셨습니다.(#깊은산 20181006)

#세월호 참사 1635일째 : 사람이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날라 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시내버스에서 차가 우회전할 때, 서있는 승객의 몸은 왼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이는 모든 물체가 스스로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 즉 관성 때문입니다. 승객은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데 차가 오른쪽으로 도니까 승객은 본래 위치인 왼쪽으로 몸이 기울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는 승객이 왼편으로 몸이 떠서 날아라가는 것처럼 되려면 배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요. 배가 갑자기 기울어 승객이 서있던 바닥의 높이가 순간적으로 낮아지게 되면 승객은 가만히 있으려는 관성 때문에 몸이 뜨게 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배가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승객은 몸이 든 채 왼쪽 벽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이 때, 배가 기우는 속도는 지구가 중력의 힘으로 승객을 잡아당겨 아래로 떨어지는 속도보다 빨라야 합니다. 5톤 트럭의 움직임이 보여주는 양상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위와 같은 생존자 증언과 블랙박스의 5톤트럭이 보여주는 상황은 세월호가 일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닌 급격하게 기울면서 오른쪽으로 돌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전면 재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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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   위로부터   깊은산 2018/10/08  199
615   의식수준에 따라   깊은산 2018/09/30  206
614   사랑하는 기쁨   깊은산 2018/09/23  257
613   어떤 기쁨   깊은산 2018/09/16  230
612   영접하면   깊은산 2018/09/09  196
611   하늘의 일   깊은산 2018/09/02  258
610   거듭난다는 것   깊은산 2018/08/26  305
609   깨어 있으면   깊은산 2018/08/19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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