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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삶의 예술 공동체 편지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8/2/11(일)
20170506_122923.jpg (108KB, DN:2)
겸손  


세례요한 당시 유대에는 크게 네 부류의 지도력이 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있었고, ‘에세네파’와 ‘열심당’이 그들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율법을 중시하면서도 세속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존경받는 귀족 계층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권력보다는 종교적인 세력을 가지고 율법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세네파는 일상생활에서 떨어져 사막에 은둔하며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들이었고, 열심당은 로마의 압제 하에서 무력으로 유대를 해방하려고 독립군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께서 등장하시는 것이지요.
알려진 바로는 세례요한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나 사막으로 들어가 에세네파와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성령 충만해서 사막에서 나와 요단강에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돌이키라고 백성을 깨우고 있는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요한이 사막에서 나와 요단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세례를 주자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와서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사람들이 우리에게 물을 것입니다.
“너는 누구냐?”
나는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그럴 때 무어라 대답할까요?
깨어있는 삶이란 늘 이런 물음 앞에 준비되어 있는 삶입니다.
요한은 그 물음을 거절하지 않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하는 사람인지 아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게 구원입니다.

그런데 요한을 찾아온 사람들의 물음과 그 이면을 돌아보면 또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요한을 시험하기 위해서 네가 그리스도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찾기 위해서 요한에게 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협하지는 않을까 해서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묻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기대와 자기들의 욕심으로 묻어 요한을 함정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람들이 헛된 우상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가만히 오늘 나의 말과 호기심의 근원을 돌아봅니다.
혹시 정말 진실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질투와 모함을 위한 것이라면 멈추어야겠습니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말과 행동의 동기를 살펴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물음에 요한은 거절하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대로 엘리야냐고, 예언자냐는 물음에도 아니라고 하며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전하고 있지요.
그리고 자기 뒤에 오시는 이의 신발 끈을 풀만한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 요한의 대답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요한의 겸손함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이 요한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냐고 물었을 때는 물론, 그들이 눈으로 보는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니까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예언자냐고 물었을 때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자신에 대해 다만,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만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예수의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이었고, 하나님 능력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어머니 태에 있을 때부터 성령 충만함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군중이 따랐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인물이었습니다.
태어날 때 아버지에게 천사가 나타나 탄생을 미리 예고하신 분이 계십니까?
세례를 받으려고 수많은 군중이 몰려드는 분이 계십니까?
오죽하면 예수께서 세례요한에 대해,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없다”고 말하셨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세례요한만큼 겸손한 태도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안에는 실제보다 자신을 조금은 더 낫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은근히 과장된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지요.
우월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열등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등감은 우월감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자신을 비하하면서도 속으로는 과장된 자기 자신을 표현하여 스스로 열등감을 보상받는 겁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들 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특별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겸손하였습니다.
또한 그것은 과장된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실제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겸손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누가복음 3장 2절에 표현되었듯이 성령 충만에 의해 비롯된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늘 자신을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나는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의 길을 곧게 하여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상대화되면서 내가 보입니다.
이것이 겸손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베소서 3장 8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모든 성도 가운데서,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과장된 겸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성 프란체스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날 프란체스코의 제자가 환상 중에 하늘 나라를 갔습니다.
그 곳에는 높은 보좌가 있었는데, 그 의자는 비어 있더랍니다.
그래서 “여기 누가 앉을 겁니까?”하고 물었더니, “세상에서 제일 겸손한 성 프란체스코가 앉을 자리다”고 하더랍니다.
제자이지만 자기 스승이 너무 높아진다는 말을 들으니 질투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환상에서 깨어나, 자기 선생님을 시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프란체스코에게, “당신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는 “선생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위선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을 성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자신을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과장된 겸손이요, 위선이요, 거짓말입니다.”고 반박을 했습니다.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자네 그건 몰라서 그래.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내가 사람들로부터 성인이라고 추앙 받는 것을 알지만 그건 나 자신 자체가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 은혜 덕이지. 원래 나 자체는 악한 사람이야. 내게 주신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주셨다면, 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겸손은 그렇게 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쓸모없는 종이라는 표현은 자기 비하라기 보다는 대가를 바라고 어떤 일을 하고 나서 자랑하려는 마음에 대한 경종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겸손함이 마땅한 태도이지요.
성공도 실패도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정성을 다할 뿐입니다.

(요한복음 1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젊은 사자들은 먹이를 잃고 굶주릴 수 있으나 주님을 찾는 사람은 복이 있어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시편 34편 기자는 노래합니다. 어르신들께 무슨 말씀이죠? 라고 물으니 뭐라고 하고 싶은데 잘 표현이 되지 않아 답답한 얼굴들 이십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사고가 나서 다리가 부러지자 어떤 사람은 운이 없다고 불평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여기까지 말하니 Y할머니께서 활짝 웃으시면서 죽지 않아 감사하다고 합니다.ㅎ 그렇지요. 다리가 부러진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도우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그것을 통해 주시는 약속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어떤 고난에서도 건져주심을 받지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다 복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주님은 마음 상한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낙심한 사람을 구원해 주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 상한 사람은 주님께 가까이 있고 낙심한 사람은 이제 구원을 받을 일만 남았습니다.(#깊은산 20180204)

#세월호 참사 1391일째 : 그 원인과 이유가 국민적 이슈가 되었던 시기를 나는 경험한 적이 없다. 잠시 잠깐 결과에 대한 비판, 결과에 대한 분노, 결과에 대한 처벌의 순간은 있어 왔으나 원인과 이유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라고 우리는 스스로를 비판하지만 실은, 과정을 중시할 수 없는 이유 역시 애초부터 원인을 망각하거나 따지지 않는 역사적 습관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 습관은 민족적 수치심에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나라를 빼앗기고 스스로 독립을 일궈내지 못한 자괴감이 뿌리일 수도 있고, 부역이란 원죄를 가리기 위한 수단과 획책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정권의 존재 이유가 실은 명분 없는 쿠데타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모두가 공범이거나 못난 놈들이란 얘기가 될 테지만… 무엇보다 나는 우리의 현대사가 원인과 이유를 따지면 곤란해지는 특정 세력의 손아귀에 의해 지속적으로 주물러져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박민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요한이 잡힌 뒤에 갈릴리로 나아가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요한은 당시 폭군이었던 헤롯에게 긴급조치법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혔으니 예수께도 위험이 다가왔을 터입니다. 그럴 때 보통은 몸을 사리고 숨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요한의 빈자리를 채우고 갈릴리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갈릴리는 당시 사회 역사적인 갈등과 모순이 첨예하던 곳이었지요. 때를 분별하고 만나는 데에는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 그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가야할 곳은 갈릴리입니다. 내가 갈릴리로 가지 않기에 돌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지요. 위험한 사람이 되어 위험한 곳에 서 있지 않는 그는 갈릴리로 나서셨던 예수와 상관이 없습니다.(#깊은산 20180205)

#세월호 참사 1392일째 : 채 2년도 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커브를 그리며 크게 한 바퀴를 돌았고, 마치 세월호와 같은 궤적을 그리고는 새롭게 항해 중이다. 왜 급변침을 해야만 했던가, 이유는 너무나 명백했다. 기울어져 가는 배를 일으켜세운 것은 조타실의 지시나 기관실의 동력이 아니라 국민이었다. 역사에선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세월호의 노란 리본을 보면서 이제 나는 ‘국가’라는, 오천년을 이어왔건 말건 지금 현재 오천만명이 타고 있는 현실의 배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것은 강대국이나 부국, 선진국과 같은 거창한 이름의 배가 아니라 원인과 이유가 분명한, 비로소 국가의 존재 이유를 떳떳이 묻고 말할 수 있는 새로운 궤도의 대한민국이다.(박민규)

그 동안 복음은 광야에만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살고 웅성거리고 상처받고 고통당하고 아파하는 갈릴리는 종교와 성스러움과는 상관이 없었지요. 있다고 하면 그들을 죄인으로 정죄하는 제사장들과 율법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갈릴리로 나서신 예수를 통해서 하늘이 땅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니 땅이 하늘로 올라가 그 어디나 하늘이고 그 어디나 땅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로마와 종교에 의해 억눌리고 학대받는 그 곳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도 권력에 의해 정죄 당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는다는 이들에 의해 이 땅의 사람들이 학대받고 있지 않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종교와 믿음은 정죄가 아닌 용서와 사랑에서 시작합니다.(#깊은산 20180206)

#세월호 참사 1393일째 : 오랜 관성은 여전히 사회 곳곳을 장악하고 있다. 원인과 이유를 밝히면 곤란해지는 그들은 여전히 원인과 이유를 따지지 말라고 아우성이다. 이름을 바꾸고 헤쳐 모여 헤쳐 모여를 하며 그들은 스스로의 원인을 지우고 또 지워왔다. 보라돌이가 뚜비 되고 나나랑 놀던 뽀가 뚜비 손잡고 나타나면 까르르르 시청률이 유지되던 시대도 이제 저물어간다.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 결과만 기억하는 시스템을 그래서 여태껏 물고 붙잡고 있겠지만 그만, 우리는 크게 한 바퀴를 돌았고 여전히 그들은 급변침의 진짜 원인을 모르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배가 침몰하는데 가만히 있으라 외치던 선내 방송을 기억하고 있다. 배가 침몰했는데도 전원 구조를 했다고 버티던 언론들을 기억하고 있으며, 원인을 감추기 위해 똘똘 뭉쳐 날뛰던 정치인들을 기억하고 있다. 이유를 따지면 몰려와 겁박을 주던 관변 단체들을 기억하고 있으며, 이들을 관리하고 개밥을 주던 조직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박민규)

세례요한이 잡힌 뒤 갈릴리로 나와 복음을 전한 예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일까요?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성도? 새벽기도에 열심인 집사님? 헌금 잘하는 권사님? 교회 봉사에 앞장 서는 장로님?... 그럼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살아간다는 증거일까요? 그 징표는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삶이 기쁘고 의욕과 감격과 감사가 넘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유대 땅에는 종교와 율법이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로마가 사람들을 억눌러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잡혀간 자리를 예수께서 채우셨습니다. 가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내 절망과 부끄러움과 패배의 자리에 그가 오실 것입니다. 빈자리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만납니다. 그것을 알아보고 나서는 것이 믿음이고 용기이고 사랑이지요. 그리고 나 또한 내 이웃의 그 빈자리를 채웁니다.(#깊은산 20180207)

#세월호 참사 1394일째 : 우리는 새삼 이게 나라냐, 놀라 외쳤지만 실은 오래전에도 우리는 이런 나라였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 그들이 나라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는 사실이다. 지난 9년간 나라 걱정을 안 하던 이들이 현 정권이 출범하고 8개월 사이 이토록 나라 걱정을 집중적으로 해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답은 한 가지다. 저들은 아직도, 또 여전히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미리 말해두거니와 문재인 정권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그 결과가 아니라 ‘원인’에 있다. 원인과 이유가 분명한, 비로소 국가의 존재 이유를 떳떳이 묻고 답할 수 있는 새로운 궤도의 대한민국에서 이제 그간 외면해 온 과거사의 원인과 이유를 하나하나 밝혀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과 이유를 직시하는 일이야말로 관성에 따른 결과론적인 적폐청산이 아닌, 진정 새로운 궤도의 적폐청산이다. 더 많이 들추고 끝까지 들춰야 한다.(박민규)

지금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이 와 있습니다. 때가 지나갔다거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속이는 것입니다. 지금 말고는 없습니다. 어제도 지금이고 내일도 지금이지요. 그 지금을 만날 때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죽은 후에 어디로 가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이 와 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됩니다. 누구나 햇볕과 비를 받을 수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그렇습니다. 선물을 받았지만 선물인줄 모른다거나 선물을 펼쳐보지 않고 창고 안에 묵혀두고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눈을 뜨면 그 어디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그렇습니다. 복음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하늘로부터 오는 소리이니 이 소리를 듣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깊은산 20180208)

#세월호 참사 1395일째 : 나는 현 정권이 원인과 이유를 밝혀내는 적폐청산의 길을 의연히 갔으면 한다.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그것이 현 정권의 탄생 원인이고, 두 번째는 국가의 존재이유에서 진정한 ‘미래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던 이들이 뼈저리게 느꼈던 참사의 교훈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뿐이며, 그래서 누구보다 이제 스스로 그 이유를 알아야겠기 때문이다. 노란 리본을 닮은 궤적의,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이유를 말이다.(박민규)

그러면 가까이 온 그 나라를 어떻게 맞이할까요? 예수께서는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시몬과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지요. 오늘 나의 갈릴리는 분단된 조국 한반도이고 세월호이고 토론토에서 하는 캠프이고 양로원에서 숙직을 서며 밤을 맞이하는 이곳이고 잘하고 있는데 내 맘에만 걱정스러운 아들이지요. 예수께서는 지금 여기에서 나의 곁을 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예수를 어떻게 만날까요? 시몬과 안드레는 바다에서 그물을 던질 때 예수를 만났습니다. 어부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지 않고 집안에서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으면 지나가는 기회를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나의 일을 하고 있을 때, 나의 바다에 머물러 있을 때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예수께서는 지금 내 곁을 지나고 계십니다.(#깊은산 20180209)

#세월호 참사 1396일째 : 최근 침몰 원인, 304명 희생 원인이 규명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잊히게끔 하려는 현상들이 있는 가운데 4.16연대는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자신의 우선 과제로 선정 강조하고 이에 대한 선명한 과제와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4.16연대는 2기 특조위에 의존하거나 대행을 맡기는 식이 아니라 2기 특조위보다 앞서나가서 견인하고 협력 감시하며 직접적인 규명과 처벌을 위한 운동에 나서야 한다. 직접적인 진상규명 운동에서 핵심적 규명과제와 이에 따른 전략을 수립하고 무엇보다 국민의 힘으로 진상규명을 펼쳐나가도록 4.16연대는 자기 사명을 다해야 한다.(2018전망, 416연대)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그물을 던질 때 그가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물을 던지는 나에게 말씀하시지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어부로 살면서 그물을 던져 고기만 낚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낚는 길이 있습니다. 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이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모두가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만 어떤 사람은 행복하려고 일하지요. 어떤 사람은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을 성공이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가치 있게 사는 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천당 가려고 예수 믿지만 어떤 사람은 사랑하려고 예수를 믿고, 어떤 사람은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정치를 하지만 어떤 사람은 힘없는 이들 편에 서려고 정치를 합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다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깊은산 20180210)

#세월호 참사 1397일째 : 적폐세력으로 인하여 진상규명이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상황인 만큼 2018년 적폐청산 운동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 해수부 마피아 적폐청산은 물론이고 진상규명 은폐와 방해를 일삼았던 자유한국당 등 다가오는 613지방선거에서 416연대의 대응방안을 마련하여 적폐세력을 심판해야 한다. 개헌 등 적폐청산과 관련 한 사회대개혁에 관한 연대를 활성화해야 한다. 지나온 4년을 되새기며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진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우리 모두의 자세로 304명의 희생을 잊지 않고 진실을 끝까지 밝히겠다는 우리의 기억을 위해 광화문 광장 및 전국 각지에 세월호참사 기억비 건립의 중장기적 기억운동 을 전개해야 한다.(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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