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 (n

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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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삶의 예술 공동체 편지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lian.net)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3/11/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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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이틀째를 맞고 있습니다.
오늘 나도 이틀째입니다.
늘 새로운 날이지요.
하루가 지나 이틀째인데, 곧 사흘이 될 것입니다.
오늘이 지나야 내일이지요.
‘오늘’이 절대 가지 않을 것 같지만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땅의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나타난 것은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하지요.
그런데 나타난 것이 전부로 여기고 사니 어리석은 삶입니다.
그렇게 이틀째를 맞이하는 오늘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들어가시는 예수께서는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습니다.
왜 가까이 가셨을까요?
성경에 보면 열매가 있을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보면 무화과의 철이 아니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그 철을 모르시고 가까이 갔을 리도 없고 철이 되지 않은 무화과에는 당연히 열매가 없을텐데 왜 이 장면에 이 이야기가 나올까 생각을 해 봅니다.
잎이 무성한 나무는 그럴 듯 기대가 되는 그 무엇입니다.
그 나무가 그 자리에 잎을 무성히 가지고 있어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나누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잎사귀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무화과 나무로서는 억울합니다.
내 때가 아니니 아직 열매가 없는 게 당연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은 큰 비유입니다.
그래서 엄한 무화과 나무가 나중에 저주를 받아 뿌리째 말라버리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럴 듯한 모습으로 있는 당대의 사람들입니다.
문화와 제도, 종교입니다.
정치인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율법학자들의 열매없는 어리석음을 무화과 나무가 대신 짊어진 것이지요.
이것은 사실은 오늘 세상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우심입니다.
“너 그렇게 살면 안된다. 지금 뭐하고 있니? 그럴듯이 꾸미고 무성한 것처럼 있는 네 안의 모습을 들여다 보렴....”
회칠한 무덤처럼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거울인 것입니다.
오래 살지 않았지만 살아가면 갈수록 그렇습니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가 보다. 그저 자포자기하고... 다 껍데기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한다는 말도 순간을 모면하는 말장난으로 공허하게 남습니다.
꾸려놓은 가정도 들여다보면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는 콩가루입니다.
직장에서 나의 일도 열정과 패기가 아닌 생계수단이 된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잎만 무성한 나무입니다.

말씀 앞에서, 가까이 다가오시는 주님 앞에서 내가 그런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아닌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거기서 시작합니다.

(마가복음 11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아브라함이 번제에 쓸 장작을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칼과 불을 들고 모리아산을 오르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 아들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모리아산을 오르고 계셨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찢어지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아들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내가 나의 모리아산을 홀로 오르고 있을 때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서 나와 함께 그 십자가를 지고 나의 골고다를 오르고 계십니다.
(깊은산20131103)

땀이 피가 될 정도로 두려웠던 십자가이지만 ‘예!’하고 받아들였을 때 깃털처럼 가벼운 부활의 길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내가 사는 삶의 번제이고 부활을 향한 예배입니다.
억지로 가는 길이 아니라 기꺼이 가는 길이니 기쁨과 설렘이 가득합니다.
대가를 바라고 가는 희생의 길이 아니니 차고 넘칩니다.
홀로이니 자유롭고 그와 함께, 그녀와 더불어 가니 넉넉합니다.
찬송과 감사로 가는 예배의 길이니 그러합니다.
오늘도 눈을 뜨면 천국 가는 길입니다.
(깊은산20131104)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절대로 놓을 수 없고 놓아서도 안되는 평생의 의미였습니다.
그것 하나를 얻기 위해 이제껏 살아왔으니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삭도 죽고 아브라함도 죽습니다.
모리아산을 오를 때는 둘이 올랐지만 내려올 때는 홀로 내려옵니다.
이렇게 그 무엇도 없이 홀로 서는 것이 믿음의 완성입니다.
조건이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이미 행복하니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깊은산20131105)

이것을 얻기 위해 기근을 만나고 애굽도 만나고 비겁하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고 잔꾀를 부리기도 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토론토로 떠나와 예가를 꾸리고 교회를 세우고 이웃을 만나고 벗을 떠나보내기도 하며 지금 양로원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다 은혜이고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삶입니다.
그런데 내가 얻었다고 소유하고 안주하려 할 때 모리아산으로 올라 그것까지 번제로 바치라 하십니다.
그것으로 예배(service)하여 돌려 드릴 때 비로소 나는 충분합니다.
없이 있음이고 자유입니다.
(깊은산20131106)

예쁜 재구 강아지 다섯 마리를 낳은 우리 진돗개 백구 롤라가 많이 아픕니다.
한 달간 강아지들을 극진히 키우고 젖을 뗄 즈음 큰 탈이 났습니다.
땅에 찾아온 생명을 만나는 기쁨은 어디에 비할 바가 없는데 그 생명을 오게 하는 통로는 또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는 것같습니다.
생명을 오게 하는 것은 나의 생명을 나누어 주는 죽음을 각오하는 일임을 봅니다.
그래서 또한 내가 죽지 않고 그 생명 안에서 살아 영생할 수 있나 봅니다.
백구 롤라는 자기 생명을 강아지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사실은 그러합니다.
(깊은산20131107)

아픈 롤라는 설사를 하자 먹기를 멈춥니다.
설사를 멈출 때까지 몸이 다 말라가도 아무 것도 먹지를 않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먹기를 시작합니다.
롤라가 자기 몸을 다스리고 조율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삶에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일단 정지하고 거기서 시작합니다.
낫고 싶고 변화하고 싶다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참 어리석습니다.
멈추고 비워내고 다시 시작합니다.
자연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하지 않고는 가나안에서 살 수 없습니다.
(깊은산20131108)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약속으로 받은 독자 이삭도 하나님의 아들로 내어 보내고 열국의 어미가 되어 가나안에서 127세로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라가 땅에서 누린 햇수라 하였습니다.
땅의 삶이 영원할 수 없는 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누리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낭비합니다.
사라는 자신의 수를 누렸습니다.
오늘 똑같이 주어진 하루를 누리느냐 낭비하느냐는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깊은산201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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