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Old 산물넷 : 게시판 : 사진방 : 산(mountain)페이스북블러그깊은물 추모Art of Life Community

처 음 | 하루 살이 | 예가○양로원 이야기 | 묵상의 오솔길 | 편지 | 이야기 앨범 | 설 교 | SPIRIT


토론토 삶의 예술 공동체 편지입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gmail.com)
2018/10/21(일)
20170512_122822.jpg (95KB, DN:1)
우물가에서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피곤하셔서 사마리아 수가성 근처 우물가에 앉으셨는데 그 때가 정오였습니다.
예수께서 바로 그 길이시고 물이신데 어떻게 피곤하시고 목이 마르실까요?
길을 가시다가 피곤하신 예수, 목이 마르신 예수입니다.
예수께서는 속에서 솟아나는 생명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항상 목이 마르십니다.
2002년 한국 월드컵의 영웅 히딩크도 그랬지요.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그것은 해야할 일, 가야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서로 다투고 상종하지 않는 그 한 가운데서 피로한채로 앉아계셨습니다.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과 함께 모두 하나인 영원히 솟아나는 생수를 품고 계신 그 분이 지금 피로하시고 목이 마르신 것은 누구 때문일까요?
그러니 오늘 우리도 목이 말라야 합니다.
목마르지 않으면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이고, 또 누군가를 목마르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길을 가다 우물가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함께 봅니다.

그 때 한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한낮,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물을 기르러 온 여자는 보통 여자는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의 기후에서 한낮은 모두가 밖에 나다니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그 때에 길에 나선 여자는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사람, 가장 외로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오는 그림자가 없는 시간, 자기가 철저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숨을 곳이 없는 자리이지요.
그 정오에 예수와 물 길으러 나온 여자의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납니다.
그 때가 예수를 만나는 시간, 모든 것이 다 드러나 내 수치심과 외로움의 바닥에서 고통스럽고 아파하는 그 시간 정오가 예수를 만나게 하는 가장 적합한 때라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그러니 기뻐하고 고마워해할 것입니다.
나에게 그런 순간이 있음으로 내가 더 깊이 만나고 더 깊이 나아가는 것이지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을 경험하러 온 시간입니다.
더 굴곡이 있을수록 더 높음이 있을 터입니다.
어차피 그것을 하러 왔으니 충분히 경험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마음껏 살아야지요.
지금은 내 시간입니다.
그런 열두시, 정오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우물로 물을 기르러 나왔습니다.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 정오에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여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납니다.
그 사마리아 여인처럼 나의 정오에 물을 길으러 우물로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집안에 머물러 있으면 예수를 만날 수 없습니다.
우물로 물을 기르러 나가야 참 생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이 그렇게 나의 정오에 우물가로 나가 나를 기다리는 예수를 만나고 있는 시간이며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물을 기르러 나왔지만 정말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저 필요해서, 마시면 또 목이 말라지는 물, 그러나 없어서는 안되기에 그렇게 하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물을 기르러왔지만 진짜 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여인,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 우리 앞에 예수는 피로하셔서 앉아 계십니다.
죽을 병에 걸렸으면서도 스스로 병자임을 모르는 것이 진짜 병이지요.
누구에게 무엇을 구해야할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게 나입니다.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구하지만 그것은 채워도 채워도 곧 사라지는 것,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길으러 나와야 할까요?
무엇을 구해야할까요?
물고기를 얻으러 다니고 있는지 물고기를 잡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 아니면 물고기가 없이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옛날에 어느 부자가 외아들을 공부시키러 좋은 스승을 수소문해서 찾았습니다.
부자를 만난 스승은 아이를 맡아주겠지만 조건을 붙입니다.
절대로 때가 될 때까지 아들을 보러오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들을 보고 싶은 아버지는 몰래가서 보고 말지요.
가만히 살펴보니 천자문을 술술 읽고 있습니다.
기특합니다.
2년이 지나자 또 보고 싶습니다.
가보니 아직도 천자문을 읽고 있는 겁니다.
이번에는 속이 상합니다.
3년이 지나자 또 가서 봅니다.
아직도 천자문을 읽고 있습니다.
더 속이 상해 데리고 오고 싶지만 겨우 참고 돌아갑니다.
4년이 지나 또 가서 봅니다.
아직도 천자문을 읽고 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른 부자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선생에게 욕을 해대고 아이를 데리고 옵니다.
그것을 보는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습니다.
부자는 돌아가 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글을 읽혀 보지요.
그랬더니 천자문을 보지도 않고 줄줄 외우는 겁니다.
그래서 사서삼경을 읽게 합니다.
줄줄 막히지 않고 읽습니다.
대학과 더 높은 책을 읽혀도 술술 다 읽어냅니다.
그제야 이 부자는 잘못을 깨닫고 아이를 데리고 스승을 찾아가지만 만나주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바탕을 이미 버려 버려서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공부도 준비가 되고 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보고 알맹이를 보지 못하면 망하게 될 뿐이지요.
물을 구하지만 진짜 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으면 그러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진짜 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물을 기르러 왔지만 자신이 무엇에 목말라 있는지 모르는 여인이지요.
그 갈증을 한 두레박의 물로 해소할 수 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야곱의 우물로 연명하는 여자는 예수께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시간의 그릇에 영원을 담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눈을 떠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깊은산에서 오는 편지

악한 군대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 떼에 들어가 돼지들이 모두 비탈길로 내달아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여기서 돼지는 불결함의 상징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깨끗이 살지 못하고 더럽게 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더럽다는 것은 ‘덜 없다’라고 하지요. 완전히 없이하지 못하고 미진하게 사는 것이 더러운 삶입니다. 그래서 결국 정신없이 바다에 빠져 죽은 돼지 떼처럼 비탈길을 내닫게 되는 것이지요. 정신 차리지 않고 살면 그렇게 됩니다. 생각과 습관이 이끄는 대로 비탈길로 내닫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종말을 향해 내달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끝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순간에 깨어 지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기를 늘 기도합니다.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말고 지금 나의 현실을 주신 하나님을 만나 살아야 합니다. 늙고 병들고 실연을 하고 부도가 나도 그것을 통해 이 땅의 삶을 더 경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깊은산 20181014)

#세월호 참사 1643일째 : 기무사와 국정원은 군대와 국가의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기관으로서 정보수집의 총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를 수사해야 구조와 침몰의 문제에 대한 증거와 단서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무사와 국정원은 여전히 성역입니다. 아무도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고 여전히 장막에 가리워져 진실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작년, 세월호는 처참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왔습니다. 그렇게 어렵다면 인양이 박근혜 정권이 탄핵당할 때 즈음 2주 만에 인양이 되었습니다. 인양 전과 인양할 당시 그리고 인양 후에 해양적폐세력은 유실방지도 부실하게 하고 자꾸 이유를 만들어 끊임없이 훼손하려 들었습니다. 참혹한 참사의 현장이자 진실의 증거인 세월호는 그렇게 훼손되어 왔고 지금도 사실상 방치되고 있습니다.(전면 재규명)

2000마리나 되는 돼지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지켜보던 돼지 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당시에 돼지를 치는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일에 있었어도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던 유대 사회에서 불법이거나 고운 시선으로 비추어지지 않았던 일임이 분명합니다. 마약 밀매와 같은 일이라고 할까요? 어쨌든 거의 전 재산을 순간에 날려버리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2000마리 돼지면 얼마나 할까요? 1마리에 50만원이라고 하면 2000마리면 10억인가요? 그래서 너무 놀라고 두려워서 달아나 버린 것이 이해가 됩니다. 예수를 만난다고 다 좋은 일이 아닙니다. 물론 좋고 나쁘다는 것도 기준이 없지만요. 새로운 생을 시작하고 계획하는 것은 세상의 인연을 끊어 보아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에 연연해서는 좋고 나쁜 것이 있어서는 하나님의 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늘 내가 돼지 2000마리를 순간에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고 볼지 헤아려 보아야겠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가졌다고 하는 것 그 어느 하나도 가지고 다른 세상에 가지 못합니다. 다 놓고 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 붙잡고 연연해하고 있지 않습니까?(#깊은산 20181015)

#세월호 참사 1644일째 : 해양적폐세력들의 결론을 답습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증거에 대한 파악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체조사위원회의 열린안에 대한 파악이 필요합니다. 선조위의 종합보고서와 조사결과보고서 등 기성 결론을 재검증하고 새로운 증거를 분석하며 배제됐던 증거를 다시 복구한 열린안에 대한 ‘독해와 강의’ 등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증거, 특히 블랙박스 영상 복구로 이제는 아무것도 속단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해양적폐세력들이 내린 결론이 부정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해양적폐세력들이 만능열쇠처럼 주문하는 ‘조타, 과적, 복원력 불량’으로 몸통을 가리고 깃털만 처벌하게 한 지금까지의 결과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참사의 원인에 대한 규명은 ‘구조 문제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규명’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전면 재규명)

또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보러온 구경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미쳐서 날뛰며 무덤에 웅크리고 있던 사람이 나와서 옷을 버젓이 입고 제정신이 되어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묶어 두는 일이었습니다. 사회에서 은폐하고 격리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된 기적을 보고 모두 기뻐해야 옳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신들에게 이제 이런 새로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을 기대하고 마음으로 있어야 옳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예수가 그들과 함께 있어 더 놀라운 기적을 행하고 자신들까지 변화시키도록 요청했을 법도 한데 그들은 예수께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들에게서 떠나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이제 적당히 익숙해 있고, 안락한 생활에 더 좋은 세계, 다른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제발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개구리에게는 우물 안이 가장 넓은 세계입니다. 개혁과 변화와 성숙은 이전의 안락과 기득권을 포기해야함을 뜻할 수 있습니다. 비워야 채움이 있는데, 들어갈 자리를 비우지 않고 더 채우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은 땅의 협소함을 내어 놓아야 얻을 수 있습니다. 골고다를 오르지 않고는 십자가와 부활은 없습니다. 사람들의 혼란은 변화의 신호입니다.(#깊은산 20181016)

#세월호 참사 1645일째 : 기성의 결론과 분석이 아닌 문제제기를 하면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관행도 사라져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 법의 판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이유로 금기시하는 현상은 일체 사라져야 할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진실과 증거를 두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대단히 비합리적이며 이는 사회적 합의가 안 되면 증거를 부정할 수도 있다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앞에 성역과 금기, 특수한 존재, 엘리트만의 전유물 같은 것은 절대로 앞설 수 없습니다. 물위의 대형 선박은 선박 무게의 1/100 정도의 외력으로도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게 유체역학에 따른 사실입니다. 지구의 크기를 재려면 그만큼 긴 자가 필요하고 지구의 지름을 재려면 지구 가운데까지 파고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과학이 필요합니다. 과학적 검증은 진실로 가는 데서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 검증은 어떤 정치적 이해득실과 아무런 관계없이 일말의 가능성까지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됩니다.(전면 재규명)

돼지들이 다 죽어 버렸습니다. 돼지 떼는 필요악입니다. 유대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인데 은연중에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었지요. 그것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돼지를 포기하지 않으면 귀신에서 놓여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과 기분, 자신이 소유한 것들을 건드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발 그것을 비켜가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직면하지 않고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부러 직면하게 합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통해서 시험하시고 알게 하시지요. 우상을 버리라구요. 선생님은 제자에게 그런 혼란과 두려움을 직면하게 합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때로는 나의 가족도, 신분도, 학력도, 명예도, 신념도, 종교도 그렇습니다. 제로베이스, 처음 자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고통에는 이유가 있고 질병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고통은 당장은 겪기 힘들지만 그것을 넘어서면 변화와 성숙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파야 큽니다. 아프지 않고는 어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그것을 보고 누리는 눈이 믿음의 눈이고 영성생활입니다. 그래서 영성세계에는 우연은 없습니다.(#깊은산 20181017)

#세월호 참사 1646일째 : 2기 특조위(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전면적 재조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월호참사에 대한 본질과 성격에 대한 단정을 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세월호참사를 재난참사로만 한정하는 경향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이 역시도 확실한 근거 없이 원인을 단정하는 현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월호참사가 재난참사가 아닌 다른 성격의 참사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강제 수사가 필요합니다. 최근 피해자들은 특별 수사단을 설치하라는 요구를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조사권으로는 실체적 규명을 위한 강제력이 제한되어 있는 법적 조건에서 강력한 수사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미 기성의 검경 합동수사본부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결론이 졸속이며 엉터리라는 게 드러났고 사법농단의 한 가운데 있는 법원이 내린 당시의 판결 역시 검경과 해심원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황이 파악되고 있는 지금 강력한 재수사는 당연한 귀결로서 반드시 실행되어야 할 과제입니다.(전면 재조사)

귀신들렸다가 온전해진 그 사람은 예수께 함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예수를 만나 그의 소원이 풀렸고 이제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 은혜를 갚고 싶어 동행을 간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는 “네 집으로 가서, 가족에게, 주님께서 너에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너를 불쌍히 여겨 주신 일을 이야기하여라.”며 거절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물거리고 있지 말고 가서 네 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그와 함께 있는 길이고 은혜를 갚는 길이란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고 온 몸이 빛나셨던 변화산에서도 그랬지요. 베드로는 거기가 너무 좋아서 초막을 짓고 살겠다고 하지만 예수는 그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여기가 좋지만 아직은 이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의 영성은 세상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산 아래를 경험하러 세상에 왔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삶을 위해 있지요.(#깊은산 20181018)

#세월호 참사 1647일째 : 해양적폐세력과 보수 언론들은 선체에 균열과 파공, 즉 어떤 흔적도 없다고 계속 단정했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지면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반드시 제대로 충분히 조사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검증도 없이 해양적폐세력들은 단언하고 언론을 이용하여 선전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외력 가능성 등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열어 놓고 재조사와 재수사가 제대로 충분히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전면 재조사)

진정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산제사입니다. 영은 제한된 시간과 공간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 진리는 한결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와 같은 것입니다. 예배 시간을 지키고 교회당에 나오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수단이고 훈련입니다. 진짜는 그 다음에 그것으로 일상을 어떻게 사느냐 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땅에 오는 일입니다. 2000년 전 예수의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좇아내고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었다면 오늘 정치를 하고 학문을 연구하고 노동을 하고 살림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는 것이 예수의 일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에게서 떠나 가족에게로 가서 그 일을 전파할 때에 사람들은 놀랄 것입니다. 사람들이 놀라는 새로운 일이 시작됩니다. 무덤에서 그만 나와서 혼미한 정신과 혼돈을 넘어서 내가 해야 할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참 예배이고 예수를 따르는 일입니다.(#깊은산 20181019)

#세월호 참사 1648일째 : 육상에 대한 상식은 있어도 바다에 대한 상식, 선박에 대한 상식은 흔히 경험하거나 취득하기가 어려운 정보입니다. 그래서 세월호 상황을 이야기 들어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월호참사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할 때 가장 답답한 것은 그 당시 상황을 안팎에서 모두 다 바라볼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최근 정확한 데이터들이 확보되어 거꾸로 된 리본 모양으로 급선회 한 세월호의 침수, 전복, 침몰, 표류했던 과정을 충분히 3D 동작 영상으로 복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국민 모두가 직관적인 관찰과 이해로 진실에 한발 짝 더 다가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상상으로만 가늠하는 게 아니라 비정상적인 급선회경사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복원하여 현실처럼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를 정밀하게 축소하여 진행한 모형실험을 통해 세월호는 25도 정도 기울면 선미 부분의 화물차를 싣는 양쪽 램프문에 물이 역류, 큰 저항이 발생하여 자력으로는 급선회를 하기가 더 어려운 특징을 가졌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것은 조타로는 세월호를 급선회하기가 가능하지 않다는 새로운 단서이기도 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이 모형실험을 실제 지켜보았으면 정말 좋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국민들이 잘 알 수 있도록 세월호참사 당시에 대한 영상 복원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전면 재규명)

어느 날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죽게 된 어린 딸을 고쳐달라고 간곡히 청합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더 큽니다. 내 힘의 한계를 알게 되고 나와서 엎드려 그 한계를 넘게 되지요. 지금 내가 겪는 환난과 근심과 염려와 상처와 고난의 삶도 그렇습니다. 더 큰 힘, 삶의 본질과 그 존재로 나를 안내하는 은총입니다. 지금까지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고 거기에 휘둘려 살았는데 그것만이 다가 아님을 보게 하는 것이지요. 누구의 발 앞에 엎드려 정말 간곡하게 청한 적이 있나요? 인생을 살면서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대적인 것들을 모두 땅에 내려놓게 되는 순간입니다. 비참하고 비굴하다는 생각도 의미가 없습니다. 평소 굳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의 마음에는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 하나만 있으면 세상을 다 얻는 것입니다. 그런 간절함이 삶에 있습니다. 오늘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린 회당장 야이로는 그런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깊은산 20181020)

#세월호 참사 1649일째 : ‘진상규명이 됐다’는 것은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모습’을 말합니다. 지금까지의 직접적 원인에 대한 규명 과정을 보면 자연적 이유가 아님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인위적인 범위에 진짜 원인제공자, 몸통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진상규명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은 결국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아무도 없는가’에 대한 질문일 것입니다. 자연이 아닌 인위적인 범위에는 당연히 원인 제공‘자’가 존재할 것이고 원인 제공자는 당연히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진상규명을 한다는 것은 진짜 원인 제공자가 피할 수 없도록 과학적 입증과 증거, 조사와 수사, 국민적 압박을 가해 ‘자백’을 하도록 하는 것일 겁니다. 진상규명은 가능합니다.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아무리 높고 높은 성역일지라도 우리는 진실을 규명할 수 있습니다. 촛불국민이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전면 재규명)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다음글    
번호제 목짧은댓글이름작성일조회
618   우물가에서   깊은산 2018/10/21  30
617   예수의 사마리아   깊은산 2018/10/15  136
616   위로부터   깊은산 2018/10/08  125
615   의식수준에 따라   깊은산 2018/09/30  138
614   사랑하는 기쁨   깊은산 2018/09/23  171
613   어떤 기쁨   깊은산 2018/09/16  152
612   영접하면   깊은산 2018/09/09  130
611   하늘의 일   깊은산 2018/09/02  181
610   거듭난다는 것   깊은산 2018/08/26  253
609   깨어 있으면   깊은산 2018/08/19  263

 
다음       목록 홈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