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산에 이끌려서 그저 훠이 훠이 다녀왔습니다.
다 놓고 다녀왔지요.
아내와 7살된 아들 한결이와 함께 백무동 하동바위길로 올라 장터목에서 세석으로 가 일박하고 한신계곡으로 내려왔습니다.
청명한 가을하늘도 만나고, 햇살도 만나고, 구름도 만나고, 안개도 만나고, 비도 만나고, 계곡도 만나고 가을을 잘 보내고 왔습니다.
이미 능선에는 단풍은 다 져서 초겨울이었고, 지리산으로 가는 국도도 온통 서리발로 하앻습니다.

몇년전부터 장수까지 고속도로가 뚫려서 지리산 가는 길이 2시간은 단축되었습니다.
시간에 쫓겨 산에 다녀오는 사람에게는 참 반가운 소식이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처음 지리산을 찾아가던 그 국도로 가보고 싶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옥천에서 내려서 영동으로 무주로 장계로해서 장수로 가는 그 길... 새벽 공기를 가르고 달렸지요... ^^*
서울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해서 장수에 도착하니 8시쯤 되었습니다.
역시 영동의 이원쯤 오니 저수지에 온통 새벽안개로 자욱했고, 장계를 지나가는 그 국도도 싱그러웠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일곱살, 사실은 생일이 늦어 만 여섯살도 되지 않았지요. 일곱살난 아들 한결이가 제일로 인기였습니다.
만나는 어른들마다 장하다느니, 큰 인물되겠다느니 칭찬에 입이 벌어져 다물어질줄 몰랐습니다.
저도 놀랐지요. 백무동에서 하동바위까지 한번 쉬고 1시간만에 올랐습니다.
저 혼자서도 40분 걸리면 잘 갔다고 하는 거린데요.^^*

백무동에 주차를 하고 11시에 오르기 시작해서 망바위에 이르니 2시쯤되었습니다.
망바위는 늘 언제나 그 자리에 오랜만에 찾는 이에게 장쾌한 능선을 선사해 줍니다.

장터목에서 점심을 라면으로 차려먹고, 바로 세석으로 향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니 4시가 다 되어 천왕봉은 아쉽게도 다음으로 미루어야했습니다.
조금 더 서둘렀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는 세석가는 길은 황혼이었습니다.
구름 한점 없는 가을하늘아래에서 맞이하는 지리산 석양, 노을... 장관이었습니다.
그 호젓한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새벽이면 새벽이라, 낮이면 낮이라, 저녁이면 저녁이라 좋네요.... ^*^
겨울이 다르고, 여름이 다르고, 가을이 다르고, 또 맑은 날이 다르고, 흐린날에는 또 다른 선물로 다가옵니다. 산이.

한적한 세석에서 일찌감치 쉬었는데, 한참 자고 일어났는데도 11시, 12시였습니다.
산에서는 늘 선잠을 잤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푹 잘 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맑던 하늘이 밤이 되니 무서운 바람과 안개로 가득찼습니다.
전날 일몰을 찍으며 내일도 촛대봉에서 기가막힌 일출을 찍겠거니 기대했는데.... 아쉬웟지요.
그래도 비를 만나고 안개를 만나니 특별한 산행입니다.

한신계곡은 늘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길같았고, 늘 서둘러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이번에는 이른 아침을 먹고 호젓하게 내려오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윽하고 정말 운치있는 길이었습니다.
뱀사골도 그렇지만, 곳곳의 폭포와 계곡은 깊은산만의 맛과 멋이었습니다.

어때요? 이 길... 다른 계곡처럼 유명하지 않고, 그만큼 단풍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백무동으로 내려설수록 단풍이 고와지고, 길가에 떨어진 오색 낙엽들이 참 고왔습니다.
인적이 드물어 호젓하고 여유로와 산행하기 참 좋은 길이었지요.

이렇게 만난 2003년 가을 지리산,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