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봄 산행기(1) : 다시 장터목으로

시방 느낌은 고요하고 차분합니다.
걸음은 느리고 머 리는 맑습니다.



지난 27일, 28일 여섯 살난 한결이와 깊은물, 그리고 한결이 할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몇분의 벗들과 함께 지리산을 올랐습니다.
제 안에 쉬고 싶은 마음이 많 아 다시 가장 익숙한 백무동으로 올라 장터목에서 일박을 하고, 일출을 보고 세석을 들러 한신계곡 을 타고 다시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았지요.
출발전부터 많이 설레였습니다.
지 난 가을 이후 거의 일년만에 다시 오르는 지리산이었습니다.
철쭉이 만개할 시기라 세석의 고 운 철쭉도 보고 싶었구요, 일상에서 희미해져 가는 '나'의 마음, 나의 뜻, 나의 몸을 다시 세우고 싶 은 내적인 열망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밀려다니며 살 수만은 없다...
그런 느낌과 각오가 다시 올 때 떠난 길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길의 출발을 어렵게 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과감히 떨쳐낼 수 있음이 감사입니다.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그저 살아가는 순간, 잠시 물러남이 참 소 중함을 다시 깨닫습니다.
돌아와 보는 사람, 일, 관계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돌아와 읽는 성경이 어찌 그리 달고 사랑인지요.
여전히 그것들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하니 모든 것이 변해 있습니다.
아니, 깨어나 보니 모든 것들이 이미 깨어나 있었습니다. ^^*

산을 내려오 는 길에 여섯 살난 한결이에게 물었습니다.
지리산이 좋아? 에버랜드가 좋아?
당연히 지리 산이 좋다고 합니다.
서울에 다 와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고민을 합니다.
말을 못합니다.
둘 다 다 좋아.... ㅠㅠㅠ
어리석은 질문, 물음이 잘못되었지요.
지리 산은 지리산이어서 좋고, 에버랜드는 에버랜드여서 좋은데 말입니다.
이번 산행은 한결이가 어 느새 커서  깊은산인 아빠와 지리산을 오르며 같은 경험을 나눌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내가 지리산을 만나 다시 참 사람이 되고,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깊은산으로 살게 되었지요.

삶이 힘이 드는 이유 : 중심으로~



이번 산행에서 가졌던 물음, 테마는 '중심'이었습니 다.
가운데로, 중심으로 나와서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주변에 머뭇거리지 말고 한 가운데 로 나와 주인으로 살고, 또 우주의 중심, 생명의 근원으로 나와 머물러 있어야하는데 다른 곳을 기웃 거리고 있습니다.
기도는 내가 다시 중심에 나오는 것이고, 수련은 그 중심으로 인도하는 길입 니다.
하나님은 중심이십니다.
역시나 산을 오르는 일은 힘이 드는 일입니다.
산을 받아들이기에, 아니 산의 품에 안기기에는 찌든 때와 땀을 흘려야만 합니다.
정반합이고 압력입 니다.
이번에도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어느 순간은 한발자욱도 뗄 기력이 없어 주저 앉고 만 싶습니다.
또 평소보다 많은 짐을 지고 있어서 짐의 무게도 내 어께를 누르고, 발을 휘청이 게 했습니다.
그런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어린 한결이를 데리고 가는 길 이라 빨리 산장까지 올라가 짐을 내려 놓고, 내려와서 한결이를 데리고 가야한다는 '염려'와 '근 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급'했습니다.
내 짐도 짐이지만, 한결이를 데리고 오는 할머 니와 할아버지, 아내가 걱정되고 염려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페이스보다 빠른 걸음으로 쉬지도 못하고 올랐습니다.
보통 3시간 30분의 길을 짐을 지고 3시간만에 올랐습니다.
너무 힘이 들었지요.
그래서 오르면서 누려야할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다시 나와 '싸움'만 하면서 올랐습 니다.
그래도 몇분 차이가 나지 않는데 그렇게 나를 재촉하고 몰아대고 있습니다.

돌 아보니 내 인생입니다.
내 삶입니다.
산에 오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페이스'입니다.
자기 속도와 자기 호흡을 알아차려서 그것에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땅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산이 보이고 내가 보이고 그 너머의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페이스를 지키 지 못하는 것은 염려와 근심입니다.
염려하고 근심해 보았자 내 속만 다치지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차라리 행복하게 산행을 하며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것이 나도 좋고 남도 좋습니다.
내가 행복해야 함께하는 일들이 행복한데, 내가 벅벅거리니 다른 사람도 벅벅거리게 합니다.
여력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자기 학대인데, 그것이 옳은줄 알고 그렇게 해야 '직 성'이 풀려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다 '자기 만족', '자기 의'입니다.
돌아갈 길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내게 주어진 길 즐기면서 행복하게 앞만 보고 갔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힘이 덜 들 었을 것입니다.
내 페이스 지켜서 내가 먼저 구원받고 내가 먼저 누리고 갔으면 하늘을 조금 더 먼저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중심에 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혼자 하는 산행이 참 행복했었는데, 함께 하는 산행은 또 다른 가르침과 깨달음을 던져 줍니다.
그래 서 삶은 '예술'입니다.
이제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온화하게 내 길, 내 짐, 내 방향을 잘 보고 가 겠습니다.

지리산 봄 산행 기(2) : 일출  



이번 산행의 날씨는 천혜의 날씨였습니 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이 장터목에 오르기까지 이어졌습니다.
보통 밑에서는 맑다 가도 산에 오르면 비를 맞기가 일수인 것이 지리산입니다.
사실은 구름 속을 걸으면서 비를 맞 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장터목산장에 오르기까지 맑은 기운 이 그대로였습니다.
골짜기를 타고 산에 오르다 보면 조금은 갑갑한 느낌이 있습니다.
아 름다운 숲과 길이 열려져 있지만 그것이 미쳐 보지 못하고 호흡을 놓치고 마는 거지요.
그럴 때 마다 문득 문득 저 멀리 고개너머 나무가지 사이로 열리는 하늘이 있습니다.
그 하늘이 산에 오 르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는지 모릅니다.
한 걸음도 뗄 수 없다가도 두 다리에 힘이 붙고 걸음이 살아나는 것은 참 신비스럽습니다.
백무동으로 지리산에 오르는 길에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게 됩니다.
그런 고비와 한계를 넘으면 몸이 자연스러워지고 이제 산을 만나게 되고 산의 품 에 안겨 그 가운데 있음을 느끼게 되지요.
산에 오를 때 힘들다 힘들다 하는 사람은 정말 힘이 들지 않은 사람입니다.
정말 힘이 들면 힘들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게 되고, 아무 힘도 들지 않 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각자 저마 다의 고비와 한계가 있고, 거기에 맞추어 자기 걸음, 호흡으로 묵묵히 꾸준히 가다보면 어느새 그것 을 넘어서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각설하고...
물론, 지리산의 날씨가 맑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날이 맑으면 눈 앞이 확트이고, 저 멀리 굽이치는 능선들과 내가 온 길과 가야할 길을 잘 볼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능선과 골짜기를 넘나드 는 구름과 구름의 바다, 신비로운 안개의 잔치, 그 황홀한 춤을 만나고 경험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 습니다.
그러니 날이 맑은 것은 맑은 것이고, 흐린 것은 흐린 것, 비를 맞은 것은 맞은 것일 뿐 이지 산에서는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
다만 그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생각 속에서 만 좋다 나쁘다 판단할 뿐입니다.
이찌했든 지리산에서 일출을 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일년에도 몇차례 보기 어렵지요.
백번 산에 올라도 한번 보기 어렵다는 것이 천왕봉의 일 출입니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받아들여야지 요.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장터목산장에서 하루를 묵는 것이 보통입니다.
산장에서 천왕 봉까지 걸어서 보통 1시간 정도의 거리입니다.
이번에 일출 시간이 5시 15분이었으니, 일출을 보려면 4시 정도에는 일어나 랜턴을 들고 산장을 출발해야했습니다.
장터목 산장에 도착해서 저녁 진지를 해먹고 나니 어두워졌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습니다.
산장에는 보통 9시가 소 등시간입니다.
종주산행을 하면 대부분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 걷습니다.
산장 도 그런 일정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기 위해 숙소로 들어 가는데 동쪽에서 보름달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크고 노란지, 산에서 저렇게 큰 달 을 보기는 저도 처음이었지요.
잠시 달을 바라보면서 생각이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바 로 이어지는 생각.... 내일 일출을 보겠구나. 하하하하.....
기쁜 마음으로 일행과 4시에 만나기 로 약속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니 세석가는 길인 서쪽으로는 달이 지고 있 었고, 하늘은 검푸르렀습니다.
달빛 덕에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주 청명한 날이었습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새벽 3시 50분부터 천왕봉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일출이 5시 1 5분인데 서두른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다들 오르는 길을 따라 함께 올랐습니다.
달빛이 밝아 랜 턴이 없이도 오를 수 있는 새벽길이었습니다.
달빛이 참 밝음을 오랜만에 마음껏 경험하였습니 다.
인공빛이 없이 달빛에 비추이는 만물이 얼마나 고요하고 신비한지요.
달빛에 비추인 만개한 철쭉, 제석봉의 고사목 고원의 색깔과 조화가 얼마나 부드럽과 알음다운지 모릅니다.
순 간 순간이 행복한 걸음, 걸음이었습니다.
안개를 맞지 않고 그 길을 오르기는 처음이었지요.
천왕봉, 일출을 기다리며 뼛속까지 스며드는 찬바람을 참으면서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천왕봉 바위에 앉아 일출을 기다리는 마음은 기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늘 그런 순간에 가슴에 와닿는 뭉클함과 감격과 감사가 있습니다.



서쪽으로 기우는 달이 점점 빛을 잃어 희미 해질 즈음 동쪽에서는 손톱같은 밝음이 솟아오르다가 순식간에 온 하늘에 햇살이 퍼져갔습니다.
일출, 아침햇살이었습니다.
간밤의 지친 몸과 마음, 그 기운, 음습하고 음울한 모든 생각 들을 떨치고, 새벽추위에 떨고 있는 몸까지 환하게 녹여주는 힘있는 아침햇살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 그렇게 햇살이 퍼지는 아침을 맞는 것이 소원이지요.
사람으로 와서 그런 아침을 맞아 이제 생을 낮으로 정오로 살아가기를 다시 한번 소원하였더랬습니다.
달빛이 빛을 잃지 않는 한 아침햇살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아침해를 만나는 그 길을 고맙게 인도한 달빛이지만, 진짜 아침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 달빛은 사라져야 합니다.
그림자입니다.
사실은 아침해 도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요.
늘 그 자리에 있는 태양인데 지구가 돌아서 태양을 받게 되는 것이 지요.
사라짐도 나타남도 없는 그 '있음'의 세계와 또 지금 '되어감 - 행함'으로 살아가는 세계 를 다시 만나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떠올라 힘있게 온 산 하를 비추는 햇살의 퍼짐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새벽에 오르던 그 길이지만 이미 그 때의 그 길은 아 니었습니다.
우리는 늘 그렇게 새로운 길, 처음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다시 장터목 산장으로 내려오니 한결이가 밤새 앓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꿈속에서도 다리 아프다고 잠 꼬대를 했다나요.
아쉽게도 한결이와 깊은물은 일출을 보기 위한 새벽산행을 하지 못하였습니 다.
사실 한결이가 어제 저녁 진지 때도 다리가 아프다며 어른들이 떠 먹여주는 밥을 먹고 일 찍 잠자리에 들어서 걱정이 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고 산장을 나서는 한결이는 '잠 을 많이 자고 나니 다리가 아프지 않다'며 제일로 생생한 것이었습니다.
감사하기도 하고 기특 하기도 합니다.
계속 이어지겠지만, 그날 하루 한결이가 제일 앞서 산행을 진두지휘하였다는 것 아닙니
까?.. ^_^

지리산 봄 산행기(3) : 아는 길과 모르는 길  



다리가 아프다며 밤새 앓던 한결이가 아침을 먹 자마자 먼저 길을 가자고 재촉합니다.
우리 일행 중에 제일로 생생합니다.
할아버지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오늘도 '성공'해야한다고 앞서 갑니다.
또 누가 맨 앞에 가야하고, 누 가 다음에 가야하고... 교통정리를 혼자서 다합니다.
입장도 많고 생각도 많습니다.
할아 버지와 할머니가 있으니 누구 눈치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합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있을 때보다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 기(氣)가 사는 아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 다.
아이가 자라고, 아이가 어른(얼인)이 되는 것은 그렇게 무조건 주어지는 사랑의 기운을 힘입 는다는 것입니다.
참된 가족의 시작은 무조건적인 수용, 전폭적인 지지에서부터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입어 또 '독립'을 하는 것이라고 배웠지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 입니다.
한결이가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의 전폭적인 지지와 격려를 받지 못하고, 엄마 아빠의 간섭에 있었으면 아마도 그렇게 앞서서 산행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때로는 '어리광'도 필요 합니다.
인생사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깊은물과 처음 함 께한 지리산이 이번에 오르고 걷고 내려온 코스였습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러면서 위축되 고 주눅이 들어있던 깊은물과 함께 오른 지리산... 험한 길과 날씨에 고생도 하였지만, 참 아름다운 세석이 그녀의 눈과 마음에 가득히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깊은물은 세석에 반해 있습니다. 
그리고, 산의 멋도 이제 많이 알고 만나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
그렇게 함께 오르는 이들을 통해 다시 배우고 깨닫고 각성합니다.
장터목에서 세석 가는 길은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과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길 이 다릅니다.
아침이 다르고 낮이 다르고 저녁이 다릅니다.
산은 그렇게 빛의 색깔과 방향 에 따라, 또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처음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산이 있어 행 복합니다.
산은 그런 다름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하나로 조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 도 그렇습니다.
잘 보고, 잘 들으면...
그런데 다르다고 서로 싸우고 험집내고 상처내지요.
아쉽고 미안합니다.
그렇게 산에 오르면 산 밑에서의 이야기, 일들이 상대화되고 용서가 되고 화해가 됩니다.



산에 오르면서 철쭉 때를 맞추기가 이번이 처음입니다.
사 람들이 많을 때 산을 찾지 않고, 또 일과 사정에 때를 잘 맞추지 못해서이지요.
이제 이번에는 연이 되어서 지리산 철쭉을 보았습니다.
함께 동행한 이의 표현을 빌려서, 철쭉의 수줍음을 지 리산에서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산밑에서는 저에게는 철쭉보다는 진달래였습니다.
철쭉 은 너무 화려하고 고고한데 비해 진달래는 부드럽고 수줍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산에 피는 지 리산의 철쭉은 너무 수줍고 조용했습니다.
고요했습니다.
부드러웠습니다.
그렇게 산의 철쭉임을 만났습니다.
그야말로 신의 정원이었습니다.
장터목에서 세석가는 길의 단 아함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네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면서 아쉽고 서운한 마 음으로 천천히 천천히 걸었는데, 어느새 연하봉을 지나 굽이굽이 능선을 타고 촛대봉입니다.
촛대봉에서 내려다보는 세석평전.... 그 풍광은 언제 보아도 장관입니다.
신선이 사는 곳, 어느 해 겨울에는 세석평전에서 노루가 뛰어 노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제 피기 시작하는 야생 화들은 세석의 그런 아름다움을 더 빛내어 주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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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에서 세석까지는 아무리 쉬어쉬어 가도 2시간이면 가는 길입니다.
아침진지하고 산책하는 기운, 마음 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그 길은 걸은 행복은 '크로노스'로
는 산행 중 얼마되지 않는 시간이지 만, '카이로스', 절대적인 시간으로는 우리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과는 달리 산행 에 지친 몸과 바쁜 일정은 산에서 우리를 빨리 내려서게 했습니다.
그런데, 또 내려가는 것이 문 제입니다.
산은 올라가는 것만큼 내려가는 것이 힘들고 '조심'스럽습니다.
사람의 기운과 아집과 집착을 땀과 호흡으로 다 빼어내야 산의 품에 안길 수 있는만큼, 또 내려서는 길도 그렇습니 다.
잘못하면 산에서 얻은 기운을 다 놓칠 수 있는 길이 하산길입니다.
생각에 빠지면 은 혜를 다 쏟아 버립니다.
시간을 재고, 거리를 계산하면서 내려가는 길은 더 없는 고역입니다.
내려가는 길도 즐기면서 천천히 생각하지 않고 '지금'으로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찌 하였든 서너시간은 내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으로는 벌써 산밑, 주차장에 가 있습니다.
그러면 한 걸음을 떼기도 고역입니다.
그냥 주저앉아 버리면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내 려갈 수 없습니다.
꼬박 서너시간은 채워 걸어야하는데, 30분 걷고는 벌써 지쳐 있습니다.
압력이 차고 때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또 인생을 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 그렇습니다.

이번에 세석에서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한신계곡'의 길도 그렇게 나와 싸우는 길이었습니다.
한결이를 맡으신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하나 더 울러맨 베낭은 천근이요, 만근이었습니다.
다리는 풀려서 후들거리고, 생각은 생각으로 꼬리를 물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든지 잊혀졌다고 생각한 복음성가가 입에서 흥얼거려집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손을....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날
인도 하소서. 인생 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그렇게 손을 붙잡고 가야하는 길이었습니다.
지리산을 많이 올랐지만, 아직 한신계곡은 눈에 익지 않습니다.
또, 길은 험한데, 이정표 도 적절히 있지를 않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똑 같은 돌길입니다.
아는 길과 모르는 길의 차이입니다.
아는 길을 걸어갈 때는 여유를 알아차리고 틈새를 보면서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길을 갈 때 여지없이 그 얄팍함이 드러나고 맙니다.
그런 길에서 이정표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모릅니다.
그것에 의지합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 지 모르면서도 그것에 나를 다 걸고 있습니다.
지프라기라도 잡으려는 그렇게 참 어리석고 연약 한 인생입니다.
언제쯤 나도 아는 길도 모르는 길처럼, 모르는 길도 아는 길처럼 그렇게 걸어갈 수 있게 될
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이제 넘어야할 한계요, 만남입 니다.
그리고, 또 다른 수련테마입니다.
아는 길과 모르는 길...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 생각이지요.
아는 길도 모르는 길도 없습니다.
그냥 길만 있습니다.
산만 있습니 다.
의지하고 맡기고 내 할 일, 내 갈 길만 가면 되는데 말입니다.
아는 길과 모르는 길.....
이번 지리산 봄산행에서 다시 한번 나를 추스리게 하는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런 길, 과정을 넘어 산을 내려와 일상에 돌아온 나....
변화되어 있습니다.
머리는 맑고, 걸음 은 느립니다.
같은 하늘, 일, 사람, 만남이지만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또 익숙해지겠만, 그 런 변화와 거듭 살아감이 내 안에 많이 일어날수도록 점점 더 그것에 가까워지겠지요.
그 무엇 이라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에....
감사입니다.

아, 숨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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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생각해보니 올해가 지 리산과 만난지 햇수로 10년째 되는 해이네요.
감개무량입니다.
지리산을 몰랐으면 내 삶 이 어떠하였을까 생각하니 더 그렇습니다.
그러네요.
어느새 그렇게 되었습니다.
몇 번을 올랐는지 이제 두손가락으로는 세어지지도 않습니다.
일년에 서너번씩 오른 해도 있었으 니 족히 20~30번은 오른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며칠씩 이어지는 종주도 꽤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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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과의 인연은 대학 1학년 때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80년대 중반, 대학에 들어가면서 열리기 시작한 역사와 사회에 대한 새로운 지평은 범생이로 자라 온 나에게는 걷잡을 수 없는 충격이었고, 도전이었고, 힘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정말로 세상이 어찌하지 못할 사람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매일이 새로 웠고, 하루하루가 긴장이었고 떨림이었던 시절입니다.
그 때, 그 순간들, 그 마음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이마에는 빛이 나고, 얼굴에는 미소가, 입술에는 굳은 의지가 서립니다.
그런 시절 조정 래의 태백산맥은 나의 모든 삶을 전율케 해주었습니다.
역사와 함께한 붉은 빨치산들의 숨결 과 그들의 순결함, 그들의 사랑, 그들의 꿈을 그리며 나는 내 안의 나와 함께 지리산을 동경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렇게 태백산맥을 처음 읽을 때는 '역사'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혁명'이 숭 고했고,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습니다.
'염상진'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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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학시절을 보내고, 군대 다녀와서 태백산맥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제 정말 지리산을 오르고 싶어서 다시 읽었습니다.
그 때 내 인생에서 한 호흡을 끊고 산에 오르려 했습 니다.
그런데, 20대 중반, 그리고 90년대 초반에 다시 읽는 태백산맥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 왔습니다.
다시 읽는 태백산맥은 '사람',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는 '염상진'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는데, 두 번째 만남에서는 '김범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고 그와 하나될 수가 있었습니다.

지리산과의 만남도 그 러했습니다.
나의 첫 지리산행은 비장함 그 자체였습니다.
함께 오른 이들도 그러했지 만, 산을 오르는 한 발자욱 한발자욱이 긴장 그 자체였습니다.
떨림이었습니다.
이 산에 흘려진 피와 이 산에 묻힌 한과 아픔의 세월들을 온 몸으로 맞이하며 4박5일을 걸었더랬습니다.
산을 오르고 내리며 내내 이런 노래를 불렀더랬습니다.
".... 불덩이로 일어난 전사의 조국사 랑이 골 깊은 허리에도
울부짖는 가슴에도 덧없이 흐르는 산하...
저 산맥도 벌판도 굽이 굽이 흘러 가슴 깊이 스미는 사랑...
나는 저 산만 보면 소리 들린다
눈쌓인 저 산만 보 면......."
그런 산이었습니다.

그렇게 지리산을 처음 올랐을 때, 역사가 나를 불렀습 니다.
그러나, 지리산에 오르고 오르다 보니 사람이 보이고, 내가 보이고, 산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그 너머에 계신 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 오를 때는 땅만 보고 걸었습니다.
그리고 '힘듬'과 '긴장'이 나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내 생각과 경험대로 산을 보고 만나 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오르니 함께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 숨결 과 그 마음이 읽혀졌습니다.
네 번, 다섯 번 오르니 그제사 '내'가 보였습니다.
내가 보이 니 산이 미소를 짓더군요.
여섯 번, 일곱 번 오르니 '산'이 있었습니다.
산이 나를 품어주 고 보듬어 안아주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나'도 없고, '산'만이 있는 그런 황홀함이 있습니 다.
열번 오르고 보니 이제 하늘이 보이고, 그 너머에 게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리 산은 내게 선생님이며, 또 다른 하늘, 하나님에게로 이르는 친구와 길이 되어 주었습니다.
산 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세상으로부터 내몰린 사람들을 그 넓은 품에 품어 주어 다시 부활케 했습니 다.
부활과 생명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비람을 만나 그것이 무엇인지를 보았지 요.
참 아름다운 세계가 여기 있습니다.

여기 나 있음.....
그리스도 완전 충만 일체 은혜 감사! 아, 숨채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