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깊은산
2019/10/27(일)
축복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앞장서서 가시는데 제자들은 놀라고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상식이 통하지 않은 세계를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부자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데 누가 구원을 받을까요?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이삭도 부자였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돈을 사랑했고 부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 그들의 상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형통한 것이 그가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지요. 가난한 나그네 시절에도 그는 복 받은 사람이었지요. 그가 어떤 상황과 처지도 받아들였기에 형통한 것인데 바리새인들은 겉모양만을 보고 매달렸습니다.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다 받습니다. 연애할 때 상대를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지려고 하는 순간 사랑은 사라집니다. 다 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받는 것이 연애고 사랑입니다. 결혼한 부부가 연애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지요. 너무 많이 가져서 그렇습니다. 자식도 가질 수 없는데 가지려고 합니다. 가지지 않았을 때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였는데요. 성경은 그런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땅에서도 백배나 받고 오는 세상에서도 영생을 누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놀라는 것은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기준을 내려놓을 때 자연스럽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깊은산에서오는편지 201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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