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우리가 결혼한지 10년이네요.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아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거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 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거야
생각나?
지금부터 십사년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께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런 거야
그냥 서로를 오래 오래 보게 하는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탕부올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 드러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해주었지
아! 그곳의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서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한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 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야 할 미래와 교체되었고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 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은 손으로 짚어 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때
그 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 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꺼야

우리가 가끔씩 떠올리며 웃음짓는 내가 직접만든 우리 결혼식 순서지에 실었던 시지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느냐고 묻지 않는다고 했네요.
그렇게 오늘 당신을 보고 '사랑'에 대해 물어 본적이 언제인지 가만히 돌아봅니다.
다행인지 아닌지 그런 물음을 물어본 기억이 몇번 없네요.
언제부터인지 사랑한다고 말해본 기억도 까마득하군요.
낯선 사람이 없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일수밖에 없는데 그런 사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마냥 우리도 그런 '일상'을 살았던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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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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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거꾸로 '너 아내를 사랑하지 않지?'라고 물으면 확실히 말할 수는 있습니다.
부정이 더 강한 긍정일까?
가만히 그것이 무엇일까 돌아봅니다.
시인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느냐고 묻지 않는다고 한 까닭이 조금씩 살아보며, 나이가 들어가며 이해를 해 가니 고마울 뿐입니다.
정말 사랑한다는 말은 그 때나 가서 할 수 있을 게예요.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이 정말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랑이 내 집착이고 소유욕과 같아지고 있음을 보면서 화들짝 놀라곤 하지요.
사랑이 내 안에 흘러나와 사랑이 나를 통해 살게 해야하는데 자꾸만 작아지고 좁아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물을 수 없나 봅니다.

당신을 보며 처음 올렸던 고백이 있지요.
세상 모두를 사랑하기 전에는 연애나 결혼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던 시퍼렇게 날이 선 젊은 오만이 가져온 절망을 헤처나가면서 이제 당신 한 사람을 사랑하며 세상 모두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당신이고, 당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생에 최고의 '선물'입니다.
또, 그 어느 순간 내가 좋아했던 것, 내 마음을 위로했던 것을 부러 피하면서 죽음을 살아가려고 했던 삶에서 다시 생명으로 숨통을 트여 가게한 선택이 당신이었지요.
그래서 정말 당신으로 인해 내 삶은 달라졌고, 또 그런 삶을 살아왔습니다.
내 거울이고,
내 빛이고,
내 등이고,
내게 정직하고 치열한 수련장이 되어 주었습니다.
다 덕분입니다.
십년을 살아오며 하루같았습니다.
그렇게 당신 없으면 내가 어떠했을까 떠올리면 끔찍합니다.

당신은 내 반쪽입니다.
내 다른 면에 서 있어서 고맙습니다.
그런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어서 든든합니다.
그렇게 부족한 나인데 그 부족을 결핍으로 느끼지 않고 채움으로 만들어 주는 마술사가 당신입니다.

이제 십년...
결혼이라는 날로 기억하는 우리의 만남인데, 새로운 출발인데, 그 시작을 돌아보는 날입니다.
정말 그렇지요.
그런 날이지요.
미안하고 아쉽게도 아직은 열심히 일할 때라 흔히 하는 여행도 하지 못하네요.
시작한 일, 벌려놓은 일들을 채워가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 그렇습니다.
그렇게 핑게를 대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안을 채울 여유도 없구나 하는 미안함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축하하고 기쁘게 내가 내 생을 선물로 잔치로 만들어야하는데 너무 무심하구나 하는 안쓰러움입니다.
오늘만은 그렇게 우리 안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때로 돌아보면 싱거운 우리 지난 날들이 아니었음이 감사합니다.
우리 철없던 시절, 젊은 날에 함께 했던 여행, 사진, 웃음, 이야기들이 있어 가슴 뭉클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 맑은 얼굴, 젊은 얼굴을 사진으로, 글로 들여다 보고, 한결이 홀쪽한 아이 때 모습 들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명상에 젖어 듭니다.
생각이 멈추지요.
내게 '하시리'입니다.
그런 따뜻함과 사랑스러움과 환함이 천국이지요.

사랑하는 아내 깊은물님,
이제 살아온 10년, 이만큼이었는데, 앞으로 10년은 어떨까.. 생각만해도 떨립니다.
우리 살아온 10년도 헤쳐왔는데, 이제 못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새파란 젊은 혈기로도 도림교회와 홍광교회에서 6년을 그렇게 대견스럽게 잘 보냈고, 또 비자없이 캐나다에서 백척간두에 서서 배수진을 치고 이어온 날들이 있는데, 앞으로 10년이 그 보다 더할 리가 없지요.
고생하셨고, 잘 해오셨습니다.
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랑을 찾아 함께 채우고 만나가는 또 다른 10년을 꿈꾸어봅니다.
한결이와 더불어 하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소중한 토룐토 예가, 사랑하는 또 다른 우리 자녀들, 식구들과 함께 가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님, 결혼 10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