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5:1~11 ( 0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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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네사렛 호숫가의 만남  
[2000년 4월 5일 수요일 예배 설교]
게네사렛 호숫가의 만남 : 눅5:1~11



갈릴리에 있는 유명한 이 호수는 이름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이름 그대로 갈릴리 바다였고, 또 하나는 디베랴 바다, 그리고 게네사렛 호수라고 불리우고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비옥했던 호수가에서 있었던 한 만남의 시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맑은 날 아침이었습니다. 하늘에는 흰구름이 군데 군데 있었고, 아침햇살은 환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갈매기들도 한가히 날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어부들이 아침이었는데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침에 그물을 씻고 있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고기잡이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침이 가장 활기찰 때이고, 수확의 시간입니다. 만선의 고동을 불며 돌아와 분주하게 고기를 실어 나르고 다듬고 파느라 북새통을 이루는 것이 어촌의 아침 풍경입니다. 그런데 이 날 어부들은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탕을 쳤던 것입니다.
문득 눈을 들어보니 여러분에게 이런 날은 없었는지요? 기를 쓰고 수고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날 문득 내 손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그런 순간 말입니다. 전도서에서 솔로몬 왕이 말하듯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해 아래 새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렇습니다. 남들은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고, 행복해 보이고, 기쁘고 즐거워 보이는데 나만 풀이 죽고 기가 죽어 있습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일상과 앙상해지는 이상과 꿈들이 보입니다. 자식들에게 매이고, 남편에게 끌리고, 아내의 눈치로 살아가게 되는 나날이 되고 말았음을 어느 순간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라고 생각해도 남아 있는 것은 무거운 짐밖에 없는 것입니다. 맑은 마음보다는 흐려진 마음으로, 밝은 얼굴보다는 어두운 얼굴로, 바른 뜻보다는 어거지로 남아 있는 고집만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초라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맑고 화창한 아침, 배에서 빈 그물을 내려서 씻고 있는 어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런 삶의 그늘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에 보면 바로 이 때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얻은 것은 없이 체념하고 그물을 씻고 있는 이 어부들을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그들은 놀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인생에 지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으로 혼미한 그들이 오늘 게네사렛 호숫가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오신 예수님께서는 게네사렛 호수가에 있던 배 두척 가운데 한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 배는 시몬의 배였습니다.
배에 오르신 예수님은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셨고, 그 배에 앉아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밤새 수고하였지만 텅빈 배로 돌아와 그물만 씻고 있던 시몬 베드로는 놀랐고 의아스러웠습니다. 왜 하필 제 배에 오르시는지 예수님께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픈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올 것을 가르치셨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물을 빨리 씻고 피곤한 몸을 쉬고만 싶었던 시몬이었지만 어느새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속에 푹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참 편하고 행복하다. 어떻게 저렇게 내 속에 갈급한 것들, 필요한 것들을 하나 하나 일깨워주실까?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비록 호수에서 고기만 잡고 있었던 무식한 어부였지만,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들을 때는 얼굴에 환한 미소가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내키지 않게 배에 예수님을 태우고 또 육지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 있었지만 바로 그곳이 천국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게네사렛 호숫가에는 배가 두 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배에 오르셨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배에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오셔서 이제 "육지에서 조금 떨어져 달라"고 부탁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나랑 좀더 가까이 있자. 여러분, 그렇게 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구원의 기쁨과 영생의 감사가 넘쳐나지 않았습니까? 또 넘쳐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홀로 있는 우리에게, 외로움에, 상실감에 지쳐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찌들어 있는 세상에서 조금만 떨어져서 이제 나와 함께 있어 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맞이한 우리는 행운아들입니다. 우리 배에 예수님이 오르셔서 세상을 향해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까닭입니다.
은혜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라"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나의 관심과 나의 생각에서, 조금 물러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조금 더 가까이 있어 보는 것입니다. 쓸쓸하게 풀이 죽어 있지 말고, 허탈한 손짓으로 그물만 씻고 있지 말고, 이제 내가 주는 평안과 기쁨 안에서 함께 살자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너무나 쉽게 어두움과 답답한 구렁으로 빠져듭니다. 사실 우리의 손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나의 생각과 관심, 나의 기준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보면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도구로 하나님이 세상을 향하여 귀하게 사용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는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홀로 있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 시간은 바로 경건의 시간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생에 개입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게네사렛 호숫가의 만남은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시몬의 배에 오르신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무어라 하셨습니까? 우리 함께 4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눅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만 듣고 있지 말고, 이제 시몬 네가 한 번 나서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수동적으로 받고만 있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이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다시 한번 던져보라고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시몬은 속으로 웃었습니다. 내가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깊은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니 얼토당토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깊은데는 고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깊은데는 그물이 바닥까지 닿지 않을뿐더러 밤새도록 온 호숫가를 휘젓고 다녔는데도 얻는 것이 없었는데 또 헛수고를 하라고 하는구나 투덜거렸을 것입니다. 하기가 싫었습니다. 이제 좋은 말씀을 듣고, 마음도 평안을 얻었고, 하나님의 약속과 그 소망 속에 위로를 얻었으니 이제 집에 가서 아내와 아이들 얼굴도 보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인자하신 얼굴, 확신에 찬 눈빛을 보았을 때 베드로는 그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게네사렛 호숫가에서의 만남은 여기서 절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냥 자기 경험만을 믿고 고집을 부렸으면 만남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이 예수님의 부탁을 들어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구원의 은혜, 영생의 기쁨을 선물로 주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머물지 말고 계속 나아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영적인 유익이고 성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사랑하며 세상을 살고, 그 은혜와 기쁨을 충분히 경험하라고 하신 뜻이 있습니다. 깊은데로 가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인생의 밤이 다하도록 그물을 내리고 수고하고 애썼는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은 나의 생각과 경험, 사람의 힘과 능력의 안에 머물러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만나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모습은 다릅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정말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가득합니다. 이제 머물러 있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더 깊은데로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하겠습니다. 고여있는 물은 썩게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지 않으면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태아가 자라지 않으면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밝은 빛을 볼 수가 없습니다. 밀알이 썩지 않으면 싹을 내고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죽지 않으면 온 곳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늘 삶만이 있습니다. 육신의 죽음은 새로운 삶,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영생임을 알기에 우리는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도 새로운 생명, 더 깊은데로 가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통해 세상에 그 뜻을 전하시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일어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깊은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는 모두가 나만의 깊은 곳을 가지고 있을줄 압니다. 어부 베드로의 깊은 곳은 밤새도록 수고해도 고기를 잡지 못했던 그 게네사렛 호숫가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깊은 곳은 그가 그토록 핍박했던 교회였습니다. 성프란체스코의 깊은 곳은 그가 혐오했던 문둥병자였습니다. 여러분의 깊은 곳은 어디입니까? 여러분의 자식입니까? 여러분의 남편, 혹은 아내입니까? 애쓰고 수고해도 아무 열매가 없던 태신자입니까? 전도입니까? 있는 것 없는 것 다 바쳐 뼈빠지게 봉사해도 누구에게 좋은 소리 한번 못듣는 주방봉사입니까? 이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부르시는 예수님이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기를 쓰고 수고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날 문득 내 손에 아무 것도 없는 허무함과 절망감, 실패와 낙담, 그물만 씻고 있던 그 체념에서 이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짐으로 맑은 마음과 밝은 얼굴로 영생의 삶을 오늘 앞당겨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하나님은 이 시간도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깊은 곳에서 고기를 잡은 새 경험을 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과의 만남을 좇았습니다.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일어난 새역사를 경험한 베드로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가 고기를 많이 잡자 어떻게 했습니까? 7절에 보면 동무들을 손짓하여 불렀다고 했습니다. 자기 혼자만 은혜와 감격에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동무들과 나누어 가진 것입니다. 호숫가에 있던 다른 배를 불러서 그 은혜의 열매를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래도 두 배가 모두 잠기게 될 정도로 고기는 충분했습니다. 베드로 혼자만 고기를 잡았으면 한 배에 채웠을 뿐입니다. 그러나, 또 한 배를 같이 불렀기에 그 배도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우리의 자세는 이것입니다. 나누어 가질 때 더 풍성해집니다. 나누어 가질 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기적의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만남 앞에서 베드로와 그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 일을 보고 놀랐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놀랍니다. 놀라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순간 순간 놀라고 감격합니다. 모든 것이 늘 새롭고, 모든 것이 늘 감사합니다. 그러나 무감각한 사람은 아무리 신기하고 놀라운 일을 보아도 반응을 하지 못합니다. 참 불행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앞에 엎드려 말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놀람과 죄인이라는 느낌은 사람이 하나님의 뛰어난 거룩과 능력을 만나는 그 자리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외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불러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봉사할 기회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의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아버지의 마음과 또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 몸을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는 아들의 순종을 온 몸으로 느끼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아비가 되어 보십시오. 자신을 죽여 제물로 삼으려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그 신세를 한탄하는 아들이 되어 보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게네사렛 호숫가의 만남을 우리에게 열어 놓고 계십니다.
문득 돌아보니 내 손에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허탈한 그 순간에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런 우리를 보시고 이제 배를 조금 육지에서 떼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조금 떨어져서 우리를 지치게 하고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한 그 모든 것에서 조금 떨어져서 우리가 온 곳을 돌아보고, 우리가 가야할 목적을 바르게 살피고, 우리를 정말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 아래 잠겨 하나님의 도구로 거듭나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면 이제 일어나 깊은데로 그물을 던져서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고 그 기쁨과 감격에 덩실 덩실 춤을 추며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만을 좇아 살아가는 게네사렛 호숫가의 그 만남이 오늘 우리들의 것입니다.

<기도>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기준과 우리의 가치를 다 내려놓고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를 초라하게 하는 그 모든 것이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우리 안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우리의 영원한 기쁨과 감사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과 만나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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