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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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산 오동성 목사의 설교입니다.
본문: 눅18:35~43 (eastsain@chollian.net) ( 120715)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2/7/16(월)
주일 낮예배 :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본문 : 누가복음 18장 35절~43절
제목 :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일시 : 2012년 7월 15일, 주일예배
           
(어린이 설교와 파송)

어린이 여러분, 함께 본문 41절과 42절을 영어로 다시 읽어 볼까요?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Lord, I want to see," he replied.
Jesus said to him, "Receive your sight; your faith has healed you."

어린이 여러분, 지난 한 주간을 한마디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신나요. 기대가 되어요. 기적같아요. 그렇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 기적이 아닌 것이 없답니다. 모든 것을 다 기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매일 기적을 누릴 거예요. 얼마나 신기해요? 자고 일어나니 이렇게 캐나다에 있네요.^^ 걸어서 한국에서 토론토까지 올라고 생각해 보세요. 가능했을까요? 아마 가능해도 어린이 여러분들이 어른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을거예요. 또 오늘 예배를 통해서 한 주간의 그 느낌을 돌아보고 그 느낌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도 살펴보세요. 함께 읽은 말씀은 예수님이 한 눈먼 사람에게 물어주신 물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물으시나요?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하셨지요. 오늘도 예수님께서 어린이 여러분에게 같이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니? 대답해 보세요. 그러면 예수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봐라!”하시지요. 너의 믿음이 너를 보게 했다고 하셨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 예수님이 주시는 참 믿음을 찾아 교회학교로 어린이 여러분을 파송하겠습니다.

(설교)

오늘 함께 읽은 성경 말씀은 한 눈먼 사람이 눈을 뜨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서 눈먼 사람이 눈을 떴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는 깨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잠을 자고 있다가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이지요. 잠잘 때는 의식이 없고 눈이 감겨 있어 볼 수가 없습니다. 누가 만지고 괴롭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잠에서 깨고 나면 의식이 돌아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 바람도 없이 세상을 살다가 종교를 가진다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종교는 눈을 뜨고 바라고 따르고 찬송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살 무언가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봅니다.

35절을 함께 읽습니다. “예수께서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일어난 일이다. 어떤 눈먼 사람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셨나요? 여리고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은 일어나는데 언제 일어나나요?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이르셨을 때에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가는 길이었지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 사명을 이루러 가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여리고를 들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할 일을 하지 않고 그것이 두려워서 여리고로 가지 않았으면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돌아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여리고로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야하는데 여리고를 피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고 어디에 있는지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우리 캠퍼들은 한달간 어디에 왔나요? 캐나다에, 왜? 영어공부를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러 왔습니다. 영어를 사용하고 외국인을 만나고 캐나다를 여행하고 체험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고 싶으면서도 부모님과 가족을 떠나는 것이 슬프고 가보지 않은 외국에 나오는 것이 무서워서 캠프에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올해 캠퍼들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데 어떤 해에는 부모님이 캠프를 가라 가라 해도 싫다 싫다 하며 억지로 온 캠퍼들이 있었습니다. 왜?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있는 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캠퍼들은 용감하게 캠프에 와서 여리고에 이르렀으니 이제 일이 일어날 겁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한 걸음을 가는 것이 삶입니다. 토론토에서 양로원을 인수해서 일을 시작해 보고 싶은 요즘 저의 길도 딱 그렇습니다. 그리로 가고는 싶은데 여리고를 피해서는 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 돌고 돌아서 여리고로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근 반년을 끌고 끌었는데 이렇게 가게 되었으니 이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거기에는 누가 있었나요? 한 눈먼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뭐하고 있나요? 구걸하고 있습니다. 왜 구걸했을까요? 눈이 멀어서 그렇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니 구걸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구걸이 뭐하는 거예요? 한 푼 줍쇼 하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구걸해 본적이 있냐고 다들 물어보니 다 구걸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물어볼께요. 구걸해 본적이 있나요? 뭐가 구걸이예요? 사람들에게 사랑해 달라, 이해해 달라, 아껴달라 요구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상처받고, 좌절하고, 망가져 가는 것이 구걸입니다. 대가를 바라고 구걸하는 인생은 참으로 비참한 인생입니다. 구걸하지 말고 대가를 바라지 말고 내가 사랑하면 되고, 내가 이해하면 되고, 내가 아껴주면 됩니다. 그렇지 못하고 구걸하니까 상처받고 구걸하니까 초라해지는 겁니다.
그러면 구걸은 왜 하나요? 네. 눈이 멀어서 구걸합니다. 이 사람이 눈을 떴으면 구걸했겠어요? 아니지요. 길가에 앉아 있지 않습니다. 길은 가라고 있는데 길에 주저 앉아 있으니 눈이 먼 것입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보지 못한다는 거지요. 있는 것을 보지 못해요. 누릴 수 있는 것을 못누리는 거예요. 그러니 주저앉아 있습니다. 있는 것만 누리고 살아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없는 것만 보면서 달라고 하니 구걸이고 눈이 먼 것입니다. 자 돌아보세요.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요?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이 옵니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바람이 있어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손이 움직이고 발을 뗄 수 있어요. 자동차가 있고 비행기가 있습니다. 우리 캠퍼들 비행기 없었으면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요? 이미 다 이루어졌고 충분히 아름다운 세상인데 그 안에 있는 사람만이 부족하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구걸을 하지요. 그런 눈먼 사람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함께 36절과 37절을 읽습니다.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어 보았다.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고, 그에게 일러주었다.“
자, 그렇게 눈이 멀어서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이 사람은 그래도 귀가 열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어요. 어떤 사람은 그 소리도 못듣지요. 왜?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남이 아무리 뭐라해도, 선생님이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자기 생각에 꽉 막혀 있다면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어떤 소리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해서 전해주시는 소식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변화의 기회, 구원의 찬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 사람은 듣고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말입니다. 모르면 물어야 합니다. 물으면 다 알려주지요. 모르면서도 아는체 하면 알 수 있는 길이 없지요. 사람들이 뭐라고 대답해주나요? 예수가 지나가신다고 일러주었지요. 물으면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그 친절을 받을줄 아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지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라구요? 지나가시는 분이십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지나가게 했습니다. 지나가는 예수님은 그들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이 이야기 앞에서 우리 모습을 돌아봅니다. 오늘 하루 길에서 주저 앉아 있지 않고 우리의 길을 가는 법, 또 우리 캠퍼들은 이제 시작한 캠프를 행복하게 이어가는 길을 만나는 거지요. 우리 곁을 지나가는 소리를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도 놓치지 마세요. 부모님이 하는 소리, 자녀들이 하는 소리, 선생님의 말씀, 하늘의 햇살, 불어오는 바람, 내 마음의 감정의 변화들까지 들으면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어보세요. 어떻게요? 물어봅니다. 물음에 또 길이 있습니다. 어떤 물음을 묻느냐가 우리 삶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38절과 39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러자 그는 소리를 질렀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앞에 서서 가던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크게 외쳤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 눈먼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오늘까지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이겠지요? 예수님이 지나가는데 눈 뜨고 멀쩡한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놓칩니다. 지나가게 내 버려둡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하고 간섭하면서 이러쿵 저러쿵하면서 살지요. 그런데 이 사람은 소리를 질러요.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이대로 살다갈 수가 없기에 그러합니다.
또 내가 불쌍한 사람인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이것만도 대단한 겁니다. 불쌍한줄 아니 불쌍한데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쌍하면서도 불쌍한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줄 몰라요. 우리 캠퍼들 왜 여기에 있나요?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어서 이렇게 멀리 지구 반대편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냥 왔다가 빈손으로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한 시간 한 시간이 오늘 하루가 됩니다. 그 하루 하루가 한달이 되지요. 곧 지나갑니다. 지금 한 시간을 잡아야 합니다. 정성을 다하고 애를 써보는 거예요.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알차게 의미있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훌륭하다고 칭찬을 할까요? 아니지요. 보세요. 앞에 서서 가던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습니다. 앞선 사람들이 늘 문제입니다. 자기가 더 잘난줄 알고 다른 사람, 다른 일이 끼어드는 것을 못마땅해 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금방 위축이 되고 눈치를 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그것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언제 변화하고 다른 삶을 살겠어요. 마음에 다짐과 숙제를 가지세요. 나 소리지르겠다고, 나 변화되겠다고 말입니다. 이 사람은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니 더욱 더 소리를 지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렇게 말고 다르게 살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40절을 보세요.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지나가는 예수님을 멈추게 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간절히 외치는 겁니다. 물두하고 파고 드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겁니다. 공부를 잘 하고 싶은데, TV가 보고 싶고, 게임이 하고 싶고, 친구랑 수다를 떨고 싶어요. 그래서 금방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을 잃어버리고 TV와 게임에 빠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함께 40절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오니,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리고 오라고 분부하시지요. 그러니 그가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이 또한 기회입니다. 막상 멍석을 깔아놓으면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캐나다에 그렇게 오고 싶었지요? 여러분이 캐나다에 올 수 있게 된 것, 아무나 올 수 있는 거 아닙니다. 한국에서만도 천만분의 일의 확률을 뚫고 기회를 잡은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이 기회를 활용해야 합니다. 가까이 오는 거예요. 망설이지 말고 다가옵니다. 우리가 세상에 온 것, 절호의 찬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생을 허비할 수가 없지요. 정말 잘 살아보아야지요.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요. 사랑하면서 살아야지요. 웃으면서 기쁘게 살아야지요. 몰라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겁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가까이 오면 달라집니다. 가까이 오세요. 여러분의 가까이는 어디인가요? 누구에게 가까이 가야하겠습니까? 학생이 가까이 가야할 곳은 학교이고 공부예요. 선생님이지요. 그런데 다른데 가까이 가면 어찌하나요? 주부가 가까이 가야할 곳, 학자가 가까이 가야할 곳, 음악가가 가까이 가아할 곳이 있습니다. 교회에 왔으면 목사님에게, 예가에 왔으면 깊은산에게 가까이 와야 합니다. 친해져야 합니다. 가까이 와야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음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41절과 42절입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주님,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자, 가까이 오니 기회를 얻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는 말씀은 하나님이 늘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하는 선물입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큰 소리로 간절하게 외치던 이 사람은 적어도 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주님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나요? 볼 수 있기를 원하면 눈을 떠라하십니다. 하면 됩니다. 진정 눈을 뜨기 원하면 눈이 뜨여질 것입니다. 그게 언제일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꿈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꿈을 꾸지 않아서 이루어지지 않을 뿐입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어떠한 꿈이든지 3대가 꾸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대까지 이어지는 꿈을 갖기가 어려워서 그렇지요.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것은 너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원하는 것이 있는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아내와 남편은 서로간에 정말 원하는 것은 사랑하며 사이좋게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살다보면 요구가 생기고 불만이 찾아오면서 사랑하며 살고 싶어하는 밑마음을 잊어버리고 다투고 싸웁니다. 다투고 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인데 그 밑마음과는 다르게 점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지요. 이번에 양로원 계약을 진행하면서도 그렇습니다. 협상이란 것이 여러 가지 상호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부딪히고 감정의 상처를 입다가 결국 협상이 결렬이 되지요. 그런데 이 때 보아야할 것은 정말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원칙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서로 감정도 이해관계도 한걸음 물러설 줄 아는 것이 지혜이지요.
이렇게 정말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는 것은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있으면 그렇게 하며 됩니다. 그런 믿음이 너를 구원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믿음과 구원은 다른 말로 하면 기억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Self rememberance입니다. 자기를 기억하는 거란 뜻이지요. 원래 뭐든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원래 그런 나를 기억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못한다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이지요. 예수님은 그것을 하게 하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은 그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데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원하는 그것을 찾아서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이야기가 오늘 우리의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낯설고 새로운 변화의 자리에 들어선 우리 캠퍼들, 그리고 늘 다른 날들을 살아가며 또 다른 날을 꿈꾸며 예배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눈이 멀어 구걸하던 눈을 떠서 부족하고 없는 것을 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충분히 누리며 다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내 생각과 고집에 빠져서 지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소리를 다 듣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또 큰 소리로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칠 수 있는 힘과 기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부르실 때 쭈뼛쭈뼛하지 말고 용기내어 한걸음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뭐해주기를 바라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보기를 원한다고 대답했던 눈먼 사람처럼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해야할지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믿음과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곧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라가고 사람들은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주신 삶에 정성을 다하며 귀를 기울여 살아가게 하옵소서. 모르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묻게 하시고, 주께서 주신 기회를 얻어 소리지르며 외칠 수 있는 용기과 열심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물으실 때에 우리의 눈멈을 깨닫고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말씀드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삶에 깨어 사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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