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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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산 오동성 목사의 설교입니다.
본문: 창13:8~18 (eastsain@chollian.net) ( 120513)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12/5/16(수)
주일 낮예배 : 떠나간 뒤에  


본문 : 창세기 13장 8절~18절
제목 : 떠나간 뒤에
일시 : 2012년 5월 13일, 주일예배
           
(설교)

오늘은 캐나다에서는 Mother's Day이고 한국 교회에서는 어버이주일로 지키고 있기도 합니다. 기념일은 기억하려고 정한 날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날을 기억하고 참 고마움을 가슴으로 느끼고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세상에는 우리 부모님이 포함되고 우리 자녀들이 포함되어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은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일을 다하신 것입니다. 못난 부모, 할 일을 못한 부모는 없습니다. 먼저 돌아가신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자녀들은 태어난 것만으로도 그 일을 다한 것이지요.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할 때 우리는 화목한 가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글월 한편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머니는 나를 이렇게도 잘 낳고 기르셨는데 나는 어머니를 낳기는 커녕 보살피지도 못하네. 불효자인 내가 부끄러워 쓸쓸한 발걸음만 떼어 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픔도 느끼고 기쁨도 느끼고 감사도 느끼고 원망도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머니께서 잘 낳아 길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가장 큰 보답은 이제 내가 어머니를 낳아드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내가 어머니를 낳다니요? 어머니를 어머니로 모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내가 어머니로 모셔야 어머니가 어머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니 불효자로 쓸쓸한 발걸음만 뗀다는 것이지요. 어버이 주일에 우리 잊지 말고 기억하기 원합니다.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으니 이제 우리가 어머니를 낳아야할 때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나오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본향을 향해 가는 우리 인생을 비유하는 이야기인데, 더욱이 오늘 우리들은 정든 고향, 익숙한 곳을 떠나 이곳 캐나다에서 새로운 도전의 삶,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가고 있기에 남의 이야기로 읽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신지요? 여러분은 어떤 꿈을 찾아, 어떤 약속을 따라 지금 여기까지 와 있습니까?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십여년의 시간들을 이곳에서 보내며 어떤 일들을 만나오셨는지요?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그 이야기를 다 쓰지 못할 것같지 않습니까?
아브라함과 함께 길을 떠난 이들 가운데 조카 롯이 있었습니다. 나그네 된 땅에서 가난하고 힘겨울 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혈육이자 벗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앞부분을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큰 부자가 되고 나니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함께 머물 땅이 너무 좁아서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사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곤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본 아브라함은 속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가족 간에, 친구 간에, 교회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너무 많이 가져서 그렇습니다. 가지지 않았을 때는 오히려 서로 위하고 채워주는 연민과 사랑이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서 그렇습니다.
자 이렇게 다툼이 일어나자 아브라함은 롯에게 말합니다.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너의 목자들과 나의 목자들 사이에, 어떠한 다툼도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한 핏줄이 아니냐! 네가 보는 앞에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 따로 떨어져 살자.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어떻습니까? 여기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성숙한 선택과 지혜가 있습니다. 첫째로 그에게는 서로 간에 다툼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한 핏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다툼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한 핏줄이라는 사실, 우리는 원래 하나라는 사실을 잊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너와 내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한 형제와 자매입니다. 한 아버지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다투지요. 그것이 아직은 불완전한 인간, 상대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비애입니다. 교리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죄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것을 인정하고, 다툼이 있다면 따로 떨어져 살자고 합니다. 다투면서까지 같이 붙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잠시 떨어져 보는 것도 지혜입니다. 떨어져 있어 보면 알게 됩니다. 서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였는지를 말입니다. 우리 예가에서 7년째 여름캠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전 세계에서 부모를 떠나 아이들이 찾아와 저와 같이 한 달간 먹고 자며 지냅니다. 그 시간동안에 제가 만나는 가장 뭉클한 장면은 부모와 함께 있으면서 다투고 미워하고 원망하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을 그리워하며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며 새롭게 배웁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렇게 그리운 부모와 왜 그렇게 다투며 살아 왔을까 죄송해 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지요. 그것이 사랑이고 지혜입니다.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간에 다툼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같이 막무가내 남편은 다툼이 일어나면 끝까지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물고 늘어졌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조급하고 불안해서 그랬던 것같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아내는 잠시 떨어져 봅니다. 당장에 불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라앉은 다음에 차분히 이야기를 꺼내주지요. 많이 고마웠던 기억이 납니다. 자식들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결혼한 자녀는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떠나보내지 않으면 다투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도 그랬습니다. 모리아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떨어져 살게 하셨지요. 아무리 뱃속의 아이가 이쁘다고 해서 산모가 아이를 뱃속에서 내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죽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런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피해주는 것이 상책입니다.
셋째로 아브라함은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양보하는 미덕입니다. 사실 가부장제 사회 질서에서 삼촌의 권위로 내가 여기할테니 너는 저기하라고 우길 수 있을터입니다. 그러나 어른인 아브라함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린 조카 롯은 눈에 보기에 좋은 요단 들판을 선택하여 가다가 그곳의 죄악에 빠져서 곤역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척박한 땅이지만 가나안 광야에 머물러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양보하는 미덕을 지녔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생각했던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약속으로 주신 가나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약속을 잊지 않았고, 그것을 끝까지 이루어가려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 안에 다툼과 미움이 있습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고 답답하십니까? 이런 아브라함의 선택이 여러분의 길을 아름답게 열어주어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으로 가는 이정표가 되어주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지는 말씀, 우리 함께 14절부터 17절까지 말씀을 한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14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15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16 내가 너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누구든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의 자손을 셀 수 있을 것이다.
17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니, 너는 가서, 길이로도 걸어 보고, 너비로도 걸어 보아라."

자 여기에 또 새로운 이정표가 또 있습니다. 14절에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간 뒤에’라고 했습니다. 이 때가 어떤 때인가요?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때는 아브라함에게는 큰 실망과 좌절의 때였습니다. 혈혈단신으로 고향과 친척을 떠나 약속을 따라 순종하여 낯설고 물설은 가나안까지 왔는데, 믿었던 하나뿐인 조카가 그를 배반한 것과 마찬가지였지요. 양보는 했지만 내심 서운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다시 이제는 나 혼자라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만감이 교차했지 않았을까요? 살기 좋은 곳, 물이 많고, 기름진 곳을 택해서 조카가 아브라함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남겨진 땅은 척박하고 메마른 사막과 같은 땅이었습니다. 그 때의 아브람의 마음, 그 막막함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는 나 혼자인 것같고 버려진 외로움이 급습해 왔을 터입니다.
바로 그러한 때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때는 어떻습니까? 시방 느낌은 어떤 순간에 놓여 있습니까? 혹시 오늘 나의 모습이 아브라함의 모습은 아닌지요? 그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셨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그러한 순간이, 좌절과 절망의 때가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와 말씀하시는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수지 맞는 것, 속된 말로 땡잡은 것 아니겠습니까? 절망과 좌절과 배신감과 막막함에 주저앉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홀로 두지 않으시고 말을 거셨습니다. 말을 거시는 하나님,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홀로이지 않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그 때에 하나님을 만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때입니다.
자 그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네.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네가 있는 그 자리에서 눈을 들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나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왕년에는 어땠는데, 장차 이렇게 될꺼야 라는 공상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했으면 실패한대로, 실연을 당했으면 실연을 당한대로, 친구와 다투었으면 다툰대로 그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의 문제, 나의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그 다음이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아파서 병원에 가는데 어디가 아픈지 모른다면 제 아무리 명의라도 그 환자를 고쳐줄 수가 없지요. 아픈 거기에서,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거기서 눈을 들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눈을 들까요? 다툼과 원망의 눈, 미움과 질시의 눈일까요? 아니지요. 지금까지 그랬다면 이제는 거기서 믿음의 눈, 영의 눈을 들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과 어두운 땅의 눈이 아니라 희망과 사랑과 빛의 하늘의 눈을 들라는 말씀입니다. 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 있는 곳에서, 바로 거기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처해있는 바로 그 형편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기가 출발점입니다. 다른데서 시작할 수 없습니다.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서야할 곳은 바로 거기가 출발점입니다. 거기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계시이고, 이것이 꿈의 실현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눈에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어 영원히 이르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보이는 만큼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갔더니 교보빌딩에 대형 현수막으로 나태주 시인의 시가 걸려 있더랬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보는 만큼이라는 것입니다.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보지 않으면 나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꿈꾸지 않으면 그것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기도하지 않으면 무엇을 주셔도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인지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보게 될 때에 그 ‘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다시금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바라보십시오. 그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지요. 너는 가서, 길이로도 걸어 보고, 너비로도 걸어 보아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음이 있습니다. 앉아만 있어서는, 말만 해서는 그것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보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어나 종과 횡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발 닫는 곳을 하나님은 선물로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 약속에 따라, 비전에 따라, 꿈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너에게 주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뒤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바라보고, 일어나 행할 때 그것을 네게 주겠다 말씀하십니다. 말씀에 따라, 약속에 따라 그 꿈을 이루어 가는 오늘 하루, 여러분의 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그렇게 힘과 용기와 믿음과 도전을 주십사 기도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18절입니다. “아브람은 장막을 거두어서, 헤브론의 마므레, 곧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살았다. 거기에서도 그는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장막을 옮기고,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면서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습니다. 말씀을 들은 우리의 시작입니다. 일어나 가서 단을 쌓고 예배하는 삶입니다.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는 태도로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삶의 시작이고 마무리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곳곳에서 단을 쌓고 그 은혜로, 그 힘을 입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온갖 다툼과 시비가 있는 세상 한가운데 저희가 있습니다. 가장 믿었던 이들도 나를 떠나고 나 혼자만 동떨어져 있는 외로움에 뭍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자리에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믿음의 눈을 뜨게 하시고,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꿈과 비전을 주셔서 일어나 동서남북, 위 아래로 걸어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가만히 앉아 바라보기만 하거나 말마 하거나 생각만 하지 않고 그렇게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발 딛는 곳, 그만큼을 주시겠다하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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