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18:38~9:16 ( 120219)
2012/5/6(일)
주일 낮예배 : 나와 빌라도  


본문 : 요한복음 18장 38절~ 9장 16절
제목 : 나와 빌라도
일시 : 2012년 2월 19일, 주일예배

(어린이 설교와 파송)
어린이 여러분, 함께 19장 7절~9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볼까요?
7 The Jews insisted, "We have a law, and according to that law he must die, because he claimed to be the Son of God."
8 When Pilate heard this, he was even more afraid,
9 and he went back inside the palace. "Where do you come from?" he asked Jesus, but Jesus gave him no answer.

유대 사람들은 예수님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나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죽게 되신 거예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니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믿으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들은 빌라도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것이 두려워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다 말씀하셨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에릭이는 어디에서 왔나요? 하나님에게서 왔지요. 하나님이 보내서 세상에 온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사는 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구원을 받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아들 에릭이를 교회학교로 파송하겠습니다.

(설교)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함께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푸른 움을 돋게 하기 위해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잠시라도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를 올리자고 약속했었지요? "첫째로 오늘도 살아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둘째로 오늘 하루도 즐겁게 웃으면서 건강하게 살겠습니다. 셋째로 오늘 하루 남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게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기로 했었습니다. 어떠셨나요? 그렇게 기도하면 정말 그런 하루의 나날들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대표님은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다가 다시 눈을 뜨니 20분이 지나가 버렸답니다. 그래도 그렇게 약속을 기억하고 또 만나주니 많이 고마움이 많습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왕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살아 당당하게 사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왕으로 살지 못하고 종으로 살았고 그래서 왕이 되려고 서로 다투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다른 나라에 사셨지요. 이미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왕이니 부족한 것도 모자란 것도 없고 늘 사랑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고 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 말씀은 왕이신 예수님께서 드디어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이야기입니다. 38절 하반절에 보면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던 빌라도는 다시 유대사람들에게 나와서 말합니다. "나는 그에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소."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유대사람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모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빌라도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힘이 없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는 사람을 죽이고 살릴 권한이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였지요.
왜 그럴까요? 세상의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빌라도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지켜야할 것이 많았지요. 그가 로마 총독으로 누리고 사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오히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생각도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많이 가지고 살아가면 그만큼 약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제일 무서운 사람은 밑바닥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요. 그렇게 시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 없기에 강하고 힘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신의 생각은 다 내려놓고 비워두었기에 그처럼 당당하고 자신에 찬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니 나는 염려와 근심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빌라도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가 돌아보아야할 교훈과 비추어보는 거울이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줄 첫 번째 궁리로 유월절에 죄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는데 예수님을 놓아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꽁수를 둡니다. 말도 안되는 거지요. 그러니 유대사람들은 강도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바라바를 강도라고 했는데 보다 정확히는 그는 열심당원이었고 혁명가였다고 합니다. 열심당원들은 로마에서 유대를 해방하기 위해 무장하고 다니면서 로마 사람들을 테러하고 재물을 약탈했기에 로마 사람들의 눈에 가시였겠지만 유대사람들에게는 영웅이었으니 당연히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했을 겁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둔 빌라도의 수는 19장 1절에서 보는대로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으로 때리는 일이었습니다.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을 데려다가 보이면서 이렇게 때렸는데도 그에게 아무 죄도 찾지 못했으니 그를 풀어주겠다고 유대인들의 동정에 호소해 보겠다는 것이었지요. 이 또한 눈 가리고 아옹일 뿐입니다. 그 덕분에 예수님은 매를 맞는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지 모릅니다. 빌라도는 놓아주겠다고 때리고 예수님은 그 매를 고스란히 맞으셨습니다.
때리니 맞을 뿐입니다. 당시에 로마의 채찍은 가죽 끝에 납이 달려 있어서 살 속을 파고 들어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게 하는 형벌이었다고 합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온 몸엔 채찍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예수님에게 병정들은 가시나무로 왕관을 만들어 씌우고 빰을 때리며 조롱하였지요.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채찍에 맞으셨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구원하는 장면에 억울하고 고통스런 매를 맞으시는 것은 바로 오늘 우리 삶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유없이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매를 맞아 피를 흘릴 때 우리보다 먼저 그런 고난과 십자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우리 손을 붙잡아 주시고 위로와 힘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편이 되어주시는 것이지요.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을 받고 빰을 맞으시는 수모를 고스란히 겪으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가 고초를 받아 우리가 나음을 입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사랑이셨고 또 우리의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당신의 마지막 의지를 내려놓으시고 모든 것을 내어 맡기셨다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선택이시고 기도였지요. 믿음으로는 아버지 손에 나를 맡긴 것이지만 또 보이는 세계에서 그분을 넘겨받은 것은 세상의 불의한 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자신을 넘겨주셨으니 때리면 맞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망도 불평도 아픔도 수치는 다 지나가고 감사와 기쁨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원망과 불평과 아픔과 수치와 화로 만나는 이유는 그 반대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버지께 맡기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을 잔이 아니라고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이제 그 길을 건너고 계신 것이지요.
여하튼 그런 예수님을 빌라도가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5절에 "보시오. 이 사람이오"하고 말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로 처벌했으니 그만 놓아주자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경비병은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는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따르는 율법에 따르면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잔인하고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율법을 따른다는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껍데기와 형식을 보며 본질을 보지 못하니 그렇습니다. 율법의 정신은 사랑이고 사람을 살려주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이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은 손을 씻으면서 손을 왜 씻는지 이유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중심을 잃고 껍데기에 매달려 살아가지 말아야하겠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 두려워하였다고 했지요. 다 함께 8절과 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서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예수께서는 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였다.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에게는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아무런 권한도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나를 당신에게 넘겨준 사람의 죄는 더 크다 할 것이오." 예수님께 진리를 전해 듣고 감화를 받았던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리에 더 두려워하며 들어와 당신은 어디서 왔느냐고 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요. 더 이상의 변명을 하건 남의 호의에 휘둘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그런 예수님의 침묵이 견딜 수 없이 이상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로마를 대신하는 자신의 권력에 꼼짝을 하지 못하고 아부하는데 예수님 앞에서는 그런 것들이 힘을 잃으니 이상한 일이었지요.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자랑합니다. 내가 당신을 죽일 권한도 있고 살릴 권한도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빌라도의 권한까지도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거기에 사람이 여타부타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일의 그 모든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더 크신 분이 하시는 일에 사람은 예!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계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유대인들이 고발하는 말에 대해서도, 빌라도가 묻는 말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 일을 다르게 보았다면 우리처럼 빌라도에게 대들었을 겁니다. “너는 내가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 왜 놓아 주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런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빌라도와 로마 군인들 그리고 유대인들 사이에 포위되어 있지만, 그들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고 계셨던 것입니다.
자, 오늘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살아가며 나를 해치려는 무리들, 나를 괴롭히는 세력들 속에 포위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일일 수도 있고 환경일 수도 있겠지요. 그들이 나를 조롱합니다. 그들이 시비를 겁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대꾸하지 않고, 그 와중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과만 대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나를 해치려고 시비를 거는 무리에게 맞서 싸워 이기려고 마음먹기 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때리면 맞아 주고 침묵하셨지요. 그것이 그분의 사랑이고 십자가였습니다.
우리 여기서 이사야서 53장 말씀을 함께 봅니다. 저는 대학 3학년 여름방학에 한달간 구로공단 공장에 들어가 쇠 깎는 선반 일을 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그 일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이 말씀을 외우며 그 순간을 이겨내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리고 그 때 많은 깨달음과 위로와 믿음을 얻었습니다.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님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님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7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8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9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10 주님께서 그를 상하게 하고자 하셨다. 주님께서 그를 병들게 하셨다. 그가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여기면, 그는 자손을 볼 것이며, 오래오래 살 것이다. 주님께서 세우신 뜻을 그가 이루어 드릴 것이다.
11 "고난을 당하고 난 뒤에, 그는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자기가 짊어질 것이다.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자기 몫을 차지하게 하며,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겠다. 그는 죽는 데까지 자기의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고, 죄 지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중재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이사야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이사야는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고자 하셨다. 주께서 그를 병들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매 맞고 고발당하고 사형 선고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사야는 생각한 겁니다.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는 그러하십니다. 그런 그리스도가 우리를 살게 하고 세상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런 후에 11절 말씀처럼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할 형벌을 자기가 짊어지고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것이지요. 예수님의 침묵이 그것입니다.
빌라도가 자랑하는 권력도 위에서 주지 않았으면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니 억울할 것도 없고 미안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왜 공부를 할까요? 왜 운동 경기를 하고, 왜 사업을 할까요? 요즘 저와 예가는 계속해서 새로운 결정과 도전에 큰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될줄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한달 전만해도 정말 꿈도 꾸지 못했을 일입니다. 이제쯤 그만 앉아서 쉬고 싶기도 했고, 이만큼 하였으니 되었다 싶은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게 주저앉아 있으려니 하나님께서는 바람과 파도를 일으켜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요.
이 일의 과정에서 저는 스스로 묻습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려고 할까? 돈을 벌기 위해서일까?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기 위해서일까? 영광을 얻고 이름을 내기 위해서일까? 그렇다면 그럴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더 다른 길도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성공해도 좋고 실패를 해도 좋습니다. 다 그 분의 뜻이니 예하며 한 걸음을 더 나아가는 것이지요. 가만히 있지 않고 그렇게 가보면 어떤 길일지 길이 보일 것입니다. 가보지 않으면 할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일을 만나든지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이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가 없음을 믿고 마음의 평화와 침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이유없이 억울한 채찍에 맞으시고 천한 자들에게 뺨을 맞는 조롱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12절에 보면 다시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빌라도를 보면서 알아차리는 또 다른 특성이 있다면 '부화뇌동'입니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들고 저 말을 들을 때마다 흔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이용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빌라도에게 유대인들이 내리는 결정타가 있습니다. 당신이 이 사람을 놓아주면 황제의 충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빌라도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지요. 빌라도가 그렇게 살아오면서 지켜오던 것이 있다면 바로 로마 황제가 주는 권력입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진리를 거스리고 스스로의 의지와 판단과 생각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로보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유약한 빌라도는 갈등했습니다. 예수님을 놓아주려는 마음과 예수님을 처형할 수밖에 없다는 마음 사이에서 말입니다. 이 두 마음이 자신 안에서 격렬히 싸웠는데, 결국은 처형해야 한다는 마음이 이겼습니다. 객관적으로 바르게 판단했던 것이 자신의 이해 관계가 개입되면서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어보면 그렇지요. 남이 둘 때는 길이 잘 보여서 훈수를 두면 백단인데 정작 자기가 두게 되면 수가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렇듯 이해 관계가 없을 때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고 바른 판단을 하지만 이해 관계가 얽히게 되면 다른 판단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 빌라도를 통해 우리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안겨 줍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하며 두 마음이 싸우게 됩니다. 그럴 때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길이 어려운 것은, 내가 손해를 보게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손해를 감수할 각오로 어려운 길을 택할 때, 그것이 결국은 자신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판단이 잘 안 설 때, 어느 쪽이 더 어려운지 어느 쪽이 내게 손해가 되는가를 판단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 쪽을 선택하면 대개는 바른 결정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험해서,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마7: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맺습니다. 빌라도는 비겁한 권력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에게 들은 진리로 인해 감화를 받고, 또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듣고 두려워하고 자신이 자랑하는 권력 앞에서도 당당한 예수님의 진실을 보고 그를 놓아주려고 힘을 쓰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비겁한 빌라도는 반역자를 두둔하면 로마 황제의 충신이 아니라는 군중들의 압박에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죄없는 예수님을 군중들에게 내어주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이 세워야할 세 가지가 있고 보아야할 네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조와 정조와 체조이고, 이성과 오성과 감성과 영성이지요. 그것이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지조는 뜻을 세우는 것이고 정조는 마음을 세우는 것, 체조는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성은 철학이고 오성은 과학이고 감성은 예술이고 영성은 종교입니다. 그래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자신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 자신을 세워 사람이 될 수 있는 찬스를 놓치고 만 것은 지조가 없어서입니다. 뜻을 지키지 못했으니 마음도 몸도 지킬 수 없는 것이지요. 군중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빌라도가 가지고 있는 아킬레스건, 그가 섬기고 있는 로마 황제의 권력이라는 우상 앞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빌라도에게처럼 오늘도 나에게 찾아온 예수님이 계십니다. 내가 그를 십자가에 못박을 수도 있고 풀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죄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혹시 오늘 나도 내가 섬기는 나의 우상, 내가 지키려고 하는 나의 권력, 로마 황제에게 잘못 보일까 두려워 나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내버려 두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빌라도가 그렇게 탐하던 로마의 권력, 세상의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은 모두가 왕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나라에서 그를 멀어지게 했지요. 오늘 나에게 있는 로마 황제는 무엇일까요? 나의 뜻과 마음과 몸을 무너뜨리는 그것이 로마 황제입니다. 그래서는 아니된다고 하는 나의 믿음까지도 저버리게 하는 그것, 중독이 있습니다. 습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이고, 권력이고, 명예이고, 안전하고자 하는 또 다른 두려움이 그것이 아닐까요? 오늘도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어주시며 우리를 깨우고 계십니다.

(기도)

하나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가장 힘이 없이 나약했던 빌라도를 보며 오늘 우리의모습을 보게 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지키려고 나에게 찾아온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내 몰고 있는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 안에 하나님 보다 높아져 있는 모든 것을 내려 놓게 하시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저들이 되게 하옵소서. 혹여 살아가면 풍랑을 만나고 억울한 채찍을 맞을 때 나를 둘러싼 원수들을 보지 않게 하시고 나에게 찾아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그리고 십자가를 받으시는 예수님처럼 침묵하며 평화를 누리게 하옵소서. 그런 순간에 주님께서 저들과 하나가 되셔서 저들에게 힘과 용기와 생명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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