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18:28~38 ( 120122)
2012/2/9(목)
주일 낮예배 : 나는 왕이오!  


본문 : 요한복음 18장 28절~38절
제목 : 나는 왕이오!
일시 : 2012년 1월 22일, 주일예배
           
(어린이 설교와 파송)

어린이 여러분, 함께 37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볼까요?
"You are a king, then!" said Pilate. Jesus answered, "You are right in saying I am a king. In fact, for this reason I was born, and for this I came into the world, to testify to the truth. Everyone on the side of truth listens to me."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지요. 그러면 당신은 왕이요?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말한대로 나는 왕이오! 라고 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세상의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왕이 되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해야 왕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왕이신 나라는 다르지요. 싸워서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모든 사람이 왕인 나라가 예수님의 나라예요. 사랑하며 도우며 사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섬기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나라에서는 섬기는 사람이 섬김을 받는 사람보다 더 큰 기쁨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나셨고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어린이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섬기는 나라의 왕이 되어야겠습니다. 자 큰 소리로 외쳐 보아야. “I am a King" 네. 여러분은 예수님의 나라의 왕입니다. 섬기는 사랑의 사람, 어린이 여러분을 교회학교로 파송하겠습니다.

(설교)

오늘 본문 앞에서는 결박당하신 예수님이 대제사장 집에서 심문과 곤욕을 당하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던 이야기가 있었지요. 이 이야기는 베드로만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네가 그 사람이냐고 묻는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았습니다. 차라리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차라리 이런 꿈을 갖지 않고, 이런 것을 몰랐으면,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캐나다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여기는 우리는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냐?’라는 물음에 ‘나는 아니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도 춥고 어두운 한 밤중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니 곧 닭이 울었습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야 아, 내가 사는 것이 아니구나, 내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나를 움직여야 사랑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니 곧 닭이 울어 새벽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런 새 아침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맞은 진정한 성탄과 새해의 소식이지요.

그런데 그 이른 아침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빌라도 총독의 관저로 끌고 갔습니다. 함께 28절을 읽습니다. “사람들이 가야바의 집에서 총독 관저로 예수를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을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과저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밤이 지나 새벽을 맞아 어떤 사람은 구원을 얻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어둠을 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깨어나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닭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여러분, 새해가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 떠오르는 해가 새해인가요? 아니지요. 어제 그 해입니다. 어제 졌던 해가 다시 떠오른 것, 아니 지구가 한바퀴 돌아서 그 해를 다시 맞이한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해가 떴다고 하고, 새해라고 합니다. 우리가 새해라고 생각하니 새해를 맞이하는 것, 그러니 우리가 새로워지는 것은 우리이고 우리 생각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 싶은 새로운 관계 또한 그렇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 어떻게 새로워질까요? 그렇지 못하면 아침을 맞아도 예수를 로마 총독의 관저로 데리고 가고 있을 뿐입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을 맞는 우리들, 다시 한번 깨어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모습, 내게 주어진 일을 하는 순간들, 말 한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를 알아차리고 돌아보며 틈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기 예수님이 끌려가신 총독의 관저는 이방인의 땅이었습니다. 오늘 서울에서 한국 땅이 아닌 곳이 있지요? 미국대사관입니다. 거기는 미국 땅입니다. 치외법권 지역이지요. 마찬가지로 로마의 총독이 살고 있는 집은 이방인의 땅이어서 유대인들은 그곳에 들어가면 몸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해서 그 안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 우스운 모습입니다. 이방인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 그 집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몸이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착각입니다. 눈감고 야옹하는 것이지요. 다급하면 머리만 구멍에 집어넣고 커다란 몸은 다 보이면서 숨었다고 생각하는 꿩처럼 말입니다.
성스러운 곳과 속된 곳이 담장 하나로 나누어질 리가 없습니다. 관저 밖에 있으면 몸이 더러워지지 않고 관저 안에 있으면 더러워질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려는 음모가 그들을 더럽히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밖에 들어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셨습니다. 자기들의 몸을 정결하게 하려고 들어가지 않는 빌라도의 집에 사람을 몰아넣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지요. 남이야 어떻게 되었든 자기만 깨끗하겠다는 못된 심보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여리고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길이 험해서 강도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때리고 돈을 빼앗는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하루는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매를 맞고 피를 흘리고 있는데 그 옆을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나가지요. 그들은 강도 만난 사람을 외면합니다. 성전에 가서 제사를 지내야하고 성전의 일을 보아야 해서 바빴습니다. 그들은 성스러운 일을 해야했지요. 그런데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도움을 줍니다. 어떤 사람이 더 거룩한 사람일까요? 똑같습니다. 총독 관저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몸이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 우리 생각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방인의 관저 안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유대인들이기에 비겁하게 예수님을 로마인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지 못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야바의 집에서 총독 관저로, 또 어디로... 이러 저리 끌려 다니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또 이것이 오늘 내 모습이 아닌지 돌아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부분은 그럴듯하면서 보이지 않는 부분은 형편이 없습니다. 겉은 깨끗하게 페인트를 칠해 놓았는데 속은 썩은 송장으로 가득한 무덤과 같지 않습니까? 모름지기 사람은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앞에서와 뒤에서가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새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유대인과 같지 않게, 겉과 속이 하나인 우리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셨던 분이셨지요. 니체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멋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분은 이 이야기를 듣고는 무섭다고 합니다. 그 마음, 이해가 가지요.

29절에서 32절까지를 다시 읽습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나와서 당신들은 이 사람을 무슨 일로 고발하는 거요? 하고 물었다. 그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님께 넘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를 데리고 가서 당신들의 법대로 재판하시오. 유대 사람들이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인가를 암시하여 주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빌라도의 입장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나와서 묻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로 고발하느냐고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사람을 선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종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나타난다면 누구보다도 환영해야할 사람들이었지요. 그런데 사실은 그리스도가 오지 말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자신들이 그동안 지켜온 굳건한 생각과 기득권이 다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익숙한 생활이 깨어질까봐 두려웠던 것이지요. 그냥 이대로가 좋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지요? 지금 변화를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바라십니까? 성령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에서 여러분들을 움직이시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예! 하십시오. 내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내게 주신 모든 것을 영접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들과 똑같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이유는 예수님이 표징을 많이 행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은 표징을 행하지 못하는 열등감에 갇혀서 세상이 그에게로 가는 것에 대한 불안함, 세상이 그를 믿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거짓말과 핑계를 지어냅니다. 또 그래서 로마 사람들이 성전과 민족을 약탈할 것이라는 핑계를 대며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붙잡아 데리고 가고만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고발하는 것은 유대인의 왕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것을 악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럴듯한가요?
그렇게 유대인들은 종으로 살았습니다. 나라를 잃고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무엇이 부끄러운지 모르고 로마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왕으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왕으로 사는 예수님 때문에 자기들이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고 안절부절하며 로마에게 고발한 것입니다. 주인으로 살지 못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인 율법을 받았으면서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율법의 형식에 매여 살아가니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국 땅에서 사는 것이 각박하고 외롭고 힘들다고 습관적으로 투덜대다가도 어느 순간에 미안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이렇게 나만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캐나다에 살면서 북미가 주는 특혜를 다 누리고 사는 것, 캐나다의 교육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오히려 그것이 올무가 되어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고 괴롭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삶에 감사와 감동이 없이 불만과 불평을 퍼뜨리는 순간 우리는 예수를 잡아다가 빌라도에게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어의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가서 당신들의 법대로 재판을 하라고 말합니다. 유대 사람들이 자신들은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 스데반도 돌려 쳐서 죽었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더랬지요. 유대의 지도자들은 비겁하게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핑계를 만들어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회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나약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신비한 것은 또 이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이방인의 손에 넘기어 죽게 될 것이라는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지요. 유대인들이 그들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갔지만 그것으로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온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묻지요. 지금부터 빌라도의 물음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33절에서 35절입니다. “빌라도가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를 불러내서 물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하는 그 말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오? 빌라도가 말하였다. 내가 유대 사람이란 말이오? 당신의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겨주었소.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
빌라도의 첫 번째 질문은 “당신이 유대사람들의 왕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우습게도 말도 되지 않는 질문을 하지요. 그렇게 유대인들의 손에 힘없이 잡혀온 초라한 행색의 사람이 왕이 되려고 했을 리가 없습니다. 총독으로서의 위치와 체면 때문에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며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들은대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반항을 사면 통치자로서 자기 위치가 흔들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빌라도에게 오히려 예수님이 다시 물으십니다. 그것이 당신의 생각인지 다른 사람의 생각인지를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렇습니다.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합니다. 눈치를 보고 따지고 계산합니다. 그렇게 오늘 우리가 남의 생각을 말하고 거기에 끌려 다니며 살고 있지 않는지 돌아봅니다. 남의 생각에 흔들리지 말 것이며 내 생각에 또한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너머의 사실을 그대로 보고 말할 수 있는 새해가 되어야하겠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또 묻습니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 빌라도가 왜 이것을 물었을까요? 세상에서 출세하고 싶은 빌라도도 예수님처럼 왕이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였기에 왕이 될 수 있었는지 정말 궁금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왕이 되고 싶으세요? 왕이 되고 싶다면 오늘 빌라도와 예수님의 문답에 귀를 귀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왕으로 사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36절에서 38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왕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빌라도가 예수께 진리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님은 왕으로 사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왕으로 살지 못하고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왕이셨지만 그런 유대인의 왕이 되고 싶지도, 된 적도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였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왕이 되려고 서로 싸웁니다. 왕이 아닌 사람들이 왕이 되려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며 다투는 것입니다. 자기 것도 아닌데 자기 것이라고 하는 거지요.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과 다른 나라에 사셨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왕이 되려고 다툴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가 왕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모두가 그런 존재로 살아가니 부족한 것도 모자란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도 왕이 되고 싶었던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은 왕이요?”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세상의 왕은 권력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 안절부절 합니다. 그러나 참된 왕은 존재 자체로 그러하기에 흔들림이 없이 스스로의 나라를 세웁니다. 그런 나로 살지 못하는 세상은 자기 식대로 받아들여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 되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을 잡고 사람을 밟고 일어서려는 왕입니다. 그러나 참 왕은 그런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습니다. 나의 나라의 왕으로 살지 못하고 세상의 왕으로 살려고 하면 늘 이렇게 방황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왕은 어떤 사람인가요? 왕은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왕은 신성합니다. 그거 하나면 다 통하는 것이 왕이고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전한 진리는 나는 하나님의 아들, 왕같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왕처럼 살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왕으로 살았습니다. 참 '나'로 살았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빌라도가 또 묻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이오?” 조상두 목사님과 함께 생각한 디모데서 6장에 이런 말씀이 있었지요? “나는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에게 훌륭하게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대에게 명령합니다. 그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그 계명을 지켜서,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는 사람이 되십시오. 정한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주님의 나타나심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 받으실 분이시요, 오직 한 분이신 통치자이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죽지 않으시고,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속에 계시고, 사람으로서는 본 일도 없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에게 존귀와 영원한 주권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내용을 요한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께서 훌륭하게 증언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진리에 대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 계명을 지켜서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라 짐작합니다. 그 분만이 통치자요 만왕의 왕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처럼 왕으로 사는 길이 진리를 전하고 진리로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전해주신 진리는 왕으로 사는 길,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첫째가 되려하지 않고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다투고 미워하고 갈라서는 세상 나라에 사는 것이 아니라 원래 모두가 왕인 그의 나라에서 왕으로 살라는 것이 예수님이 전해주신 진리가 아닐까요?
1% 보이는 것들이 전부인 세상은 99%를 잃어버립니다. 진리의 세계, 사실의 세계에 서 있는 존재를 모르니 1%에서 왕이 되려고 아둥바둥 하는 것입니다. 그런 진리에 깨어 있지 않고 생각에 빠져 껍데기로 사니 늘 방황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스스로 나라를 세워 왕으로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 진리를 알면 자유케 됩니다. 그러니 내 나라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나라를 세우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나라의 왕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나라의 왕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의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진리로 살아가는 2012년, 왕이신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자,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나는 왕입니다.” 그리고, 또 말합니다. “당신은 왕입니다.” 예수님이 왕이시니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왕인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빌라도는 묻습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였기에 왕이 될 수 있었소? 그 진리가 무엇이오? 세상 나라에서 왕이 되는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나라의 왕은 서로 왕이 되려고 싸우고 다투어서 되는 것이 아니지요. 진리를 증언하러 세상에 왔으니 진리를 증언하다가 가야하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말한대로 나는 왕이오!라고 외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왕이신 예수님과 함께 사랑하고 섬기는 왕이 되게 하옵소서. 남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게 하시고, 내 생각에도 끌려 다니지 않게 하시고, 오직 진리를 따라 진리를 전하며 살아가는 한 주간, 새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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