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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산 오동성 목사의 설교입니다.
본문: 요16:1~15 ( 110814)
2011/8/18(목)
주일 낮예배 :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본문 : 요한복음 16장 1절~15절
제목 :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일시 : 2011년 8월 14일, 주일예배

(설교)

어느새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긴 겨울이 지날 것 같지 않았는데, 여름이 찾아오고 가을이 오고 있지요.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음 주에는 함께 캠핑을 하며 하나님이 주신 여가를 즐길 생각을 하니 고맙고 행복합니다. 조건과 환경을 탓하지 않고 지금을 사랑하고 누리고 있노라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난 시간 말씀에서 예수님이 박해와 미움을 당한 까닭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요. 예수님이야 말로 세상에 살면서 억울한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보내셨고, 그 이유를 기록한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삶은 이미 기록한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 잘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알려고 할 것도, 알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나는 나의 일이 좋아서 그저할 뿐, 나머지는 맡겨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기록한 말씀,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니 예! 하고 받아들이면 되지요.

오늘 16장 1절을 함께 읽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를 넘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세상에서 까닭없이 미움을 받고 박해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 미리 알고 넘어지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얼마나 자상하신지요? 두려움은 몰라서 있습니다. 알면 사랑이지요. 함정이 함정인 줄 알면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건 유혹이라고 알면서 넘어갔다면 그건 유혹에 넘어간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이후에 예수님처럼 회당에서 쫒겨나고 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지금도 성지 순례를 가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동굴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평생을 살았던 흔적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그런 박해와 어려움을 통해서 순결과 평화와 기쁨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 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미리 말씀해주셨으니 그들은 그렇게 당당하게 믿음을 지키고 순교를 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이 힘겹고, 왜 이렇게 사는지 후회가 될 때, 어려운 순간에, 억울한 날에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4절을 다시 보시지요.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하여 두는 것은 그들이 그러한 일들을 행하는 때가 올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너희에게 말한 사실을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에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회당에서 쫒겨 난다는 말은 생존권을 박탈당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것도 억울한데 사람들은 그것이 옳은 일이라 여길뿐더러 우리 스스로도 자신감을 잃고 방향을 놓쳐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3절을 보세요.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껍데기,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인줄 알고 그런 수준에서 살아가니 참 불쌍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런 일을 당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때가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맞이하면 됩니다. 받아들이면 됩니다. 영접하면 되는 거지요. 그것까지도 나에게 필요한 일, 가장 적합한 일입니다. 그 덕분에 오늘 내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아 불행하게 늘 그렇게 살아갑니다. 늘 그런 사람이 늙은이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면, 그럴 때에 주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그 때를 알고 구별할 수 있습니다. 깨어 살아가는 것이지요.

어느 출애굽 유민의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길을 떠나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이야기지요. “떠나온 것은 돌아가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날 떠나려 몸부림쳤던가! 놀랍게 기회가 찾아왔고, 기적적인 사건도 경험했다. 그러나 이 곳은 그리 젖과 꿀이 흐를 것 같지 않은, 그냥 황량한 사막이다. 아무것도 갖춰진 것도, 편한 것도 없다. 음식은 말할 것도 없다. 온갖 양념을 해서 먹던 음식은 단순한 식단 단조로운 몇가지의 음식으로 바뀌어있다. 먹을 것 때문에, 좀 더 편한 생활을 위해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면 떠남의 이유를 보석처럼 가슴에 품고, 뜨거운 한낮엔 구름기둥 밑에 숨겨두고, 싸늘한 밤엔 불기둥 밑에 숨겨둘 일이다. 가나안은 뒤돌아보지 않는 자들의 것이다. 처음 떠남의 이유를 잊지 않는 자들의 것이다. 그 귀한 보석을 맛난 것과 편한 것과 바꾸지 않는 자들의 것이다.”
어떻습니까?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산에 오를 때도 그렇습니다. 지리산을 그렇게 그리워했으면서도 지리산에 오를 때마다 또 수도 없이 후회하고 원망을 합니다. 왜? 힘들어서요. 내가 뭐하러 이 짓을 하나? 사실은 그것을 원하고 있었는데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도, 새로운 땅에서 살아보려는 것도 그렇습니다. 출애굽을 하던 그들이 그랬습니다. 잘 먹고 편하게 살려면 떠나지 말았어야지요. 있던 자리, 노예살이를 허던 곳이 익숙하고 편안합니다. 자유와 해방, 변화와 성숙을 위해 길을 떠난 우리는 그렇게 귀한 보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지요. 그런 나를 알고 만나고 안아주고 지금을 느끼고 사랑하고 사는지 그런 순간에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겪을 일들을 이렇게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이미 우리가 그런 역경과 의심으로 넘어질 것을 염려하셔서 이런 말씀을 미리 해주신 것입니다. 미리 준비시켜 주시는 자상한 배려를 받고 있는 우리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또 내가 이 말을 처음에 하지 않은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하고 박해를 받는다는 것, 떠나온 길에 대한 의심과 염려로 길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말을 처음에는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함께 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신랑과 함께 있는 결혼식에서 신부와 하객들은 잔치를 즐깁니다. 신랑과 헤어질 생각으로 잔치를 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함께 있을 때는 즐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때는 곧 지나갑니다. 함께 있을 때 헤어질 생각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입니다. 예가 캠프를 하면서 늘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캠퍼들은 캠프가 즐겁고 좋은데 캠프 마치고 한국에 갈 걱정을 합니다. 가기 싫어서 우물쭈물합니다. 그런데 그 때를 즐기지 못하고 다음을 걱정하는 아이들, 평생 그렇게 살 것입니다. 여름을 만나면 여름을, 가을을 만나면 가을을, 겨울을 만나면 겨울을, 봄을 만나면 봄을, 그렇게 지금을 누려 합니다. 그것 밖에는 없습니다.
매일 보는 꽃이지만 그 꽃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그것을 처음 보듯이 보는 것입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바람을 맞으며 일어나는 표정은 반가운 손님을 만난듯한 얼굴입니다. 호들갑을 떨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감사를 알아차리며 맞아보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다는 기억이나 무엇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아닌 그것 그 자체로 말입니다. 삶의 진정한 기쁨은 거창한 말이나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지요. 무슨 놀라운 업적을 이루어야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저 순간순간에 깨어 그것을 누리는 태도에 삶의 기쁨과 감격이 있습니다. 그런 눈이 있을 때 행복과 감사가 있는 것이지요.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는데 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아니면 없습니다.
5절과 6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서 아무도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고, 도리어 내가 한 말 때문에 너희 마음에는 슬픔이 가득 찼다.” 무슨 말씀인가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은 하늘 아버지, 보내신 분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헤어지는 것같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 또한 가장 기뻐해야할 일입니다. 정말 가야할 길을 가는 것이니 말입니다. 잠시 헤어지지만 그것이 우리의 기쁨을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집을 떠나와 당장 부모님과 친구들을 볼 수가 없지만 그것이 기쁨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여름 내내 함께 울고 웃었던 캠퍼들이 떠나서 다시 온 곳으로 갔습니다. 당장 허전하다고 슬픔에 잠겨 있을 수 없는 거지요.
그런데 슬픔에 잠겨 있는 까닭이 있습니다. 아무도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온 곳으로 가지, 아버지의 품으로 가는 것이니 사실은 환영하고 축복해야하는 것입니다. 묻지 않는 인생은 자기 생각에 빠져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내 생각과 기준에 매여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말 때문에, 헤어진다는 생각과 조건, 그런 말에 매여서 슬픔이 가득합니다. 물음이 없이 말에 매여서 살아가니 슬픔에 잠겨 있는 인생입니다.
7절을 보세요. 그러나 진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하십니다. 왜 그런가요? 그래야 다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잠시 떠나가셨기에 보혜사가 오셔서 더 큰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까지입니다. 삶이 그렇습니다. 떠나가는 할 때 떠나는 것은 유익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러냐고 물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꿀 수 없는 사실을 바꾸려고 하는 어리석음으로 인생이 살고 있습니다. 현위치를 파악하고 거기서 시작하는 인생입니다. 그것이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떠나가는 것이 유익한 이유가 있습니다. 내 생각에 그래서는 아니되고, 이해할 수 없고, 당장은 싫어도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셔서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내리셨지요. 바울이 떠나가서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노무현이 떠나가니 노무현이 하고자했던 일이 무엇인지 더 명료해졌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세상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깊은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떠나감, 헤어짐이 전해주는 진실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깨닫게 되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유학을 떠나오고 고향과 본토와 친척을 떠나보는 것이지요. 떠나가면 대신에 오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오는 것을 맞이해야 합니다. 자, 예수님이 떠나가시니 보혜사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길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지 않으셨으면 그것을 제자들은 누릴 수 없었겠지요. 오늘 우리도 그것을 만나야 합니다.
자,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오해가 풀린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잘못을 깨우쳐주시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임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 방황하고 고통 속에 헤매고 있음을 그가 떠나서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죄는 윤리나 도덕의 수준의 차이, 오십보 백보의 그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세상의 법으로도 충분합니다. 정말 본질적인 것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껍데기가 아닌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바로 살게 되지, 바로 살아서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진리의 영으로 오신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지 않는 것이 죄임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또 누가 의인인지를 깨닫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누가 의인인가요? 예수님을 죽인 그들인가요? 아버지께로 간 예수님이 의인인가요?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자기가 살려고 남을 죽이니 살지 못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돌아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의입니다. 그 의의 길로 우리도 갈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것, 그것이 또한 아버지의 의로우심입니다. 사랑은 공의와 통합니다. 사랑도 대가를 치르어야 하는 것, 그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아니 스스로 죽어 의를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심판에 대해서라는 것은 이 세상이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심판하는 삶은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심판을 했습니다. 판단하는 삶이 가장 힘들다고 했습니다. 사랑 속에 있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사랑하지 않기에 이미 심판을 받은 세계에 삽니다. 화해자로 산다면 그것이 가장 큰 사랑이지요.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찾아오신 성령이 하시는 일, 깨닫게 하시는 진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정말로 섬긴다면,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 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면서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섬긴다면 남을 심판하거나 정죄하여 내쫒거나 죽이거나 그럴 수 없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것, 그분께 맡겨드리고 오직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갈 뿐이지요. 모든 죽어가는 것, 지금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남을 심판하던 유대인 사울이 심판받는 이방인의 바울로 되었지요. 이것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관문인 거듭남입니다.

함께 12절과 13절을 읽습니다. “아직도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지금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버거운 세상, 나의 감정이고 상태인데 진리의 영이 오시면 감당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지요. 우리 생각과 계산과 판단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영에게, 더 큰 운명에게, 하늘에, 하나님께 다 맡겨드릴 때, 나를 온전히 비울 때 찾아오는 비밀이 있습니다. 가장 큰 힘이 이지요. 내 계산으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영상을 함께 보실까요?(Little bear chaced by puma)
낯선 곳에 홀로 있는 아이는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는 아이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아이에게 아버지가 가장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물며 하늘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는데, 진리의 영 - 모든 것을 알게 해주시는데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무지가 두려움입니다. 진리를 알면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모두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것같지만 모퉁이를 돌아보면 나와 함께 있는 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께 맡기고 내 할 일을 할뿐입니다. 거기까지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찾아오신 진리의 영께서는 듣는 것을 알려주시고, 앞으로 올 일들도 알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또 나를 영광되게 할 것이라고 하셨지요. 이것이 진리의 영이 하시는 일입니다. 사실을 사실로 밝혀주시는 일입니다. 나를 드러내주시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내쫓고 죽이겠지만 자기네가 하는 일이 잘 하는 일인줄 알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무지입니다.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내쫓고 죽이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첫째 정신인데, 사랑은 사라지고 다툼과 반목과 분리만이 남아 있는 앙상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 때가 오면 그것은 심판의 날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내 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세상과 똑같은 악순환이 반복될 것입니다. 아버지를 알고, 그리스도를 알고, 나를 아는 것이 죄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어느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가야할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디로 가는지 물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면 슬픔에 잠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보내신 분에게로 가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가신 것이 더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께로 가셔서 인생이 가야할 그 자리를 알려주셨기 때문이며, 보혜사가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완성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예수님처럼 가야할 길을 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 그가 그랬듯이 우리가 그렇습니다. 슬픔에 빠져 있지 말아야 합니다. 떠나가면 오는 이가 있습니다. 오는 이를 맞아야지요. 예수님이 가시니 보혜사가 계십니다. 이제 보내어주신 그 분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만나고, 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이며, 세상에서 살아가는 최고의 삶입니다.

(기도)

하나님,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떠나니 오는 것이 있습니다. 왜 떠나가냐고 원망하지 않고 보내주시는 것을 충분히 받아 알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더 큰 유익과 선물을 주시는 사랑으로 받게 하옵소서. 지금 삶이 힘겹고 어렵습니다. 당황스럽고 부담이 되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답답합니다. 내 힘으로 내가 아는만큼 살려하니 그러합니다. 지금 감당하지 못하는 벅찬 일로 고민하고 낙담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찾아오는 진리의 영을 받아, 사실을 사실로 보아 사랑하고 사랑받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진리의 영이여 오셔서 저들을 주관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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