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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산 오동성 목사의 설교입니다.
본문: 창37장 (eastsain@chollian.net) ( 081116)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08/11/20(목)
주일 낮예배 : 꿈꾸는 사람  


본문 : 창세기 37장
제목 : 꿈꾸는 사람
일시 : 2008년 11월 16일, 삶의 예술 교회 주일예배
           
(어린이 설교와 교회학교 파송)

9. Then he had another dream, and he told it to his brothers. "Listen," he said, "I had another dream, and this time the sun and moon and eleven stars were bowing down to me."
10. When he told his father as well as his brothers, his father rebuked him and said, "What is this dream you had? Will your mother and I and your brothers actually come and bow down to the ground before you?"
11. His brothers were jealous of him, but his father kept the matter in mind.
(Genesis37:9~11)

오늘부터 창세기 마지막부분을 시작해서 출애굽기를 이어 함께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가 누구 이야기인지 아는 사람? 야곱의 아들 요셉의 이야기예요. 앞으로 몇 주동안 요셉 아저씨 이야기를 함께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요셉은 꿈을 많이 꾼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꿈 해석도 잘해서 미래도 잘 준비해 많은 사람을 도와준 훌륭한 일을 해냅니다. 9절을 보세요. Then he had another dream...... 그가 또 다른 꿈을 꾸었답니다. 이전에도 꿈을 꾸었다는 말이지요. 꿈은 꾸는 사람이 꿉니다. 잠잘 때 꾸는 꿈도 그렇지만 내일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꿈꾸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계속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자, 요셉은 꿈을 꾸고 어떻게 합니까? and he told it to his brothers.... 라고 합니다. 꿈을 꾸고 자기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합니다. 표현하는 거지요. 알리는 것입니다. 목표를 가진 사람이 있고, 그 목표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말한 그 목표를 기록해 놓는 사람이 있어요. 연구결과 목표와 꿈을 표현한 사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확률이 80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요셉이 꾼 꿈은 어떤 꿈이었나요? 해와 달과 별들이 나에게 절한다. 어떻습니까? 이왕에 꿈을 꿀 바에 최고가 되는 꿈을 꾸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감히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해와 달에 주눅이 들지 않고 그것 위에 살겠다는 요셉의 배포와 기개가 여기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어린이 여러분도 그런 꿈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 선생님도 우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드러내어 주신다고 했지요. 그래서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고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런데 꿈을 꾸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10절과 11절에 보면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꾸짖고 있고, 형들은 질투했다고 합니다. 자, 어린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꿈꾸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아니면 비난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요셉처럼 꿈꾸는 어린이 여러분들을 교회학교로 파송하겠습니다.

(설교)

참 오랜만에 스토리텔링,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느낌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준비하면서도 함께 창세기를 공부할 때 기억과 느낌이 떠올라서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리웠구요. 기억을 떠올려 창세기는 어떤 이야기, 누구의 이야기였나요? 세상이 시작될 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가 창세기입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람이 세상에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어서 세상을 주셨고 돌보고 섬기게 하셨다고 하지요. 하나님께 전권을 위임받은 대사가 바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읽는 창세기는 하나님의 이야기고,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야기이지만 내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야곱 이야기에 이어지는 요셉 이야기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수 천년 전의 요셉 이야기로 보지 말고 오늘 나의 이야기를 읽고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요셉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1절에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몸 붙여 살던 땅 곧 가나안 땅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야곱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가나안 땅은 모든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어떻게 가나안에 찾아 왔는지 기억하시나요? 가나안은 그들에게 믿음이었고 약속이었습니다. 인생에 정말 하고 싶은 일, 원하는 그것이었지요. 그것을 위해 아비와 친척과 본토를 떠나 긴 세월 생명을 건 여행을 했고, 울고 웃었던 것을 함께 보았습니다.
자, 그렇게 야곱이 살게 된 곳은 그런 가나안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사는 곳은 어디인가요? 성경은 이곳을 가나안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오늘이지요. 그것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가나안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는 이상향, 약속과 믿음, 생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땅에 야곱이 몸 붙여 살았던 것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선물입니다. 내가 산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라고 하지요. 내가 살고 있는 땅 캐나다는 대한민국에 사는 수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공부하고 싶어 하는 곳입니다. 오고 싶어도 형편이 되지 못해 오지 못하는 그 곳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큰 선물을 받고 있는데 그 가치를 알지 못하면 개에게 던져진 진주 목걸이와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야곱은 이제 그 가나안 땅에 살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아니 이제 진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캐나다에 그렇게 오고 싶었고, 유학을 그렇게 하고 싶었지요. 그러나 캐나다에 왔다고 유학생이 되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의 이름의 뜻은 속이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속이는 사람 야곱이 형의 눈을 피해서 외삼촌 라반에게 도망을 갔다가 더 큰 고초를 겪으면서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이 되어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야곱의 역사가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이 야곱의 역사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콩가루 집안!!!!
창세기 37장 야곱의 역사에 첫 기록부터 야곱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 간의 불화와 그로인한 엄청난 파국입니다. 어디 어지간한 가정에 이런 일이 일어날 법한 일인가요?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일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가장 큰 바램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동기간의 우애입니다. 사실 저도 연년생 남동생가 그렇게 살가운 우애를 나누지 못하고 자라서 부모님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해드렸답니다. 물론 속마음이 미움이나 원망 같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표현할 줄을 몰라서 그러했지만 부모님께서 많이 속상해 하셨지요. 2절에 보면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고자질 합니다. 4절에 보면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말 한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음모를 꾸며서 요셉을 죽이려고 했고, 결국은 노예로 팔아버리고 맙니다. 콩가루 집안, 이것이 야곱의 역사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이 된 야곱이 산전수전을 다 겪고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에 돌아와서 겪게 되는 일입니다. 인생입니다. 야곱이라고 다르지 않지요. 가나안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가나안이 삶을 만들어주지 않고 삶이 가나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가나안에서 야곱의 이야기와 요셉의 이야기는 그런 삶, 사람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형제간의 불화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놀라울만큼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나의 이야기입니다. 불화와 파국의 땅 가나안이 어떻게 해서 진정한 천국이 되어가는 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생각하고 싶은 것은 형제간의 불화는 4절에서 볼 수 있듯이 누구의 탓도 아닌 야곱의 편애로 인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했다고 했고, 그에게만 화려한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죽은 라헬에 대한 사랑이 다른 아들들에 대한 사랑을 빼앗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미워해 말 한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야곱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먼저 겪게까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35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옥에까지 내려가는 고통이었지요. 요셉에 대한 야곱의 편애가 요셉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무엇을 원망하겠습니까? 모든 일은 나에게서 기인해서 나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음입니다. 우주는, 하나님은 내 선택과 내 생각을 도우실 뿐입니다.
야곱의 편애는 사실은 사랑이 아니었지요. 집착일 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끊어 내어 믿음의 조상이 되었듯이 야곱이 벗어나지 못하니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요셉을 떠나보내신 것입니다. 잘라내신 것이지요. 그래야 야곱도 살고, 가족도 살고, 요셉도 살게 됩니다.
둘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야곱의 편애와 형제간의 불화로 인한 철부지 요셉의 성장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그늘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자라 형들을 고자질하게 됩니다. 물론 허물을 저지른 형들이 잘못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서로 덮어주고 고쳐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그러나 어찌하였든 요셉은 고자질쟁이 철부지였습니다. 야곱의 역사에서 형들의 음모로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가지 않았다면 요셉은 영원히 철없는 고자질쟁이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바지 가랭이만 붙잡고 사는 영원한 파파보이가 되고 말았겠지요. 이제부터 시작되는 요셉의 이야기는 그런 요셉이 어떻게 성장하고 변해 가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내가 겪어가는 일상이 아닐까요?
세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요셉의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역사에 있었던 희대의 비극적인 불화의 큰 요인이 되는 것이 요셉의 꿈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사랑받는다고는 하지만 열 명이나 되는 형에게 받는 구박은 어지간해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런 환경에 굴하지 않는 인물이었지요. 그가 꿈을 꾼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잠잘 때 꾼 꿈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꿈을 높고 원대하게 품고 있는 요셉을 그려주고 있는 이야기지요. 요셉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입니다. 어이없게 보일정도로 막내인 요셉, 철부지에 천덕꾸러기인 그에게 기라성과 같은 형들보다 아버지를 넘어서겠다는 꿈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꿈은 어디까지인가요? 나이가 들수록 꿈은 점점 작아지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 꿈이 없이 살고 있는 우리를 봅니다. 그렇게 축소되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그러나 꿈이 있는 순간은 한없이 넓고 컸던 것이 우리 삶입니다. 꿈꾸는 사람 요셉이 그러하였다는 것이지요. 꿈꾸는만큼 살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의 고백대로 우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드러내어 주시니 말입니다. 요셉은 꿈을 꾸고 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말했습니다. 말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형들에게 미움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사막의 구덩이에도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노예로 팔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대신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거기서 멈추어 천덕꾸러기 막내로 살게 되었겠지요. 그래서 꿈을 말하라고, 써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만 한 사람과 구체적으로 말해본 사람과 노트에 적어본 사람이 이루어가는 결과가 다르다고 말했지요?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어가려면 넘어야할 산과 강을 만나게 됩니다. 고난과 역경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지요. 형들에게 이쁨을 받는 대신에 미움을 당하고, 질투를 받습니다. 억울한 음모를 당하고 캄캄한 구덩이 속에 갇히게 되지요. 또 낯선 땅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길이 꽉 막혀버리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요셉의 꿈은 이루어지게 됩니다. 후에 이야기지만 요셉의 꿈이 아니었으면 온 가족이 다 굶어죽었을 뿐아니라, 큰 나라 애굽도 가뭄에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어린 요셉으로서는 구덩이에 빠지고, 노예로 팔려가고 참 억울하고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지만 그것은 가장 큰 선물이었다는 말입니다. 삶은 그래서 신비입니다.
자, 꿈꾸는 우리에게 그런 때가 옵니다. 꿈을 이루려면 화려한 옷을 벗어야 합니다. 구덩이에 던저져야 합니다. 억울한 인신매매를 당해야 합니다. 그것도 친형제의 손에 팔려가는 거지요. 예수가 은 서른 닢에 유다에게 팔렸지만 그것으로 그의 십자가, 그의 일이 완수가 되어지듯이 형제가 요셉을 팔았지만 그래서 가나안 땅 구석의 이름 없는 촌부가 애굽의 바로왕의 경호대장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 나를 속이지만, 내 삶이 지금 힘겹고 곤란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나의 꿈이 이루어져가는 신비를 어찌 알겠습니까?

성경의 많은 인물들 가운데 요셉은 이러한 희망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험하고 억울하고 비참한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길과 하나님의 신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지금의 어두움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희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내가 철부지라도 실망하지 맙시다. 오늘 내가 꾸는 꿈을 어리석다고 누가 비웃어도 혹은 시기하고 질투해도 오히려 그것을 통해 내 꿈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미리 바라보며 힘과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만히 주저 앉아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아니라 꿈을 꾸고, 그것을 말하고, 이루어가고 성장하는 사람 요셉이 다 되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아브라함과 이삭이 그렇게 살고 싶어하던 땅 가나안에 몸붙여 살고 있는 저희들을 보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또한 야곱의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나안이 아름다운 삶, 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깨어있는 눈이 천국을 만들어가게 됨을 알게 하셨습니다. 주님, 저희들이 있는 곳을 가나안으로, 참 행복과 소망의 땅이 되게 하시고, 용기내어 꿈을 꾸고, 그 꿈 때문에 찾아오는 고난과 역경을 믿음으로 다 받아안아 성장하고 성숙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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