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빌2:19~30 (eastsain@chollian.net) ( 081005)
홈페이지: http://sanmul.net
2008/10/10(금)
주일 낮예배 : 참된 격려  


본문 : 빌립보서 2장 19절~30절
제목 : 참된 격려
일시 : 2008년 10월 5일, 삶의 예술 교회 주일예배

(어린이 설교와 교회학교 파송)

20. I have no one else like him, who takes a genuine interest in your welfare.
21. For everyone looks out for his own interests, not those of Jesus Christ.    
22. But you know that Timothy has proved himself, because as a son with his father he has served with me in the work of the gospel.    
(Philippians2:20~22)

어떻습니까? 바울 선생님은 한 사람을 알고 있었지요. 어떤 사람입니까? who takes a genuine interest in your welfare. 여러분의 삶에 진정으로 관심과 염려를 둔 사람입니다. 정말로 여러분의 형편을, 삶을 염려해주는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 보십시오. 자, 21절에 보면 모든 사람은 look out, 자기 자신의 이득만을 찾는다고 합니다. 갑돌이가 금을 더 많이 가지려다고 있는 금까지 다 잃어버리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관심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아요.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어떤 것일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무엇일까요? 네. 20절에서 이야기한 대로 다른 사람의 형편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주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에 디모데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복음을 위해서 일하고 섬겼습니다. 어린이 여러분도 누구를 대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아버지에게 하듯이 하는 어린이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자기 일에만 욕심을 부리고 관심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갖는 우리 어린이들을 교회 학교로 다같이 파송하겠습니다.

(설교)

지난 주에 함께 받은 말씀들 잘 기억하고 한 주간을 보내셨는지요? 어느새 바람이 차져서 겨울 코트를 두르고 다녀야 합니다. 여기 사람들은 스웨터 타임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연은 세상은 자기의 일을 합니다. 오늘 우리도 무엇을 하든지 행복하게 기쁘게 감사하며 살아야지요. 그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렇게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면 불행해지고 손해 보는 것은 우리 쪽이지요. 멸망의 길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 주신 삶에 순종하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자고 했지요. 그랬나요? 이것을 기억하고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나를 사랑과 기쁨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고 산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이고 우리와 우리를 위해 달음질한 이들의 수고가 헛되지 아니하여서 자랑하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어서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게 두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과 처지에서 기쁠 수 있었던 사람, 바울도 격려를 받고 도움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겠지요. 서로가 함께 있음으로 격려가 되고 지지가 되고 힘이 되는 사이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그러한지 함께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에는 한국에서 한 장로님과 권사님 내외가 회갑 여행으로 캐나다 단풍관광을 오셔서 잠깐 만나뵈었습니다. 서로 알고 지낸 햇수보다 더 긴 5년만에 만나는 분들이었는데, 그 새 저희에게도 그 분들께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그래도 한 시간 남짓의 만남이 서로에게 도전이 되고 격려가 되고 큰 힘이 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런 관계를 만들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재산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함께 하는 우리들도 서로가 그러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참 알음다운 사람들의 모습이 있지요. 바울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빌립보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 우리들의 관계, 사이가 이들과만 같으면 무슨 근심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와 고백을 들으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이 많이 부러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살아가고 이런 만남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어떤 친구를 사귀고 싶습니까?

19절에 보면 바울은 무엇을 통해 격려를 받는다고 했나요? 왜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려고 했습니까? 그것은 빌립보 교회의 형편을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서로의 형편을 아는 것이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바울은 그랬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형편을 정말 알고 싶은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또 왜 그럴지 생각해 봅니다. 귀찮아서? 두려워서? 여유가 없어서?....... 자, 부모의 입장이 되어 봅니다. 물론 자식은 속을 썩이겠지요. 부모님께 숨기고 싶은 이야기, 형편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의 그 어떤 것도 격려이고 그것을 아는 것이 삶에 힘이 됩니다. 바울은 그런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자식이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온다면 그 형편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부모는 격려와 힘을 얻습니다. 심지어 더 큰 짐을 떠안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서로의 형편을 알아 격려와 위로를 받는 사람들, 그런 사이,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바울이 그래서 빌립보 교회로 보내고 싶어했던 디모데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20절을 보면 그는 진심으로 상대의 형편을 염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는 관심이 없지요. 그러면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일까요?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오늘 편지의 맥락에서 보면 바울은 그것을 진심으로 상대의 형편을 염려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지난 주간에 방문하신 장로님의 방문, 가끔씩 전해 주시는 전화 연락이 왜 그렇게 반가운지 생각해 봅니다.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절친했던 친구, 동료들이나 심지어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부모님의 전화보다 더 마음을 밝게 하고 맑게 해주곤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살펴보며 생각해 보니 자기의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지 않으시는 분들이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저희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그렇지 않다는 게 아니지요. 그분들은 너무 당연히 여겨서 그렇습니다.(당연히 여기지 말아야 하는데요....)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나요? 저희와 무슨 관계라고, 저희가 예가를 시작하며 하우스 구입문제로 곤경에 빠졌을 때 그 분들이 오히려 먼저 전화하셔서 설상가장 회사 세무조사를 받느라 형편이 어려워서 얼마밖에(저희가 상상할 수 없었던 큰 돈) 못 드리겠노라고 하시며 아무 조건 없이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은 지하철로 출퇴근 하시고, 자신의 집이나 먹고 입는 것은 아주 검소하신 분이십니다. 이번에 그 분의 생의 고민을 다시 들으며 더 숙연해졌지요.
회갑 여행을 오신 머리가 허연 장로님이 젊은 목사에게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살라고만 보내지 않으셨을텐데, 인생이 뭐 다른 이유와 의미가 있을텐데.... 그것을 모르겠다고, 그것이 뭔지 잡히지 않아 참 힘들다고 하십니다. 모든 일에 기쁨이 없어서 그래서 올해 장로직도 내 놓고 모든 일에서 쉬고 계시다고요. 물론 회사 일이나 교회 일이나 누구 못지 않게 성실하게 잘 하시는 분이 그런 고민을 털어 놓으시니 더 큰 도전이 되고 제가 멈추고 사는 것같아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스캇 펙이라는 학자는 끝나지 않은 여행(열음사)이라는 책에서 영적 성장 단계를 4단계로 구분했습니다.
영적 성장의 첫째 단계는 “혼돈/반사회”단계인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많이 혼돈스럽습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원하는지 알지 못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곤경이나 어려움에 처해져 있다. 단지 끝없는 욕망과 목표 없는 질주를 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는 “형식/제도적”단계인데, 자신의 혼돈을 제도에 의존해 해결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것을 군대나 학교, 교회 등으로 보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보면 형식에 매우 집작하고, 형식이 무너지면 내면도 무너지는 듯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신을 외재적인 존재로 보고 사람의 영혼 안에 신이 주재하고 계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가치관에 대하여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갖습니다. 대표적으로 성경의 바리새인들이나 독재적인 정치 체제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셋째 단계는 “회의적/개인적”단계인데,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단계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제도가, 과학이 신앙이 과연 절대적인 진리인가를 실험하며 알아가는 것이지요. 철저하고 완벽주의적이고, 용기가 있고 헌신적인 사람들입니다. 넷째 단계는 “신비적/공동체적”단계로, 사물의 이면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단계라고 합니다. 상대적 세계(세상)와 절대적인 세계(하늘)을 이해하며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과의 상호 연관성, 통일성, 공통성에 대하여 우리에게 깨달음을 줍니다.

이러한 스캇 펙의 말을 빌리면 장로님은 자신의 혼돈을 제도적인 장치에 의존해서 해결하려는 시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는 진리를 추구하고 계셨습니다. 진리를 끝없이 추구 하고 계시기에 그런 틀에서는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시는 것이지요. 이미 이루어 놓았다고 여기는 자신들의 가치를 지키고 유지하려는 사람들(자기 일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 우리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을까요? 정말 그렇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살다가는 게 아닌데요. 정말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해야지요. 내게 주어진 삶과 일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기회이고 바꿀 수 없는 사실이라 볼 수 있다면 그래서 그것을 영접하고, 그것에 순종할 수 있다면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찾아온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그 어디나 천국이니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일과 제도로 자신의 혼돈을 막는 것에 급급해서는 찾을 수 없는 지혜이고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로님은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니 그 형편을 앎으로 격려를 받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진심으로 형편을 염려하는 마음을 아니 더욱 그렇습니다. 자기 일과 자기 소유를 지키고 유지하기 급급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의 일, 하늘의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참 사람’입니다. 깨어난 사람이 그렇습니다. 깨어나지 않으면 자기의 일에만 관심을 두고 살게 됩니다. 세상의 염려와 이생의 자랑에 매여서 그 틀에 갇혀 살게 됩니다. 그러나 깨어나면 그것들을 마음대로 합니다.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런 자기 일들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서 오늘 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가만히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이웃이 어디로 가든지 믿고 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고자 합니다. 이제 마음을 돌아보아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복음에, 사랑하며 사는데 관심을 가지고 살고 싶습니다.

25절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내고 싶은 또 한 명이 있습니다. 그는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면 바울의 옥중 수발을 들어준 비서 혹은 몸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옥중에 갇힌 바울, 그것도 언제 사형을 당할지 모르는 죄목으로 로마의 감옥에 갇힌 바울을 위해 자청해서 자기도 감옥에 들어가 생활한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을 수종들기 위해 자청해서 감옥에 들어갔고 그 일이 힘에 겨워서 병에 들어 죽을뻔까지 하였습니다. 어쩌면 바울을 대신해서 매를 맞았을 수도 있고, 고문을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에바브로디도를 형제라고, 동역자라고, 전우라고, 쓸 것을 공급해준 일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런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고 싶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 보세요. 눈물겹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진심으로 염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일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먼저입니다. 바울은 그가 꼭 필요했을 터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26절을 보면 자기를 보내준 빌립보 교회를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에바브로디도의 마음을 바울은 헤아려주고 있습니다. 28절을 보면 바울이 서둘러 보내고 싶어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기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생하여 죽을뻔까지 한 에바브로디도를 걱정하는 바울의 마음도 있습니다.
자, 이러한 에바브로디도나 또 그런 제자, 이웃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바울의 모습에서 어떤 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게 되는 바가 많이 있습니다. 또, 그러한 이들을 기쁜 마음으로 영접하고, 존경하는 빌립보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러한 관계, 만남이야말로 삶의 참된 격려와 지지가 아닐까요? 다시 보니 이렇게 살맛이 납니다. 그래서 그렇게 기쁨에 젖어서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고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삶, 그런 만남에 살고 있는데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모두 그러한 나의 형제요, 동역자요, 전우요, 사신입니다. 나의 삶의 참된 격려와 지지자들이십니다. 우리가 그런 관계만 되어도 우리가 잘 살았다 돌아보아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모두 자기의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저희들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진심으로 상대의 형편을 염려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을 갖게 하옵소서.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이 땅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봉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진정 서로를 위한 염려와 기도가 우리의 근심을 덜어주고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