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막9:33~37 ( 0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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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본문 ; 마가복음 9:33~37
주제 ; 다툼과 영접
제목 ; 길가에서
일시 ; 2001년 12월 2일, 고등부

1. 여는 말
(대강절 :: 보석과 같은 기다림.. 무엇을 기다리는가? 가슴에 보석을 간직한 사람이 복되다.)
우리 고등부 학생 중에 귀를 뚫고 귀고리를 한 친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딴에 신경써서 예쁜 귀고리를 했는데, 누가 "야, 그거 가짜지?"라고 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가짜를 가짜라고 하는데, 화를 낼 수도 없고, 속상해서 씩씩거리고 있겠습니까? 아니면 확~ 대들어서 밀어버리겠습니까? 그러나, "응, 그래 모조품이야. 하지만, 진짜는 우리 집에 있어. 잊어버릴까봐 진짜하고 똑같은 것을 하고 다니는거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우아하지요?
네. 진짜 보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여유있고, 우아할 수 있습니다. 남이야 가짜라고 하든 말든 아무 문제가 아니지요. 그런데, 진짜 보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수치심과 속상함에 어쩔 줄을 모를 것입니다. 남의 말에 끌려 다니게 됩니다. 실력이 없는 사람이 시험보고 나서 점수가지고 다툽니다. 빈수레가 요란합니다. 속이 찬 수레는 요란하게 덜컹거리지 않습니다. 저마다 가슴에 소중한 보석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면 세상에는 다툼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길에서 누가 높은지 다투는 사람들 이야기, 길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2. 몸말
본문 33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갔다."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갑니다.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또 세상은, 시간은 흘러가고, 무언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오늘 우리는 가지는 않고, 멈추어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입니다. 세상으로, 또 나의 일을 찾아, 나의 사명과 소명, 내가 할 일을 하면서 가야하는데, 그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는데, 여러분은 어디고 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가고는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한 걸음인지 알지 못한채 막연히 억지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가고 있습니까? 예수와 함께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는 그들이 참 부럽습니다. 내가 알든 모르든 상관이 없이 결국 나는 그곳으로 그곳, 어디론가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알고도 가고, 모르고도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복할 수 있는 하나의 비결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면서, 깨어서 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 걸음을 하나 하나 알아차리면서 사랑하면서 말입니다. 그게 행복이고, 그게 신비이고, 그게 기쁨입니다.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집안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철없는 제자들을 향해 물으신 주님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의 이야기를 듣고도 누가 크냐고 싸우고 있는 제자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숨결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물으신 주님께서 지금 여러분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지금 너 뭐하고 있니?, 도대체 뭐하고 있니? 네가 하는 일에, 네가 가는 길에 최선을 다하고 있니? 그 일이 기쁘니? 그런데 너는 지금 뭐하고 있니? 이렇게 물어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물어주시니 잠시 멈추어서 오늘 나의 모습을 가만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물어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하고 기쁜 일입니다. 물어주시니 그렇게 잠시 멈추어 서서 하루의 발걸음을, 오늘 나의 모습을 가만히 돌아볼 수가 있습니다. 물어주시니 보입니다. 물어주시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묻고 계신지요? 또 누가 여러분에게 물어주고 있습니까? 물어주는 것은 관심이요, 사랑입니다. 그런데 나는 누구에게 관심이 있고, 어떤 일을 묻고 있습니까? 물어주시는 주님 앞에 가만히 서서 오늘 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물어주시는 그 분이 있어 행복합니다. 나에게 물어주시는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그것이 사랑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그렇게 지금 너는 너의 길을 가고 있는데, 오늘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에 고난받고 죽으실 것을 이야기하시고, 그것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길을 같이 가면서 누가 크냐고 하는 것으로 다투었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앞두고 계신데, 제자들은 명예와 입신을 위해 다투고 있었습니다.
참 한심한 노릇이 아닙니까? 동상이몽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음성이 화가 나서 톤을 높여 "야, 왜 싸우니?"라고 하셨을까요? 그래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음성은 그렇게 노엽거나 원망이 섞이거나 날카롭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저 다정하게 목소리를 낮추어서 "그래,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니?"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주님께서 다시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그래, 네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니?", "무슨 일로 다투고, 무슨 일에 허겁지겁하고, 무슨 일로 속상해 하고, 무슨 일로 힘들어 했니?"라고 물으십니다. 그 주님의 마음이 되어 봅니다. 내가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내 삶을 소비해왔던 것이 얼마나 사소하고, 얼마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었는지를 이제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한 주간 여러분은 길에서,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여러분이 가야 할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렇지요? 주님이 물어주시기 전까지는 내가 다투고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어떤 기운, 어떤 분위기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눈감고 귀멀어 있었습니다. 정작 내가 가는 길, 목적과는 상관이 없니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주인이 되지 못하고 손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디를 지나고 있고,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 내가 가는 길과는 상관이 없이 창문에 커튼 내리고, 치고받고 싸움박질만 하고 있습니다.
길에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길가에는 예쁜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길을 가다 보면 산도 있고 들도 있고, 바다도 강도 있습니다. 눈을 들면 파란 하늘도 보입니다. 그래서 길가는 여행이 즐거운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누릴 것, 즐길 것이 많은데, 가라는 길은 가지 않고 길에서 다투고 있습니다. 누가 크냐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와 다투었습니까? 무엇과 다투고 있나요? 저는 목사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지난 주간에 한 구체적인 일 가운데 하나로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동안에도 저는 5살난 아들 한결이와 다투고, 아내와 다투고, 어머니와 다투고, 컴퓨터와 다투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책상 앞에 세시간 앉아 있으면 정작 할 일을 하는 것은 한 시간도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괜히 e-mail 박스를 열어보고, 인터넷으로 이곳 저곳을 다닙니다. 물론, 그런 자료수집과 만남이 다 설교를 준비하는 일이지만, 곁길로 세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게 다투고 있습니다.
사랑하라고 아들을 주시고, 아내를 주시고, 가정을 주셨는데, 함께 사랑하면서 오손도손 살기보다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가 쉽습니다. 아빠가 좋아서 곁에 다가와 아는 체하고 함께 놀아주기를 원하는 아이를 귀찮게 여기고, 일에 방해되고, 공부에 방해되니 어떻게든 떼어놓을 궁리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 때문에 치이고, 늦게 들어온 아내를 다독여주고 감싸지는 못하고 불평만을 늘어놓았습니다. 뭐 하는데, 밤늦게까지 밥도 못챙겨 먹고 다니느냐고... 야단을 칩니다. 사실 속마음은 그게 안쓰럽고, 마음에 걸리면서도 마음의 표현은 도리어 화를 내는 것으로 풀고 있습니다. 다투고 있습니다.
사랑하라고, 함께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라고 교회로 모이게 했더니 누가 크냐고 다투고 있습니다. 다투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돌아보니, 주님의 말씀 앞에 서니, 우리의 삶은 길은 가지 않고, 길에서 다투고 있는 삶입니다. 이 길은 우리의 인생길이니다. 토론하고, 쟁론하고, 수근거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우리의 길을 다시 돌아보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툼은 결국 "누가 크냐?"하는 것입니다. 내가 더 잘낫다고, 내가 더 많이 가졌다고, 내가 더 높다고 다투는 것입니다.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을 가지고 자랑하시렵니까?

3. 닫는 말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함께 빌립보서 3장 7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을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이 우리의 가장 큰 자랑거리입니다. 그것이 우리 가슴에 새겨진 소중한 보석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있을찐데,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란 것을 알진데 다른 사람의 말과 눈에 흔들릴 바가 없습니다. 누가 크냐하는 것들로 다투지 않습니다. 묵묵히 하나님이 주신 길을 걸으며 길가에 풀한포기, 꽃한송이를 보고, 바람 소리 들으며, 향기를 맡으며, 색깔을 보면서 행복한 여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생에는 다툼이 있습니다. 주님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냐는 물음은 책망어린 물음은 아니었습니다. 다정하고 자상한 물음이셨습니다. 다툼이 있어야 성장이 있고, 성숙이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투고만 싶지는 않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가는 걸음이니 선생님의 뜻을 함께 묻고 싶고 듣고 싶습니다. 그 길에 호흡과 발을 맞추고 싶습니다. 뭐하다 왔니? 그렇게 살다 왔습니다. 다투다가 왔다고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서 온 세상에서 내 할 일을 하며, 내 갈 길을 바로 보고, 행복하게 조화롭게 길을 가고 싶습니다.

4. 기도
사랑하는 주님, 우리와 함께 길을 가며, 우리에게 다정하게 물어주시는 주님, 오늘도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가 지난 한 주간 동안, 무슨 일로 다투었냐고 묻는 주님의 음성 앞에서 다시 한번 저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주님의 방법대로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5. 파송의 말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믿고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가꾸며, 돌보라고 말입니다. 이제 예배를 드린 여러분을 또 세상에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믿는 그 믿음대로 쉽고 가벼운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세상에 나아가 말씀을 이루는 거룩한 일을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6. 축도
우리의 모든 길을 아시고 우리 앞서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하심과 서로 교통하게 하시며 돕는 이로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감화 감동 역사하심이 이제 길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홍광교회 고등부 학생들과 선생님들, 이 땅의 소중한 주의 백성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수정한 말씀 ========

본문 ; 마가복음 9:33~37
제목 ; 섬기는 사람
일시 ; 2001년 12월 9일, 제1남선교회 총회

1. 여는 말
여러분들 혹시 추억의 도시락 생각나십니까? 노리끼리하고 납짝한 양은 도시락말입니다. 누구 것이든 한쪽 귀퉁이가 찌그러져있고 책보다도 더 커다랗던 네모난 도시락 말입니다. 먹어도 뒤돌아서면 배고프고, 배고프던 학창 시절을 채워주던 도시락 말입니다.  점심이 되기도 전에 겨울 석탄 난로에 서로 먼저 올려놓고 따끈해지면 밑바닦이 뚫어져라고 남은 한톨까지 박박 긁어 먹던 그 추억의 도시락 맛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비싼 식당에 간들 그 시절 그 맛을 느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맛난 도시락이 먹을 때는 좋은 데 다 먹고 나서 집에 가지고 갈 때는 "잘그락, 달그락, 잘그락 달그락"어찌 시끄러운지요. 어쩌다 가방이 좀 흔들릴라치면 숟가락과 양은 도시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여간 부끄럽게 크지 않습니다. 요것이 아침에 밥으로 꽉 차있을 때는 잠잠하고 든든하더니 속이 비니까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겁니다. 역시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옛말이 틀린 것이 하나 없습니다.
네. 빈수레가 요란합니다. 속이 찬 수레는 요란하게 덜컹거리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시험보고 나면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그냥 다음날 과목을 공부합니다. 그런데 꼭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모여 앉아 이미 지난 시험 답 맞추느라고 야단입니다. 그것도 틀린 답 가지고...
가슴이 허하고 채워진 것이 없으니 소리가 큰 것이지요. 저마다 가슴에 소중한 보석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면 세상에는 다툼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길에서 누가 높은지 다투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2. 몸말
본문 33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갔다."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갑니다.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시간은 흘러가고, 무언가 하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요즘 인터넷 못하면 사람 대접도 못 받습니다. 메일이니 문자메시지니 자고 나면 공부해야할게 태산입니다. 요즘 40-50대의 고민은 자녀들이 핸드폰 벨소리 바꿔놓으면 원위치로 바꿔놓을 줄 모르는 거랍니다. 아이들이 문자를 보내도 받을 줄 모르는 40대의 비애 말입니다(^^). 세상은 흘러갑니다. 내가 걷지 않으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뒤로 물러서는 것이 요즘 세상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혹시 오늘 우리가 걸어가지는 않고, 멈추어 서서 뭔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입니다. 나의 일을 찾아, 나의 사명과 소명,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그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는데, 여러분은 어디고 가고 있습니까?
내가 가든 서있든 세상은 하여튼 흘러갑니다. 그래서 오늘도 또 일년을 보내고, 이렇게 총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자칫 세월 따라 휩쓸려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복할 수 있는 하나의 비결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면서 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 걸음을 하나 하나 알아차리면서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집안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철없는 제자들을 향해 물으신 주님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의 이야기를 실컫 해주었더니 못 알아듣고는 누가 크냐고 서로 싸우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지 않으시고, 실망하여 떠나지 않으시고, 질문을 통해 그들을 깨우치십니다. 깨닫게 도와주십니다. 그런 사랑의 주님께서 오늘날 지금 여러분들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여러분, 물어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하고 기쁜 일입니다. 복중에 뛰어난 복입니다. 그렇게 물어주시니 잠시나마 멈추어 서서 하루의 발걸음을, 오늘 나의 모습을 가만히 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어주시니 비로소 내 모습이 보입니다. 물어주시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묻고 계신지요? 아내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관심과 사랑으로 물으십니까? 오늘 학교에서, 가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주고 있습니까? 또 교회에서는 어떻습니까? 그런 관심과 사랑 안에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가던 걸음 멈추고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우리 제1남선교회 총회에 예수님은 이렇게 물어주십니다.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그래, 네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느냐?", "지난 일년 동안 무슨 일로 다투고, 무슨 일로 허겁지겁하고, 무슨 일로 속상해 하고, 무슨 일로 힘들어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내가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내 삶을 소비해왔던 것이 얼마나 사소하고, 얼마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었는지를 이제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시간 지난 일년동안 여러분이 가야 할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솔찍히 말하면 주님이 물어주시기 전까지는 내가 다투고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이 그러합니다.  내가 어떤 기운, 어떤 분위기에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눈 멀고 귀 멀어 있었습니다. 정작 내가 가는 길, 목적과는 상관이 없이 주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주인이 되지 못하고 손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디를 지나고 있고,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 내가 가는 길과는 상관이 없이 창문에 커튼 내리고, 치고 받고 싸움박질만 하고 있습니다.
길에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길가에는 예쁜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길을 가다 보면 산도 있고 들도 있고, 바다도 강도 있습니다. 눈을 들면 파란 하늘도 보입니다. 그래서 길가는 여행이 즐거운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누릴 것, 즐길 것이 많은데, 가라는 길은 가지 않고 길에서 다투고 있습니다.
누가 크냐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와 다투십니까? 무엇과 다투고 있습니까? 직장 상사와 다투고, 부하직원과 다투고, 아내와 다투고, 사춘기로 방황하는 자녀들과 다투고, 주차문제로 이웃과 다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더 자주 다투게 됩니다. 그들을 우리 가까이에 두신 하나님의 뜻은 더 사랑하고 더 섬기라는 뜻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자녀들, 동료, 이웃과 다투며 살다가 이 땅의 80평생을 마감해서야 되겠습니까?
사랑하라고, 함께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라고, 교회로 모이게 했더니 누가 크냐고 다투고 있습니다. 길은 다니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다니지는 않고 서서 다투고 있습니다. 이 길은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우리의 지나 온 길을 다시 돌아보게 묻고 계십니다. 우리의 다툼은 결국 "누가 크냐?"하는 것입니다. 아내보다 내가 더 위가 되고 상사가 나를 더 인정해 주어야 하고, 부하직원과 자녀에게 존경을 받아야 하고 이웃보다 내가 더 잘나고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다투고 있는 것입니다.

3. 닫는 말
함께 35절에서 37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섬겨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꼴찌가 되어서 섬기는 그가 천국에서 큰 사람입니다. 어린아이 하나를 받아들이고 영접하는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영접합니다. 그런 사람은 길에서 누가 크냐하는 것들로 다투지 않습니다. 묵묵히 하나님이 주신 길을 걸으며 길가에 풀한포기, 꽃한송이를 보고, 바람 소리 들으며, 향기를 맡으며, 색깔을 보면서 행복한 여행할 수 있습니다.
아내와 다투지 마십시오. 기선을 제압하려 하지 맙시다. 그녀의 말에 귀기울여 봅시다. 그리고 물어줍시다. 오늘 하루 어땠느냐고? 어디 아픈데는 없냐고, 왜 안색이 않좋으냐고?
자녀와 다투지 맙시다. 권위적인 음성으로 소리치지 맙시다. 그 아이들의 말에 귀기울여 봅시다.  공부 잘되느냐는 말 이외에 다른 이야기를 해봅시다.
부모를, 이웃을, 동료를, 상사를, 부하직원을 바라봅시다. 사랑과 관심의 눈으로 봅시다. 그들에게 귀기울여 봅시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기울여 보면 모두가 서로의 관심과 사랑을 바라는 것뿐입니다.

이제 오늘 총회를 하시는 제1남선교회 여러분들의 가는 길이 이렇게 감사하며,  서로 섬기며 주님께서 가시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걸음이 될 것을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우리 가운데 지극히 작은 사람,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고 섬기는 그가 첫째입니다.

4. 기도
사랑하는 주님, 우리와 함께 길을 가며, 우리에게 다정하게 물어주시는 주님, 오늘도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가 지난 한 주간 동안, 무슨 일로 다투었냐고 묻는 주님의 음성 앞에서 다시 한번 저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주님의 방법대로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5. 축도
우리의 모든 길을 아시고 우리 앞서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하심과 서로 교통하게 하시며 돕는 이로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감화 감동 역사하심이 이제 길에서 다투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며 섬기기를 소망하는 홍광교회 제1남선교회와 이 땅의 소중한 주의 백성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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