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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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산 오동성 목사의 설교입니다.
본문: 창13:8~18 ( 140202)
2014/2/7(금)
주일 낮예배 : 말씀으로 말씀이 되어  
본문 : 창세기 13장 8절~18절
제목 : 말씀으로 말씀이 되어
일시 : 2014년 2월 2일, 수정교회
           
(기도)

하나님, 아름다운 오늘 수정교회로 모인 저희들이 주일 예배로 몸과 마음을 모읍니다. 힘겹고 어려운 순간들과 삶에 지쳐 있는 저희를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으로 맞이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그 말씀으로 저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사랑으로 믿음으로 소망으로 깨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

4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수정교회의 목표, “말씀 위에 선 교회, 말씀에 뿌리내리는 성도"는 어떤 교회이고 어떤 성도일까요? 말씀으로 사는 삶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시고 그 지으신 세상은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러니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다 좋은 것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돌아보면 오늘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아, 좋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선물로 주신 자식과도 다투고 나 자신도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죄인이라고 가슴을 쥐어뜯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내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나도 보시기에 좋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말씀으로 돌아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 구원이요, 내 생각에 빠져서 탓하고 원망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금식하실 때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때 하신 말씀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지요. 떡으로만 사는 것은 내 생각과 판단으로 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감각되는 육체가 나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지요. 말씀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원래의 참 나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그렇게 말씀으로 사는 삶이 무엇이고 그렇게 살아가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가는 길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본향을 향해 가는 우리 인생을 비유하는 이야기지요. 여러분은 어떤 꿈을 찾아, 어떤 약속을 따라 지금 여기까지 와 있습니까? 또 우리 수정교회의 40년은 어떠했을까요? 저 역시 캐나다에 10년을 살고 있지만 100년을 산 것 같고 우리 장로님들, 집사님들을 비롯해서 김영환 목사님까지도 백만년 만에 만났듯 신비한 느낌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그 이야기를 다 쓰지 못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 길에서 내가 겪는 나의 이야기, 나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길을 떠난 이들 가운데 조카 롯이 있었습니다. 나그네 된 땅에서 가난하고 힘겨울 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혈육이자 벗이었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 앞부분을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큰 부자가 되고 나니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함께 머물 땅이 너무 좁아서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곤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본 아브라함은 속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가족 간에, 친구 간에, 교회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 많이 가져서 그렇습니다. 너무 많이 가져 고마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가지지 않았을 때는 오히려 작은 것에 감동할 줄 알아 서로 위하고 채워주는 연민과 사랑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툼이 일어나자 아브라함은 롯에게 말합니다.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너의 목자들과 나의 목자들 사이에, 어떠한 다툼도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한 핏줄이 아니냐! 네가 보는 앞에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 따로 떨어져 살자.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여기에 말씀으로 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성숙한 선택과 지혜가 있습니다. 먼저 그는 다툼을 인정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갈등을 모른 체하지 않고 인정한 것입니다.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드러낸 것이지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사실을 인정하는데서 문제 해결은 시작됩니다. 감추고 포장하면 잠시는 모면할지 모르지만 골이 깊어질 뿐입니다. 사실을 사실로 밝히는 것이 용기이고 사랑이고 말씀으로 사는 길입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조카와의 다툼을 인정하니 문제가 보이고 대안이 나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다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한 핏줄이라는 사실, 우리는 원래 하나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너는 나의 거울이고 너와 내가 다르지 않습니다. 옆에 앉은 이의 얼굴을 한번 보시지요. 그 눈을 들여다 보세요. 믿음으로 보면 내 옆에 앉아 있는 분이 사실은 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한 형제와 자매이니 그러하지요. 한 아버지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다투고 삶이 기쁘지 못하고 힘들어집니다.

다툴 때 일단 정지하고 떨어져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떨어져 있어 보면 알게 됩니다. 서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였는지를 말입니다. 제가 토론토에서 예가를 운영할 때 매년 여름 캠프를 했었습니다. 한국이나 전 세계에서 부모를 떠나 아이들이 찾아와 저와 같이 한 달간 먹고 자며 지냈습니다. 그 시간 동안에 제가 만나는 가장 뭉클한 장면은 함께 있으면서 다투고 미워하고 원망하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을 그리워하며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며 새롭게 배웁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렇게 그리운 부모와 왜 다투며 살아 왔을까 미안해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지요. 그것이 사랑이고 지혜입니다. 아무리 뱃속의 아이가 예쁘다고 해서 산모가 아이를 뱃속에서 내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둘 다 죽습니다. 말씀으로 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렇게 떠나 보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사랑해서 혼인한 부부이지만 다툼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같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남편은 다툼이 일어나면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고 따졌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조급하고 불안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아내는 잠시 멈추어 보자고 합니다. 당장에 불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라앉은 다음에 차분히 이야기를 꺼내주지요. 그러면 쉽게 풀어져서 많이 고마웠던 기억이 납니다. 떨어져 보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토론토에서 운전하는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설교를 준비하고 교회당 안에서 기도하는 목사가 아니라 땀흘리는 삶의 현장에서 공부하고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날은 새벽 3시부터 운전을 시작해 밤 11시까지 운전을 하고 나면 하늘이 하예집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그렇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 일하면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감사가 찾아오지요. 그렇게 일하고 나서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하며 말씀을 나눌 때 내가 정말 잘 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고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된 것이지요. 떠나보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양보하고 져주는 미덕입니다. 져주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작은 사람은 져주지 못합니다. 사실 삼촌의 권위로 내가 이쪽으로 갈테니 너는 저쪽으로 가라고 우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그래서 조카 롯은 눈에 보기에 좋은 요단 들판을 선택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척박한 땅이지만 가나안 광야에 머물러 살게 됩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기에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눈을 뜨고 깨어 있다면 그 어느 곳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을 입으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 나라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의 말씀인 우리 안에 다툼과 미움이 있습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고 답답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 아브라함의 이런 선택이 우리의 길을 아름답게 열어주어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으로 가는 이정표가 되어주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지는 말씀, 우리 함께 14절부터 17절까지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14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15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16 내가 너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누구든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의 자손을 셀 수 있을 것이다.
17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니, 너는 가서, 길이로도 걸어 보고, 너비로도 걸어 보아라."

자, 여기에 말씀이 되어 말씀으로 살아가는 우리 길의 또 다른 이정표가 있습니다. 14절에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간 뒤에’라고 했습니다. 이 때가 어떤 때인가요?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때는 아브라함에게는 큰 실망과 좌절의 때였습니다. 혈혈단신으로 고향과 친척을 떠나 약속을 따라 순종하여 낯설고 물설은 가나안까지 왔는데, 믿었던 하나뿐인 조카가 그를 배반한 것과 마찬가지였지요. 양보는 했지만 내심 서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제는 나 혼자라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만감이 교차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 때의 아브람의 마음, 그 막막함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러한 때입니다. 혹시 오늘 나의 모습이 아브라함의 모습은 아닌지요? 그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셨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말씀 위에 서고 말씀에 뿌리를 내릴 때입니다. 믿고 의지하였던 이를 떠나보내고 지독한 외로움과 절망에 허덕이는 그 때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때입니다. 그 때 듣는 말씀이 나를 새롭게 합니다. 다 떠나보내고 내 손에 쥔 것이 없이 홀로 있어야 그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순간이, 좌절과 절망의 때가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와 말씀하시는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정재규 시인의 감동적인 시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꽃이 핀 것은 아니었다.
열매도 처음부터
달콤한 것은 아니었다.
비바람을 맞고 나서 더 아름답다.

처음부터
사랑하지는 않았다.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기고
비바람을 맞고 나서 달콤해졌다.

처음부터
그리워하지는 않았다.
꽃이 지고 사랑이 지고 나니
그 때부터 그리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니 수지 맞은 것이지요. 삶의 비바람, 실연과 부도와 질병과 사고는 속된 말로 땡 잡은 것 아니겠습니까? 절망과 좌절과 배신감과 막막함에 주저앉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홀로 두지 않으시고 말을 거셨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홀로이지 않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때에 하나님을 만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때입니다.

자, 그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네.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네가 있는 그 자리에서 눈을 들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나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왕년에는 어땠는데, 장차 이렇게 될꺼야 라는 공상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했으면 실패한대로, 실연을 당했으면 실연을 당한대로, 친구와 다투었으면 다툰대로 그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의 문제, 나의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그 다음이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아파서 병원에 가는데 어디가 아픈지 모른다면 제 아무리 명의라도 그 환자를 고쳐줄 수가 없지요. 아픈 거기에서,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그 모든 시작은 “너 있는 곳에서”부터입니다. 현 위치 파악입니다. 시방 느낌부터 알아 갑니다. 좋은 느낌이든 싫은 느낌이든 밝든 어둡든 심각하든 가볍든지 거기 너 있는 곳에서 시작합니다. 그 느낌이 어떤 생각에서 나오는지 알아야 다른 생각을 선택할 수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그 현실에 발 딛고 서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 거기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눈을 들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눈을 들까요? 다툼과 원망의 눈, 미움과 질시의 눈일까요? 아니지요. 지금까지 그랬다면 이제는 거기서 믿음의 눈, 영의 눈을 Em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과 어두운 땅의 눈이 아니라 희망과 사랑과 빛의 하늘의 눈을 들라는 말씀입니다. 꿈을 가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너 있는 곳에서, 바로 거기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을 뜨고 하나님이 보는 것처럼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만큼 얻고 누리는 것이 삶이고 약속입니다. 두 손을 놓고 마음과 생각을 비우고 바라보면 셀 수 없습니다. 내가 보는 만큼입니다. 보지 않으면 누릴 수 없습니다. 또 일곱 번째 방향인 내 마음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봅니다. 내가 찾아갈 보물, 나의 꿈과 사랑이 거기에 있습니다.
보이는 만큼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보는 만큼이라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보지 않으면 나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꿈꾸지 않으면 그것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기도하지 않으면 무엇을 주셔도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인지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보게 될 때에 그 ‘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그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지요. 너는 가서, 길이로도 걸어 보고, 너비로도 걸어 보아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말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고 보기만 하면 거기까지입니다. 생각으로는 꽃은 피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열매는 맺을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은 열매를 위해 있는 것이니 꽃은 지면 그만입니다. 내 발로 딛고 걸어보는 만큼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음이 있습니다. 앉아만 있어서는, 말만 해서는 그것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보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어나 종과 횡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발 닿는 곳을 하나님은 선물로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 약속에 따라, 비전에 따라, 꿈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너에게 주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말씀이 되어 말씀으로 살아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뒤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라보고, 일어나 행할 때 그것을 나에게 주십니다. 말씀 위에 서서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그 꿈을 이루어 가는 오늘 하루, 여러분의 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18절입니다. “아브람은 장막을 거두어서, 헤브론의 마므레, 곧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살았다. 거기에서도 그는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장막을 옮기고,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면서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습니다. 말씀을 들은 우리의 시작입니다. 일어나 가서 단을 쌓고 예배하는 삶입니다.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는 태도로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삶의 시작이고 마무리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곳에서 단을 쌓고 그 은혜로, 그 힘을 입어 사는 것이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예배당의 문을 열고 나서면서 시작됩니다.

자 함께 따라 하시지요. “아, 좋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말씀으로 지으셨고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가장 멋진 표상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를 만나도 하나님을 만나듯이,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의 일을 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처럼 그를 믿는 우리도 말씀이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모두가 떠나간 뒤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살아가는 수정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온갖 다툼과 시비가 있는 세상 한가운데 저희가 있습니다. 가장 믿었던 이들도 나를 떠나고 나 혼자만 동떨어져 있는 외로움에 뭍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자리에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믿음의 눈을 뜨게 하시고,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꿈과 비전을 주셔서 일어나 동서남북, 위 아래로 걸어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가만히 앉아 바라보기만 하거나 말만 하거나 생각만 하지 않고 그렇게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발 딛는 곳, 그만큼을 주시겠다하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봉헌기도와 축도)

우리가 가진 것 원래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다시 주님께 돌려 드립니다. 이 예배와 드리는 예물을 통해 주의 귀한 일 드러내시고 이 일을 통해 다시 주시는 주의 은혜를 경험케 하옵소서.
이제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앞서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참 좋은 세상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감화 감동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오늘 모두가 떠나간 후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이 되어 그 말씀으로 살기를 소망하는 수정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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