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Old 산물넷 : 게시판 : 사진방 : 산(mountain)페이스북블러그깊은물 추모Art of Life Community

처 음 | 하루 살이 | 예가○양로원 이야기 | 묵상의 오솔길 | 편지 | 이야기 앨범 | 설 교 | SPIRIT


깊은산 오동성 목사의 설교입니다.
본문: 요17:20~26 ( 111113)
2011/11/19(토)
주일 낮예배 : 내 영광  


본문 : 요한복음 17장 20절~26절
제목 : 내 영광
일시 : 2011년 11월 13일, 주일예배

(어린이 설교와 파송)

어린이 여러분, 함께 23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볼까요?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이 어디에 계실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에 있나요? 한번 찾아보세요.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에?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하겠습니까? 예수님이 뭐하실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살피면서 지내야겠습니다. 공부를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그렇습니다. 그 이유를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었지요. 아버지와 예수님과 내가 완전히 하나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그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어린이 여러분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로 살아가는 어린이 여러분을 교회학교로 파송하겠습니다.

(설교)

우리는 지난 시간에는 세상을 떠나시는 예수님이 남겨주신 ‘내 기쁨’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뭐가 그렇게 기쁘셨을까요? 자신에게 있는 기쁨이 남은 이들에게도 차고 넘치기를 기도하셨지요. 여러분 지금 기쁘세요? 기쁨은 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신(新信神)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는 증거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깨어서 사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는 길도 하나지요.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공부를 잘하는지, 연애를 잘하는지 하는 증거도 하나예요. 내가 정말 기쁘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설레이고 가슴이 뛴다면 그것은 잘 하는 것입니다. 그게 기쁜 것이지요. 지금 내가 기쁘지 않고 가슴이 설레지 않는다면 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신호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기쁨을 남은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것 하나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신이 나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농부와 같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은 미래의 어떤 시간이나 장소, 공간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은 3차원, 육의 세계에서만 의미가 있지 그 차원을 넘어서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정치 사회학자들은 보통 국가가 구성이 되려면 ‘영토, 국민, 주권’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그 요소 중에 영토나 국민의 요소가 아니라 주권의 요소가 강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 달리 말하면 그와 함께하는 기쁨이 가득한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인 것입니다.
구르지예프라는 영성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은 영원불멸하고 변하지 않는 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각각의 생각, 각각의 기본, 각각의 소망, 각각의 감각이 제각기 나라고 말한다. 인간에게는 어떤 개별적인 나도 없다. 대신에 수백 수천의 작은 나가 있다. 매분, 매 순간마다 인간은 나를 말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나는 매번 다르다. 바로 직전에는 어떤 생각이었고 지금은 어떤 욕구이며, 지금은 어떤 감각이고, 지금은 또 다른 생각이다. 인간은 다수이다. 인간의 이름은 군대이다.”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서 그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 때 그 귀신이 자기 이름을 군대라고 말합니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뭐가 난지를 모르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떤 내가 진짜 나일까요?
사람의 의식 상태를 크게 네가지로 나누어서 봅니다. 첫째는 잠자는 상태로 내가 누군지 모르고 그저 기계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두 번째로 선잠을 깨어서 상상만 하며 되지도 않을 것만을 보며 살아갑니다. 세 번째로 그런 자기를 의식하며 찾아가는 상태입니다. 네 번째로 완전히 깨어서 객관적인 세계를 의식하며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엔소니 드멜로가 ‘깨어나십시오. 깨어나면 그것들을 내가 마음대로 하지만, 깨어나지 못하면 그것들이 나를 마음대로 합니다.’라고 말했던 것도 그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어떤 의식 상태인지 한번 점검해 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나님과 하나인 나를 의식하는 큰 기쁨에 계셨습니다.
멋진 시 하나가 있습니다. “그리워는 해도 염려하지는 않겠소. 손 시린 세상의 능선 길을 걸어가는 그대의 뒷모습에서 흐르는 외로움이 발자국마다 고여 있다 해도 나는 그대를 염려하지 않겠소. 여기에서 보면 그대의 먹구름 위에는 늘 환히 비추는 햇살이 빛나고 있소. 여기에서 보면 그대의 가슴 속에서 퍼덕이는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고 있소. 여기에서 보면 그대의 하늘은 눈물겹게 푸르기만 하오. 여기에서 보면....” 여기에서 보면이라는 것은 그렇게 ‘깨어서 보면’이라는 것이지요. 우리 표현으로 하면 ‘하나님의 품’에서 보면 그렇게 다 되어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 눈으로,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기쁨이 우리 가운데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지는 오늘 예수님의 남은 기도도 같은 이야기인 ‘내 영광’을 전해주고 계십니다. 함께 20절을 읽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비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하나된 기쁨을 나를 믿는 모두가 누리고 그 진리로 거룩하게 바쳐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교단이나 교파의 창시자나 대표자가 아니시지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모두의 주님이십니다. 사실은 모두가 하나이기에 그렇습니다. 나와 하나이니 너와 내가 다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있다면 죄이지요.
21절을 이어서 읽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해주십시오.” 이 예수님의 기도는 깨어난 사람, 믿음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저절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눈을 뜨면 하나님이 손수 지으신 세계는 보시기에 참 좋을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하나가 되어 모두가 우리 안에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하나가 되어 보내신 분 안에 있으면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기도는 한마디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는 것이지요. 그것을 잊지 말고 살라는 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이십니다. 잘 보세요. 아버지와 요한이 하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은 이름일 뿐입니다. 이름 안에 있는 참 나와 하나라는 말입니다. 요한은 나가 아닙니다. 베드로도 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름입니다. 육체는 내가 지구에서 쓰는 옷이지요. 그럼 내가 하는 생각이 나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생각입니다. 나는 직업도 신분도 직책도 내가 아닙니다. 그런 모든 것은 역할일 뿐입니다. 그런 껍데기들을 다 벗어내고 참 나로 깨어나 보면 그는 아버지와 하나된 나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지요. 진리가 있다면 이것이 진리이겠지요.
우리가 세상에 왜 왔을까요?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광야에서 40년을 지내야했고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왜 떠나야했을까요? 그것은 약속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고, 아버지와 하나임을 알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우리는 따로 떨어져 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무엇도 누구도 혼자 그렇게 될 수가 없지요. 예가에 새 가족들이 오면 나이아가라 폭포에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그 폭포 앞에서 묻습니다. 무엇이 보이냐구요. ^^ 낙엽 한 장, 풀잎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거기에는 너와 내가 내쉰 숨이 있습니다. 물이 있고, 햇빛이 있고, 탄수화물이 있고, 엽록소가 있고, 칼슘이 있고, 나트륨이 있고, 염분이 있습니다. 달빛이 있고, 별빛이 있고, 우주가 다 있습니다. 그러니 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22절과 23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 영광,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이 있습니다. 무엇이 영광일까요? 영광은 말로 설명이 될 수가 없지요.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영광이 아닙니다. 만나보아야, 경험해 보아야 그 깊이와 크기와 아름다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유 없이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영광은 받은 것입니다. 말로 설명되고 책으로 보아 알 수 있다면 그 영광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어떨 때 ‘영광입니다.’라고 말하나요? 내가 저 사람과 같은 급일 수 없는데 같이 대해주면 영광이라고 하지요. 예전에는 남자와 여자가, 어른과 아이들이, 주인과 종이 한 상에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지요. 왜 그렇지요? 서로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눈을 뜨고 깨어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아는 눈이 영광이 아닐까요? 제가 여러분과 같이 한 자리에 있을 수 있는게 영광이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님과 하나라니요. 영광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연애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연애를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하나되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인다는 찬송가 가사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됨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아픔보다 더 깊이 그가 아파하고 있고, 그래서 그가 누렸던 환희를 나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연애하는 예수님이 본 영광은 아버지와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원함도 부족함도 없는 그것만으로 족한 절정의 경험, 평화입니다. 그 어떤 조건과 조항, 환경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지요. 지금 그가 내 안에 들어와 그가 받은 영광을 나도 받게 됩니다. 아니 원래 그였는데, 내가 모르고 잊어버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그 나를 보내어주시고 사랑하셨으니 그 안에 있는 우리도 사랑하고 계신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셔서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해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을 깨닫는 자마다 삶은 멸망이 없고 원래가 영생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러하시니 세상을 등지고 세상과 다투고 세상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러 온 것이 아니지요. 세상을 사랑하려 왔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사랑하는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사랑하기 좋은 곳인지 모릅니다. 또 우리가 왜 사랑해야 할까요? 사랑이 삶의 본성이고 사랑하는 것이 쉽기 때문입니다. 미워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입니다. 사랑하고 살면 쉽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고 살면 기쁘게 되어 있습니다. 원래의 본성이니 그러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아는 길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아는 길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으니 나도 사랑입니다. 그러니 나를 아는 길도 나를 사랑함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연구 대상이 아닙니다. 학문의 대상이 아니지요.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사랑해야할 대상입니다. 사람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요, 삶이요, 나와 너인 것입니다.

24절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창세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세상을 떠나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남은 우리도 당신처럼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해주시고, '내 영광'을 보게 하여 주시기를 구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떨어져 있다는 공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누리는 영광을 주셨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아니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시고 그것을 구하신 분이십니다. 내 영광입니다. 그에게는 태초나 종말과 같은 시간이나 서로 떨어져 있다고 여기는 공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있어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영광이란 그것이 아닐까요? 창세전과 오늘과 내일이 하나로 만나 '지금'이 되고, 이곳에 있고 저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만번도 더 변하는 생각과 느낌이 나라고 아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 나'가 사는 것, '그 나'는 창세전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고 그 영광을 지금 함께 보는 것이지요. 그러면 됩니다. '내 영광'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입니다. 처음부터 아버지를 알았으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홀로 있을 수 없이 모두가 다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 바로 아버지를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아니, 다 하나이고, 그것을 알고 사는 것,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마지막 26절을 함께 읽습니다. “나는 이미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렸으며 앞으로도 알리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들이 커서 아버지를 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아버지가 되어 보면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 아버지의 사랑에 취해 있으셨습니다. 그 사랑을 알고 얼마나 기뻤던지 입만 열면 아버지 이야기이기셨습니다. 또 앞으로도 계속 아버지의 이름을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아는 것이 얼마나 알음답고 감동이고 감격인지 아셨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당신께서 받으시고 누리시는 그 사랑을 모두 안에 있게 하고 싶으셨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셨던 것입니다. 심지어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셨지요.
그 아버지의 사랑이 이미 우리 안에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좋다면 살고 죽는 것이 좋다면 죽으셨던 것입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생사는 목적이 아니고 수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하시겠다는 기도하는 것이지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을 찾아 구현하는 길이라면 먹어도 좋고 안먹어도 좋습니다. 무엇을 입어도 좋고 안입어도 좋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 바로 사명을 위해서라면 밥을 먹어도 좋고 굶어도 좋다.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다. 생사를 넘은 삶을 고백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영생을 사는 것이지요. 아버지의 사랑이 지금 여기 우리 안에 있고 나도 내 안에 있으니 말입니다.
여기 유명한 성 어거스틴의 고백이 있습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 하고 싶은 것을 행하라! 입을 다물려거든 사랑으로 침묵하라. 말을 하려거든 사랑으로 말하라. 남을 바로잡아 주려거든 사랑으로 바로잡아 주라. 용서하려거든 사랑으로 용서하라. 그대 마음 저 깊숙한 곳에 사랑의 뿌리가 드리우게 하라. 이 뿌리에서는 선 외에 무엇이 나올 수 없거니!”
이렇게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위해 드린 이 기도가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다시 그대로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마침내 그 기도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간구하셨듯이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어 하나가 되는 믿음을 누리기를 빕니다. 그것이 또한 오늘 나의 영광입니다. 그 영광으로 온전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셨듯이 저들도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 안에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영광과 이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고 무엇을 하든지 지금 여기에서 깨어서 바라보며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사랑을 안고 한 주간도 흩어져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갈 때에 저들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을 이 땅과 사람들에게 잘 알리게 하시고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이 땅에 가득하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번호제 목본문일시짧은댓글조회
330   주일 낮예배 : 내가 그 사람이다! 요18:1~11 111127     1031
329   주일 낮예배 : 태초에 창1:1~2 111120     1041
328   주일 낮예배 : 내 영광 요17:20~26 111113     1009
327   주일 낮예배 : 내 기쁨 요17:11~19 111030     1118
326   주일 낮예배 : 그들도 하나되게 요17:6~11 111016     1011
325   주일 낮예배 : 영생은? 요17:1~5 111002     1033
324   주일 낮예배 : 그날에는 요16:25~33 110918     1018
323   주일 낮예배 : 조금 있으면 요16:16~24 110904     1150
322   주일 낮예배 :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요16:1~15 110814     1057
321   주일 낮예배 : 나를 미워하는 까닭 요15:18~27 110710     1096

 
처음 이전 다음       목록 홈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