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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산 오동성 목사의 설교입니다.
본문: 요17:6~11 ( 111016)
2011/10/23(일)
주일 낮예배 : 그들도 하나되게  


본문 : 요한복음 17장 6절~11절
제목 : 그들도 하나되게
일시 : 2011년 10월 16일, 주일예배

(어린이 설교)

어린이 여러분, 함께 6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볼까요?
6. 나는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택하셔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인데 아버지께서 그들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누구 말씀인가요? 예수님 말씀이고 예수님이 기도이지요. 예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6절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찾아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내 주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어린이 여러분은 본래 누구의 사람인가요?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인데 그것을 잊어버리고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살았지요.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들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아들이 아닙니다. 오늘 어린이 여러분도 본래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다고 했으니 여러분들도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는 어린이들이 다 되어야하겠습니다.  

(설교)

추수감사절을 맞아 감사 알아차리기 100가지를 써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써보니 어떤 느낌과 경험이 있었는지 한번 나누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되지요. 잎새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하루에 감사를 세 가지만 찾아서 매일 써보면 얼마 후에는 기적처럼 자기 삶이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서양 격언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생각을 주시고, 우리가 한 그 생각을 그대로 이루어주시는 분이라고 바울을 전해줍니다. 지난 주간 뿌리님께서는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 며칠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배터리를 교환해 시동이 걸리자 마음이 그렇게 환해지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저절로 당연히 걸리는줄 알았던 자동차에 걸리는 시동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있을 때 잘하라는 것처럼 함께 있을 때 서로를, 그 일을 할 수 있을 때 이 일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저 역시 주일을 준비하고 설교를 하면서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하고 힘이 들지만 이 일이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들어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더 고맙답니다. 추수감사절은 참 아름답고 행복한 절기, 명절 중에 명절입니다.
그렇게 행복한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우리는 함께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를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이야기가 이 안에 다 있습니다. 앞선 기도에서는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예수님의 사명은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었지요. 그렇다면 영생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알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 하였습니다. 그 무엇, 누구를 가장 잘 아는 비결은 그와 하나가 되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11절에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11절을 읽어 봅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으나 그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 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함께 6절을 읽겠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택하셔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인데 아버지께서 그들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참 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참 나를 알 때 아버지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도 미디안 광야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더랬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도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옳으니 하느님이 옳으니 하며 다투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가 될 때 아버지의 이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 무슨 형상이나 단어를 통해 아버지를 표현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버리고 찌질하게 흔들리고 싸우고 절망하고 좌절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그래서 아버지는 그들을 나에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길, 영생의 길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지요. 그래서 2절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누구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그에게 속해서 그와 같이 산다는 말이지요. 요한복음 앞으로 돌아가서 3장 16절과 17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자, 그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지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7절과 8절을 읽습니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였으며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참으로 알았고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은 먼저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왔다구요?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아는 사람이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고, 예수의 제자이고, 믿음의 사람이란 말씀입니다.
여러분,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있나요? 내 것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내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 하는 일까지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고백하셨더랬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소돔 땅으로 떠나보낸 후에 일어난 일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때 전쟁이 일어나 롯의 가족과 모든 재산이 탈취를 당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떠돌아다니던 일개 족장이었던 아브라함은 사병 수백명을 데리고 전쟁에서 이긴 다섯 왕과 싸워서 크게 이기게 됩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소돔왕을 만나기 전에 멜기세덱을 만납니다. 소돔왕은 아브라함에게 아부하며 아브라함이 우쭐하도록 승리를 치하하는 세상이었지요. 그러나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의 승리가 그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일러줍니다. 아브라함은 즉시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십분의 일을 내어 드렸더랬습니다.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이렇게 멜기세덱을 만난 아브라함은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멜기세덱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언제까지나 제사장으로 계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 아브라함 때도 있었고, 예수님 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있었다고 하셨지요. 그 나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렇게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한 전과만이 아버지께서 주신 것일까요? 세상에서 만나는 환난과 고통, 역경과 아픔과 질병까지도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다 필요해서 내가 경험하는 것일뿐,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것이라는 것을 아는 그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8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나로부터 그 말씀을 받습니다. 그러면 알게 되는 거지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왔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지만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렇게 그 말씀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9절과 10절을 함께 읽습니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빕니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 비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하여 빕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의 사람들입니다. 나의 것은 모두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모두 나의 것입니다. 나는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습니다.”
내가 만나는 어느 한 사람을 내 사람으로 소유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남편과 아내도 그러합니다. 내가 사용하는 물건 어느 하나 그것이 어디 내 것일 리가 없습니다. 사실은 다 아버지의 사람이요, 다 아버지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늘 착각을 합니다. 내 사람인줄 알고 내 생각대로 하려고 하고, 내 물건인 줄 알고 내 욕심대로 쓸려고 합니다. 이야말로 무지요, 교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늘 당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하나 하나가 다 아버지의 사람임을, 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지요. 그리고 당신이 알고 계신 모든 지혜와 비밀을 주셨습니다. 다 주셨지만 사람들이 받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세상을 위해 빌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지요. 우리는 지금껏 좋은 세상이 되게 해달라고 참 많이 기도해 왔습니다. 사회를 밝게 만들어야 한다고 때로는 외치기도 하고 돌아다니면서 돌팔매질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관심은 사람이었지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데 안식일을 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다. 사람이 성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 그러셨듯이 예수님은 지금도 그의 사람,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이 아버지께로부터 왔고, 아버지께서 보낸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또한 믿음으로 스스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께서 뜻이 계시고 때가 되어 세상에 자신을 보내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죽음은 없습니다. 왔다 가는 세상입니다. 원래는 아버지의 품에 태초에 그와 함께 있었던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것은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내 생각이고 고집일 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얼마나 가지고 살겠습니까? 아버지께로부터 잠시 받은 것, 대신 맡은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아버지의 소유가 되고 아버지에게 속하면 또한 아버지의 것은 모두 나의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결국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이보다 더 큰 부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끝없이 솟아나는 생수와 같은 은혜의 물결이 될 것입니다. 가만히 오늘 내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봅니다. 그 무엇을 구한들 만족하겠습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그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나의 필요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다 맡기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것이 다 나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그렇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렇게 맡겨주신 이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고,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다면 오늘 나도 그러해야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1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으나 그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 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더 이상 있지 않지만 남은 사람들을 위해 빌어주시는 기도입니다. 그들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아버지의 보호하심, 그리고 예수님과 아버지가 하나이셨던 것처럼 남은 이들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헤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이 가장 큰 축복이고 선물인 것이지요. 예수님이 빌어주셨듯이 이제 아버지와 하나되어 최고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 한편을 읽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여기에 저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나도 그렇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이셨듯이 예수님을 믿는 저희들도 아버지와 하나이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것은 모두 아버지의 것이니 또한 아버지의 것이 모두 나의 것임을 알아 풍성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고 아버지의 사람답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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