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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산 오동성 목사의 설교입니다.
본문: 요15:1~10 ( 110626)
2011/6/28(화)
주일 낮예배 : 포도나무와 가지  


본문 : 요한복음 15장 1절~10절
제목 : 포도나무와 가지
일시 : 2011년 6월 26일, 주일예배

(설교)

1. 나는 누구인가?
2. 잘라버리시고 손질하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3. 내 안에 머물러 있으면 어떻게 되나?
4.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삶이 곤고하고 힘겹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지요. 나를 사랑하면 아버지께서도 나를 사랑해주신다구요. 내가 얼마나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눈에 보이고 실망스럽고 실수투성이인 껍데기 말고 진짜 나를 알아차리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은 의인대로 구원하시고, 악인은 악인대로 구원하신다구요. 이해가 가시나요? 사람의 도덕적인 기준에 선인과 악인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오십보 백보일 뿐입니다. 사람의 어떤 기질과 성품이 바뀌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표현하였지요.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껍데기 안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 봄님과 대화를 하다가 사람은 참 바뀌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무리 수련을 하고, 아무리 기도를 하고, 성경공부를 해도 사람은 바뀌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런 내 모습을 그대로 내어 놓고 인정하고 맡겨드릴 때, 거기에 가장 큰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남편이, 아내가, 자식과 친구가 바뀌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것보다 내가 바뀌는 것이 빠르다는 것을요. 아니 내가 바뀌면, 내 눈과 귀가 달라지면 이미 모든 것이 다 되어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 수준과 내 기대만큼 듣고 알아차리니 말입니다.
그래서 나이 든 이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연애하느라 허덕이지 말라구요. 중고등학교 어린 나이에 사랑을 한다고 죽니 사니 매달렸다가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진출해서 다시 그 상대를 보면 내가 왜 그랬냐 싶습니다. 그 이유는 내 눈과 내 수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그런 수준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거지요. 지금 할 일은 나를 소중히 준비시키고 갈고 닦는 일입니다. 내가 성장하고 내가 자라 있으면 그런 수준에 맞는 사람을 만나고 관계하게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어집니다. 내 수준이 그렇기에 다투고 싸우고 부딪히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저는 ‘배신감’이라는 느낌에 빠져서 아주 많이 힘이 들었었습니다. 에니어그램 8번이라 그렇다 알게 되어 이해가 되지만 여전히 배신감이 찾아오면 저 바닥 끝까지 내려가 올라올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요. 아무 것도 하기가 싫었습니다. 이제 곧 캠프를 해야 하고 또 손님도 맞이하고 있는데 많이 미안한 중이랍니다. 죄송합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 시기적으로 좋지 않았고 많이 경솔했던 것 같습니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해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8번은 수축되면 5번으로 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죠. 확장되면 2번으로 가서 돕는 사람으로 기쁘게 산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사람에 대한 배신감으로 찾아들어간 동굴 속에서 나올 길을 찾지 못해 버거웠는데, 찾고 찾아서 나오는 길을 하나였습니다. 2번으로 가서 '나보다 그 상대는 지금 얼마나 힘들고 더 어렵고 불편할까? 내가 도와주어야 하는데, 많이 미안하다. 그만 좋으면 난 괜찮아!'라고 생각을 바꾸는 거죠. 그렇게 마음의 길을 바꾸어 보니 배신감에 치를 떨었던 내가 오히려 눈치를 보며 정말 미안하고 반대로 조마조마해집니다. ‘그가 힘들면 어떻게 하지?’라고 말입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길,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또 내 의식 수준을 끌어올려 나로 살아가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하고, 이유 없이 웃어주면 이미 그렇게 되어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나보다 더 크신 분께로 가서 “예”하는 수밖에 없지요.
오늘 함께 읽은 말씀 중에 6절을 함께 읽습니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그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 무슨 말씀인가요? 만약 내가 지금 쓸모 없는 가지처럼 말라버린 느낌이 든다면 그 이유는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나는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지요. 하늘 사람이고 지금 여기에 하나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바깥으로 돌기에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잘리워져서 사람들이 모아다 불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 붙어 있으면 아버지께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고 깨끗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나의 느낌이 어떤지 돌아봅니다. 쓸모 없는 가지처럼 말라버린 느낌이 든다며 이제 다시 돌아가라는 신호입니다. 나보다 더 크신 분,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은 설교 제목처럼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인생의 비유가 여기에 담겨 있나요? 나는 참 포도나무고 너희는 가지고 아버지는 농부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나무와 가지는 하나입니다. 나무와 가지가 다를 수 없지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무 없이 가지가 있을 수 없고, 가지 없이 나무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질 것이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이 열매를 맺도록 아버지께서 손질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또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있는 자는 더 가질 것이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길 것이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는 한 때 이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공평하시다면 있는 자는 조금 덜 갖게 하고, 없는 사람에게 더 주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것이었지요. 어떻습니까? 그 말이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영성 세계의 원리는 다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더 많은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있는 은혜도 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사랑이 많은 사람은 사랑을 더 많이 받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공부에 집중하는 사람은 열매를 얻겠지요.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지면 공부의 열매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나무에서 잘려져 버린다는 것이 그런 뜻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 인생의 고난과 역경, 시련이 주는 의미입니다. 보세요. 아버지께서 가지에게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잘라버리고 손질하시지요. 가지의 입장에서는 잘려지니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잘라버리는 것과 손질하는 것은 같은 일입니다. 조목사님 댁에 자두 나무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목사님 댁에 있는 자두 나무는 근 10년간 열매를 맺지 못했답니다. 이웃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조목사님이 이사를 가셔서 나무의 가지를 잘라주고 다듬어 주니 그 해에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일입니다. 손발이 잘리는 듯이 아프고 괴로운 일을 당할 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나는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 손질을 받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알아차림입니다. 손질을 받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지요. 문제는 잘려져 버리느냐 손질을 당하느냐입니다. 바라기는 아버지의 손길을 받아 열매를 맺는 가지가 우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함께 3절과 4절을 읽습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여러분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속삭임이 무엇인가요? 너희는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깨끗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기에 그러합니다. 그렇게 지금 여러분이 손질을 받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선택의 의미입니다. 그러니 내가 열매를 맺는 가지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냐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우리는 깨끗합니다. 여기서 깨끗하다는 말과 손질한다는 말은 어원적으로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으려고 애쓰지 말고 내 안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습니다. 머물러 있지 않고 자기 생각과 가치와 판단대로 나가 있으면 열매를 맺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늘 기억해야할 것, 나를 사랑하는 것,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는 것은 자연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내 안에 머물러 있으면 어떤 일이 있습니까? 5절입니다.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7절에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지요. 우리가 내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러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해서 사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열매를 맺으려고 애쓰고 궁리할 것이 없습니다. 내 안에 있으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진실로 구하지 않아서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품은 생각을 그대로 드러나게 해주시는 분이라고 하였지요. 먼저 내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런 삶을 살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놓치고 살아가니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또 열매를 맺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본문에 구체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감사하게 사는 것이지요. 살아가면서 우리는 시방 느낌을 알아차리기를 합니다. 지금 느낌이 어떠냐고 자꾸 묻는 것이 그런 의미입니다. 6절의 말씀처럼 때때로 우리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진 것같은 느낌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나누었던 것처럼 내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놓치고 껍데기와 내 생각과 조항이 나라고 착각하고 거기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려보면 지금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것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착각하지요. 지난 주에 지훈이에게 물었지요. 지훈아, 캐나다에 와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지훈이는 압니다. 영어를 잘하는 것,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그런데 순간 순간 그것을 놓칩니다. 놀고 싶고, 장난치고 싶고, 게임을 하고 싶은 것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공부를 해야하는데 친구와 연애와 돈버는 일, 아르바이트에 솔깃해집니다. 악기를 연습해야하는데 놀고 싶고 게임이 하고 싶습니다.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인터넷에 빠집니다. 내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말라져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8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그러합니다. 유학을 와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 부모님의 땀과 눈물로 공부를 합니다. 많이 미안합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기웃거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공부를 잘하는 것, 목표를 이루는 것, 그것이 부모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지요. 축구 선수들이 축구를 잘해서 경기에서 이기면 누가 영광을 받습니까? 그들을 가르친 감독이 영광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삶을 가장 향기롭게, 행복하게, 감사하게, 알차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9절과 10절을 함께 읽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든 우리는 사랑을 받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행복합니다. 미워하고 다툴 때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마음 자리를 알아차려야겠습니다. 그렇게 내 안에 지금 사랑이 있는지, 내가 사랑으로 살아가는지 알아차리고 돌아보아 참 포도나무, 그의 가지로 살아가야지요.
사랑에 대한 유명한 노랫말 하나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영어로는 Perhaps love라는 노래입니다.
아마도 사랑은 휴식처와 같은 것, 폭풍우를 피하는 은신처와 같은 것, 사랑은 당신께 위안을 주고 포근히 감싸줍니다. 그리고 당신이 가장 외로워하는 그런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사랑의 기억으로 당신은 편안해 질 겁니다. 아마도 사랑은 창문과 같고 어쩌면 열린 문과 같은 것 당신께 좀 더 가까이 오라하고 더 많은걸 보여주려고 합니다. 당신이 길을 잃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지라도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당신은 길을 찾게 될 겁니다. 어떤 이에게 사랑은 구름과 같고 어떤 이에게는 강철처럼 단단하기도 하죠. 어떻게 보면 삶의 방식이고 어떻게 보면 느낌입니다. 사랑은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보내주는 것이라고 하지요. 어떤 이는 사랑이 전부라고 하고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쩌면 사랑은 갈등과 아픔으로 가득 찬 바다와 같은 것, 추울 날씨엔 불과 같고 비가 내릴 땐 천둥 같은 겁니다. 내가 영원히 살게 되어 꿈이 이루어진다면 내 사랑의 기억은 오직 당신일 겁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인생이라는 가지는 어디엔가 붙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에 붙어있느냐에 따라 그 가지의 이름과 성격, 열매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오늘 나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하지요.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이고, 하나님은 농부에 비유하셨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쓸모없어서 농부가 가지를 쳐버리지만,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잘 열매를 맺도록 손질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 앞에 혹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열매는 무엇인지라고 말입니다. 찍혀 버릴까 염려하게 됩니다. 그러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열매는 가지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열매는 나무에게 달려 있습니다. 좋은 나무에 달려 있는 가지는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나쁜 나무에 달려 있다면 그 가지는 나쁜 열매를 맺을 수밖에요.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말씀이기 보다는 안심을 시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가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언제나 그 분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 분도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확신한다면 두려움은 물러가고 평화와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는 홀로 있을 수 없습니다. 홀로 있는 가지는 잠시는 생기가 있고 열매도 맺혀있는 것 같지만, 곧 말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가지는 나무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하는 생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살아가는 생입니다. 눈 감고 살고 있지요. ‘유한’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홀로 있지 않고 참 포도나무와 하나된 가지가 되어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예능교회,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쓸모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 말라 있다 여겨지는 순간에 참 포도나무인 나에게로 주 안으로 돌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홀로 무언가 나를 깨끗하게 하겠다고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게 하시고 이미 깨끗하게 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사랑으로 살아가는 저들이 되도록 성령께서 안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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