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산의 길 위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Old 산물넷 : 게시판 : 사진방 : 산(mountain)페이스북블러그깊은물 추모Art of Life Community

처 음 | 하루 살이 | 예가○양로원 이야기 | 묵상의 오솔길 | 편지 | 이야기 앨범 | 설 교 | SPIRIT


깊은산 오동성 목사의 설교입니다.
본문: 요14:25~31 ( 110529)
2011/6/2(목)
주일 낮예배 : 나보다 크신 분  


본문 : 요한복음 14장 25절~31절
제목 : 나보다 크신 분
일시 : 2011년 5월 29일, 주일예배

(설교)

1. 내가 함께 있는 동안 말한 것은 무엇인가?
2. 보혜사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3. 내가 주는 것은 무엇인가?
4. 나는 어디로 가는가?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신 '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오신 그 나이시지요. 오늘 우리가 보는 나 또한 그러합니다. 지금 나는 어떤 나를 사랑하는지 돌아봅니다.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착각하고 속아 우리는 불행하고 힘들어 하지요.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이 붙여놓은 딱지가 나인줄 알고 사니 말입니다. 내가 받는 사랑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지금 여기, 하늘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찾아오는 평화와 사랑입니다. 그 존재 근원의 힘, 내 안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놓치면 그 어떤 사랑, 관심도 나를 만져주지 못합니다.
외롭다고 합니다. 그런데 외롭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거라지요. 사랑하면 외롭지 않습니다. 어떤 사랑을 하고 살까? 사랑을 맞이하고 사랑을 흐르게 깨어서 살아가는지 정신을 차리고 돌아봅니다. 삶 속에서 만나는 극한 고비,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아픔, 절망에 있을 때 정신 차려 알아야할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됩니다.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사랑 안에서 주변을 환하게 할 빛과 힘이 나오는 것이지요.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그 무엇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이며 허상입니다. 그 나는 모두, 다 나입니다. 원래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모두는 나이고 하나이지요. 부족과 절망이라, 원수라 여기는 그것까지 사랑할 수 있을 때 나는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를 미워하면 나는 미움을 받습니다. 나를 원망하면 나는 원망을 받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하는 그대로 나에게 드러내신다고 하셨지요. 내가 나를 사랑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게 사랑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사랑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차리면서 구원의 우물을 길러온 지난 한 주간이셨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시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구절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고 길잡이가 되는 말씀을 만난다면 여러분은 오늘 횡재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살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오래 전에 우리나라 탄광에서 갱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광부들이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편으로 나눠져 각각 이 쪽 굴과 저 쪽 굴에 갇혔습니다. 여러 날 만에 같은 시간에 그들이 갇힌 굴까지 파 들어가 그들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한 편은 모두 살아 있었는데, 다른 한 편은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원인을 알아보니, 살아있는 편에는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어디까지 파 들어가고 있다,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참아라, 하며 통화를 하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다른 편에는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살 희망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겁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계속하여 소망의 메시지를 듣는 사람은 어떠한 절망적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 믿음의 눈과 귀를 열고 있을 때에 지금 이미 모든 것이 다 있고 풍족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고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 25절을 보세요.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미 모든 것을 다 말씀하여 주셨다고 했습니다. 다 말씀해주셨는데 다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그저 지나쳐 버립니다. 그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아버지께서 돕는 이를 보내어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자상하고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성령께서 하시는 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요? 네.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든든하지요. 그러니 염려할 것이 없지요. 또 무슨 말을 해야할지 당황하거나 조급하지 않습니다. 믿고 맡겨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말하게 하는 이가 계시다구요. 저절로 되어지는 것, 자연입니다. 말로 입으로가 아닌 그 어떤 덧힙혀 주는 힘으로 인도하는 보혜사가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다려야지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깨닫게 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받을 때까지 무슨 일을 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즉 다르게 말하면 깨달음 없이, 믿음이 없이, 사랑이 없이는 어떤 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억지로 의무로 하는 일은 무의식 중에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위험할 수 있지요. 남에게는 물론 자신에게 해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을 해놓고 그 일로부터 버림받는 사람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니 먼저 성령을 받아서 자기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 있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물론 봉사가 없는, 일을 하지 않는 깨달음,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 만족이고 거짓입니다. 그것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말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헌신은 위험하고 헌신이 없는 믿음은 말장난인 것입니다. 이렇듯 함께하는 보혜사 성령께서 생각나게 해주고 기억나게 해주실 것을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는 늘 불안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그런 두려움이나 긴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음을 경험합니다. 평화의 상태입니다. 함께하면서 생각나게 하시고 또 가장 알맞은 말을 하게 하시는 그분의 손길, 보혜사의 인도하심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평화이고 자유입니다.
내가 모를 뿐, 언제나 그분은 내가 하는 생각 이상으로 생각 너머에서 내 생각보다 더 나은 세계로 나를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믿음 가운데 평화를 만난다는 것은 내 생각대로 안되면 불안하고 못 견뎌하던 내가 서서히 생각 너머로 마음 놓고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입니다.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를 붙들어 매고 그 생각에 따라 내가 움직인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삶이 아닐까요? 그것은 내가 아니고 우상입니다. 생각을 받아주면 나를 받아주는줄 압니다. 천만에요. 생각이 거절되었는데 내 존재가 거절되었다고 아우성입니다.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이 동일시가 고통이요 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오는 평화를 맛보아야 합니다. 27절을 함께 읽습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로 남겨 주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자유는 싸워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 즉 실체, 사실을 알면 그것이 나를 거짓된 생각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자, 내 생각을 너머서 예수님을 만나 나와 함께 있으면 평화를 남겨 줍니다. 그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그 평화는 환경과 조건에서 오는 평화가 아닙니다. 영적 세계에서 오는 원래부터 있던 부족함이 없이 다 이루어져 있는 그 평화이지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참 평화입니다.
두 다리가 전쟁터에 있을지라도 네 가슴에는 장미꽃이 피어나게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시장이고 감옥이고 처형장이라 할지라도 이 하늘로부터 오는 평화를 맛본 사람은 압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평화, 밖에서가 아닌 원래부터 있는 평화는 그 누구도 무엇으로도 빼앗아갈 수 없는 힘이요, 빛인 것을 말입니다.
총을 갖고 칼을 갖고 이루는 평화는 위장된 평화입니다. 가짜 평화요, 평화인척 하는 것이지요. 어린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고 어린양이 사자들과 함께 뛰어노는 평화 세상, 그것은 이사야가 본 평화세상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서 오는 이 평화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고 거짓된 생각에서 놓여나서 모두가 사랑인 것을 알고 노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평화, 사랑을 맛본 사람은 압니다. 과거에 눌리고 정죄하고 정죄 당했던 사슬들을 풀 때에 알게 되지요. 하나님께서 보시니 참 좋아다한 세계를 찬송합니다. 그동안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했던 삶이 찬송과 기도로 변하고 거짓과 교만으로 가득했던 태도가 진실과 겸손, 고마움과 감사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거듭났다는 것,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의 증거는 하나입니다. 지금 감사 속에 있는지 찬송 속에 있는지 헤아려 봅니다. 내 가슴이 뛰고 있는지 살펴 봅니다. 시편 기자는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고 찬송함으로 그 궁전에 들어간다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 삶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하면서 위장병을 앓고 불면증을 앓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스스로 가짜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막혀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과 통하겠습니까? 통했다는 생각만 있지 사실은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 어떤 다른 사람의 지식을 자기 것인양 착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불쌍한 일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런 내 모습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 앞에서 지금 이 평화를 누리고 있는지 돌아보며 많이 회개하였습니다.

오늘 제자들이 염려하고 근심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이별이었지요. 예수님이 배신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다고 하니 화가 나고 분이 나고 두렵고 근심이 된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마음에서 사는 한, 생각 세계에 있는 한, 조건과 환경으로 살아가는 한 근심하고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모든 것을 넘어서는 차원이 평화입니다. 나보다 더 크신 분 안에 있는 영적인 차원, 믿음의 세계에 굳건히 발을 딛고 있을 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되고 법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돈이 없으면 돈은 벌면 되고 잘못이 있으면 잘못은 고치면 되고 안 되는 것은 되게 하면 되고 모르면 배우면 되고 부족하면 메우면 되고 힘이 부족하면 힘을 기르면 되고 잘 모르면 물으면 되고 잘 안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되고 길이 안보이면 길을 찾을 때까지 찾으면 되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되고 기술이 없으면 연구하면 되고 생각이 부족하면 생각을 하면 되고 이와 같이 "되고 법칙"에 대입해서 인생을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것이다. 내가 믿고 사는 세상을 살고 싶으면 거짓말로 속이지 않으면 되고 미워하지 않고 사는 세상을 원하면 사랑하고 용서하면 되고 사랑 받으며 살고 싶으면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진실하면 되고 세상을 여유롭게 살고 싶으면 이해하고 배려하면 된다.”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면 되는데 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요. 염려하고 근심만 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놓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 자신의 고난, 자신의 사명을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28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온다고 한 내 말을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보다 크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가는 것은 다시 오기위해서입니다. 죽음은 부활을 위해서입니다. 고난은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서는 거기까지지 그 이상을 볼 수가 없지요. 그러니 아버지의 뜻과 사랑을 알고 믿음의 세계에 있다면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축하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고난이라 여기지만 사실은 나보다 더 크신 분에게 가니 것이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미리 전해 주셔서 그런 일이 일어날 때에 의심과 염려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감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에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때에, 고난과 아픔과 이별의 슬픔이 있을 때 이 말씀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사랑하면 기뻐하는 것입니다.
젖이 떨어져 우유를 사러 나가는 엄마의 가랑이를 잡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엄마가 잠시 떨어져야 우유를 갖고 옵니다. 엄마가 떠나는 것은 아주 집을 나가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떼어놓고 집을 영영 나가는 줄 알고 목숨을 걸고 막아서고 붙듭니다. 어린애라서 그렇습니다.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기뻐해야하는 것입니다. 이별은 잠시입니다. 눈으로 못보고 귀로 듣지 못하고 손으로 만질 수 없다고 해서 아주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한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해야 영원히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이별은 없습니다. 그것은 생각 세계에서나 있지요, 사실의 영성 세계에서는 이별은 없습니다. 태초부터 함께한 하나님은 영원히 함께합니다. 그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나타났다가 변하여 다른 그 무엇이 되어 또 우리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한다는 것은 약속을 넘은 사실입니다. 사실은,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함께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법칙이요 삶의 원리인 것이지요.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말을 많이 하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이미 충분히 말하셨던 것이지요. 더구나 이 세상의 통치자가 오면 말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예수님을 해하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스스로 가야할 길, 사랑으로 분부하신 길을 가신 것입니다. 31절을 함께 읽습니다. “다만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분부하신 그대로 내가 행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다. 일어나가라. 여기에서 떠나자.”
다시 봅니다. 그 길을 떠나신 예수님께서 남겨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지요. 세상의 평화는 만들고 쟁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불완전합니다. 무엇인가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하늘로부터 오는 평화, 부족함이 없이 다 있는 완전한 세계를 누리는 평화입니다.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보다 더 크신 아버지께로 가는 평화이지요. 그러니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래서 아버지께서 분부하신대로 행하시는 것이지요. 기쁘게 가셨습니다. 평화 속에 가셨습니다. 우리는 그가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지독한 무기력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땅을 파고 모종을 심고 온통 예가 뒷마당을 농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몸과 마음이 바뀌더군요. 생각에 빠지면 끝없는 무기력의 나락에 빠지고 우울에 시달리게 됩니다. 평화를 놓치는 것이지요. 결국 마음을 다치고 맙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나를 알아차리고 나보다 더 크신 분께 나를 맡겨드리면, 보혜사 성령이 끄는 힘에 따라 살면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생각이 쌓이면서 눈덩이 같이 자꾸 커져 갈 뿐입니다. 근심을 내버려 두고 더 큰 기쁨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근심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아픔이 있으십니까? 이별의 고통이 있으십니까? 그 아픔과 고통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간섭, 나보다 더 크신 분의 사랑을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이 주신 평화를 사모하십시오. 보혜사 성령의 도움을 간구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 속에 자리잡을 때, 여러분의 아픔과 고통은 아침 안개와 같이 사라질 것입니다. 마치 아이를 낳은 산모가 그 기쁨으로 해산의 고통을 잊듯이 말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알리지 않으시냐고 제자가 물었지요. 예수님은 이미 다 보이셨지만, 다 알리셨지만 제자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편에서 보혜사 성령님을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늘 함께 도우셔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러니 지금 함께 계신 그 분의 이끄심에 맡겨 드리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일을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세상이 우리를 어쩌지 못합니다. 생각이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 아버지의 분부대로 내가 사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일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나의 길입니다. 어떻게  태서난 인생인데 나를 사랑해야지요. 부가, 학벌이, 신분이, 그 무엇이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하도록 나를 사랑해야하지요. 더 크신 아버지께 맡기고 오늘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힘겹고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맛보게 하옵소서. 나보다 더 크신 분에게 순종하며 맡겨드리는 믿음을 저들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 생각과 조건에 매여 살지 않게 하시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화 안에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어서 큰 사랑의 은총 속에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번호제 목본문일시짧은댓글조회
320   주일 낮예배 : 내 사랑 안에 요15:9~17 110703     1358
319   주일 낮예배 : 포도나무와 가지 요15:1~10 110626     1167
318   주일 낮예배 : 나보다 크신 분 요14:25~31 110529     1099
317   주일 낮예배 : 나를 사랑하면 요14:15~24 110515     1093
316   주일 낮예배 : 나를 믿는 사람 요14:7~14 110501     998
315   주일 낮예배 :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요14:1~7 110417     1031
314   주일 낮예배 : 영광! 요13:31~38 110403     1055
313   주일 낮예배 : 할 일을 어서 하여라! 요13:21~30 110320     1521
312   주일 낮예배 :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요13:12~20 110227     1214
311   주일 낮예배 : 사랑하셨다! 요13:1~11 110213     1302

 
처음 이전 다음       목록 홈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