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의 종교사회학적 의미(94.12) 1995學年度 學士學位 請求論文 :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졸업논문
1980年代 福音主義 基督學生運動의 宗敎社會學的 意味
-- 宗敎變動과 社會變動의 聯關關係를 中心으로 --
0. 머리말
本考는 1980년대, 특히 중.후반의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을 종교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논문이다. 분석하는 방법론으로는 사회변동과 종교 변동의 연관관계에서 사회를 독립변수로 놓고 종교를 종속변수로 하여 연구하는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주된 관심과 문제의식은 80년대에 있어서 동일한 신앙양식과 배경을 가지고 있던 보수적 기독학생들이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것에 주목하면서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종교사회학적으로 해명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연구 과정을 통해서 사회적인 반응 양태들이 서로 다른 원인이 신앙양식의 상이성에 기인하는 측면보다는 사회적 매개변수에 의해서임을 논증하고 있다. 이는 종교는 사회적 토대와 조응하는 문화.이데올로기의 한 부분이며, 종교의 사회적 반응 양식은 사회 구성에 의해서 규정되기 된다는 '사회구성체론'의 해명 속에서 밝혀진다. 결국 종교와 사회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상호 연관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종교사회학적 성과를 통해서 종교가 현실로 존재하는 사회에서 순수하게 초월한 그 무엇일 수 있다는 환상은 잘못이라는 것이 입증되는 것이다. 물론 그 관계가 기계적인 인과관계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하기에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종교의 존재 원리를 이해한다면, 다시 종교 안으로 돌아가서 그 종교가 추구하고 있는 사회적 삶의 모형과 이상을 회복하고 추구함으로 사회에 의해서 왜곡된 종교의 본질과 역할을 재점검할 수 있는 주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本考의 의도를 유념에 두면서 정독한다면 80년대의 기독학생운동의 다양한 양태들은 결국 신앙양식의 차이보다는 종교 외적인 사회적 이념에 의해서 성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외적인 영향과 그 충격은 내적으로도 새로운 신앙의 성찰을 가능하게 해서 신앙 전통의 원리를 재해석 하고 재구조화 하고 있음 또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예를 들어 사회와 무관하게 탈역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운동의 경우도 그들의 사회적 실천 양태는 사회의 기존 질서와 체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고,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추구하는 운동의 경우도 사회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의 경우 성서와 신학이 원론이라면, 사회과학은 강론이다. 올바른 강론이 있을 때야만 원론은 제기능을 수행한다. Text는 Context를 통해서 기능한다는 말이다. 물론 역도 성립한다.
이는 결국 종교와 사회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서로 무관하게 자유로울 수 없는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진정으로 자유롭고자 한다면 사회적으로 무관한 탈역사적이고 탈사회적인 종교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실천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와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해야만 한다는 논의를 전개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는다면 결국 종교는 사회변동에 의해서 좌우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本考의 한계는 사회의 현실을 거슬러서 자기 실현을 추구하는 기독운동(종교변동)이 사회변동에 미치는 영향까지 언급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이 관점은 인간의 구원, 사랑과 화해와 평등 등의 복음을 지향하는 기독교의 이상이 인간과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변동을 추동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될 것이고, 기독교의 진리가 사회 속에서 실현될 수 있는 구체적인 선교의 지침이 될 것이다.
목 차
제 1 장 서론
제 2 장 사회변동과 종교의 반응
1. 종교의 정의와 구성요소에 관한 문제 - 종교와 사회변동에 대한 일반적 연구방법
2. 종교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사회적 반응 - 종교의 사회적 위상
제 3 장 1980년대 한국 사회변동과 기독교
1. 1980년대 한국사회의 전개
1) 경제적 변동
2) 정치적 변동
3) 문화적 변동
2. 1980년대 한국 사회모순의 심화와 사회변혁운동, 종교
3. 1980년대 기독교(개신교) 일반의 변동
제 4 장 1980년대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과 그 의미
1. 1980년대 복음주의 기독학생들의 반응
2.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의 내적인 논리
1) 학원선교운동
2) 기독교세계관운동에서 시민운동까지
3) 학생자발적 연합운동과 진보적 복음주의운동
4) 기독운동일반의 논리
제 5 장 결론;
사회변동이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에 미친 영향 - 종교사회학적 의미
■ 참고 문헌 ■
---------------------------------------------------------
제 1 장 서론
종교와 사회의 연관 관계에서, 변동을 주고받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면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접근 방법이 있다. 하나는 종교를 독립변수로 보는 입장으로 종교가 어떻게 사회변동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는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종교를 종속변수로 보아서 사회의 변동에 따라 종교가 어떻게 영향을 받게 되는가를 연구하는 관점이다. 물론 제3의 관점으로 종교와 사회간의 상호작용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종교와 사회의 상호 연관관계를 '사회구성체론'의 채택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80년대의 한국사회의 특수성과 그 변동 양태'와 '기독교, 특히 복음주의 기독학생들의 반응 양태'의 상관관계를 살펴봄으로 그 종교사회학적 의미를 해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논의를 전개하면서 취하게 될 관점은 두 번째의 관점을 주로 택하면서 그로부터 발생하는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설명해 내게 될 것이다.
주지하듯이 한국에서의 80년대는 급격한 사회변동과 그로 인한 혼란으로 점철된 시대였다. 박정희 군사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수렴되는가 했는데, 여지없는 신 군부의 등장으로 민주주의와 사회변혁의 꿈은 상실되고 5월 광주의 무고한 피흘림으로 80년대는 시작되었다. 신 군부는 유신 체제하의 경제 성장 방식인 세계 체제적인 종속 심화와 대중에 대한 강압적 지배 방식을 강화함으로 유신 체제를 재생산하여 제5공화국을 창출하였다. 나아가 다시 재 구축된 체제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사회정화조치와 언론 통폐합을 실시하고, 경제 불황을 타개하고자 관주도형 경제를 민간 경제로 전환시키고, 대외 개방을 지향하는 등의 정책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로 위험수위에 오른 한국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었다. 모순은 더욱 더 심화되었고, 민중의 거센 저항과 지배 권력이 충돌하다가 결국 87년 유월 항쟁으로 제5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후 80년대 후반에 이르도록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등 기층 민중운동은 지속적인 성장을 하면서 문제 제기를 하였고 제반 사회운동도 성숙하면서 90년대 문민정부-시민사회를 이루었다.
80년대 사회모순과 불안의 증가와 민중에 대한 지배 세력의 파시즘적 탄압은 자연히 사회적 대응을 불러왔다. 이는 학생운동을 비롯한 사회 저항운동의 활성화로 현상하였고, 마침내는 해방을 전.후해서 남한 사회에서 소멸했다고 여겨진 사회주의 운동까지 공공연하게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또 하나의 두드러진 현상은 종교의 변모이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한국사회는 산업화, 도시화되었고 그에 따라 종교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되었다. 또 파행적으로 진행된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종교의 사회참여현상도 이례적으로 강화되었다. 이같은 현상들은 사회구조의 변동과 종교현상간에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상부구조로서 존재하는 종교가 사회의 하부구조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반응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학생들의 반응 양태들은 아주 다양하면서도 적극적이었다. 70년대 이후 기독교계는 진보와 보수로 뚜렷하게 구분되어서 발전하여 왔다. 이는 기독교 내적인 요인과 사회적인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本考에서는 종교가 자신의 발전을 '양적인 성장'과 '사회참여'라는 성격이 다른 방향으로 결정하게 되는 관계에 대해서 해명하면서 80년대에 들어서 더욱 심화된 기독교계의 갈등 상황과 기독학생들의 반응을 살펴볼 것이다. 한국사회의 모순에 반응하는 극단적인 양식은 학원 현장에서 극심한 갈등을 야기해서 일부 의식 있는 기독학생들은 학생운동으로 진출하기도 했고, 다른 일부는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갈등을 극복했으며, 대다수는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양자를 방황해야 했다. 기독학생운동이라고 하면 우선 KSCF(한국기독학생총연맹; NCC계열의 학생단체)를 중심으로 한 진보적 기독학생운동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80년대의 특수한 상황이 강제한 소위 복음주의 진영의 기독학생운동의 반응을 주로 해서 검토하기로 하겠다. 80년대라는 상황은 예전에 보수로 분류되었던 교계의 학생들에게 새로운, 特記할 만한 변동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2장에서는 종교사회학 일반론의 문제와 사회변동과 종교의 반응을 분석하는 방법론에 대해서 서술할 것이고, 3장에서는 80년대 한국사회의 전개와 기독교 지형의 일반적인 변동 상황을 살펴볼 것이다. 4장에서는 80년대의 사회운동의 상황을 상술하면서 소위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의 반응 양태들과 내적인 노력, 그리고 그 재해석 과정과 기독운동에 대한 정의와 그 의미를 검토해 보면서 종교와 사회의 관계에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고, 결론에서 80년대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의 종교사회학적 의미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제 2 장 사회변동과 종교의 반응
1. 종교의 정의와 구성요소에 관한 문제 - 종교와 사회변동에 대한 일반적 연구방법
1980년대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의 사회.역사적 반응 양태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종교사회학 일반에서 제기되고 있는 종교와 사회에 대한 접근을 위한 일반적인 방법론을 검토해 보도록 하자. 종교가 왜 사회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가는 사회학자들 사이에 여전한 물음 중에 하나이다. 이는 근대사회의 등장으로 종교가 사회학적 관심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기 때문이고, 종교는 전근대 문화의 산물이라고 전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도 여전히 종교현상이 존재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정의도 다양해지고 있다.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정의를 위해서는 두 가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하나는 종교는 무엇인가?(what religion is?)라는 본질적 정의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가 무엇을 하는가?(what religion does?)라는 기능적 정의를 위한 것이다.
본질적 정의는 종교가 무엇인가를 규정하면서 종교의 특질을 가지고 있는 종교적 내용의 범주들, 그리고 비종교로 규정되는 다른 범주들을 확립하려 한다. 종교의 기능적 정의는 종교가 개인과 집단에 대하여 무엇을 하는가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현상을 밝히고 분류하는 기준으로 그 현상이 수행하고 있는 기능들을 이용하는 정의인 것이다. 그리고 종교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믿음, 의식, 공동체, 경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종교에 대한 본질적 정의를 내리는 입장은 주로 이 요소들의 정체를 밝히려 하고 있고, 기능적 정의를 내세우는 입장은 그 요소들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에 있어서 종교적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기독학생운동의 종교성 여부에 대한 물음은 愚問일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학생운동과 사회변동간의 문제를 다루어 가기 위해서는 종교에 대한 기능적 정의, 즉 한국 사회에서 기독학생운동의 역할에 대한 연구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간다면 기독학생운동의 종교적 구조와 상징들을 종교사회학적으로 정의 내려서 분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에서 좀더 범위를 좁혀서 종교와 사회변동간의 관계에 대한 접근에 들어가 보자. 버거(Peter L. Berger)는 근대화와 종교와의 관계를 논하면서 세 가지 대조적인 관계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첫째 종교가 전통적인 권위를 재확인함으로써 근대화와 같은 새로운 변화를 억제하는 일, 둘째 종교가 근대화와 같은 세속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일, 셋째 종교의 뿌리와 참 모습을 재확인함으로써 이에 배치되는 신학 사상이나 근대 사회의 도덕적인 타락을 경계하고 배척하면서 전통적인 기본적 신앙 원리에 따라 생활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인 기본 원리에 배치되는 근대적인 변화를 배척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전통적인 종교의 비전들을 근대 세계 속에 적극적으로 현실화해 나간다. 그렇다면 종교는 사회변동의 상황 속에서 보수적인 작용과 진보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가능성과 절대화되어 가는 현실 사회의 흐름을 상대화 시켜 가며 그것을 거슬러서 자신의 원칙과 이상을 실천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종교성, 혹은 종교의식은 정치의식, 사회의식, 경제의식, 도덕의식 등과 일관된 방향으로 깊은 관계가 있다. 종교의식이 보수적이면 정치의식도 보수적이어서 정치체제나 구조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수납적인 경향이 있고, 종교의식이 진보적이면 정치의식도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그리고, 종교의식이 보수적이면 사회의식도 보수적이어서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고 사회안정을 강조하는 반면에 종교의식이 진보적이면 사회의식도 진보적이어서 사회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한편 종교의식이 보수적이면 경제의식도 보수적이어서 경제 평가에 있어 긍정적이고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지만, 종교의식이 진보적이면 경제의식도 진보적이어서 부정적으로 경제 평가를 하며 가난을 사회구조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도덕의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종교의식이 보수적이면 도덕의식도 보수적이며, 종교의식이 진보적이면 도덕의식도 진보적이다. 이러한 종교의식과 일반적인 사회의식의 상관관계는 종교의식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즉 사회의식이 종교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회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사회의식이 변하면 자연히 종교의식도 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종교변동과 사회변동이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즉 사회의 변화와 종교의 변화는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이야기다. 현실적인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오늘날의 지배적인 추세는 사회변동이 하나의 독립변수로서 종교(종속변수)에 영향을 미치는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사회 상황이 종교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제는 흔히 지식사회학에서 논의되는 문제로서, 여기서의 기본적인 관점은 모든 지식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 때 지식이란 신화, 철학, 믿음, 과학, 이념, 가치들을 모두 포함한다. 지식사회학적으로 보면 종교는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받게 된다. 이제 이러한 관계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종교의 특성에 대해서 살펴보자.
2. 종교의 사회 문화적 특성과 사회적 반응 - 종교의 사회적 위상
사회변동에 대한 종교 반응 연구는 결국 생존환경변화에 끊임없이 반응해야 하는 유기체로서의 사회 전체와 그 속에서 자기 생존을 위해 지속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종교 유기체와의 상호 연관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사회는 보통 경제, 정치, 문화적 제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세 부문은 서로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그 전체가 단일한 특성을 드러내는 통합체를 이루게 된다. 여기서 문화 부문은 그 사회적 토대와 국가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제 표상이며, 이는 사회 각 개인에게 내면화되고, 그것이 각 개인의 가치관을 통하여 사회화될 때 그 사회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는데 종교 유기체는 바로 이 부문에 속한다. 이러할 때 문화 이데올로기 부문에 속하면서 사회 가치관을 대표하는 종교 유기체도 결국 경제, 정치, 문화의 총합인 사회구성체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종교의 신앙, 사상, 공동체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고유한 역동성 때문에 같은 사회적 환경이라도 여러 형태로 발현하게 된다. 그렇지만 결국은 사회 성격에 조응하는 특성을 지닌 것만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더불어 종교의 사회 문화적인 특성은 먼저, 사회변화에 조응함에 내적인 전통과 나름의 재해석 능력이 여타 문화적 이데올로기보다 높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경험적으로 확보된 대중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그 사회 구성원의 사회적 경험이 객관적이고 집단적인 표상으로 발전할 계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개개인의 주관적인 경향과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지니기 쉽다. 그렇기에 80년대의 기독교에 있어서도 사회에 대한 반응이 아주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종교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 현실 속에서 자기 생명을 걸고 그것을 지지하고 보호하려는 대중의 자발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내적 특성 때문에 종교는 다른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상대화시키면서 스스로 절대문화인 듯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다른 사회적 의식 형태들과 같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토대에 조응하게 된다. 그것은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관계는 아니며 종교의 교리와 실천에 매개해서 재해석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종교는 사회구조에 의해 부분적으로 조건 지워지며, 사회구조에 대해 부분적으로 독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가 구성원의 단순한 주관적인 경험만을 종교적 표상으로 재 구조화시키는 문화적 기제라고 한다면 구태여 종교의 사회적 실천들을 사회구성체와 관련하여 분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 종교는 하나의 문화 유기체로서 사회에서 자기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 환경과 상호 교류해야 하는 이상, 그 종교들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배태되고 성장하며 소멸해 가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관점의 채택은 먼저 종교를 포함한 사회 전체가 발전해 나가는 운동법칙을 인식하고 전제해야 할 것이고, 그 다음으로 사회 전체의 움직임에 의해 영향을 받는 종교의 변동 양식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종교의 주체는 인간이고, 그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이는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사회구성체론의 선택은 사회 전체의 맥락 속에서 사회 각 부문의 위상을 설정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종교의 사회적 위상과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므로 80년대의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을 검토할 때에도 80년대라는 특수한 상황의 맥락과 구조를 사회구성체론적으로 파악, 인식함으로 거기에 반응하고 조응하는 기독교의 역할을 분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동시에 토대와의 관계에서 자율성을 가진 종교가 구성원의 경험을 초자연적, 초사회적 힘과 교리를 통해서 재 구조화하는 내적 특수성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서론에서 이야기했듯이 종교와 사회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우선 종교가 종속변수로서 사회구성체내에서 여타 사회변동에 영향을 받는다는 관점을 채택하여서 그 내적인 대응과 변동을 분석해 보자.
제 3 장 1980년대 한국사회변동과 기독교
1. 1980년대 한국사회의 전개
사회의 모순을 규명하기 위한 한국 사회의 과학적 인식은 세계 체제와 그 역관계를 살피고, 그 가운데서 사회의 구성과 성격을 분석함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부문으로 나누어서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과학적 인식을 위해서 채택한 사회구성체의 원론적 개념은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에 호응하는 생산관계와 그 현실적 토대의 반영으로서 정치적, 문화적 상부구조를 전 사회 체제의 일정 형태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80년대 한국 사회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서는 일국 영역에서의 자본주의의 합법칙적 발전 문제와 세계 체제 속에서의 규정성의 문제를 통일적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즉, 남한의 사회구성체적 접근은 일국적 조건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체제인 제국주의의 규정력에 조건 지워지면서 진행된 제반 경제적, 사회.문화적, 정치적 변화를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종합적인 개념이어야 한다.
1) 경제적 변동
70년대 한국 자본주의의 종속성과 독점성은 상호 촉진적으로 결합되어 자본 축적을 계속 추진해 나갔다. 70년대 중화학 공업화를 통해서 생산력 기반을 더욱 강화한 80년대 독점자본은 계속된 투자를 통해서 자신의 지배력을 계속 강화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화학 공업에 대한 중복 투자가 제국주의 금융자본에 대한 외채 위기와 결합되면서 1979년에는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 역시 위기에 봉착한다. 그것은 근로 민중에 대한 초과 착취의 기반 위에서 급속한 자본 축적으로 진행시켜야만 하는 종속적 독점자본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개입에 의해 또 다시 한국 자본주의는 활로를 찾게 되었다. 80년대 국가의 산업 구조 조정 정책은 바로 자본축적의 한계에 부딪친 독점자본을 대신하여 국가가 정치권력을 동원함으로 독점의 강화를 진행시킨 것이다. 산업 구조 조정이 독점의 강화라는 성격을 갖는다면, 경제 민영화와 개방화의 추세는 종속의 심화를 촉진하는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즉 세계 제국주의자본의 중심적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초국적 자본이 경제를 더욱 국제화 시킬 것을 요구하는 속에서 국가의 경제 규제 완화는 바로 이러한 필요에 부응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편 외채 위기로 현상된 금융적 종속이 80년대 중반 이후 3저 호황 속에서 일정 정도 해소된 이후 제국주의에 대한 신식민지적 종속은 생산 과정의 핵심적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매개로 한 기술적 종속의 형태로 바뀌어 갔다. 하지만 종속의 형태가 다양하게 바뀔지라도 그 본질이 여전히 식민지 초과이윤의 수취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며, 그 속에서 민중들이 초과 착취를 계속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피지배 계급에 대한 이윤의 일정한 분배를 통한 '개량화=안정화'는 구조적으로 용이하지 않은 현실이었다.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리고 그 자본주의 체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 이념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사회이다. 그러나 한국의 80년대는 그런 모범적인 틀거리로 해석할 수만은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자유민주주의라기 보다는 전근대적 군사 독재가 지배해서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마저 보장되지 못하고, 그것이 왜곡된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결합해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낳아 소수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 국가 체제가 좌우되는 그런 암울한 사회였다는 말이다. 여기서 한국의 60년대이래 군부 독재의 형태로 존재해 온 신식민지파시즘 정치권력이 자신의 토대인 독점자본의 능동적 요구에 상응하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로서 기능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찾을 수 있다. 즉 시기와 국면에 따라서 국가가 독점자본의 축적에 기능 하는 방식은 다를지라도, 가장 기본적으로는 내외 독점자본에 의한 초과 착취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을 강력한 물리력으로 분쇄해야만 하는 필연성은 항상 신식민지파시즘 정치권력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진압 이후 제5공화국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독점자본의 테러 독재로서의 파시즘적 지배는 바로 이와 같은 경제 체제의 모순을 그 존립 근거로 하는 것이다.
2) 정치적 변동
한국의 정치상황도 이러한 경제적 토대와 무관할 수가 없다. 우선 한국의 국가는 전술했듯이 자본주의 국가이다. 자본, 임노동 관계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의 유지, 재생산을 담당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실현하는 정치 상부구조인 것이다. 이는 지배-기득권 세력이 아닌 피지배 계급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 인간이 아닌 이윤이 목적이 된 자본주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비인간적인 형국을 낳게 된다. 또한 한국의 국가는 신식민지파시즘이다. 종속적 자본축적의 지속을 위해 피지배 계급에 대한 공개적 억압 체제를 제도화함으로써 부르주아 계급 중에서도 독점 부르주아지의 배타적 이해 실현을 보장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특수한 형태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분단국가이다. 제국주의에 의해 한민족이 별개의 사회 체제를 지닌 채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형성되어, 그 후에는 북한과의 대립으로 인한 대내외적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는 가운데 비대해진 군부를 권력 기반으로 하는 신식민지파시즘 중에서도 극도로 억압적 형태이다. 신식민지파시즘으로서의 국가권력은 그것이 물질적으로 구체화된 국가 기구의 형태에서 주요한 특징을 나타낸다.
파시즘적 국가 기구에서는 의회의 비중이 급격히 축소되면서 억압적 국가 기구가 국가권력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는 것으로 현상한다. 이의 핵심적 기능은 자본축적의 지속에 중요한 장애물인 피지배 계급의 운동을 강압적으로 통제함으로써, 그들의 이해가 국가권력에 반영되는 것을 차단하는데 있다. 즉 파시즘 체제는 의회제 국가 형태 하에서 피지배 계급의 이해를 일정하게 대표하던 정당 활동의 기능을 제도적으로 위축시킴으로써, 자본축적의 위기를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는 것이다. 더욱이 신식민지파시즘에서는 잉여가치의 환상적 대외 유출이라는 조건하에서 종속적 자본축적을 지속해야 하므로, 피지배 계급에 대한 일정한 잉여가치의 분배에 의한 '개량화'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피지배 계급의 이해를 제도적으로 배제하는 국가 기구의 파시즘적 특성은 더욱 뚜렷해지게 된다. 또한 그 중에서도 분단 상황으로 인한 남북의 대치 상태가 지속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비대해진 군부를 비롯한, 국가 기구의 파시즘적 특징이 한층 강화되었던 것이다.
한국은 세계 경제 체제 내 분업 구조 속에서 급속한 자본축적을 달성해 왔고,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한 국내 독점자본의 규정력이 관철되는 국가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했다. 경제적 선진 자본주의에 의한 예속적 조건하에서 급속한 자본축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노동자, 농민 등에 대한 희생을 강화하였고, 이와 같은 희생은 국내외 독점자본의 배타적 이익을 보장해 주는 조건을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이러한 국가를 정당화해 온 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기본적으로 반공 이데올로기였다. 더불어 군사독재정권-신식민지파시즘 정권은 국가 주도의 자본축적과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성장 이데올로기를 등장시켰다. 안보 위기를 바탕으로 한 반공 이데올로기와 경제 위기를 바탕으로 한 성장 이데올로기는 결국 독재 이데올로기화함으로써 형식만 남아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괴리 현상을 낳았고, 그것이 민주화 운동의 계기가 된다. 이는 결국 민중의 희생을 요구하였고, 국가권력의 폭력적 사용을 은폐시켰다.
3) 문화적 변동
문화란 그 자체 자기 완결적인 독자적인 실체가 아니며, 그것을 상부구조로 하는 포괄적인 사회 구성의 성격 변화 과정이 문화의 내용은 물론 문화의 인식의 변화까지 가져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하는 지배 문화는 소수의 지배 계층에 의해서 향유되는 문화가 아니라 피지배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자기 논리를 주입하고 확산시키며 강요하는 '지배하는(dominating)' 문화의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지배 문화와 민중 문화는 상호 분리 병존하기보다는 시민사회의 모든 일상의 영역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대립하고 경쟁하는 상호관계의 망 속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문화를 특수한 자기 완결적 실체를 갖는 어떤 것으로 보기보다는 사회 성원들의 일상적인 물질적, 정신적 생활 전반을 포괄하는 '삶의 양식으로서의 문화'로 이해할 필요가 있고, 문화는 반드시 그것을 상부구조로 하는 사회 구성 전체의 편성과 운동의 역학 관계 속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의 부정성은 그것이 철저하게 상품 생산의 논리 속에 포섭되어 있음으로 인한 맹목성, 낭비성, 부패성, 비도덕성으로 표출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자본의 이윤 동기 그 자체가 이미 저돌적인 맹목성을 가진 것이어서, 이윤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심지어 인간의 性과 생명 그 자체까지도 철저히 상품화하는 현상이 전반적으로 발생하였다. 왜곡된 자본주의 경제 제도를 토대로 계급 이익을 바탕으로 한 경제 성장과 국가 안보에 초점을 맞추어 발전한 한국 사회는 문화에 있어서도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가치의식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이 사회의 전 지배 메커니즘을 동원하여 생산 대중들을 문화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통제함으로 계급 관계의 안정화를 도모하려는 헤게모니적 지배의 구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는 지배계급이 생산해 낸 문화를 계급 지배의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피지배 계급 일반에게로 확산, 수용시킴으로써 '순치 된 자발성에 의한 복종'을 이끌어 내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결국 문화라는 것은 물리적 강제나 물질적 강요와 더불어서, 현실을 은폐하고 은폐된 현실에 대한 허위 의식을 조장하는 계급 지배의 가장 유력한 수단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왜곡된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상황은 한국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의 과정에 순기능 적으로 작용하였다. 무엇보다도 일체의 민중운동의 이념적, 조직적 성장이 철저한 금압의 대상이 됨으로써 장기간에 걸친 경제 성장의 과정은 사회 내적인 계급, 계층간의 갈등의 부재 속에서 가능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앞서 지적했던 반공 이데올로기와 성장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기능이다.
2. 1980년대 한국 사회 모순의 심화와 사회변혁운동, 종교
이러한 상황은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사회와 역사 속에서 영향을 받고, 또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80년대 한국 사회는 상술한 바대로 전개되면서 내적 갈등과 모순이 심화되고 증폭되어 갔다. 자본주의가 독점의 강화와 예속의 심화로 발전함에 따라 피지배 계급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의 이해는 국가 정치권력과 문화의 제반 부분에서 표출되어 불의한 폭력과 갈등을 양산해 냈다. 독재와 억압의 비민주적인 지배가 지속되었고, 저임금과 저곡가 등을 통한 민중에 대한 경제적 착취와 불평등이 심화되어 갔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구성체가 갖는 모순에서 기인했고, 이러한 사회적 상황은 사회변혁운동을 일으키는 동인이었다. 인간 사회의 제 문제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실천하는 것을 사회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사회 운동은 한국 사회를 전술한 사회구성체론 적으로 파악하고 사회.정치적 모순의 근원을 토대로서의 계급 관계로 보았다. 그리하여 운동의 목표는 근원적인 경제 체제의 변혁이었고, 이를 위해서 긴밀한 역관계에 놓여 있는 제반 상부구조 등 정치제도의 변혁을 위해 투쟁을 하였다. 우리가 살펴볼 기독운동의 영역은 상부구조의 이데올로기 투쟁에 포함되는 한 부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운동사적으로 볼 때 80년대는 70년대까지의 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사회 운동이 변혁 운동으로 자기 정립하고, 나아가 변혁 운동으로서의 사상 이념적, 대중적 기초를 강화시키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사상 이념적 측면에서의 변화라고 한다면, 70년대까지는 사회 운동을 특정 정책이나 법률을 폐지하거나 제정하려는 운동 혹은 군부 통치의 정치적 억압을 부분적으로 완화시키거나 민간 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운동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았으나, 80년대는 이러한 인식이 극복되면서 현재의 자본주의적인 경제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자 하는 계급 해방운동, 현재의 군부 통치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여 민중이 주인 되는 민중민주주의 변혁운동, 나아가 대외적 예속성과 현재의 분단 상태를 극복하고 자주-통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민족해방운동, 통일 운동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는 한국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으로 지배에 대항하는 운동의 대안도 과학적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80년대 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광범한 대중적 기초를 갖는 변혁운동으로 성립해 왔다고 하는 점이다. 70년대까지는 사회 운동이 주로 지식인, 종교인, 소시민, 학생 및 민주 지향적 일부 선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80년대는 일부 선진적 노동자 등을 중심으로 한 변혁적 이념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자신의 계급적 요구에 기초한 노동계급, 농민 등 기본 계급의 대중적 투쟁이 전개되고, 그들의 정치적 진출이 가속화되게 되며, 또한 여타의 계급, 계층, 지역, 부문 내에서도 새로운 변혁적 흐름이 태동하고 대중화됨으로 상이한 특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요컨대 80년대는 변혁적 인식이 각 계급, 계층, 집단, 지역 등으로 확산됨으로써 변혁운동의 이념적 기초가 예비되고, 대중 자신의 정치적 진출이 확대됨과 아울러 대중 의식이 고양됨으로써 변혁운동으로서의 대중적 기초가 예비되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이러한 전반적인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범위를 좁혀서 그것이 문화.이데올로기적으로 어떻게 작용했으며 종교적인 영역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해 접근해 보도록 하자.
80년대 사회모순과 불안의 증가와 민중에 대한 지배 세력의 파시즘적 탄압은 자연히 사회적 대응을 불러왔다. 이는 학생운동을 비롯한 사회 저항운동의 활성화로 현상하였고, 마침내는 해방을 전.후해서 남한 사회에서 소멸했다고 여겨진 사회주의 운동까지 공공연하게 반북.반공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또 하나의 두드러진 현상은 종교의 변모이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한국 사회는 산업화, 도시화되었고 그에 따라 종교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되었다. 또 파행적으로 진행된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종교의 사회참여현상도 이례적으로 강화되었다. 이같은 현상들은 사회구조의 변동과 종교현상간에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상부구조로서 존재하는 종교가 사회의 하부구조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반응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사회구성체론에서 종교는 사회적 토대에 영향을 받으면서 그것을 확고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부문을 담당하거나, 그 반대로 토대의 근본적인 모순에 대해 저항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과 저항 이데올로기로서의 상호 대립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버거(Peter L. Berger)의 정의에 따르자면 종교는 기존의 체제를 재확인시켜 줌으로 변혁적 요구를 억제하고 체제를 정당화할 수도 있을 것이고, 적극적으로 사회변혁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며, 혹은 종교의 내적 양식과 근원, 이상을 재확인함으로 양자에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어떤 구조에 의해서 진행되는 과정일 것인가? 기독교의 경우에도 사회에 대한 반응들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났다. 80년대 사회적 환경은 기독교에 두 가지 정도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사회의 지배 구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에 적극적으로 결합된 형태로, 대중 상품으로의 시장성과 그에 부응하는 기능적 합리성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의 지배 논리에 영합하여 양적인 성장을 추구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반응을 하게 하였다.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의 심화에서 비롯된 사회 불안과 갈등, 독재와 인권 억압, 소유 관계에 기반한 경제적 불평등과 착취, 노동의 비인간화 등 사회모순에 저항하는 사회 참여적 반응을 이끌어 내었던 것이다.
80년대 한국 사회의 문제적인 상황을 추상적으로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모순의 심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모순은 군사 정권이 시작된 데서부터 해서 온갖 억압 정치, 정보 정치, 고문 정치로 현상하였고, 권력형 부조리와 정경 유착, 지역 감정의 유발 등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모순은 특정 계층.계급의 부의 독점과 착취, 비인간화와 이에 따른 사치와 낭비.퇴폐적인 풍조, 그리고 물질주의 가치관의 만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경제적 불의는 민중에게 절대적.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주었고, 배금주의 풍조는 한탕주의, 편법 주의, 향락주의, 이기주의 등과 같은 천민적 가치관의 확산을 초래했고, 이에 따라 사회적 무질서와 무규범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뿐만 아니라, 좀 더 복합적인 사회.문화적 문제로서 여성 문제, 노인 문제, 가족 문제, 청소년 문제, 범죄 문제 등이 증가되었다. 그리하여 이에 대응하는 80년대 사회 운동은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의 계급성과 당파성을 강조하며 상황 속에서 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하여 노골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성장해 가게 된다. 그리고 종교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이러한 사회에 반응하였다. 사회에 반응하는 종교의 재생산 구조에서 형성되는 종교형성물은 그 종교의 신앙양식에 내재하는 역동성과 그것을 규정하는 사회적 규정력, 그리고 종교간의 경쟁이라는 다종교의 상황에서 파생되는 조건 등에 의해서 좌우된다. 바하(J. Wach)는 종교의 내적 역동성은 신앙의 불안 해소 능력, 교리의 재해석 능력, 조직의 합리화 정도가 그 수위를 결정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회적 규정력은 종교와 해당 사회의 성격과의 조응 여부와 종교담지계층.계급의 성격, 정치권력과의 친밀도, 종교와 문화 일반과의 조응 문제 등이 결정할 것이다.
3. 1980년대 기독교(개신교) 일반의 변동
이러한 변수들 가운데서 한국 개신교는 꾸준히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종교 변동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종교 조직에 대한 분석, 종교의 신념 체계의 분석, 종교적 의식에 대한 분석 등등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종교 조직에 대한 분석은 종교의 실제적인 모습과 그 변동을 파악하는 중심 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종교가 종교로서 성립하기 위해 끝까지 견지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면, 그 특성은 종교 조직 안에서 나타날 것이다. 우선 개신교의 일반적인 성장과 변동의 추세는 조직의 외형적 변동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개신교 신자의 수는 80년 7,180,627명에서 90년 12,091,837명으로 약 170%가 증가했고, 교회 수도 21,243개에서 35,869개로 마찬가지로 170%정도 증가하였다. 이는 단순한 인구의 증가 요인 보다는 그 외의 사회적인 요인과 종교 내적인 구조가 성장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사회의 불안한 상황 가운데 기독교가 어떤 의미로든지 작용과 역할을 했음을 이야기해 주는 증거이다. 이는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사제적 기능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사회 통합의 기능을 수행했고,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과 적응 능력을 배양하는 기능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겠다.
기독교 인구의 증가 요인은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는 도시화, 산업 사회의 독특한 영향 아래서 기독교회가 구성원들의 일차적인 친밀감과 유대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종교적 심성을 함양함으로써 자기 실현의 요구도 충족시키기 때문이라고 사회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겠다. 산업 사회에서 인구의 이동과 증가는 도시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시화는 가족의 규모가 축소되는 것을 용이하게 했고, 세대간의 긴밀함이나 전통 윤리, 종교, 가치관을 약화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이러한 산업 사회 일반의 변동이 기독교의 성장에 긴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엄청난 종교인구 수의 증가는 단순한 인구 증가에 따른 비례 증가이기보다는 산업화에 따른 사회적 변화와 종교에 대한 우리 나라 사람 특유의 관용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나라가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혈연과 지연으로 얽힌 공동체의 붕괴와 그에 따른 도시화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이러한 표면상의 사회변동은 기독교의 지형 변화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양상은 내적으로 기독교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익숙해 있는 전통 종교보다는 교리와 제도가 분명하며, 치밀한 전략에 의해 도시 사회를 복음화 하는 노력에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찌하였든 산업화에 의해 새로이 富를 축적한 신 중간층의 종교적 귀의는 기복 종교적 속성의 일면을 보여주었다면, 소외 계층의 종교적 지향은 내세 지향적인 광신주의적 성격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다른 일면으로 사회변동에 대한 저항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도 함께 수행했다.
일반적인 산업화(자본주의의 심화 발전)의 경향에 80년대 기독교가 영향을 받은 바를 위와 같이 분석할 수 있다면 이를 내적으로 다시 두 가지의 방향으로 반응하며 커다란 변화를 하게 된다. 이는 70년대부터 이어진 경향성으로, 하나는 부흥 운동.성장 운동 등을 통해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고, 이 세력은 신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함으로 守舊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일부 진보적인 집단에 의해서 민주화와 인권 옹호로 시작되어 진보적 사회변혁운동까지 전개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불의한 사회의 정치적 비민주성, 경제적 불평등의 상황은 의식 있는 기독교인들과 집단의 사회참여를 초래했고 그들은 온갖 억압에도 불구하고 독재에 항거하며 억눌린 자들의 입장을 대변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신앙의 틀 안에서 사회적인 반응은 서로 극단적인 방향성을 띄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그 이유를 우리는 사회구성체론의 채택으로 분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기독교 일반이 사회변동을 수용하고 대 사회적인 반응을 하는 양태가 사회적으로 다양한 것은 그 구성원들과 그 신념 체계, 의식 등이 사회의 어느 토대에 근거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달리 발현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따라서 동일한 신념 체계도 사회적으로 달리 반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 신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삶의 자리의 문제일 수도 있다.
사회 상황에 대한 종교의 적응 태도는 지배 구조와 가치의 논리를 수용하는 단계를 넘어서 능동적으로 적응하고자 하는 태도, 사회의 거대하고 강력한 물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태도, 지배 논리를 거부하고 외면하는 태도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기독교의 경우 어떠한 반응이든지 첫 번째의 능동적 적응으로 반응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하에서 모든 유기체는 생존 경쟁의 장에서 성장지상주의의 속성을 가지고 자본주의 논리와 일차적으로 조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자본주의 체제와 능동적으로 영합하는 현상이 바로 종교의 양적 팽창과 신도의 기복화 현상이다. 또한 혼란스럽고 불안한 사회구조와 아노미적 문화 환경으로 부터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교회는 개인을 보호해 주고, 신도들에게 속세의 고뇌를 벗어나 안심입명과 고난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인내심과 자제력을 길러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는 오래 전에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계급 갈등을 무마하면서 성장의 논리를 지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한국 기독교는 80년대 놀라운 양적인 성장을 가져 왔던 것이다.
80년대 한국 사회의 모순의 심화는 기독교에게도 자의든, 타의든 반응하게 하였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사회의 모순 구조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고, 이러한 모순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종교적 실천을 하여 왔는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회구성체가 토대와 상부구조의 변증법적 유기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서의 종교는 그 신앙 계층의 사회적 존재 양식에 따라, 사회적 위상에 따라 사회모순을 수용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그리고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제도 종교는 원칙적으로 사회적 토대의 성격을 반영할 뿐아니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와 문화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것이 70년대 이후 기독교계가 사회적으로 진보와 보수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발전한 한 양상이다. 이는 80년대 한국 사회의 전개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사회에는 분단 모순, 계급 모순, 대외적 모순, 전근대성이 내적으로 조화되어 이들은 각각 반공 이데올로기, 자본의 성장 이데올로기, 친미 이데올로기 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모순에 대해서 수용하는 신앙 형태와 모순을 거부하는 신앙 형태의 차이점들이 서로 다른 형태의 반응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소위 기독교의 진보 측은 능동적으로 현실에 참여하여 자본주의화의 부작용과 내적 모순들, 민족적 대각성에 바탕을 두고 사회변혁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었고, 보수 측은 능동적으로 현실에 영합하는 근본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부흥회와 대형 선교집회 등을 개최함으로 성장해 갔다. 이러한 종교의 재생산 구조를 제한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은 사회구성체와의 관계일 것이다. 결국 80년대 한국 기독교는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의 장을 지배하고 있는 남북 분단 모순과 한국 사회 사회.경제적 토대에 해당되는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의해서 규정받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진보 측은 70년대 이후 민중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서 종교가 이데올로기의 투쟁장임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한편 보수 측은 부흥회와 선교 등의 전략을 통한 성장을 추구함으로 성장 제일주의를 중시하고, 개인의 구복성을 가져다주어 사회적 모순을 실존적 차원에 묶어 둠으로써 지배 체제와 상호 보완협력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성격은 결국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에 여실히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상이 80년대 한국 기독교의 성장과 내적인 변동을 사회구성체론에 입각해서 분석해 본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한국 사회의 성격은 점진적이거나 자생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외적인 규정력을 많이 받아 왔다. 그리고 그 결과 사회 문화 구조는 급속히 변모하였고 사회 모순은 확대 심화되었으며, 그 파행적인 사회 체제는 권위주의적인 국가 장치의 통제로만 유지 가능했다. 또한 이에 따라 사회 모순에 저항할 민중 진영이나 시민사회의 영역이 정상적으로 순조롭게 발달할 수 없었고 사회 운동의 제반 영역은 학생 등 지식인의 양심적 각성에 의해서 부각되는 특성을 보였다. 이는 사회변혁운동에서조차 사회의 물적 토대로부터 일정 정도 자유로운 선도적인 이념 집단으로서 학생들이나 종교 단체 등의 역할이 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제 기독교 일반의 변동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80년대 상황에 대한 기독학생들의 반응, 특히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학생들의 반응을 검토해 보면서 전술한 종교사회학적 의미들을 해명해 보도록 하겠다.
제 4 장 1980년대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과 그 의미
1. 1980년대 복음주의 기독학생들의 반응
80년대의 충격은 일반 사회변혁운동에 질적인 변동과 성숙을 가져다주었다. 사회의 모순과 질곡을 거부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 운동은 80년대에서는 종교적 순교자의 정신을 요구했다. 그리고 실제로 운동에 헌신한 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는 이를 지켜보는 기독학생들에게도 새로운 물음을 던져 주었다. '과연 진정한 신앙과 올바른 사회는 무엇인가?' 라는 이들의 실존적인 물음은 특히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수용하고 오히려 정당화하는 보수적 토양의 기독교인들에게 갈등 상황을 연출했다. 그리하여 어떤 형식으로든지 신앙양식을 재해석하고 반응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는 앞 절에서 살펴본 기독교 일반의 반응이 보다 더 급진적으로 진행되는 형국을 가지고 있었다. 일부 의식 있는 기독학생들은 기독교를 버리고 학생운동으로 진출하기도 했고, 다른 일부는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갈등을 극복하기도 했으며, 대다수는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양자를 방황해야 했다. 물론 KSCF등 진보적 기독학생 그룹들은 70년대 민주화 운동과 사회 운동의 경험 속에서 나름의 운동과 신학, 신앙의 고민을 일관되게 이끌어 가고 있었다. 80년대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정도의 특징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첫째는 학원선교단체들의 급격한 팽창이었다. 각 대학마다 영문자로 표기된 선교단체들이 10여개 이상 존재하고 있고, 캠퍼스 곳곳에는 전도에 열중하고 있는 선교단체 소속 기독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사회문제와 모순에 대한 관심과 갈등을 개인 영혼의 구원을 위한 열정으로 풀어 가고 있었고, 나름의 지성적인 성찰로 한국 교회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면서 내적인 성숙을 이루었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학원의 상황에서 선교단체들은 보수적인 기독학생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과 신앙적인 논리로 도피처를 마련해 주는 기능을 하면서 급성장을 했던 것이다. 둘째로는 기독교 세계관, 로잔언약, 시민운동론의 대두이다. 이는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 신학이 가지고 있는 이원론을 극복하고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에 대한 근거를 신학적으로 정립하고자 하는 운동이었다. 이들은 세계에 대한 기독인의 책임을 회복한다는 기치를 들고 기독 지성 사회에 영향력을 확보하면서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와 [기독교학문연구회]를 결성하면서 현재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등의 시민운동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셋째, 학생자발연합운동의 대두이다. 86년 서울대 기독학생들의 연합체인 [서울대 채플]과 [기독교문화연구회]의 활동은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의 새 장을 열게 된다. 이들에 의한 {대학기독신문}발행, [공정선거감시와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복음주의청년학생협의회]의 결성은 이후 기독교계의 시사 월간지인 {복음과 상황}의 발간과 [사회 선교를 위한 복음청년학생연합(CSM)]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이 학생 자발적인 연합 운동은 이들 뿐아니라 서울 지역의 주요 대학과 지방 주요 도시의 [기독학생총연합회]의 건설을 추동 하기도 했다. 이들의 문제의식에는 한국 사회의 모순에 대해 선도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학원의 상황이라는 사회적 요인이 주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 상황에 비추어 기독 복음의 의미를 재조명하여 추출한 한국 교회 갱신과 한국 사회 변혁이라는 과제가 이들 기독학생들을 추동 시킨 근본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넷째로는 기독학생들을 중심으로 진보적 기독교와 보수적 기독교의 만남의 가능성이 잉태되었다는 것이다. 80년대에 이러한 일치 운동의 사례는 몇몇 대학에서의 시국 사건을 중심으로 연합한 것 등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상호 일치를 위한 내적인 토대를 닦았다는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한국 교회는 진보와 보수의 양극단을 걸어왔다. 진보는 사회적 실천에서 선도적인 면을 보여 주었으나 그 성과를 한국 교회 내에 이전시키기에는 교회적 토대가 빈약했고, 보수 교회는 그 반대의 경향성이 짙었었던 것이다.
사실 70, 80년대를 지나오면서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와 선교단체들의 탈역사화된 신앙의 모습이 낳은 결과는 한국 사회에 대한 복음주의 교회의 영향력의 상실로 나타났다. 이 탈역사화된 모습은 근본주의 신학이 가지고 있는 이원론적인 신앙의 양태와 제1세계적인 선교 방식인 개인적 인격의 회심만을 기독교 활동의 궁극적 목표로 생각 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이는 세속 이데올로기나 가치와는 상관없는 순수한 복음, 기독교의 진리를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지배 이데올로기와 그대로 영합한 형태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사실 그간의 복음주의는 사회의 제반 모순에 대해 비참여를 통해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인데, 이런 모습은 80년대의 사회 상황에 의한 사회적인 도전으로 사회변동과 변혁에 있어 기독교의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반성되어 지게 된 것이다. 이런 반성에 따라서 복음주의 기독학생권 내에서는 사회참여에 대한 활발한 문제 제기와 논의가 전개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2.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의 내적인 논리
일반적으로 운동이라고 함은 어떤 사회적.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집단이나 조직을 형성하여 과거의 역사적 경험과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이론을 정립하고 그 이론에 따라서 집단적 실천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에 대한 논의에서 운동은 조직의 주체들이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실천하고 외화하는 모든 것을 지칭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하도록 하겠다. 이제 이번 절에서는 복음주의 기독학생들이 80년대를 겪으면서 내.외적으로 반응한 양태들과 그 내적 논리를 살펴보고 다음 절에서는 전술한 80년대 사회변동과의 관계를 사회구성체론으로 비추어 평가해 보도록 하자.
1) 학원선교운동
기독학생운동사에 있어 80년대 초반까지 주류를 형성했던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을 비롯한 진보적 교단 청년회가 학생운동 및 사회 운동에 깊이 개입함으로써, 그 분야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만 상대적으로 복음전도나 학원 선교에 있어선 왜소한 길을 걷게 된다. 80년대 학원 선교는 복음주의 계열의 학원선교단체들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면서 양적인 면에서 기독학생운동의 주류를 점하게 된다. 이들은 현재까지 매년 '선교 한국', '복음.민족.역사'등의 대형선교집회를 수천 명씩 동원하면서 개최하고 있고, 일개 선교단체의 수련회에 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가하기도 한다. 80년대 들어 학원선교운동이 이렇게 팽창하게 된 원인은 각 선교단체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그런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근본적으로 학생이라는 계층이 가지고 있는 진리에 대한 순수성과 열정, 그 동안의 한국 교회의 지성 사회에 대한 선교 전략의 부재,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적인 변동이 주요한 토대로 작용하였다.
학생이라는 계층의 특수성은 사회.경제적인 물적 토대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우면서 순수성과 열정을 지닌 집단이다. 그렇기에 80년대 한국사회 변혁운동을 주도한 부문도 학생운동이 되었고, 그 운동의 현장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낸 것도 학생들이 된다. 어찌하였던 기독교 복음 운동에서도 학생들은 자신의 신앙과 사상에 대해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학원의 선교단체의 경우 대사회적인 반응보다는 복음의 유일성과 완전성에 대한 수납이라는 명목으로 전도와 해외 선교에 대한 열정과 선교단체의 성장으로 현상하였던 것이다. 또한 70, 80년대의 근본주의적이고 감성주의적이었던 부흥회 위주의 보수 교회에서 받지 못했던 '기독 정체성 확립'을, 학원선교단체들이 대학 지성인들에게 주었기에 선교단체들은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80년대의 정치.경제적인 모순과 불안한 상황이 복음주의권 학생들을 선교단체로 몰리게 했던 이유이다. 자본주의의 심화.발전으로 전통 양식이 해체되고 개인의 삶과 가치관에서 실존적인 불안을 야기했고, 분단.독재.종속.가난이라는 사회적 상황은 그를 극복하기 위한 저항과 희망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원선교운동에서는 실존적 위기를 신앙의 절대성에서 주어지는 확신과 위로로, 사회의 제반 모순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의뢰와 기도 속에서 희망을 찾았다. 물론 선교단체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입장에는 극우적인 입장에서 중도 좌파까지 선교단체별로, 그리고 소속된 개인별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누어진다.
2) 기독교세계관운동에서 시민운동까지
세계관이란 세계의 구성에 대한 일련의 가정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세계관에 의해서 한 개인이 그와 관련된 모든 영역 즉, 정치.경제.문화.예술.학문 등 사회의 제반 영역에 대한 인식과 행동의 틀을 결정한다. 기독교세계관운동은 한국 교회의 이원론화 현상과 한국 사회의 유물론 등 소위 인본주의적 사상의 대두에 대항하여, 기독교 정체성을 확립할 절대적 필요에 의하여 태동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이원론화 현상이라는 것은 바로 신앙과 삶의 불일치를 의미한다. 보수 교회의 논리 속에서 이 땅의 삶에는 등한시하고, 도리어 땅에 연연해하는 것 같지 않으면서 결국은 땅의 지배 논리를 그대로 살아가는 신앙의 형식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즉, 교회당 안에서는 신자로서 살다가 세상에서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대로 살아지는 기형적인 신앙은 대학의 기독인들에게는 신앙과 학문의 부조화, 신앙과 사회의 문제에서의 갈등을 겪게 했다. 또한 세계관 운동은 유물론 등 인본주의 사상의 도전에 대해서 기독교계의 방어적인 성격이 짙었다. 그리하여 80년대 한국의 기독교세계관운동은 유물론적 세계관에 대항해 신앙의 정체성 수호에 치중한 면이 압도적으로 강해 여타 사회 운동과의 관계에서 종합 또는 연대보다는 분리의 길을 걸었다. 이 결과 세계관 운동의 귀착점은 중세의 기독교처럼 국가종교주의(Christian Kingdom)로 나아가게 되거나 기독교의 대 사회적인 운동을 도덕, 윤리 운동에 국한시키는 한계를 낳게 된다. 이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나 사회구조에 대한 분석을 통한 모순의 해결보다는 인간의 문제에 주된 초점을 맞춘 까닭에 기인하는 것이다.
기독교세계관운동은 문서 운동으로 시작해서 본격적인 운동화가 되는 것은 1981년부터 서울대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경제학, 과학, 문학 모임이 시작되어 1984년 8월 [기독교학문연구회]가 시작됨에서 부터이다. 이 [기독교학문연구회]는 기독교 문화의 창달을 큰 목표로 기독교적 학문의 정립을 구체적 목표로 설정하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과학원(KAIST)을 중심으로 몇몇 대학원생들이 모여서 1984년 구성한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는 세속화된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를 효과적으로 변증하기 위해서 기독교 대학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출발한 단체이다. 이는 기독교적 학문 연구, 기독 인재의 양성, 창조 이론의 체계적 연구, 문화 변혁을 목표로 그 비전을 넓혀 가고 있다. 이외에 창조과학회, 라브리 모임 등이 이 계열의 운동으로 그 성과가 교회와 선교단체들의 교육 프로그램에 적용되고 있다. 이런 세계관을 배경으로 온건한 실천을 주장하면서 탄생한 모임이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이다. 이 운동은 87년 12월 기독 교수들을 중심으로 발기되어 성서의 원리를 실생활에 적용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세계관운동은 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의 시작과 맞물려 시민운동과 결합되고 있는 기독교 운동이 되었다.
3) 학생자발적 연합운동과 진보적 복음주의운동
80년대 기독학생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이 바로 이 학생 자발적인 연합 운동의 확대와 진보적 복음주의 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이었다. 학원복음화협의회 간사 김경수는 80년대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유산 중에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신복음주의학생운동(개혁복음주의학생운동)의 출현이라고 했다. 연세대 교목 실장인 이계준 목사는 93년 봄 한 세미나에서 90년대 학원 선교의 전망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이전에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있던 학원 선교 그룹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소개하면서 그 중 하나가 개혁복음주의(Neo-Evangelicalism)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에 속하는 단체들이 [경실련기독청년학생협의회(기청협)], [기윤실대학생회] [사회선교를 위한 복음청년학생연합(CSM)],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한기연)], 등이라고 말한다. 이 단체들은 기존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에 본적을 두고 있다는 것과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첫째 사회참여에 대해 적극적이다는 것, 둘째 자유주의 신학과 성경 해석을 일부 수용한다는 것, 셋째 주요 사안에 대해서 진보적인 그룹과도 연대하여 활동한다는 것 등이다.
학생 자발적 연합 운동은 흐름 내부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면서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비록 기성 교단 또는 선교단체로부터 공인을 얻지 못하여 재야적 성격의 운동을 전개했었지만, 한국교회사적 과제를 한 몸으로 끌어안고 해결하려는 지난한 몸부림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그리고 이들은 돌과 화염병, 최루탄이 난무하는 교정에서, 그리고 동료들의 분신과 투신과 고문과 투옥의 소식을 접하는 그 현장에서, 한국 사회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복음과 신앙을 재해석하고 반응하며 실천하려 했던 산 증인들이었다. 80년대를 살았던 기독학생들에게 광주민중항쟁은 그 앞에서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고난의 십자가였고, 그들의 하나님의 계시를 들을 수 있는 통로였다. 학원의 사회변혁을 위한 소용돌이 현장에서 기독학생들의 무력감은 급기야 연합 운동의 추동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또다시 신앙과 운동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열광주의적 근본주의를 지향하는 형태의 연합과 진보적 복음주의 형태를 지향하는 두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진보적 복음주의운동의 효시로서 [서울대 기독교문화연구회]를 들 수 있다. 기독교의 해방 전통을 복원하여, 개인 실존적 영역을 넘어서 '하나님 나라' 라는 사회.역사적 지평까지 복음의 영역을 확장하려 했던 [기독교문화연구회]는 90년 국가보안법 사건 항소이유서에서 자신들의 생성 배경과 동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기문연은 80년대 제5공화국의 고도 성장의 그늘에서 점점 더 빈부의 격차로 인한 상대적 빈곤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던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등, 이 땅의 민중들의 절박한 삶과 이들의 생존권적 요구를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철저히 압살하는 정치.경제적 억압 상황 하에서 탄생하였습니다. ..... 진정한 이웃사랑의 실천, 즉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땅에서는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의 형성이 우리의 꿈이었고, 한국 교회의 한 부분으로서 교회를 쇄신하고 민족의 현실 가운데서 민중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복음의 전면적인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 이들은 초기에는 세미나 학습을 위주로 하여 '하나님 나라', '이데올로기와 신학', '기독교와 문화', '사회과학', '성경 공부' 등을 하였으며, 학습 위주의 운동을 탈피하기 위해 공단 야학의 개설이나 빈민촌에서의 기초 공동체 운영, 방학들 이용한 농촌 활동이나 공장 활동 등을 함으로 현장에 접근하려 하였다. 이 기독교문화연구회의 활동은 87년 대통령 선거 당시의 '공정선거감시와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복음주의청년학생협의회'를 주도적으로 결성함으로 본격화되었다. 서울 지역 내의 교회.선교단체원 약 2천여 명이 참가한 복협운동은 보수 교회 출신의 기독학생들이 사회문제에 집단적으로 대응한 첫 번째 운동이었다. 복협활동후 성과는 한국기독학생회(IVF)내에 연합학생회의 구성, 복음주의청년연합회의 결성, 기독교문화연구회의 강화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들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80년대 한국 사회 변동의 혼돈과 어려움, 고통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려 했고, 신앙과 신학의 역할을 사회와의 관계성 속에서 진지하게 되물으면서 반응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4) 기독운동일반의 논리와 사회적 의미
지금까지 80년대에서 보여진 소위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에 대해서 개괄해 보았다. 이제 그 80년대의 운동의 경험이 모색하게 한 내적인 신학적, 운동론적 논의를 짚어 보고, 그런 내적 논리를 강제한 80년대의 종교사회학적인 의미를 분석해 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우선 전제해야 할 것은 복음주의운동의 역사는 일천하다는 것과, 아직까지 평가와 정리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 그리고 사회의 토대 구조와 연결된 전체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지식인과 학생운동으로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 등이다. 기독교를 이해하는 내적인 맥락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되고 있고 거기에 따라서 실천과 반응의 양상이 달라진다. 그 하나는 기독교를 '종교'로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운동'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사용하는 기독교에 대한 이해의 개념은 전자는 종교의 본질적인 정의에 가깝고, 후자는 기능적인 정의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어찌하였든 그 분류의 기준에 따라서 내적인 논리를 살펴보자.
먼저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바라보는 입장은 다시 '기독교 보편주의'와 '기독교 상대주의'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기독교를 사고의 중심에 놓고 사회를 무시하는 견해로서 기독교에 대한 절대성과 배타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원론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원론적인 신앙 양태와 탈역사화된 기독교, 개인주의적인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흐름들도 있지만 이도 기본적으로 세속을 종교화(=기독교화)시키려는 것이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결국 내세 위주의 신앙관이나, 기독교 왕국의 건설 혹은 사회에서 윤리적인 부분의 참여로 운동이 귀착되게 되는 부분이다. 후자는 종교를 사회의 한 부분으로 파악하는 경향을 말하며 기독교를 인간의 전일한 삶으로 보지 않고 다양한 인간 삶의 한 부분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서 이 관점은 기독교 외에 인간의 총체적이고도 전체적인 삶을 규명할 세계관, 사상 체계를 필요하게 된다. 즉, 세상과 사회에 주목할 뿐아니라 사회를 인간과 연관된 삶의 장으로 이해하기에 이에 대한 해명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는 인간의 삶의 한 부분이기에 기독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의 대표적인 견해들은 종교를 소멸해야 할 미신적인 세계관, 관념론 정도로 이해하는 경직된 마르크스주의 진영의 사고와 인간 삶에 있어 종교의 특수성과 의미성은 인정하되 사회 운동에서는 일반적인 과제와 목표에 복무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다음으로 '운동으로서의 기독교'를 바라보는 관점은 기독교를 '교회'로만 볼 수 있겠는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는 종교사회학적으로는 기능적인 정의에서 기독교와 기독운동을 파악하려고 하는 경향성이 강한 입장으로 볼 수 있겠다. 기독교를 종교 집단으로만 보는 견해에 반대하면서 기독교를 인간 삶의 전체에 대해 관여하고 방향까지 제시하는 운동, 사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를 나름의 독자적인 사상과 노선에 입각해서 활동하며 자신을 부문이나 종교운동으로 설정하지 않는 운동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80년대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도 이러한 기독운동의 다양한 이해의 스펙트럼 안에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인 관심으로 보았을 때 학원선교운동은 기독교 보편주의의 입장 가운데 대부분이 이원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고, 일부 의식 있는 개인과 선교단체, 세계관 운동 등은 그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기독교 보편주의의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80년대의 진보적인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은 기독교 보편주의적 세계관 운동에서 시작되어서 운동으로서의 종교를 추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들의 신앙적 성찰과 반응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종교가 사회변동을 저해하는가, 아니면 종교가 사회변동을 촉진하는가 하는 관계의 변수는 어떤 조건과 상황에 놓여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80년대 한국 사회의 경우는 사회의 제 모순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폭발하고 또 대립, 갈등하였던 시대였다. 이러한 사회 상황에서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과 기독교는 어떤 역할을 감당했을까? 시대를 거슬러 70년대의 사회 상황은 정치적 폭압으로 인해 모든 운동이 약화되고 지하화 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는 합법적인 공간으로 민주화 운동에 기여할 수 있었다. 이 시기는 기독교가 사회변동에 기여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논의의 전제는 전체 기독교의 흐름보다는 양심적이며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기독교계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80년대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사회변동이 증폭되고 변혁운동과 대중운동의 흐름이 특화된 일반 사회 운동의 영역으로 분화되어 간 그런 상황이었기에, 70년대에 기독교가 감당했던 사회적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기독교의 지형에서 오히려 기독교는 보수화 되고 체제와 영합하는 모습을 띄게 되었다고 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사회변혁운동의 영향은 기독교에 영향을 미쳐서 기독교는 거기에 반응하는 형식을 띄었다. 어쩔 수 없이 유기적 사회 구성의 하나였던 기독교는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이상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내적으로 수용된 변혁의 이상은 기독교의 역할에 힘입어서 한층 더 고양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맺어 가게 되었다.
앞서 종교성, 혹은 종교의식은 정치의식, 사회의식, 경제의식, 도덕의식 등과 일관된 방향으로 깊은 관계가 있다고 전술했다. 종교의식이 보수적이면 정치.경제.사회.도덕의식도 보수적이어서 정치.경제 체제나 구조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수납적이며 개인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종교의식이 진보적이면 정치.경제.사회.도덕의식도 부정적이고 비판적 이어서 문제를 구조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종교의식과 일반적인 사회의식의 상관관계는 종교의식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즉 사회의식이 종교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회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사회의식이 변하면 자연히 종교의식도 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80년대의 상황 속에서 종교와 사회의 연관관계는 어느 하나의 틀거리 속에서 재단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사회나 종교나 서로에게서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이야기할 수 있다. 80년대의 경우 급격한 사회변동은 보수적이었던 기독교에 영향을 미쳐서 기독교인들과 기독교 사상도 변화를 하게 하였고, 그래서 다시 기독교 내부에서는 그 문제의식을 자신의 신앙양식과 교리 체계 등 신학적 입장으로 재해석해서 자신의 원칙을 정립하고 실천해 가는 구조를 만들어 내었다고 볼 수 있다.
제 5 장 결론; 사회변동이 기독학생운동에 미친 영향 - 종교사회학적 의미
80년대 한국 사회 사회변동의 특수성은 사회 모순의 심화와, 그것을 유지.온존.강화시키려는 지배 집단과 사회 모순을 극복하고 변혁하려는 저항운동간의 대결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리고, 복음주의 기독학생들의 반응 양태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즉, 사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표현되는 순수 복음전도와 선교를 자신의 목표로 삼고 활동하는 학원선교운동으로부터 해서 사회 모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자신의 신학과 사상 운동을 재정립하려고 한 진보적 복음주의운동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된 문제의식은 같은 신앙양식을 가지고 있고, 적어도 70넌대 까지는 같은 보수적인 신앙의 틀을 지니고 있었던 복음주의 기독학생들에게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반응 양태를 낳게 한 것은 과연 무엇에 기인한 것이며, 종교와 사회의 연관관계를 해명하면서 그 상호관계의 본질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종교는 결국 종교가 속한 사회환경변화에 끊임없이 반응하는 유기체적인 존재이고, 결국 전체 사회 통합체의 구성으로서 자기 역할을 어떠한 형태로든지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순수 종교도 자기 실천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사회구성체에서 기독학생운동이 속하는 영역은 사회적 토대와 그것을 강화시키는 국가권력에 조응하는 이데올로기적 제 표상인 문화적인 상부구조이다. 이는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각 개인에게 내면화시키고 또한 각 개인의 가치관과 함께 반응하여서 사회적인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은 사회적 토대에 조응하게 되는 특성을 갖는다. 80년대의 사회변동 즉,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파행적인 전개와 이에 대응하는 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 운동의 전개는 동일한 신앙과 신학의 틀을 가지고 있던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영향은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조응이 아니라, 그 사회적 영향을 내적인 전통과 교리, 신학과 신앙의 틀 속에서 재해석해서 변증법적인 발전을 이루어 새로운 독자적인 운동의 전망을 내오게 되는 과정을 우리는 80년대를 통해서 보았다.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서 종교를 사회변동의 종속변수로 보며 사회변동에 종교가 어떠한 영향을 받는지를 연구하는 관점을 채택하기로 하였기에 이렇게 형성된 기독학생운동이 사회 일반과 변동에 있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남은 연구의 과제이며 기독학생운동의 전망과 사활이 걸린 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회변동과 종교 변동의 연관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80년대의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을 분석해 보려고 했다. 여기서 살펴본 사회변동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80년대의 지배 체제였던 자본주의가 독점의 강화와 종속의 심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동과 영향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로 향해 나아가려는 저항운동으로의 사회변동이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종교의 변동도 두 가지로 대별되었다. 하나는 대사회적으로 지배 체제를 정당화하면서-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결합해서 양적.물적 팽창 등 교세 확장을 하는 변동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모순과 불의에 저항하면서 기존의 체계와는 다른 내용을 생산해 가는 변동이었다. 이는 복음주의 기독학생들의 반응 양태들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물론 이것에 대한 종교 내적인 해석, 즉 종교적 정서와 신학적 해석들은 나름의 특수한 입장과 근거들이 있겠지만 이를 종교사회학적으로 객관화시켜 볼 때 사회의 변동에 대해서 종교는 종속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은 '80년대'라는 시기에 한정해서 볼 때, 사회의 변동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또한 기독교의 내적인 신앙양식에 의해서 어떠한 형태이든 교리적(신학적)으로 재해석하고, 반응의 근거들을 만들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의 이름과 원칙에 근거하여 사회운동화하여 사회의 변동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치면서 실천의 영역을 마련했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종교가 사회변동에 완전히 종속되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사회가 종교의 내적인 원칙과 이상에 어긋나는 현상을 띠고 있을 때, 종교는 그 사회의 지배적인 흐름을 상대화하고 대항하는 집단으로 사회의 변동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의 경우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의 지대한 영향과 정치 기득권 세력과의 결탁, 월남 기독교인들의 체험적 반복.반공 사상 등으로 해서 왜곡된 사회적 입장을 가지고 해방 후 40여년간 성장해 왔다. 이것이 기독교 사상의 정상적인 발전까지 저해하면서 한국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손과 발, 눈과 귀를 막아 왔던 것이 80년대 이전까지 기독교내 복음주의권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80년대의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급박한 상황은 복음주의권의 변동을 양산해 낸 것이다. 사회변동의 주도적인 영향이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건전하고 건강한 내적 고민과 실천적 모색, 새로운 사상의 정립을 가능하게 해준 과정이 80년대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우리의 논의들을 정리하여 80년대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의 종교사회학적 의미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80년대라는 사회의 변동 양상은 복음주의 기독인들에게 자신들의 대 사회적 역할과 의무를 고민하도록 추동 했고, 그 영향으로 내적인 갈등과 혼란의 수습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양태의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회 전체와 유기적 영향을 맺을 수밖에 없는 종교의 사회구성체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종교의 사회구성체적 성격이란 사회의 물적 토대인 하부구조(경제적 생산력과 생산관계)와 그것을 직접적으로 강화시키는 정치적 상부구조에 조응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말한다. 즉, 동일한 신앙양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립되는 사회적 반응 양태를 지닐 수밖에 없었던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은 그들이 조응하고 있거나, 하려고 하는 사회의 성격에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변동을 수용하고 대 사회적인 반응을 하는 양태가 사회적으로 다양한 것은 그 구성원들과 그 신념 체계, 의식 등이 사회의 어느 토대에 근거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달리 발현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따라서 동일한 신념 체계도 사회적으로 달리 반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 신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삶의 자리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것이 말해 주는 바는 결국 사회와 무관하게 순수한 신앙 운동을 한다고 하는 부분이나, 그렇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사회적 운동을 하는 부분이나 사회변동의 영향을 받고 반응하는 것이며 그것은 사회와 종교가 직접적인 변수로 상호작용하기 보다는 구성원의 계급적 위치와 사상적 지향 등의 매개변수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 참고 문헌 ■
권규식外, {현대 한국종교변동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3)
이원규, {종교사회학} 한국신학연구소(1991)
------, {종교의 세속화} 대한기독교출판사(1987)
오토 마두로, {사회적 갈등과 종교} 한국신학연구소(1988)
윤승용, [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연구] 1992년 서울대학교 박사 학위논문
이종철, [80년대 기독학생운동사], 월간 {복음과 상황} 1992년 9월호-1993년 6월호
한국산업사회연구회, {새로운 사회학강의} 미래사(1990)
박현채.조희연編, {한국사회구성체논쟁(I)} 竹山(1989)
최현編譯, {사회구성체이행론서설} 사계절(1984)
리차드 커니, {현대유럽철학의 흐름} 한울(1992)
대학기독신문(1986-1989)
기타 '기독운동'에 관련된 문건 多數
◇ 후 기 ◇
부끄럽지만 이 작은 글에 저의 대학 생활과 이십대를 보내며 고민했던 전부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인 게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삶의 족적을 주워담기에만 급급했을 뿐인 것 같습니다. 삶은 저만치 멀리 있고 말입니다. 정말로 이런 삶은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여기서 저의 20대 초반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밝히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단지 타인의 삶과 타인의 열매를 베꼈을 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요. 어쩌면 저희들의 80년대는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었던 시대였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없어도 '대의'로 살아갈 수 있었던, 주어진 것으로 살아가기에도 벅찼던 그런 것 말입니다. 한가지 사람과 세상을 사랑했고, 또 정의와 진리가 부르는 그 부름에 가장 충실하려 했고,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힘이 났던 젊음과 진실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현존과 임재를 발견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저의 나약한 모습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화두'로 해서 앞으로의 남은 삶을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과연 기독교가, 기독운동이 사회를 바꾸어 낼 수 있을까? 이는 기독운동에 투신하는 한 사람으로 근원적인 물음입니다. 단지 나는 나를 세워 온 양심과 가치를 가지고 모순된 현상에 반응하면서 살아왔을 뿐인가? 많은 이들이 죽었고, 많은 이들이 아파했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고,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이 그 수많은 삶의 진실들에게 다시 생명을 부여하고 의미를 채워 줄 수 있을까요? 자신의 신앙을 사랑하였고, 세상을 사랑하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좀 더 객관화하고 학문적 엄밀성을 부여해서 분석하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사회와 종교, 신학과 사상이 무엇이길래 사람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 가는지를 해명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계를 느낍니다. 아마도 이것을 종교학이나 사회학적 관점이 아니라, 한국 교회사와 신학이라는 전망과 과제 속에서 풀어 가려고 했으면 오히려 더 쉬웠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쉽고 부족한 부분들은 앞으로 풀어야 할 연구의 과제로 남겨야 하겠습니다.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에 투신했었고, 이제는 비판적 평가를 내리고 있는 시점에서 저는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스스로 자문해 봅니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겁니다. 80년대의 상황 속에서 종교와 사회의 관계로 해명된 것은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회에게 하나님께서 역사와 사회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세상을 외면하고 종교의 영역에 갇혀 있던 한국 교회에게 새로운 선교의 의미를 부여해 주신 것입니다.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사회 운동을 통해서 우리는 성서를 새롭게 조명하게 되었고 성서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보적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 그리고 인간의 해방에 대한 진지한 관심 속에서 추동 되었습니다.
이제 달라진 상황, 90년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모두가 아니라고 하고, 공산당이 무너졌고 소비에트가 실패했으니 이제 자본주의만이 인류의 유일한 대안이고, 시민사회의 성숙에 기대하고,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보다는 개인의 실존적인 문제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그런 사회상 속에서 우리는 이제 그런 사회변동에 영향을 받아서 또 거기에 따라 더 강력한 보수 집단으로 회귀하는 길밖에 남지 않은 것일까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80년대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을 종교사회학적으로 분석해 본 것은 아닙니다. 이제 성서와 신앙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그 소중함을 가슴에 간직하게 되었는데, 말씀은 변함이 없고, 한국 교회와 사회의 모순은 여전할진대 우리의 과제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물론 변화된 상황에서 80년대와 같은 획일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각고의 노력이 필요함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다만 저의 분석의 시작이었던 버거(Berger)로 다시 돌아가서 이제 90년대 기독운동의 종교사회학적 의미는 절대화되어 가는 사회의 사상과 이념을 상대화시키고 종교 본연의 이상과 원칙을 가지고 성서와 예수에게 충실해서 사회를 변혁하려 하는 모습을 띠었다고 먼 훗날 평가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세상은 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신앙의 선배들이 험한 길을 가면서 가르쳐 주었던 유산이 있다면, 그 교훈을 가지고 이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세계를 신앙의 길을 묵묵히 감으로 바꾸어 놓아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90년대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의 사회적 역할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사회변혁을 추동 할 수 있을까? 또 그것은 무엇으로 가능할까? 기독운동을 고민하는 우리의 진지한 과제입니다. 아니, 어쩌면 답은 나와 있는지 모릅니다. 이미 2000년 전에 말입니다. 단지 우리가 연약하고 용기가 없고 신앙이 없어서 그 길, "예수 따름"의 길을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그 길을 담담하게 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렵니다. 다만 부족한 저를 지켜보아 주시고 새벽마다 기도해 주신 사랑하는 부모님과 생의 열망을 안겨 준 원이, 존경하는 선배님들, 동기들, 후배들, 특히 '기독교문화연구회'와 '학생신앙운동'의 동역자들의 치열한 삶과 운동에 힘찬 박수와 진심 어린 동지적인 고마움의 인사를 가슴에 담아 드립니다. 그 좋은 만남들이 없었으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절망가운데 따뜻함으로 다가와 주었던 친구들에게 깊은 사랑을 전합니다. 생명과 소망이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미를 올려드립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주후 1994년 12월이 다가는 즈음에
|
snu_gra_d.hwp (94KB, DN:800)
